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흑씨범지경(佛說黑氏梵志經)
불설흑씨범지경(佛說黑氏梵志經)
오(吳) 월지국(月支國) 지겸(支謙) 한역(漢譯)
김철수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니련강(尼連江)의 물가에서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부처님께서는 한 달 동안 지내시며 열여덟 가지 변화를 지으셔서 가섭 형제 세 사람과 천 명의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성(羅閱祇城)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한 해를 머무시면서 백성들에게 법을 강설하여 가르치셨다.
처음 도를 이루신 지 두 해가 지난 다음에는 사위성(舍衛城)에 이르셔서 불도를 융성하게 일으키셔서 천상 사람들과 세간 사람들을 교화하셨다.
그때 향산(香山)에는 가라(迦羅)라는 바라문[梵志]이 있었는데, 4선(禪)을 얻고 5신통(神通)을 갖추어서, 사물을 꿰뚫어 보고 멀리서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으며, 몸은 능히 날 수 있고, 스스로 마음속의 생각을 관찰하여 다른 사람의 내생(來生)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경전의 내용을 밝혀 강설하면 석범(釋梵)ㆍ사천왕(四天王)과 모든 귀신ㆍ용들과 아울러 염라왕(閻羅王)을 감동시켰으므로 그들 모두가 찾아와서 들었다. 그의 말은 아름답고, 오묘한 음성은 온화하여 마치 범(梵)의 음성과 같았다. 그는 날마다 질문을 받고 토론하기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의 음성은 멀리까지 두루 미쳤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하였다.
어느 날 염라왕은 앉아서 경법(經法)을 듣고 있다가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그는 눈을 들어 범지를 바라보고 더욱더 비탄에 젖었다.
그러자 범지가 염라왕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며 슬퍼합니까?”
염라왕이 대답했다.
“모든 일은 실제(實際)로 돌아간다는 것이 헛된 말은 아닌 듯합니다.
인자(仁者)께서 지금 경법을 설하시는 말씀은 아주 명쾌하시고 그 뜻이 매우 오묘하여 마치 연꽃과 같고 명월주(明月珠)와 같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거의 다하여 7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홀연히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실까 염려되어 슬픔에 겨워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자께서는 수명이 다하면 지옥 가운데 저의 영역(部界)에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온 마음으로 법을 받고 있지만 곧 그대를 잡아다가 다섯 가지 독(毒)으로 고문하고 때릴 것이니, 이런 일을 깊이 생각하면 마침내 차오르는 회한을 어찌 다 말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문이 깜짝 놀라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염라왕에게 알려 말했다.
“저는 4선(禪)을 얻고 5신통을 성취하여 4역(域)을 활보하고 범천(梵天)을 넘어서는 데 장애가 없습니다.
죄과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지옥의 염라왕 영역에 떨어진다는 것입니까?”
염라왕이 말하였다.
“인자여, 그대는 임종할 때 악마를 만날 것이니, 그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속에 해치려는 생각이 있어 본행(本行)의 뜻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염라왕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라문은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홀연히 근심스럽고 두려워져 어떤 계책으로 어떤 방편을 세워서 이러한 환란을 면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였고, 근심과 슬픔으로 망연자실하여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불길을 품고 앉았다 일어섰다 불안해하면서 길게 탄식 하였다.
석범(釋梵)과 사천왕(四天王)과 여러 신들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며 길게 큰 한숨을 내쉽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의 수명이 거의 다하여 7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장차 악마를 만나 그것에 대항하여 저의 선심(善心)을 어지럽힐 것이니, 이런 연유로 나쁜 갈래[惡趣]에 나아갈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몸을 뒤척이며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 향산(香山)에 거주하면서 부처님의 처소를 자주 방문하며 경전의 내용을 자문하였던 여러 착한 신들이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법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자께서는 모르십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신명(身命)이 꺼져가고 있는 속인(俗人)이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 신들이 다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3계의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분이시니, 아직 건너지 못한 이들을 건네주시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들을 해탈하게 하시며, 아직 편안하지 못한 이들을 편안하게 하시고, 모두 액난에서 구제하셔서 영원히 고요한 무위(無爲)의 도(道)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부처님을 찾아뵙고 우환에서 벗어나 오래도록 편안함을 얻어 도와 덕이 함께 합치되도록 하지 않습니까?”
바라문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흔쾌해져서 뛸 듯이 기뻐했으니 마치 어둠 속에서 광명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양손에 각기 오동나무와 자귀나무 같은 색깔이 좋은 꽃나무를 거두어 들고, 날아서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렀다.
한편 그가 도달하기 직전에 부처님께서는 마이(摩夷)에게 말씀하셨다.
“세존은 대자비로 끝없는 슬픔을 다스려서 일찍이 제도해야 할 이들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닷물은 밀려와 절벽을 따라 돌아서
일찍이 옛 경계를 넘어선 적이 없지만
홀연히 수신(水神)이 어지럽히면
일어나 옛 흐름을 침범하네.
부처님께서는 본성이 없음을 관(觀)하시고
마땅히 제도해야 할 이들을 살피시니
널리 액난을 면하고 구제 받도록 하여도
끝내 넘어가 잃어버림이 없네.
이때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날아와 공중에 머물면서 똑바로 부처님을 향하여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흑씨(黑氏)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바라문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응답하고, 세존의 가르침대로 곧바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오동나무를 버려서 부처님의 오른쪽에 심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바라문은 곧바로 왼손에 잡고 있던 자귀나무를 버려서 부처님의 왼쪽에 심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바라문이 아뢰었다.
“가지고 왔던 두 나무를 부처님의 좌우에 내려놓아 빈손으로 서 있는데, 다시 무엇을 놓아버리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손에 지니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내가 놓아 버리라 한 것은 이전의 것을 놓아버리고 또한 나중의 것을 놓아버리고 다시 중간의 것을 놓아버리게 하여 처소가 없도록 해서, 생사의 갖가지 환난(患難)을 건너게 하려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인자(仁者)여, 그 근본[本]을 버리고
또한 그 끝[末]도 버리며
중간에 깃들 곳[處所]이 없어야
생사의 근원을 건널 수 있다.
안으로는 6입(入)이 없고
밖으로는 6쇠(衰)1)가 현전하지 않으며
6정(情)을 내버려 두면
무위(無爲)를 이룸이 빠르다네.
흑씨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나라고 보지 않으면 마음을 분명하게 알 것이니, 마음이 없다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로다.
부처님께서 병에 맞게 약을 주셔서 이 못난 마음을 열어 깨우쳐 주시니, 장님이 눈을 얻은 것 같고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도다.
참으로 널리 보고 살피시는 일체지(一切智)이시니, 지금 부처님을 만나 뵌 덕은 이루 말로 비유할 수 없도다.’
그는 곧 아래로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는 그 바라문의 마음속 생각에 응하시고 분별하여 설하시고, 도량(道場)을 나타내 보이셔서 세 가지 해탈문을 연설하셨다.
이때 바라문은 곧 불퇴전지(不退轉地)에 머물게 되어 어떤 우환(憂患)도 없었으므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여러 게송으로 말하였다.
광명은 해와 달을 뛰어넘으시고
지혜는 큰 바다와 같으시며
자비는 광대하고 끝이 없으니
시방이 모두 흔쾌히 떠받드네.
중생은 3계를 유전(流轉)하기를
무수억만 년인데
병에 맞게 법약(法藥)을 주시고
훌륭한 변재(辯才)를 베풀어 주시네.
비록 현세(現世)에 생사에 들더라도
빙빙 돌면서 오고 감이 없으시고
격려하고 교화하여 정진하게 하시니
죄와 복은 대신할 수 없다네.
노력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탐욕 때문에 재앙을 초래하지 말라.
6쇠와 4마(魔)2)를 항복받아 제거하면
도를 이루어 걸리고 막힘이 없으리라.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미혹된 이래로 그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바라건대 가엾게 여기시고 사문이 되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들어주시니, 그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져 위의(威儀)가 가지런해져서 적지(寂地)3)가 되었다.
그는 곧 염라왕에게 찾아가 말하였다.
“그대는 제가 목숨이 7일 밖에 남지 않았으며,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사문이 되어 신통을 이미 갖추었고, 온갖 번뇌(漏)를 다하였으며, 네 개의 강[四瀆]을 건넜고, 뭇 병을 영원히 제거하였으니 마치 큰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과 같습니다.
일시에 수명을 늘려 49일이 되게 하고, 온갖 괴로움을 이미 소멸하였으며 외도의 신이한 술수를 넘어섰으니, 자재하게 세간에 머무르기를 다시 무수겁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염라왕이 대답했다.
“인자께서는 남은 복에 의지하여 부처님을 만났으니, 때맞춰 부처님께서 병에 맞는 법약을 주셔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멸하고, 신통을 다 갖추며, 안과 밖에 의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마치 쥐가 이리를 만난 것과 같고 벼가 재해를 입은 것과 같았을 것이니, 죄에 의해 이끌려서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에 걸린 것처럼 지옥 속으로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원히 벗어나게 되었으니, 저도 기쁠 따름입니다.”
이 말을 마쳤을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道)에 대한 마음을 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ㆍ보살ㆍ흑씨 범지ㆍ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 및 세간의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모두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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