불소행찬(佛所行讚) 4권
불소행찬 제4권
-일명 불본행경-
마명 보살 지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6. 병사왕제제자품(甁沙王諸弟子品)
그때 저 다섯 비구인
아습파서(阿濕波誓) 등은
그가 법 알았다는 소리를 듣고
개탄하며 스스로 부끄러워졌네.
합장하고 더욱 공경하면서
높은 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네.
여래(如來)는 훌륭한 방편으로써
차례로 그들을 바른 법에 들게 하셨네.
앞뒤로 저 다섯 비구들
도를 얻어 모든 감관[根] 조복함이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다섯 별이
밝은 달을 늘어서 모시는 것 같았네.
그때 저 구시성(鳩尸城)에 있는
장자(長者)의 아들 야샤(耶舍)가
밤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
그 권속을 보았네.
남자 여자들 모두 알몸으로 누워 있는 것 보고
곧 싫어져 떠날 마음 생겼네.
이것은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어리석은 범부를 속여 유혹한다 생각하였네.
곧 옷을 장식하고 영락을 차고
집을 나와 숲으로 나아가서는
길을 따라가면서 높이 외치길
“아아 괴롭다, 괴로워 미치겠다”고 하였네.
여래께서 밤에 나와 거니시다가
괴롭다고 외치는 소리 들으시고는
곧 명령하여 말씀하셨네.
‘그대들 잘 왔다. 여기 안온한 곳 있으니
열반(涅槃)은 지극히 맑고 시원하며
적멸(寂滅)은 모든 번뇌 여의느니라.’
야사는 부처님의 가르침 듣고
마음 속으로 못내 기뻐하였네.
본래부터 싫어해 여의려는 마음 더하여
거룩한 슬기 활짝 열렸네.
마치 맑고 시원한 못에 들어가듯
엄숙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나아갈 때
그 몸은 아직 세속 모습 그대로이나
마음은 이미 번뇌가 다하였네.
오랫동안 심어 온 선근(善根)의 힘으로
어느새 나한과(羅漢果)를 이루었다네.
맑은 지혜의 이치 가만히 깨달아
법을 듣자마자 쉽게 알았네.
비유하면 마치 곱고 흰 비단
물감으로 물들이기 쉬운 것 같았네.
그는 이미 스스로 깨달아 알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쳤으나
아직 장엄 그대로인 자기 몸 돌아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생겼네.
여래께서는 그 생각 짐작하시고
그를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네.
“영락으로 그 몸을 꾸몄으나
마음은 모든 감관을 항복받아서
평등하게 중생을 관찰하되
법을 행하고 그 모양 헤아리지 않느니라.
몸에는 출가한 이의 옷을 입고도
그 마음은 번뇌를 잊지 못하여
숲 속에 있으면서 세상 영화 탐하니
이는 곧 속인이라 하리라.
모양은 비록 세속 모습 가졌어도
마음이 높고 좋은 경계에 머물면
집에 있어도 산림(山林)과 같아
곧 내 것[我所]이라는 마음 여의느니라.
결박을 푸는 것 마음에 달려 있으니
모양에 어찌 정해진 상(相)이 있으랴.
갑옷 입고 겹 도포 입으면
강한 적이라도 능히 누를 수 있고
형상을 고치고 물들인 옷 입으면
번뇌 원수를 항복받을 수 있네.’
그리고 곧 ‘비구여 오라’고 명령하시자
그 소리 따라 세속 모양 사라지고
출가한 이의 모습을 두루 갖추어
모두 다 사문(沙門)이 되었네.
일찍이 세속에서 함께 놀던 벗 있으니
그들의 수는 쉰네 명이었네.
그들 착한 벗으로 출가한 이 찾아
차례대로 바른 법에 들었네.
그들은 과거의 착한 업 때문에
그 묘한 결과 이제 이루었으니
좋은 잿물에 오랫동안 담가두었다가
물로 빨아낸 뒤에 깨끗해지듯
웃 항렬의 모든 성문(聲聞)으로서
예순 명의 아라한(阿羅漢)에게
모두 그 아라한의 법을 따라
순리대로 가르치고 훈계하였네.
“그대들은 이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저쪽 언덕으로 이미 건너가
해야 할 일을 벌써 마쳤으니
일체 공양을 받기에 충분하도다.
너희들은 제각기 모든 나라를 노닐며
아직도 제도되지 못한 이 제도하여라.
중생의 괴로움은 치솟는 불꽃 같건만
오랫동안 아무도 구호할 이 없구나.
너희들은 제각기 혼자 노닐며
가엾게 여겨 거두어 주라.
나도 또한 지금 나 혼자 걸어서
저 가사산(伽闍山)으로 돌아가리라.
거기에는 지금 큰 선인(仙人)이 있으니
왕족의 선인과 범지(梵志) 선인들
그들 모두 다 거기 있으므로
온 세상의 뿌리가 되느니라.
그 중에도 가섭(迦葉)이란 고행 선인은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섬기고
그를 따라 배우는 이 매우 많으니
내 이제 거기 가서 제도하리라.”
그때 저 예순 명의 비구들
가르침 받아 법을 널리 펴려고
제각기 과거의 인연을 좇아
자신의 생각대로 제각기 흩어졌네.
세존께서는 혼자 걸어서 노니시다가
가사산으로 향하셨네.
비고 고요한 법숲[法林]으로 들어가
가섭 선인에게 나아가셨네.
그는 불을 섬기는 굴에 있었는데
거기는 사나운 용(龍)이 사는 곳이었네.
숲은 지극히 맑고 넓은데
곳곳마다 편안하지 않은 곳이 없었네.
세존께서는 그를 교화시키기 위해
그에게 말해 묵고 가기를 청하자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네.
“다른 데는 묵고 갈만한 곳이 없고
오직 불을 섬기는 굴이 하나 있는데
맑고 깨끗하여 있을 만하나
다만 거기는 사나운 용이 머물고 있어
틀림없이 사람을 해칠 것이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네.
“하룻밤 묵고 가게만 해주오.”
가섭은 갖가지로 만류했으나
세존의 간청은 멈추지 않으셨네.
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내 마음엔 허락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일러 인색하다 하리니
우선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부처님께서 곧 화실(火室)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바르게 사유하셨다.
그때 사나운 용이 부처님을 보자
성을 내어 독한 불 내뿜었네.
온 방안이 시뻘겋게 탔지만
부처님 몸에는 미치지 못했네.
집이 다 타고 불은 절로 꺼졌으나
세존께선 오히려 편안히 앉아 계셨네.
마치 겁화(劫火)가 일어나
범천(梵天)의 궁전이 다 타버려도
범천의 왕은 바른 자세로 앉아
걱정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음 같았네.
사나운 용은 세존 얼굴을 보고
빛나는 안색 조금도 다른 기색이 없자
독을 멈추고 착한 마음 내어
머리 조아리고 귀의(歸依)하였네.
가섭은 밤에 그 불빛 보고
탄식하면서 ‘아아, 괴상하여라.
저렇듯 도덕을 지닌 사람이
용의 불길에 타 죽다니’라고 하였네.
가섭과 그의 권속들
이른 아침부터 모두 와서 구경했으나
부처님께서는 사나운 용 항복받아
발우 안에 담아 두고 계셨네.
그들은 부처님의 공덕을 알고
기특하다는 생각 내었지만
교만한 습관 익힌 지 오래되어
여전히 “내 도(道)가 높다”고 말하였네.
부처님께서는 그 적당한 때를 맞춰
갖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시고
그의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살펴
변화해가며 적절히 대응하셨네.
그로 하여금 그 마음 부드럽게 하여
바른 법의 그릇이 되기 충분케 하되
그 도(道)가 아직 얕아서
세존께는 미치지 못함을 알게 하셨네.
그러자 결정코 겸손하고 하심(下心)하여
시키는 대로 바른 법을 받았고
울비라가섭(鬱毘羅迦葉)과
그 제자 5백 사람이
스승을 잘 따르고 마음을 조복받아
차례차례 바른 법을 받았네.
가섭과 그의 제자들
모두 바른 교화를 받은 뒤에는
선인들 모두 그들의 살림살이와
불을 섬기는 모든 기구를
모두 물 속에 던져 버리니
떠올랐다 잠겼다 하며 물결 따라 흘러갔네.
나제(那提)와 가사(伽闍) 등
두 아우는 하류(下流)에 있다가
그 옷과 모든 기구들
물 따라 어지럽게 내려오는 것 보자
큰 변(變)을 만났다는 생각에
근심스럽고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다가
두 사람은 그 제자 5백 사람과
강물을 따라 올라가 형을 찾았네.
그 형은 이미 출가(出家)하였고
그 모든 제자들 또한 그러함 보고는
일찍이 없던 법을 얻은 줄 알고
기특한 일이라 생각하였네.
‘형은 지금 이미 저 도(道)에 항복했으니
우리들도 또한 그를 따라야 한다.’
그들 형제 세 사람과
그 제자 권속들 위해
세존(世尊)께서 설법하시되
불을 섬기는 일로 비유하셨네.
“어리석음의 검은 연기 일어나고
어지러운 생각의 부시와 부싯돌 생겨
탐욕과 성냄의 불길이
모든 중생을 불사른다네.
이와 같이 이 번뇌의 불도
언제나 치성하여 그치지 않는다네.
나고 죽음에 더욱더 빠져들고
고통의 불길 또한 항상 타오르네.
이 두 가지 불이 성하게 타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곳 없다네.
어떻게 마음 있는 사람으로서
싫어하여 떠날 생각 내지 않느냐.
싫어하여 떠나려고 탐욕 버리고
탐욕이 다하면 해탈 얻는다네.
만일 이미 해탈을 얻었으면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기느니라.
그리하여 나고 죽는 흐름을 관찰하여
모든 범행을 닦아 마치고
모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그 일천 비구들
세존의 설법을 들었네.
모든 번뇌 영원히 일어나지 않고
모두 마음이 해탈[心解脫]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가섭 등
일천 비구를 위해 설법하셨네.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깨끗한 지와 묘한 장엄과
모든 공덕 있는 권속들에게
계(戒)를 주어 모든 감관 깨끗하게 하였네.
이에 큰 덕 있는 선인 길을 떠나자
저 고행림(苦行林) 영화 잃음이
마치 사람이 계(戒)의 덕을 버리고
빈 몸으로 헛되이 사는 것 같았네.
세존께서 많은 권속 거느리시고
왕사성(王舍城)으로 나아가시자
일찍이 그 마갈왕(摩竭王)에게
약속했던 일을 생각하셨네.
세존께서 이미 거기에 도착하시어
장림(杖林)3)에 머물러 계셨네.
병사왕(甁沙王)은 그 소문 듣고
그 많은 권속들과 함께 하였네.
온 나라 남녀들 거느리고
세존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네.
멀리서 여래께서 앉으신 모습 보자
마음 낮추고 모든 감관[根] 단속한 채
온갖 속된 모습 떨어버리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나아가니
그것은 마치 저 제석천왕이
범천왕에게 나아가는 것과 같았네.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공경 다하여 안부를 여쭐 때
부처님께서 위로하여 마치고 나서
명하여 한쪽에 앉게 하셨네.
그때 왕은 마음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석가(釋迦)의 큰 위엄과 힘은
훌륭한 덕을 가진 가섭 등을
이제 모두 제자로 삼으셨다.’
부처님께서 여러 사람 마음 아시고
가섭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떠한 복과 이익 보았기에
불 섬기는 법을 버렸느냐?”
가섭은 부처님 분부 받고
대중 앞에서 놀라 일어나
두 무릎 땅에 꿇고 합장한 채
높은 소리로 부처님께 아뢰었네.
“복을 닦으려고 불신[火神]을 섬겼으나
그 과보(果報)는 윤회(輪廻)뿐이었고
생사(生死)의 번뇌만 더했으니
그러므로 저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열심히 애써 불을 받들어 섬겨
5욕(欲)의 경계를 구하려 하였으나
애욕은 더해 끝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저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불 섬기고 주술(呪術)을 닦았으나
해탈 못하고 생(生)을 받았으니
생을 받음은 괴로움의 근본이라
그러므로 버리고 다시 안락 구하였습니다.
나는 본래부터 고행이라 말하는 것
제사하고 또 큰 모임을 여는 것을
제일 수승한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바른 도(道)와는 더욱 어긋났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그것 버리고
보다 훌륭한 적멸(寂滅)을 구하여
생ㆍ노ㆍ병ㆍ사를 완전히 여의고
다함 없는 맑고 시원한 경계 구하나이다.
저는 이 이치 알았으므로
불 섬기는 법을 버렸습니다.”
세존께서는 가섭이
스스로 알고 깨달았다는 말을 듣고
모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깨끗한 믿음 내게 하기 위하여
가섭에게 말씀하셨네.
“너 대사(大士)는 여기에 잘 왔다.
갖가지 법을 분별함으로
훌륭한 도(道)를 따랐었는데
이제 이 대중들 앞에서
너의 훌륭한 공덕 나타내 보라.
마치 거부(巨富) 장자(長者)가
그 보배 창고를 열어 보여
가난하고 괴로워하는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 싫어 여의는 마음 더하게 하는 것처럼.”
“좋습니다. 거룩한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는 곧 대중들 앞에서
몸을 여미고 정수(正受)에 들었다가
나부끼듯 허공으로 올라갔네.
거닐다 섰다 앉았다 누웠다
혹은 온몸이 벌겋게 되어
왼쪽 오른쪽으로 물과 불을 내어도
타지도 않고 또한 젖지도 않았네.
온몸에서 구름과 비를 내고
뇌성벽력으로 천지를 진동했다.
온 세상 모두 우러러볼 때
눈이 뚫어져라 보아도 싫증 없었네.
여러 사람들 똑같은 말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네.
그런 다음 그는 신통 거두어
세존의 발에 절하면서 말했네.
“부처님은 저의 큰 스승이시요
저는 그 어른의 제자 되었네.
이런 일을 행하라는 분부 받들어
이제 내 할 일은 이미 마쳤다.”
온 세상 모두가 저 가섭이
부처님 제자라고 한 것 보고
결정코 저 세존께서
진실한 일체지(一切智)임을 알았네.
부처님께서는 거기 모인 모든 대중들
능히 법 받을 만한 근기임을 아시고
병사왕에게 말씀하셨네.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시오.
마음과 뜻과 또 모든 감관[根]
이것은 모두 다 나고 멸하는 법이니
나고 멸하는 허물 분명히 알면
그것은 곧 평등한 관찰이라오.
만일 그와 같이 평등하게 관찰하면
그것은 곧 몸을 아는 것이요
몸이 나고 멸하는 그 법을 알면
취(取)할 것도 없고 받아들일 것 없음을 알리.
만일 이 몸의 모든 감관[根] 깨달아 알면
나[我]도 업고 또 내 것[我所]도 없나니
그것은 순수한 괴로움 덩어리
괴로움에 살다가 괴로움에 멸하는 것
이미 이 몸의 모든 상(相)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는 줄 알면
그것은 곧 제일가는
다함 없는 맑고 시원한 곳이라오.
내가 있다고 보는 따위의 번뇌는
모든 세상 사람을 결박하나
이미 내 것이란 것 없다고 보면
모든 결박은 다 풀리리라.
진실 아닌 것 보면 결박되고
진실을 보면 곧 해탈하리니
세상에서 섭수(攝受)하는 나라는 것
그것은 곧 삿되게 받아 지니는 것이리.
만일 거기 내가 있다면
상(常)과 혹은 무상(無常)
나고 죽는 두 극단적 견해 생길 터이니
그 허물 제일 심한 것이네.
만일 모든 것 무상(無常)하다 한다면
행을 닦아도 과(果)가 없을 것이요
또한 뒷몸도 받지 않을 것이며
공력[功] 없이도 해탈할 것이네.
만일 그것을 항상한 것이라 한다면
죽음과 삶의 나뉨도 없으니
그것은 응당 허공과 같아서
남[生]도 없고 또한 멸함도 없으리.
만일 내가 있다면
마땅히 일체는 다 같아서
일체에도 다 내가 있을 것이니
업(業)과 과(果)는 스스로 이뤄지지 않으리.
만일 나라는 것 만든 이 있다면
괴롭게 수행할 것 없을 것이요
거기에 자재(自在)로운 주인 있다면
무엇을 구태여 만들려 하리.
만일 내가 곧 항상한 존재라면
변하고 달라짐 용납하지 않겠거늘
괴롭고 즐거운 모양 있음을 보나니
어찌 항상한 것이다 말할 수 있으리.
지혜 생기면 곧 해탈하여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읠 것이나
일체가 다 항상한 것이라면
어찌 해탈할 필요 있으리.
무아(無我)란 다만 말만 아니라
이치가 진정 실성(實性)이 없나니
내가 하는 일 볼 수 없거늘
어떻게 내가 하는 것이라 말하리.
나는 이미 하는 일 없고
또한 나를 만든 자 없나니
이 두 가지 일 없기 때문에
진실로 나라는 것 없는 것이네.
만든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으며
주인도 없으나 항상 옮겨가나니
남[生]과 죽음[死]은 밤낮으로 흘러가네.
그대는 이제 내 말 들으시오.
여섯 감관[根]과 또 여섯 경계(境界)
그 인연으로 여섯 식(識)이 생기네.
이 세 가지가 만나 촉(觸)이 생겨
마음과 생각과 업(業)을 따라 옮겨가네.
양주(陽珠)가 마른 풀 만나면
햇빛을 인연하여 불이 따라 생기나니
모든 감관[根]과 경계와 식(識)이
사람에게서 생기는 것 또한 그러하다네.
싹은 종자로 인해 생기지만
종자가 곧 싹은 아니네.
합한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니
중생이 생기는 것 또한 그러하다네.”
세존께서 이렇게 진실하고 평등한
위없이 묘한 이치 말씀하시자
병사왕은 못내 기뻐해
번뇌[垢]를 여의고 법안(法眼)이 생겼네.
왕의 권속과 많은 백성과
백천의 모든 귀신들까지도
감로법(甘露法) 설함을 듣고
또한 따라서 모든 번뇌 여의었네.
17. 대제자출가품(大弟子出家品)
그때 병사왕은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죽림(竹林)으로 옮기실 것을 간청하자
가엾게 여겨 허락하셨기에 잠자코 계셨네.
왕은 이미 진실한 이치 깨달은 뒤에
받들어 예배하고 궁성으로 돌아갔고
세존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
죽원(竹園)에 편안히 머무셨네.
모든 중생들 제도하기 위해
지혜의 등불 세워 밝히시되
범(梵)과 하늘과 또 성현이
머무는 방법으로 머무셨네.
그때 저 아습파서(阿濕波誓)는
마음 조복하고 모든 감관 제어하고
때가 되자 걸식하기 위해
왕사성(王舍城)으로 들어갔었네.
용모는 세상에 뛰어나 특별하고
위의(威儀)는 편안하고 자상하였다.
성안에 사는 모든 남녀들
보는 이마다 모두들 기뻐하였네.
가던 사람 너나없이 걸음 멈추고
앞에선 맞이하고 뒤에선 따라갔네.
그때 가비라(迦毘羅)라는 선인이
많은 제자를 널리 제도하였네.
그 중에 제일 훌륭하고 많이 들은 이
그 이름 사리불(舍利弗)이었네.
그는 이 비구의 조용하고 여유로움과
모든 감관의 고요함을 보고
길에서 주춤한 채 그가 오길 기다려
손을 들어 청하여 물었다.
“젊은이로서 조용한 그 태도
내 일찍 보지 못했었네.
어떤 훌륭하고 묘한 법 얻었으며
어떤 스승을 숭배하고 섬겼는가.
그 스승은 어떤 말로 가르쳤는가.
말하여 내 의심 풀어주기 바라네.”
비구는 그의 물음 기뻐하면서
온화한 얼굴로 공손히 대답했네.
“일체지(一切智)를 두루 갖추고
훌륭한 감자족(甘蔗族)의 출생으로서
하늘ㆍ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 이
그가 곧 우리의 큰 스승이시네.
나는 나이 아직 어리고
또 공부한 날도 얼마 되지 못하네.
어찌 우리 큰 스승의
깊고 묘한 이치를 펼 수 있으리.
그러므로 이제 옅은 지혜로
스승님께서 가르치신 법 간략히 말하리라.
‘일체 유위법[有法]이 생기는 것은
다 인연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네.
나고 멸하는 법은 다 없어지나니
도(道)를 말한 것은 방편이라네.”
이생(二生)인 우파제(優波提:舍利弗)는
듣자마자 그 말이 마음속에 스며
모든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청정한 법안이 생겼네.
“내 이전에 닦던 것은 결정코
인(因)과 인 없음을 아는 것으로
일체는 아무것도 짓는 바 없고
모두 자재천(自在天)을 말미암는다 했네.
그러나 이제 인연법을 듣고 나서
무아(無我)의 지혜를 열어 밝게 하였네.
이 세상 가르침은 모든 번뇌를 더해
능히 끝까지 없앨 수 없었는데
오직 여래의 가르침만이
영원히 번뇌 다하여 남음이 없네.
내 것을 거두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나
그러나 능히 나를 떠나네.
밝음은 해와 등불로 인해 일어나지만
누가 능히 그것에 광명이 없다 하리.
혹 연꽃 줄기를 끊을 때
가는 실은 오히려 이어지지만
부처의 가르침은 번뇌를 끊기
마치 돌을 끊은 듯 남음이 없네.”
그는 비구 발에 공손히 예배한 뒤
물러나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네.
비구도 걸식을 마친 다음에
죽원으로 돌아갔었네.
사리불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굴빛 매우 온화하고 맑았네.
그의 좋은 벗 목련(目連)은
매우 친한 사이로 앎과 재주 비등했네.
그는 멀리서 사리불의
매우 기뻐하는 얼굴 모습 보고 말했네.
“내 지금 자네를 보니
보통 때의 얼굴과는 다름이 있네.
본성(本性) 지극히 무뚝뚝한데
기뻐하는 모습 지금에야 보이네.
이런 모습 까닭 없지 않겠거니
반드시 감로법을 얻은 것이다.”
“오늘 여래의 말씀을 듣고
실로 일찍이 없던 법 얻었다네.”
그가 곧 청하자 그를 위해 설명하니
그는 그것을 듣고 마음 열리고
모든 티끌과 때도 또한 없어져
이내 바른 법안(法眼)이 생겼나니
오랫동안 묘한 인과(因果) 심었었기에
마치 손바닥의 등불 보듯 하였네.
부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얻어
둘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갔네.
그 제자 무리들
250명의 사람도 함께하였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두 현인(賢人)을 보고
모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네.
“저기 오는 두 사람은
다 내 으뜸가는[上首] 제자이니라.
한 사람은 그 지혜 짝이 없을 것이요
또 한 사람은 신족(神足) 제일이니라.”
깊고 깨끗한 범음(梵音)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들 잘 왔구나.
여기는 맑고 시원한 법이 있나니
출가자의 맨 마지막 도(道)이니라.”
손에는 셋으로 갈라진 지팡이 짚고
머리 틀고 물병 지닌 그들
잘 왔다는 부처님 소리 듣자
곧 변하여 사문(沙門) 되었다.
두 스승과 그 제자들은
모두 다 비구의 모습 갖추자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는데
부처님께서 그들 위해 설법하시자
모두 다 아라한도(阿羅漢道) 얻었네.
그때 어떤 이생(二生)이 있었는데
가섭(迦葉)족의 밝은 등불로서
들은 것 많고 몸 모양 원만하며
많은 재물에 아내 또한 어질었으나
마음속에 해탈도를 구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것 버리고 집을 나와
다자탑(多子塔)으로 접어드는 길에
갑자기 저 석가문(釋迦文)을 만났네.
빛나는 얼굴 환하게 비춤이
마치 하늘 사당[祠天]의 깃대 같았네.
그는 엄숙하게 온몸으로 공경하고
머리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며 말했네.
“존귀한 분은 나의 큰 스승이시며
나는 곧 존귀한 분의 제자입니다.
오랫동안 어리석은 어둠을 쌓아왔으니
원컨대 저를 위해 등불 되어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저 두 생(生)이
기쁜 마음으로 해탈을 숭상함 아시고
청정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소리로
잘 왔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네.
그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태평하고
몸과 정신의 피로가 확 풀리며
마음은 훌륭한 해탈(解脫)의 경지에 깃들어
지극히 고요하여 모든 티끌 여의었네.
부처님께서는 그가 호응하는 바를 따라
그를 위해 간략히 해설하시자
그는 모든 깊은 법 한꺼번에 이해하고
네 가지 걸림 없는 변재 이루어
큰 덕이 사방에 널리 퍼졌으므로
대가섭(大迦葉)이라 이름하였네.
‘본래는 몸과 나[我]는 다르다 보고
혹은 나를 곧 몸이라 보며
나도 있고 내 것[我所]도 있다고 보았지만
지금은 이 견해 아주 없어졌다네.
이 몸은 오직 온갖 괴로움 덩어리
괴로움을 떠나면 남음 없다고 보네.
계(戒)를 가지고 고행 닦으며
인(因)이 아닌 것을 인이라 보았지만
평등하게 그 괴로움의 성질을 보아
저 다르게 쌓인 마음 영원히 없앴네.
혹은 있다고 보고 혹은 없다고 보면
이 두 견해는 망설임을 내지만
평등하게 참 진리 깨달으면
결정코 다시는 의심 없으리.
재물과 색(色)에 물들어 집착하고
미혹하고 취(醉)하여 탐욕 생겼으나
덧없고 깨끗하지 못하다 생각하면
탐심과 애욕은 영원히 어그러지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등하게 생각하면
원수와 친함 다르다는 생각 없나니
일체를 슬프고 가엾게 여기면
미워하고 성내는 독(毒)을 녹이리라.
색(色)에 의해 모든 유(有)가 상대하여
갖가지 잡생각 생겨나니
깊이 생각하여 색(色)의 생각 무너뜨리면
곧 색(色)에 대한 애욕을 끊을 수 있으리.
비록 무색천(無色天)에 태어났어도
그 목숨 반드시 다할 때 있으리니
네 가지 정수(正受)에 어두워
실없이 해탈이란 생각 낸다네.
적멸하여 모든 생각조차 여의면
무색(無色)에 대한 탐욕도 영원히 없어지리.
어지러운 마음은 변하고 거스르기
물결을 두드리는 미친 바람 같나니
견실하고 굳은 선정에 깊이 들어가
어지럽고 들뜬 마음 고이 그치게 하라.
어떤 법을 관찰해봐도 내 것이란 것 없고
나고 멸해 견고하지 않다네.
하ㆍ중ㆍ상을 보지 않으면
나[我]라는 거만한 마음 스스로 잊으리라.
지혜의 등불을 세차게 일으키면
모든 어리석음의 어둠 여의고
다하여도 다함이 없는 법 보아
무명(無明)은 모두 다해 남음 없으리.’
열 가지 공덕4)을 깊이 생각해
열 가지 번뇌5)를 멸해 없애고
다시 태어남을 쉬어야 할 일을 마쳤나니
매우 감격해 세존을 우러렀네.
셋을 여의고6) 셋을 얻어서
세 제자7)가 세 가지를 없앰이
마치 세 별이 죽 벌려 있어
저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사제(司弟)들이
삼오(三五)를 모신 것처럼
세 사람 부처님을 모신 것도 그러했네.
18. 화급고독품(化給孤獨品)
그때 어떤 큰 장자(長者) 있었으니
이름을 급고독(給孤獨)이라 하였다.
큰 부자로서 재물은 한량없이 많았는데
널리 보시하여 가난한 이 구제했다네.
그는 멀리 북쪽에 있는
교살라국(憍薩羅國)에서 오다가
어떤 친구 집에서 묵었었는데
그 주인 이름은 수라(首羅)라 했네.
그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와
죽원(竹園)에 계신단 말 듣고
그 이름 받들고 그 덕을 존경하여
그 밤으로 곧 그 숲에 나아갔네.
여래께서는 이미 그의 근기가 성숙했고
깨끗한 믿음이 생긴 줄 아시고
그에 맞게 그 사실 칭찬하며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셨네.
“그대는 이미 바른 법을 좋아해
청정하게 믿는 마음 간절하기에
능히 잠을 줄이고
나에게 와 예를 올리니
내 오늘은 그대를 위하여
첫 손님에 대한 예의 두루 갖추리.
그대는 전생에 덕의 종자[本] 심었고
그 희망 견고하고 깨끗해
부처란 이름 듣자 기뻐했으니
바른 법의 그릇이 될 만하여라.
빈 마음으로 널리 은혜 베풀어
가난하고 궁핍한 이에게 두루 베푸니
그 이름과 덕 두루 흘러 퍼져
그 결실 이룸은 전생 인연 때문이라네.
이제는 마땅히 법보시를 행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껏 베풀고
때로는 고요함의 보시 베풀며
아울러 깨끗한 계(戒) 받아 지니면
계(戒)는 장엄하는 도구가 되고
또 능히 나쁜 갈래[趣] 변화시켜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오르게 하여
하늘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보답하리라.
구(求)하는 모든 것 큰 괴로움이요
애욕은 모든 허물 모으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악을 멀리 여의고
욕심 떠나 고요한 즐거움 닦으라.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세상의 큰 근심인 줄 알아
세상을 바르게 관찰함으로써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 여의어야 하리.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이
이미 이 인간에게 있음을 보았네.
하늘에 나더라도 또한 그러하나니
항상 존재함 없기 때문이라네.
항상함이 없으면 그게 바로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가 없음이며
무상함과 괴로움은 내가 아니니
어떻게 거기에 나와 내 것 있으랴.
괴로움은 곧 괴로움인 줄 알고
모임[集]은 곧 모임인 줄 알아
괴로움이 멸하면 곧 고요함이요
그 길[道]은 곧 안온한 곳이니라.
온갖 생겨남엔 유동(流動)하는 성질 있으니
그것이 곧 괴로움의 근본인 줄을 알라.
그 끝을 싫어해 근원을 막고자 할 뿐
있음과 없음을 원하는 것 아니네.
남ㆍ늙음ㆍ죽음은 성대한 불길로서
온 세간을 두루 태우네.
남과 죽음에 동요됨을 깨달아
마땅히 생각 없음[無想] 익혀야 하네.
삼마제(三摩提)는 최후의 경지로서
감로(甘露)의 고요한 곳이라네.
모든 것 공(空)하여 나와 내 것이 없고
이 세간은 모두 다 꼭두각시 같나니
마땅히 이 몸을 관찰해 보라.
4대(大)와 5온(蘊)의 덩어리라네.”
그때 장자는 이 설법 듣고
그 자리에서 초과(初果)를 얻었네.
“나고 죽음의 바다는 소멸했으나
오직 한 방울 남은 것 있으니
비고 한가한 데서 욕심 여읨 닦았어도
제일 유(有)와 무(無)에 대한 몸의 견해는 남아
지금 세속 사람이
진리 보아 참으로 해탈함만 못했네.
“모든 고행을 여의지 못하고
갖가지 다른 견해의 그물 있으면
제일의 유(有)에까지 이르렀다 해도
그것은 참된 이치 보지 못한 것이니
삿된 생각으로 하늘 복에 집착하면
유(有)에 대한 애욕의 결박 더욱 깊어지리.”
그때 장자는 이 설법 듣고
음개(陰蓋)가 곧 환히 열려
이내 바른 견해를 얻게 되었고
모든 그릇된 견해 영원히 사라짐이
마치 사나운 가을 바람이
두터운 구름을 흩는 것 같네.
“자재천(自在天)의 인(因)이라 헤아리지 말고
그릇된 인(因)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아무런 인 없이
이 세간이 생긴 것도 아니라네.
만일 자재천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어른과 아이, 먼저와 뒤가 없어야 할 것이요
또한 다섯 갈래의 윤회도 없어야 할 것이며
생긴 것은 당연히 멸하지 않아야 할 것이네.
또한 재환(災患)도 없어야 할 것이며
악을 지어도 허물되지 않아야 하리니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못한 업(業)은
다 자재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네.
만일 자재천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세상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으리라.
아들이 아비에게서 생겨난 것 같으리
누가 그 아비를 모른다 하리.
사람이 궁하고 괴로운 때를 만나도
도리어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요
모두 자재천을 숭상할 것이니
마땅히 다른 신(神)은 받들지 않으리라.
자재천이 정말 지은 것이라면
자재천이라 이름해선 안 될 것이니
그는 곧 지은 이이기 때문에
그는 마땅히 늘 지어야 하리.
언제나 지으면 스스로 고달플 것이니
어떻게 자재(自在)라 할 수 있으랴.
만일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 하면
어린애 장난과 같을 것이네.
만일 작심하고서 지었다 하면
마음이 있으니 자재가 아니리라.
괴롭고 즐거움이 중생 때문이라면
그것은 자재천이 지은 것 아니네.
자재천이 괴로움과 즐거움 내었다면
그에게 사랑과 미움이 있음이니
이미 사랑하고 미워함이 있다면
마땅히 자재천이라 일컫지 않으리.
만일 다시 자재천이 지었다면
중생들은 잠자코 있어야 할 것이니
그의 자재한 힘에 맡겼거늘
무엇 하러 구태여 선(善)을 닦으리.
정령 또 선악을 닦는다 해도
마땅히 그 업보가 없기 때문이네.
만일 자재천이 그 업(業)을 내었다면
일체는 모두 그 업이 같아야 할 것이네.
만일 모두가 업이 같다면
모두 자재천이라 일컬어야 할 것이네.
만일 자재천이 인(因)이 없다면
일체도 또한 인이 없어야 할 것이네.
만일 다른 자재천을 의지한다면
자재천은 마땅히 끝이 없어야 하리.
그러므로 저 모든 중생들
아무도 지은 이 없네.
마땅히 알라. 자재천의 이치는
이 이론(理論)에 마주치면 곧 깨어져서
일체 이치가 서로 어긋나니
만일 설명할 수 없다면 곧 허물이 있다네.
또 만일 자성(自性)에서 생겼다 해도
그 허물 또한 이와 같으리.
저 모든 인명론자(因明論者)들
일찍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네.
의지할 것도 없고 또한 그 인(因)이 없이도
능히 지어지는 것이 거기 있다고 말하네.
그러나 세상 모든 것 다 인을 말미암음이
마치 종자를 의지하는 것 같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성(自性)에서 생긴 것 아닌 줄 아네.
이 세상의 모든 지어진 것들
오직 한 인으로 생긴 것 아니건만
그러면서 여기 한 자성을 말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은 인이 아니네.
혹은 말하기를 그 자성은
온갖 곳에 두루하다고 하지만
만일 온갖 곳에 두루하다면
지은이도 지어진 이도 없을 것이니
이미 지은이도 지어진 이도 없다면
그것은 곧 인이 되지 않으리.
만일 온갖 곳에 두루하다면
그 온갖 것을 만든 이 있으리니
그것은 곧 온갖 때에 있어서
늘 만드는 이가 있어야 하리.
만일 늘 만드는 이가 있다고 하면
때를 기다렸다가 물건을 낼 리 없으리니
그러므로 또한 마땅히 알라.
자성이 인(因)이 되는 것 아니라네.
또한 말하기를 그 자성은
일체의 구나(求那)를 여의었다 하지만
그러면 저 만들어진 모든 것들
또한 반드시 구나를 여의어야 하리.
그러나 이 모든 세간은
다 구나가 있음을 보나니
그러므로 또한 이 자성은
일체의 인이 아님을 아네.
만일 저 자성에 대해
구나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상(常)으로써 인을 삼기 때문에
그 성질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네.
그런데도 중생은 구나와 다르니
그러므로 자성은 그 인이 아니요.
자성이 만일 항상한 것이라면
사물 또한 무너지지 않아야 하리.
만일 자성으로 그 인을 삼는다면
인과(因果)의 이치는 같아야 하리라.
그러나 세간의 무너짐을 보나니
그러므로 따로 인이 있음을 아네.
만일 그 자성이 인(因)이 된다면
마땅히 해탈을 구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그 자성 있기 때문에
그것의 나고 멸함에 맡겨야 할 것이네.
가령 해탈을 얻는다 하더라도
자성은 도리어 결박되게 될 것이네.
만일 자성을 보지 못하면서
그 법의 인을 본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인이 되지 못하리니
인과의 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의 모든 보이는 일들
인과 과가 다 함께 나타나네.
만일 자성에 마음이 없다면
마음엔 인이 있을 수 없네.
연기를 보고 불을 아는 것처럼
인과 과는 서로 구하는 게 비슷하다네.
그 인을 보지 못하고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금(金)으로 그릇이나 옷을 만드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금과는 떨어질 수 없다네.
자성을 이 일의 인이라 한다면
처음과 끝이 어찌 다를 수 있으랴.
만일 때[時]로 말미암아 만드는 이 있게 되면
마땅히 해탈을 구하지 않으리니
그 때란 항상하기 때문에
그 시절(時節)에 맡겨야 마땅하리라.
이 세간은 끝이 없는 것처럼
시절도 또한 그와 같다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방편을 구하지 않아야 하네.
다라표구나(陀羅驃求那)라는
세상의 또 다른 주장이 있네.
비록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기는 하나
인(因)이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하네.
만일 내[我]가 짓는다고 한다면
반드시 하고픈 대로 생하였을 것이네.
그러나 지금은 하고픈 대로 되지 않나니
어떻게 내가 짓는다 하리.
갈구하지 않는데 그것을 얻고
갈구하는데 도리어 얻지 못하네.
괴로움과 즐거움에 자재롭지 못한데
어떻게 내가 짓는다 하리.
만일 내가 짓는 것이라 한다면
나쁜 갈래의 업은 없었을 것이네.
그런데 갖가지 업의 과(果) 생기나니
그러므로 내가 짓는 것 아님을 아네.
나는 때[時]를 따라 짓는다고 한다면
때를 따라 오직 착한 일만 지었을 것인데
선(善)과 악(惡)이 인연 따라 생겨나니
그러므로 내가 짓는 것 아님을 알리.
만일 인(因) 없이 지어졌다면
마땅히 방편 닦을 일 없어야 하리라.
일체는 저절로 정해져 있거늘
무엇 하러 구태여 인을 닦으리.
세간에서는 갖가지 업을 지어
갖가지로 결과를 거둔다네.
그러므로 일체 세간에는
인 없이 지어진 것 없음을 아네.
마음이 있고 또 마음 없음은
모두 인연 따라 일어난다네.
그러므로 이 세간의 일체법은
인 없이 생긴 것 하나도 없네.”
장자는 마음이 열리고 풀려
훌륭하고 묘한 이치 밝게 통달했다네.
한 모양의 진실한 지혜가 생겨
결정코 참된 이치 밝게 알았네.
세존의 발에 공경스레 예배하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네.
“이 사바제(舍婆提)8)에 머무소서.
토지는 풍족하고 또 안락합니다.
이 나라의 바사닉(波斯匿) 대왕은
사자원족(師子元族)의 후손입니다.
복덕(福德)의 그 이름 널리 퍼져
멀고 가까운 모든 곳에서 존경합니다.
제가 이제 정사(精舍)를 세우고자 하니
부디 가엾게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부처님 마음은 평등하시므로
거처의 안락함을 구하시지 않겠지만
이 중생들 가엾게 여기시어
제 간청 어기시지 않을 줄 압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장자의 마음에
크게 보시할 생각 일으키면서
물듦도 없고 집착하는 바도 없이
중생의 마음 잘 보호할 줄 아셨네.
“너는 이미 참된 진리 보았고
본 마음 보시하기 좋아하나니
돈과 재물과 범상치 않은 보배를
마땅히 내어 보시해야 하리.
마치 창고가 불에 탔을 때
이미 낸 물건 보배라 해도
밝은 사람은 덧없음 알아
재물 내어 널리 은혜 베풂 같다네.
탐욕이 많은 이는 지키고 아껴
다할까 두려워 쓸데 쓰지 않고
또한 덧없음을 두려워할 줄 모르다가
속절없이 잃고는 근심하고 후회 더하네.
때맞춰 근기에 따라 베풀기
마치 건장한 사내가 도적을 만나
능히 베풀고 능히 싸우듯 하면
이는 용감하고 지혜 있는 장부라네.
베푸는 이는 뭇 사람 사랑 받고
좋은 이름은 널리 두루 퍼지며
어질고 착한 이를 벗하기 좋아하니
그 목숨 마쳐도 마음 항상 기쁘네.
뉘우침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아귀 세계에 태어나지 않으리.
이것은 곧 꽃의 결실이 되어
그 열매 또한 생각키 어려우리.
여섯 갈래 세계를 윤회할 때
좋은 짝은 보시보다 더한 것 없나니
만일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뭇 대중이 받들고 섬길 것이요.
비록 축생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보시의 과보를 따라 즐거움 누리리.
지혜로서 고요한 선정을 닦는 것은
의지함도 없고 헤아림도 없다네.
아무리 감로(甘露)의 도 얻었다 해도
오히려 보시를 바탕하여 이룬 것이네.
그는 은혜로운 보시를 연(緣)하여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닦고
그 생각 따라 기쁜 마음 있으며
결정코 삼마제(三摩提)를 얻는 것이네.
삼매(三昧)는 지혜를 증가시켜
능히 나고 멸함을 바로 보게 하나니
나고 멸함을 바르게 관찰한 다음
차례차례 해탈을 얻게 된다네.
재물 버려 은혜로 베푸는 이는
탐욕과 집착을 없애 버리네.
자비롭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베풀어
미움ㆍ성냄ㆍ거만을 아울러 버리네.
은혜로 베푼 결과를 분명하게 보고
베풂 없는 어리석음 버려지는 것 보아
모든 맺음[結]의 번뇌를 멸하나니
이것은 다 은혜로 베푼 결과라네.
그러므로 은혜로 베풂이야말로
해탈의 인(因)이 됨을 알아야 하리.
마치 사람이 씨 뿌리고 가꾸는 것
그늘과 꽃과 열매 얻기 위함이듯
보시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과보의 즐거움이 대열반이라네.
견고하지 않은 재물의 보시로서
그 값으로 견고한 결과를 얻는다네.
음식을 보시하면 오직 힘만 얻고
옷을 보시하면 좋은 몸을 얻네.
만일 정사(精舍)를 세우면
온갖 결과 구족함을 이룬다네.
혹은 보시로서 5욕(欲)을 구하거나
혹은 큰 재물을 탐해 구하네.
혹은 명예를 위해 보시 행하거나
혹은 하늘에 태어나 즐거움 누리기 위함이네.
혹은 가난과 괴로움 면하기를 원하는데
오직 그대만의 생각 없는 보시는
보시 중에서 최상의 보시로서
무슨 이익이든 얻지 못할 게 없으리.
그대의 마음가짐 크고 넓으니.
마땅히 빨리 성취케 해야 하리.
어리석은 애욕의 마음으로 왔지만
맑고 깨끗한 눈을 떠 돌아가라.”
장자는 부처님의 가르침 받고
은혜로운 마음 더욱 밝아졌다네.
이내 저 우바저사(優波低舍)를 청해
어진 벗되어 함께 돌아가지만
그들은 저 교살라국(憍虄羅國)으로 돌아가
두루 돌아다니며 좋은 터를 찾다가
그 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기원(祇園)의
숲과 물이 지극히 맑고 고요함을 보았네.
그들은 태자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 밭을 사려고 청해 보았네.
그러나 태자는 귀한 보배처럼 아껴서
아예 팔 생각을 내지 않았네.
“비록 황금을 가득히 깔더라도
오히려 그 땅은 내놓을 수 없으리.”
장자는 마음으로 매우 기뻐해
곧 황금을 두루 깔았네.
기타(祇陀)태자가 말했네.
“내가 주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금을 까는가.”
장자가 말했네.
“주지 않으려면 어찌 황금을 깔라 하였소.”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다투다
관청에서 송사까지 벌이게 되자
여러 사람들 모두 기특하다 찬탄하였고
기타 태자 또한 그 정성 알게 되었네.
그 이유를 자세히 물었을 때
대답하여 말했네. “정자를 세워
여래와 제자들 그리고
비구들에게 공양하려 한다네.”
태자는 부처라는 이름을 듣고
그 마음에 곧 깨달음 생겼네.
다만 그 황금의 반만 받고
화해 구하고 함께 정사 세우자 했네.
“그대는 땅을, 나는 숲을
우리 함께 부처님께 공양하자.”
그래서 장자는 땅을, 태자는 숲을 바쳐
사리불로 감독관을 삼아
경영하기 시작해 정사를 세울 때
밤낮으로 꾸준히 해 어느새 완성되었네.
높이 드러나고 훌륭하게 장엄함이
마치 사천왕의 궁전 같았네.
법을 따르고 도(道)에 맞추어
여래의 쓰임에도 알맞았네.
세간에 일찍이 없던 일로서
사위성을 더욱더 빛내었네.
여래께서는 신비한 공덕을 나타내고
제자들 모여들어 안거(安居)할 때
시자(侍者) 없는 이에겐 시자를 내려주고
시자 있는 이에겐 도에 필요한 물자를 대었네.
장자는 이 복으로 말미암아
그 목숨 끝나자 하늘에 태어났고
자손들은 그 업을 이어 받아
대대로 복밭[福田]을 심었네.
19. 부자상견품(父子相見品)
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에서
여러 외도(外道)들을 교화하시어
모두 한맛의 법을 따르게 하시니
마치 해가 뭇 별을 비추는 것 같았네.
저 다섯 산성(山城)을 나와
1천 제자와 함께
앞뒤로 권속들을 거느리시고
이금산(尼金山)으로 나아가셨네.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에 가까워지자
은혜에 보답할 마음이 생겨
“마땅히 법공양 닦아
부왕에게 받들어 올리리라” 하였네.
왕의 스승과 또 대신들
먼저 정탐할 사람을 보내
언제나 부처님 곁을 따라다니며
그의 거둥[進止]을 살피게 하였었네.
부처님께서 돌아오시려 하는 생각 알고
먼저 달려와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께서는 멀리 떠나 공부하시다가
소원을 성취하고 지금 돌아오십니다.”
왕은 그 말 듣고 매우 기뻐해
수레를 타고 나가 맞이할 때
온 나라의 모든 사서(士庶)들
모두 왕을 따라 나아갔네.
점점 가까이 가서 부처 뵈오니
빛나는 모습 이전보다 배나 더하여
많은 대중들 가운데 있는 모습이
마치 저 범천왕과 같았네.
수레에서 내려 천천히 나아갈 때
법 위해 머물기 어려울까 걱정했으나
그 얼굴 우러르자 마음이 하도 기뻐
입으로 뭐라 말할 바를 몰랐네.
자기는 탐욕으로 세속에 얽혀 있고
아들은 초연하여 신선된 것 돌아보니
비록 아들이라 해도 높은 도(道)에 올라 있어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지 알지 못했네.
스스로 생각하되 ‘그처럼 그리워했건만
오늘날엔 마땅히 말할 길 없네.
아들은 이제 잠자코 앉아
안온하여 얼굴빛 변하지 않았네.
오랫동안 이별했었건만 아무 감정 없으니
내 마음 유독 외롭고 슬프게 하는구나.
마치 오랫동안 목마른 사람
길에서 맑고 시원한 우물을 만났네.
달려가 그것을 마시려 할 때
갑자기 그 우물 말라버리는 것처럼
내 이제 내 아들을 보니
빛나던 얼굴 본래 그대로건만
마음 서먹서먹한 기운은 너무도 높아
도무지 따라 붙을 마음 없구나.
정을 억제하고 헛된 희망 단절되니
목마른 이 마른 우물 대한 듯하네.
보지 못할 때는 생각만 치달렸건만
눈앞에 마주 보자 기쁨 없어져
마치 사람이 이별한 부모 그리다가
갑자기 그림의 형상만 본 듯하구나.
장차 사천하(四天下)의 왕 되기는
마치 만타왕(曼陀王)과 같겠거늘
너는 지금 밥을 빌고 다니니
이 길이 뭐 그리 영화롭단 말인가.
편안하고 고요하기 수미산(須彌山) 같고
빛나는 모습 밝은 해와 같으며
안정된 걸음걸이 소 왕의 걸음 같고
두려움 없기는 사자 외침 같거늘
사천하(四天下)의 물려줌을 누리지 않고
구걸하여 그 몸을 기르는구나.’
부처님께서는 부왕(父王)의 마음에
그래도 아들이란 생각 남아 있음 아셨네.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한 까닭과
아울러 일체 중생 가엾게 여기시기에
신족(神足)으로 허공에 올라
두 손으로 해와 달을 받들고
공중에서 두루 돌아 다니며
갖가지 이변을 나타내셨네.
혹은 한량없이 몸을 나누었다가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되며
혹은 물 밟기를 땅 밟듯 하고
땅에 들어가기를 물에 들어가듯 하며
석벽도 그 몸을 막지 못하고
몸 왼쪽과 오른쪽에서 물과 불을 내었네.
부왕은 그것 보고 매우 기뻐해
부자의 정 모두 다 없어졌다네.
부처님께서는 공중의 연꽃 자리에 앉아
그 왕을 위하여 설법하셨네.
“왕께선 자비스런 마음으로써
아들을 위해 근심과 슬픔 더하며
끊임없이 아들을 사랑하는 줄 알지만
그러나 그것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애정을 끊고 그 마음 고요히 하여
아들이 수양하는 법 받으소서.
미처 아들로서 받들지 못한 것을
나 이제 부왕께 바칩니다.
아비로서 아들에게 얻지 못한 것
이제 아들에게 그것 얻으니
사람의 왕으로도 기특한 일이요
하늘의 왕으로도 드문 일입니다.
훌륭하고 묘한 감로의 도(道)
이제 그것을 대왕께 바칩니다.
스스로 지은 업(業)은 이전의 업 받아 나고
그 업은 또 전업의 과보에 의하나니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업의 인과(因果)는
한량없는 세상의 업을 짓나니
그러므로 이 세상 자세히 관찰하면
오직 업만이 착한 벗 됩니다.
여러 친척들이나 또 그 몸을
못내 사랑하고 서로 그리워해도
목숨 마치고 신(神)이 홀로 갈 때는
오직 업만이 착실한 벗 되어 따릅니다.
다섯 갈래 세계를 윤회하면서
세 가지 업이 세 가지로 생겨날 때
애욕(愛欲)이 그 원인이 되어
갖가지 무리의 차별 생깁니다.
이제 마땅히 그 힘을 다하여
몸과 입으로 짓는 업 깨끗이 다스리되
밤낮으로 부지런히 닦아 익혀
어지러운 마음 쉬고 고요하게 하시오.
오직 이것만이 자기 이익 되나니
이것을 버리고는 모두 나[我]가 아닐세.
마땅히 알아야 하네. 삼계(三界)의 모든 존재[有]는
마치 큰 바다의 물결 같아서
즐거워하기도 어렵고 가까이 하기도 어렵나니
마땅히 네 번째의 업 닦아야 하네.
나고 죽는 다섯 길을 윤회함은
마치 뭇 성좌(星座)가 도는 것 같다오.
모든 하늘도 옮겨가고 변하거늘
인간 세상이 어찌 항상할 수 있으리.
열반을 가장 안락한 것이라 하나니
즐거움 중에는 선정의 고요함이 제일이라네.
인간 왕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위험하고 또 두려움 많아
마치 독사와 함께 사는 것 같나니
어떻게 잠시라도 기뻐할 수 있으리.
현명한 사람은 이 세간을 볼 때
왕성한 불길에 둘러싸인 것 같아서
두려움에 잠시도 편안할 수 없기에
나고 늙고 죽는 것 여의기를 구하나니
그러므로 끝없이 고요하고 고요한 곳
슬기로운 사람이 사는 곳이네.
날카로운 무기나 코끼리나 말이나
군사나 수레를 구태여 쓰지 않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항복 받으면
천하의 어떤 적(敵)도 당하지 못하리.
괴로움 알아 괴로움의 인(因)을 끊고
멸(滅)을 증득하고 방편을 닦아
네 가지 참된 이치 바르게 깨달으면
나쁜 세계의 두려움은 없어지리.”
그리고 먼저 묘한 신통 나타내어
왕의 마음 기쁘게 해 드리자
믿고 즐거워하는 정 이미 깊어져
바른 법 그릇이 될 만하였네.
왕은 합장하고 찬탄하였네.
“기특하여라, 서원(誓願)의 결과 이루었구나.
기특하여라, 큰 괴로움 여의었구나.
기특하여라, 나를 요익(饒益)하게 하였구나.
비록 먼저는 슬픔ㆍ근심 더하였으나
그 슬픔 인연하여 이익 얻었네.
기특하여라, 나는 오늘에야
아들을 낳은 과보(果報) 이루었네.
훌륭하고 묘한 즐거움 버리고
열심히 힘써 고행 익히며
마땅히 친족의 영화 버리고
은혜와 애정의 정 끊어야 하리.
옛날의 모든 선왕들은
부질없이 괴로워할 뿐 공이 없었지만
맑고 시원하고 안온한 곳을
너는 이제 모두 이미 얻어
자신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케 하며
크게 가엾게 여겨 중생을 제도하니
처음부터 이 세상에 머물면서
만일 전륜왕(轉輪王)이 되었더라면
그 자재로운 신통 없었으리니
내 마음 열어 주지 못했으리라.
또한 이러한 묘한 법도 없었으리니
나를 지금처럼 기쁘게 하지 못했으리라.
비록 전륜왕이 되었더라도
나고 죽는 실마리 끊지 못했으리라.
너는 이제 능히 남[生]과 죽음[死] 끊어져
윤회하는 큰 괴로움 멸하였으니
능히 중생의 무리를 위해
감로법을 널리 설하는구나.
이와 같은 묘한 신통이 있고
지혜는 매우 깊고 넓어서
나고 죽는 괴로움 아주 멸하여
하늘과 사람 중에 제일이 되었으니
비록 거룩한 왕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마침내 이런 이익 얻지 못했으리라.”
이렇게 찬탄하여 마친 뒤에는
법을 사랑하여 공경 더했나니
왕이요 아버지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겸손하고 낮추어 머리 조아려 예배하였네.
온 나라의 모든 백성들
부처님의 그러한 신통력 보았네.
깊고 묘한 설법 듣고서
또한 왕이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 보자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절하면서
모두 기특하다는 생각을 내었네.
세속의 얽매임에 있기 싫어하여
모두 다 집을 떠날 마음 내었네.
석가 종족의 여러 왕자들
마음으로 깨치고 도과(道果) 이루어졌네.
모든 세속 영화와 즐거움을 싫어해
친족들을 버리고 출가하였네.
아난다(阿難陀)와 난타(難陀)와
금비라(金毘羅)와 아나율(阿那律)
난도(難圖)와 발난타(跋難陀)와
그리고 군다타나(軍茶陀那)
이러한 모든 우두머리와
그 밖의 석가족의 아들들
모두 다 부처의 가르침 따라
그 법을 받고 제자 되었네.
나라를 다스리는 대신의 아들
우타이(優陀夷)가 우두머리 되어
여러 왕자들과 함께
차례차례 출가하였네.
또 우파리(優波離)라 이름하는
아저리(阿低梨)의 아들이
저 모든 왕자들과
대신의 아들들 출가하는 것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깨친 바 있어
또한 출가하여 법을 받았네.
부왕도 그 아들의
신통한 힘과 모든 공덕을 보고
스스로도 또한 맑은 흐름인
감로의 바른 법문에 들어갔네.
왕의 자리와 저 나라까지 버리고
선정의 감로밥을 먹으며
한가롭게 있으며 고요함 닦고
궁중에 있으면서 신선의 도[王仙] 익혔네.
여래는 그 종족의 친구들을
모두 성질에 따라 거두어 받은 뒤에
온화하고 기쁘게 도(道)를 펴자
친척들도 기뻐하며 그를 따랐네.
때가 이르러 걸식하기 위해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으로 들어가시자
성안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
놀라고 기뻐하며 큰 소리로 외쳤네.
“실달아라타(悉達阿羅陀)께서
도(道)를 배워 이루고 돌아오셨다.”
이렇게 안팎에서 서로서로 전해 알려
어른이나 아이들 달려와 뵈었네.
사립을 열고 창문을 열고
어깨를 맞대고 눈을 치뜨며
부처님 몸의 상호(相好)를 보았을 때
그 광명 빛나도 눈부셨다네.
겉에는 가사(袈裟)옷 입고
몸의 광명 안을 철저하게 비추어
마치 태양의 둥근 바퀴가
안팎을 서로 비추어 발하네.
보는 사람 마음이 슬프고 기뻐
모두 합장하고 눈물 흘렸네.
부처님의 고요하고 바른 걸음걸이와
침묵한 얼굴에 모든 감관을 거두고
묘한 몸에 법다운 위의 나타냄 보고
공경하고 아껴 더욱 슬퍼하였네.
“머리를 깎아 그 좋은 모습 헐고
몸에는 물들인 옷 입었으며
의젓한 거동과 단아한 얼굴
몸을 단속하고 땅을 응시하며 걸어가네.
마땅히 깃을 붙인 보배 일산 받치고
손에는 나는 용(龍) 고삐 잡아야 할 것을
어찌하여 먼지를 뒤집어쓰며
발우 들고 걸식하러 다닌단 말인가.
그 재주는 원수를 항복받기 충분하고
얼굴은 채녀(婇女)들을 기쁘게 할 만하네.
화려한 옷에 하늘관[天冠] 쓸 때
만 백성 모두 우러러 뵈올 텐데.
어찌하여 싱그러운 모습 굽히고
마음을 억누르고 몸을 억제하며
미묘하고 만족스런 빛나는 옷 버리고
맨몸에 물들인 옷 입었는가.
어떤 모양을 보고 무엇을 구하기에
이 세상의 5욕(欲)을 원수라 하네.
어진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 두고
혼자 즐거워하며 외로이 노니는가.
어려워라. 저 어진 아내
긴긴 밤 근심스러운 생각 품었네.
이제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성명(性命)은 그나마 보전하였네.
알 수 없구나. 저 정반왕(淨飯王)
마침내 이 아들을 보았는가.
그 묘한 상(相)을 가진 몸 보았다가
형상 무너뜨리고 집 출가하였으니
원수라도 오히려 마음 아파하겠거늘
아비로서 그것 보고 어떻게 편안하리.
사랑하는 그 아들 라후라(羅睺羅)는
늘 울며 슬퍼하고 그리워하였네.
그러나 그것 보고 위로할 마음 없었나니
이 도(道)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네.
관상 보는 법에 밝은 여러 사람들
태자는 나면서부터
대인(大人)의 상(相)을 두루 갖추었으니
마땅히 온 천하의 공양 받으리라고 말하였네.
그러나 이제 저 하는 모양 보니
그것은 모두 다 거짓말이었구나.”
이와 같이 그 많은 사람들
서로 시끄럽게 지껄였으나
여래는 마음에 집착이 없어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다만 중생들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가난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네.
저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고
아울러 미래의 세상을 위해
탐욕이 적은 자취 나타내고
세속의 잡된 비방 없애려 하였네.
가난한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맛나고 나쁜 것 얻는 대로 맡기고
부잣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발우가 채워지면 숲으로 돌아왔다네.
20. 수기환정사품(受衹桓精舍品)
세존께서 교화하기 시작하시어
가유라위(迦維羅衛) 많은 사람을
인연 따라 제도해 마치시고
대중과 함께 길을 떠나셨네.
먼저 교살라국(憍薩羅國)으로 가서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나아갔나니
기환(衹桓)은 이미 잘 꾸며져 있었고
집은 두루 갖추어져 있었네.
흐르는 샘물은 쏟아져 흐르고
꽃과 열매 모두 우거졌으며
물과 육지의 온갖 희귀한 새들은
끼리끼리 서로 어울려 울어대니
그 아름다움 세상에 비할 데 없어
마치 계라산(稽羅山)의 궁전 같았네.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권속들 데리고 길 찾아서 마중 나올 때
꽃을 뿌리고 좋은 향 사르며
받들어 청하여 기원으로 들어갔네.
손에는 용(龍) 모양의 황금병 들고
몸소 꿇어앉아 길게 물을 쏟으며
시방에 계신 스님들에게
기환정사(衹桓精舍)를 바쳐 올렸네.
세존께서는 주원(呪願)하고 받으셨다.
“온 나라 영원히 편안하여지이다.
그리고 또 급고독 장자는
복과 경사의 흐름 무궁하여지이다.”
그때 바사닉왕은
세존께서 이미 오셨다는 말 듣었네.
수레를 장식하고 기환정사로 나아가
세존 발에 공손히 예배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네.
“헤아리기나 했겠는가. 이 보잘것없는 나라
갑자기 큰 길상 이루게 될 줄을
악하고 거스르며 재앙이 많았는데
어떻게 대인(大人)을 감동케 하였는가.
이제 거룩한 모습 뵙게 되자
맑은 교화에 목욕하고 들이켰네.
비천하고 평범한 사람인데도
성인(聖人)을 힘입어 승류(勝流)에 든 것
마치 바람이 향기 숲에 불어오면
그 기운 어우러져 훈훈한 바람 이루고
온갖 새들이 수미산에 모이면
이상한 빛깔 띤 금빛 같았네.
밝은 사람과 만나게 되자
그 그늘 힙입어 영광을 함께하고
들사람이 선인(仙人)을 공양한 탓에
살아서 세 발[三足] 모양의 별이 되었네.
모든 세상 이익은 다함 있으나
성인의 이익은 영원히 끝없으며
사람의 왕에는 허물 많으나
성인 만나면 그 이익 언제나 편안하리.”
부처님께서는 그 왕의 마음 지극하여
법을 좋아하기 제석왕 같으나
오직 두 가지 집착 있어
재물과 색을 잊지 못하네.
때를 알고 그 마음의 행(行)을 안 뒤에
그 왕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네.
“나쁜 업(業) 가진 비천한 사람도
착한 것을 보면 공경할 줄 알거늘
더구나 그 자재로운 왕으로서
덕을 쌓은 전생의 인(因)으로 말미암아
부처를 만나 공경을 더함이랴.
그것은 곧 어려운 일 아니라네.
이 나라와 백성들 본래부터 평안하였나니
부처를 만났다고 더해진 것 아니라네.
내 이제 간략히 설법하리니
대왕은 우선 자세히 듣고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 지니면
내 공덕의 결과 이룩한 것 보리라.
목숨 마치면 몸과 정신 갈라지고
친한 친척들도 모두 이별하지만
오직 좋고 나쁜 업(業)만 남아
그림자처럼 언제나 따르리.
마땅히 법왕(法王)의 업을 높이고
만 백성 자식처럼 길러야 하네.
현세에서는 좋은 이름 퍼지고
죽은 뒤에는 천상에 오르리라.
마음대로 하면서 법 따르지 않으면
지금은 괴롭고 나중에도 즐거움 없다네.
저 옛날 리마(羸馬)란 왕은
법을 따르다 하늘 복을 받았고
금보(金步)란 왕은 악을 행하다
목숨 마치자 나쁜 곳에 태어났네.
나는 이제 대왕을 위해
선과 악의 법을 간략히 말하리니
그 대요(大要)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 보기를 외아들 같이 해야 합니다.
핍박하지도 말고 해치지도 말며
모든 감관[根]을 잘 거두어 가져
삿됨을 버리고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잘난 체 다른 사람 업신여기지 말고
고행하는 데에서 벗을 사귀며
그릇된 견해 가진 벗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왕의 위엄과 세력을 믿지 말고
그릇되고 아첨하는 말 듣지 말며
모든 고행하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왕의 바른 법전(法典) 벗어나지 말며
부처를 생각하고 바른 법 보전하여
법 아닌 것들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에선 사람 중에 최상이 되고
덕은 장차 높은 도(道) 가운데서 펴나리니
무상하다는 생각을 깊게 해
몸과 목숨 생각마다 변한다 생각하고
높고 뛰어난 경계에 마음을 두고
맑고 시원한 나루[津]에 뜻을 두어 구하며
사랑하는 마음 가져 자재롭게 즐기면
오는 세상에는 그 즐거움 더하리.
영원히 세상에 좋은 이름 전하여
반드시 여래 은혜 갚아야 하니
마치 어떤 사람 단 과일 좋아하면
반드시 좋은 종자 심는 것과 같다네.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고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으며
어둠과 어둠이 계속되는 수도 있고
밝음과 밝음이 서로 인(因)하는 수도 있네.
지혜로운 사람은 세 가지[三品]를 버리고
마땅히 처음부터 끝까지 밝음 배우네.
말이 모질면 온갖 소리 호응하지만
좋은 말하면 따르는 자 없네.
짓지 않은 결과 있을 수 없고
지은 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나니
지은 업을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결국엔 아무 것도 됨이 없으리.
본래 좋은 인(因)을 닦지 않으면
뒤에 올 즐거움 기약 없고
이미 지나간 것 그치게 할 기약 없나니
그러므로 착한 일 닦아야 하네.
스스로 돌아보아 악을 짓지 않아야 하네.
제가 지어 제가 받기 때문이니.
마치 사방의 돌산이 합쳐지면
중생들 도망갈 곳 없는 것처럼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의 산
오직 바른 법 행함으로써
중생들 벗어날 방법 없으나
이 괴로움 겹친 산을 벗어날 수 있으리.
이 세간은 모두 덧없어
다섯 가지 탐욕의 경계 번개 같으며
늙고 죽음 송곳 끝과 같으니
어떻게 법 아닌 것 익힐 것인가.
옛날의 모든 훌륭한 왕들
마치 저 자재천(自在天)과 같아서
용맹하고 건장한 의지로 허공에 올랐으나
모습을 잠깐 나타냈다 어느새 사라졌네.
겁(劫)의 불길이 수미산 녹일 때
바닷물도 모두 다 마른다는데
하물며 이 몸은 물거품 같거늘
어떻게 이 세상에 오래 있기 바라리.
사나운 바람도 비람풍[隨藍]9)에는 멈추고
햇빛도 수미산에 가리워지며
치성한 불길도 물에는 꺼지나니
어느 것 하나 없어지지 않는 것 없네.
이 몸이란 덧없는 그릇인데
긴긴밤 애써 지키고 보호하며
재물과 색(色)으로 두루 받들고
함부로 놀면서 교만을 부리지만
어느새 때가 되어 문득 죽으면
뻣뻣하게 굳음이 마른 나무 같네.
밝은 사람은 이런 변화 보기에
부지런히 공부해 잠자지 않네.
나고 죽음은 제 홀로 기틀을 흔들어
그치지 않아 반드시 타락하리.
계속 됨 없는 즐거움 익히지 말고
괴로운 과보 있는 일 짓지 말며
훌륭하지 않은 벗 가까이 말고
번뇌를 끊지 못하는 지혜는 배우지 말라.
몸을 받지 않는 그 지혜를 배워
받더라도 반드시 몸 없게 하라.
몸이 있더라도 경계에 물들지 말라.
경계에 물들면 큰 허물 있으리.
비록 저 무색천(無色天)에 태어나더라도
시간의 변천(變遷)은 면하지 못하나네.
변하지 않는 몸을 알아야 하니
변하지 않으면 허물없으리.
이 몸이 있기 때문에
온갖 괴로움의 근본 된다네.
그러므로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몸 없는 데에서 근본을 쉰다네.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괴로움 생기네.
그러므로 욕유(欲有:欲界)에 대하여
싫어해 떠날 마음 내어야 하네.
욕유를 싫어하여 떠나면
곧 온갖 괴로움 받지 않으리.
비록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더라도
변하고 바뀌는 것 큰 근심 되나니.
적정(寂靜)하지 않기 때문이어늘
하물며 욕계를 떠나지 않음이랴.
이와 같이 삼계(三界)를 관찰해 보면
그것 모두 덧없고 주인 없는 것
온갖 고통 언제나 불꽃처럼 성하거늘
지혜로운 이로서 어찌 즐겁기 바라랴.
마치 나무에 불붙는 것 같거늘
뭇 새들 어찌하여 떼지어 모여들랴.
이것을 깨달으면 밝은 대장부이지만
이것을 여의면 밝음이 없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라 하지만
이것을 여의면 깨달은 이 아니라네.
이것은 꼭 해야 할 일이니
이것을 여의면 옳지 못하네.
이것은 진리에 가까운 것이니
이것을 여의면 진리와 어긋나리.
이 특별하고 훌륭한 법은
재가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곧 옳지 않은 말이니
법은 오직 사람이 펴는 데 있네.
더위를 근심하여 찬물에 들어가면
모두가 맑고 시원하게 되네.
어두운 방에 등불 밝히면
5욕의 빛깔을 다 볼 수 있네.
도(道)를 닦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집을 나가건 집에 있건 다름없네.
혹은 산에 있어도 죄에 떨어지는가 하면
혹은 집에 있어도 선인(仙人)이 된다네.
어리석고 어둠은 큰 바다 되고
그릇된 견해는 물결 되네.
중생들은 애욕의 흐름을 따라
이리저리 떠돌아 건질 수 없네.
지혜로 가벼운 배를 만들고
삼매(三昧)와 바른 방편의 북[鼓]과
바른 생각의 노[檝]를 굳게 지니면
능히 무지(無知)의 바다를 건넌답니다.”
그때 왕은 마음을 오롯이 하여
일체 지혜 가진 이의 말을 듣고는
세상의 속된 영화 꺼리고 싫어하며
왕이란 기뻐할 일 없는 줄 알았으니
마치 술에 잔뜩 취한 미친 코끼리가
술 깨어 바른 정신 돌아온 것 같았네.
그때 여러 외도(外道)들 있어
대왕이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는 것 보고
모두들 대왕에게 청했네.
부처님과 신통을 겨뤄보려고
그때 왕이 세존께 여쭈었네.
“원컨대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소서.”
부처님께서 잠자코 허락하시자
갖가지 다른 견해 가진 외도로
다섯 가지 신통10)을 가진 선인들
부처님 계신 곳으로 모두 나아갔네.
부처님께서 곧 신통력을 나타내어
바른 자세로 공중에 앉았네.
큰 광명을 두루 놓으니
마치 아침해가 빛나는 것 같았네.
외도들은 모두 부처님께 항복하고
백성들은 모두 다 귀의해 받들었다네.
부처님께서 어머니께 설법하기 위하여
곧 도리천(忉利天)으로 올라가시어
석 달 동안 천궁(天宮)에 계시면서
모든 하늘 사람을 두루 교화하셨네.
어머니를 제도하여 은혜 갚은 뒤
안거(安居)할 때가 지나 돌아올 때
모든 하늘 대중들 깃[羽]처럼 따르고
일곱 가지 보배 계단을 타고
염부제(閻浮提)로 내려왔나니
모든 부처 언제나 내려오던 곳이었네.
한량없는 모든 하늘 사람들
궁전을 타고 따르며 전송했네.
염부제 임금과 백성들
모두 합장하고 우러러보았네.
21. 수재취상조복품(守財醉象調伏品)
부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 어머니와
모든 하늘 사람들 교화하시고
돌아와 인간 세상 노니시면서
인연 따라 교화를 행하셨네.
수제가(樹提迦)와 기바(耆婆)와
수라(首羅)와 수로나(輸盧那)와
장자의 아들 앙가(央伽)와
또 무외(無畏) 왕자며
니구루타(尼瞿屢陀)와
시리굴다가(尸利掘多迦)와
니건(尼揵)인 우파리(優波離) 등
모두들 다 해탈을 얻게 하셨네.
건타라국(乾陀羅國)의 왕
그 이름 불가라(弗迦羅)였네.
그는 미묘한 법의 말씀 듣고
나라를 버리고 출가하였네.
혜무발저(醯茂鉢低) 귀신과
바다기리(波多耆利) 귀신은
비부라산(毘富羅山)에서
항복하고 교화 받았네.
파라연(波羅延) 범지는
바사나(波沙那) 산중에서
반(半) 구절 게송의 조그만 이치로써
항복하여 믿고 좋아하게 하셨었네.
타나마제(他那摩帝) 마을에
구타단탐(鳩吒檀★)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이생(二生)의 우두머리는
생물을 많이 죽여 제사 지냈네.
여래께서 방편으로 그들을 교화하시어
그를 바른 도(道)에 들게 하셨네.
비제하산(毘提訶山)에
큰 위덕(威德) 가진 하늘신 있었네.
그 이름 반차시가(般遮尸呿)
그는 법을 받고 선정에 들었네.
비뉴슬타(毘紐瑟吒) 마을에서는
저 난타(難陀)의 어머니를 교화하였네.
앙가부리성(央伽富梨城)에서는
큰 힘 가진 귀신을 항복받았네.
부나발타라(富那跋陀羅)와
수루나난타(輸屢那檀陀)
흉악한 힘센 용(龍)과
그 나라의 왕과 그 후궁(後宮)들
모두 다 바른 법 받았나니
그들을 위해 감로문 여셨네.
저 난장이들 사는 마을의
기나(稽那)와 시로(尸盧)는
천상에 태어나는 즐거움 뜻하여 구했지만
그들을 교화하여 바른 도에 들게 하셨네.
저 수모(脩侔) 마을에서는
앙구리마라(央瞿利摩羅)를 위해
신통력을 나타내시어
교화하여 곧 항복하게 하셨네.
큰 장자의 아들
부리기바남(浮梨耆婆男)은
부나발타(富那跋陀)같이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았네.
그도 여래 앞에서 교화를 받고
널리 보시를 행하였네.
저 발제(跋提) 마을에서는
발제리(跋提梨)와
발타라(跋陀羅)의
두 형제 귀신을 교화하셨네.
비제하부리(毘提訶富利)에
두 바라문이 있었네.
하나는 대수(大壽)라 하였고
다른 하나는 범수(梵壽)라 하였다.
논의(論議)로 그들을 항복받아
바른 법에 들어오게 하셨네.
비사리성(毘舍離城)에 이르러서는
모든 나찰(羅刹) 귀신들을 교화하시고
또 리차(離車) 사자왕(師子王)과
모든 리차 대중들과
살차(薩遮) 니건자(尼揵子) 등을
모두 바른 법에 들게 하셨네.
아마륵가파(阿摩勒迦波)에서는
발타라(跋陀羅) 귀신과
발타라가(跋陀羅迦) 귀신과
발타라겁마(跋陀羅劫摩) 귀신을 제도하셨네.
또 아랍산(阿臘山)에 이르러서는
아랍바(阿臘婆) 귀신과
둘째 구마라(鳩摩羅)와
셋째 하실다가(訶悉多迦)를 제도하셨네.
돌아와 가도산(伽闍山)에 이르러서는
환가나(絙迦那) 귀신과
바늘 털 가진 야차(夜叉)와
그 자매(姉妹) 아들들을 제도하셨네.
또 바라내(波羅奈)에 이르러서는
저 가전연(迦旃延)을 제도하셨고
그런 다음에는 신통을 타고
수로파라(輸盧波羅)에 이르러서는
저 모든 상인(商人)들과
다바건니검(多波揵尼劒)을 교화하시고
전단(旃檀)으로 지은 집을 받으셨나니
묘한 향기 지금까지 풍긴다네.
마혜바저(摩醯波低)에 이르러
가비라(迦毘羅) 선인을 제도하시고
모니(牟尼)께서 그곳에 계시면서
발로 돌 위를 밟으셨을 때
천 폭(輻) 쌍바퀴 새겨졌나니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리.
바라나(波羅那)에 이르러서는
바라나 귀신을 교화하시고
마투라국(摩偸羅國)에 이르러서는
갈담마(竭曇摩) 귀신을 제도하셨네.
투라구슬타(偸羅俱瑟吒)에서는
뢰타파라(賴吒波羅)를 제도하시고
비란야(鞞蘭若) 마을에 이르러서는
여러 바라문들을 제도하셨네.
가리마사(迦利摩沙) 마을에서는
살비살심(薩毘薩深)을 제도하시고
또 거기서는 저
아기니비사(阿耆尼毘舍)를 교화하셨네.
다시 사위국(舍衛國)으로 돌아와서는
저 구담마(瞿曇摩)와
사제수로나(闍帝輸盧那)와
도가아저리(道迦阿低梨)를 제도하셨네.
교살라국(憍薩羅國)으로 돌아와서는
외도의 스승
불가라바리(弗迦羅婆梨)와
모든 범지(梵志)들을 제도하셨네.
시다비가(施多毘迦)의
고요한 공한처(空閒處)에 이르러서는
모든 외도 선인들을 제도하시어
부처 선인의 길로 들어오게 하셨네.
아수사(阿輸闍)국에 이르러서는
모든 귀신과 용들을 제도하셨고
금비라국(舍毘羅國)에 이르러서는
두 악한 용왕을 제도했으니
하나는 금비라(金毘羅)이고
다른 하나는 가라가(迦羅迦)이다네.
또 발가국(跋伽國)에 이르러서는
야차(夜叉) 귀신을 제도했으니
그 이름은 비사(毘沙)이네.
나구라(那鳩羅) 부모와
큰 장자(長者)로 하여금
바른 법 믿고 즐거워하게 하셨네.
구사미국(俱舍彌國)에 이르러서는
구사라(瞿師羅)와
두 우바이(優婆夷) 즉
바사울다라(波闍鬱多羅)와
반등(伴等) 우바이를 교화 제도하시는 등
많은 무리를 차례로 제도하셨네.
건타라국(健陀羅國)에 이르러서는
아바라용(阿婆羅龍)을 제도하셨고
이와 같이 차례대로
허공에 다니는 것, 물과 뭍에 사는 것들
모두 다 가서 제도하시니
마치 해가 어둠을 비추는 것 같았네.
그때 제바달(提婆達)은
부처님 덕이 특별하고 훌륭하심 보고
마음 속에 가만히 질투를 품어
모든 선정(禪定)을 잃게 하려 하였네.
그리하여 갖가지 나쁜 방편을 지어
바른 법의 승단(僧團)을 부수려 하였으며
저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올라가서는
돌을 무너뜨려 부처님께 던졌으나
그러나 돌은 두 쪽으로 갈라져
부처님 좌우에 떨어졌다네.
그는 다시 왕의 곧고 편편한 길에
미치고 술취한 코끼리를 풀어놓으니
큰 소리로 포효함이 뇌성벽력 같고
용맹스런 기운 솟구쳐 구름을 이루었네.
가로 내치고 빨리 치달리며
마음대로 날뜀 모진 바람 같으니
코와 어금니와 꼬리와 네 발에
닿기만 하면 꺾이지 않는 것 없었네.
왕사성의 길거리마다
어지럽게 사람을 죽이고 해쳐
쓰러진 송장 길에 깔렸고
골수와 피는 흘러 내렸다네.
성 안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
두려워하여 문을 나서지 못하고
온 성안은 모두 두려워 떨며
놀라고 부르짖는 소리만 들렸으며
어떤 이는 성 밖으로 빠져 달아나고
어떤 이는 구멍으로 들어가 숨었네.
여래께서는 5백 대중 거느리시고
때가 되자 성 안으로 들어오시니
높은 누각이나 창에 있던 사람들
부처님께 아뢰어 가시지 말라 하였네.
그러나 여래께서는 마음이 태연하고
부드러운 얼굴에 두려운 빛 없이
오직 탐하고 질투하는 괴로움 생각하며
자애로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하려 하셨네.
하늘과 용의 무리 에워싸고 따르면서
미친 코끼리에게로 점점 나아가자
모든 비구들은 도망쳐 피해 가고
오직 아난(阿難)과 함께 계셨다네.
마치 법에는 온갖 모양 있어도
하나의 자성(自性)은 흔들림 없는 것처럼
취한 코끼리 미쳐 날뛰더니
부처님 뵙자 마음이 곧 깨어났네.
그 몸을 던져 부처님 발에 절하니
마치 큰 산이 무너지는 듯했고
연꽃 손바닥으로 이마 어루만지시니.
마치 해가 검은 구름 비추는 것 같았네.
부처님 발아래 꿇어 엎드리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셨네.
“코끼리여, 큰 용을 해치지 말라.
코끼리는 용과 더불어 싸우기 어려우니
코끼리가 큰 용을 해치려 하면
마침내 좋은 곳에 나지 못하리.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미혹되고 취(醉)함을
항복받기 어려우나 부처 이미 항복받았으니
그러므로 너는 오늘에 있어
마땅히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버려라.
이미 괴로움의 수렁에 빠졌으니
버리지 않으면 더욱 깊이 빠지리.”
그 코끼리는 부처님 말씀 듣고
취한 기운 풀리고 마음 곧 깨어나
몸과 마음이 안락하게 되었나니
목말라 하다 감로를 마신 듯했네.
코끼리는 부처님 교화 받고 난 뒤
온 나라 사람들 모두 기뻐하여
모두 드문 일이라 찬탄하면서
갖가지 공양을 베풀었다네.
하급 착한 이는 중급 착한 이 되고
중급 착한 이는 상급 착한 이 되며
믿지 않던 사람은 믿음을 내고
믿음 낸 사람은 깊고 견고해졌다네.
그때 아사세(阿闍世) 대왕은
부처님께서 취한 코끼리 항복받는 것 보고
마음에 기이하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어
기뻐하고 몇 배나 더욱 공경하였네.
여래께서 좋은 방편으로써
갖가지 신력(神力)을 나타내시어
모든 중생을 항복받으신 뒤에
능력에 따라 바른 법에 들게 했나니
온 나라는 모두 착한 업 닦아
겁초(劫初) 때의 사람처럼 선량해졌다네.
그리고 저 제바달도(提婆達兜)는
악한 행위로 스스로 묶여
전에는 신통력으로 날아다녔으나
지금은 무택(無擇)지옥에 빠져버렸다네.
22. 암마라녀견불품(菴摩羅女見佛品)
세존께서는 널리 교화해 마치시고
열반(涅槃)에 드실 마음 생겨
저 왕사성을 출발해
파련불읍(巴連弗邑)으로 나아가셨다네.
거기에 도착하신 뒤로는
바타리지제(婆吒利支提)에 머무셨나니
그곳은 저 마갈제(摩竭提)의
변방에 있는 속국이었다네.
그 나라의 주인인 바라문은
학식이 많고 경전에 밝았으며
나라의 안위를 우러러 상(相)을 살피던
그 나라의 앙관사(仰觀師)였네.
마갈왕은 사자(使者) 보내어
저 앙관사에게 명령하였다.
“견고한 성을 쌓아 올려
그 이웃 강한 나라에 대비하라.”
세존께서 예언하셨다.
“여기는 하늘신이 보호하는 곳이니
그 안에 성곽을 쌓으면
영원히 튼튼하여 위태로운 일 없으리.”
앙관사는 듣고 마음이 기뻐
부처ㆍ법ㆍ승단에 공양하였네.
부처님께서는 그 성문을 나가
항하(恒河) 강가로 나아가실 때
앙관사는 부처님을 존경하는 뜻으로
그것을 구담문(瞿曇門)이라 이름했네.
항하 강가의 많은 사람들
모두 나와 세존을 맞이하였네.
갖가지 공양 베풀며
저마다 배를 준비해 건너게 하였네.
세존께서는 그 많은 배 중에서 하나만 쓰면
여러 사람 마음과 어긋나리라 생각하시고
세존께서는 곧 신통력을 부리시어
자기와 대중들의 몸을 숨기고
이쪽 언덕에서 문득 사라져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셨네.
부처님께서 지혜의 배를 타시고
중생을 널리 제도하셨으니
그 공덕의 힘으로 말미암아
강을 건널 때 배를 빌리지 않으셨다네.
항하 강가의 많은 사람들
같은 소리로 기이하다 외치고
이 나루에 대해 모두들 말하기를
구담 나루[瞿憂津]라 하였네.
성문 이름은 구담문이고
나루 이름은 구담 나루로서
그 이름 세상에 널리 퍼져
여러 대(代)를 거치며 전하여왔네.
여래께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저 구리(鳩梨) 마을에 이르셔서는
설법하여 많은 사람 교화하셨고
다시 나제(那提) 마을에 이르셨는데
사람들 돌림병으로 많이 죽자
그 친척들 모두 와서 물었네.
“돌림병으로 죽은 모든 친족들
죽은 뒤에 어디에 태어났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업보(業報)를 잘 아시어
그 물음에 따라 모두 예언해주시고
다시 비사리(鞞舍離)로 나아가시어
암라(菴羅) 숲속에 머무셨네.
저 암마라(菴摩羅)라는 여자는
부처님께서 그 동산에 오셨단 말 듣고
그 시녀(侍女) 무리들 거느리고
조용히 나와 맞이했었네.
모든 정(情)의 근(根)을 거두어 잡고
몸에는 가벼운 흰 옷을 입어
갖가지로 장엄한 옷을 버리고
목욕하고 향과 꽃으로 단정했네.
마치 세상의 정숙하고 어진 여자
깨끗한 소복 입고 하늘에 절하는 듯
단정하고 아름다운 그 얼굴 모습
마치 하늘 여인[天玉女]의 모습 같았네.
부처님께서 멀리서 여인 오는 것 보시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네.
“저 여자는 지극히 단정하여
능히 수행자의 마음 붙들 수 있으리니
너희들은 마땅히 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그 마음 진정시켜라.
차라리 사나운 호랑이 입이나
미친 사내의 예리한 칼 아래 있을지언정
여자를 보고 그것에 대하여
애욕의 정을 일으키지 말라.
여자는 아름다운 그 자태 나타낼 때
다니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더 나아가서는 그 그림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어
사람의 착한 마음 겁탈하나니
어떻게 스스로 방어하지 않으리.
울고 웃으며 기뻐하고 성내며
멋대로의 몸짓으로 눈썹 떨구고
혹은 흩은 머리나 기울어진 머리 묶음도
오히려 사람 마음 어지럽게 하거늘
하물며 그 몸짓과 태도 꾸미고
아름답고 고운 얼굴 나타내면서
장엄한 꾸밈으로 더러운 꼴 숨겨
어리석은 사내를 유혹하고 속이니
정신을 빼앗고 나쁜 생각 내게 하여
추하고 더러운 꼴을 깨닫지 못하게 함이랴.
그러므로 마땅히 덧없고 괴로우며
더럽고 내 것은 없다고 관찰하여
그 참된 모양을 자세히 봄으로써
탐욕의 생각을 없애야 하느니라.
스스로 경계를 바르게 관찰하면
하늘여인이라도 좋아할 것 없겠거늘
하물며 어떻게 인간세계 탐욕이
능히 사람 마음을 붙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정진(精進)의 활과
지혜의 칼날과 예리한 화살 쥐고
바른 생각의 겹 갑옷 입고
다섯 가지 탐욕과 결전해 보라.
차라리 뜨거운 쇠창으로써
두 눈을 찔러 뚫을지언정
애욕을 가진 마음으로써
여색(女色)을 보지 않아야 하리.
애욕은 그 마음 미혹시켜
여색(女色)에 현혹되게 하나니
어지러운 생각으로 목숨 마치면
반드시 세 가지 나쁜 길에 떨어지리라.
그러므로 나쁜 길의 괴로움 두려워해
여인의 속임을 받지 않아야 하네.
감관[根]을 경계에 얽어매지도 말고
경계를 감관에 얽어매지도 말라.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탐욕의 생각은
감관이 경계를 얽어매기 때문이니라.
마치 두 마리 밭가는 소가
한 멍에 한 굴레에 매인 것 같아서
소가 서로를 얽어맨 것 아니니
감관 경계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을 제어해
함부로 방일하지 말지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 위해
갖가지로 설법해 마치시자
저 암마라 여자
차츰차츰 세존 앞에 다가왔네.
부처님께서 나무 밑에 앉으시어
고요히 선정에 들어 사유하시는 것 보고
‘부처님께서 대비(大悲)하신 마음으로
내 이 숲을 받으셨으면’하고 생각했다.
단정한 마음으로 태도를 가다듬어
본래의 아름답고 고운 정을 버리고
공경하는 모습으로 마음이 지극하여
머리 조아려 발에 대고 예배했네.
세존께서 앉으라 명령하시고
그 마음에 맞추어 설법하셨네.
“네 마음 이미 순수하고 고요하며
덕 있는 모습 밖으로 드러난다.
젊은 나이에 재물은 풍족하고
덕을 갖추고 좋은 얼굴 겸하고도
능히 바른 법을 믿고 즐기나니
이것은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니라.
장부로서 노숙하고 지혜 있어서
법을 좋아하는 것 기특한 일 아니네.
그러나 여자는 정과 뜻이 약하고
지혜는 옅고 애욕은 깊은데도
능히 바른 법을 좋아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법을 스스로 좋아해야 하리라.
재물과 색(色)은 항상한 보배 아니요
오직 바른 법만이 보배가 되느니라.
좋던 건강도 병으로 무너지고
젊음도 늙음으로 변하게 되며
목숨은 죽음으로 곤(困)함을 받지만
수행하는 법만은 침노할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것도 떠나지 않는 것 없고
사랑하지 않는 것 억지로 만나며
구하는 것 뜻대로 얻지 못하나
오직 법만은 마음을 따르느니라.
남의 힘[他力]은 큰 고통 되지만
자재로운 힘은 큰 기쁨 되나니
여자는 모두 남의 힘에 의지하고
겸하여 남의 자식 배는 고통 있다네.
그러므로 마땅히 깊이 생각해
여자 몸을 싫어해 여의어야 한다.”
저 암마라 여자
법을 듣자 마음 기뻐지고
굳건한 지혜 더욱 밝아져
능히 애욕을 끊을 수 있었네.
곧 스스로 여자 몸 싫어하고
또한 경계에도 물들지 않았네.
비록 누추한 형상 꼴 부끄럽긴 했으나
법의 힘은 그 마음 권하였기에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께 아뢰었네.
“높은 이의 포섭함 이미 받았습니다.
내일 저의 공양을 받아주시어
제 이 뜻한 소원 이루게 해주소서.”
부처님께서 그 정성스런 마음 아시고
겸하여 모든 중생 이익되게 하기 위해
잠자코 그의 청을 받아 주시어
그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시자
그 여자는 눈과 귀 더욱 밝아져
예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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