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사론(鞞婆沙論) 2권
비바사론 제2권
시타반니 지음
승가발징 한역
2) 삼불선근처(三不善根處)
3불선근이라는 것은 탐불선근(貪不善根)과 에불선근(恚不善根)과 치불선근(癡不善根)이다.【문】3불선근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
【답】탐불선근은 욕계의 애욕(愛欲)의 다섯 가지와 육식신(六識身)이고, 에불선근은 성냄의 다섯 가지와 육식신이고, 치불선근은 욕계의 무명(無名)이니 모두 네 가지가 있다. 견습견(見習見)은 모두 견도사유(見道思惟)의 끊어야 할 번뇌이니, 견고단(見苦斷)의 어리석음이 약간 포함된다.【문】어째서인가?
【답】여기에 열 가지가 있다. 5견(見)과 상응하며, 의(疑)ㆍ애(愛)ㆍ에(恚)ㆍ만(慢)과 상응한다. 불공(不共)에 열 가지가 있다. 그중에 여덟 가지가 불선근을 성립시키고, 두 가지는 성립시키지 않나니 욕계의 신견(身見)ㆍ변견(邊見)과 상응한다.【문】원인이라는 것은 근을 말한다. 저 욕계의 신견ㆍ변견과 상응하는 무명은 모든 불선법의 원인인데, 그것이 무엇 때문에 불선근을 성립시키지 못하는가?
【답】성질이 선하지 못함을 말한다. 또한 모든 불선법의 원인이니, 그것이 불선근을 성립시킨다. 이 욕계의 신견과 변견과 상응하는 무명은 비록 모든 불선법의 원인이지만 성질이 선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문】만일 그렇다면 무엇인가?
【답】무기이니, 이 때문에 욕계 무명의 전부와 네 가지 견 전부는 견도사유의 끊어야 할 대상이고, 약간은 견고단에 들어가는 것으로서 육식신과 상응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열다섯 가지 3불선근의 성질이다. 이 3불선근의 성질은 여러 모양의 몸[身]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문】성질을 말하였으니, 행에 대해 말하겠다. 무엇 때문에 불선근을 말하였으며, 불선근의 뜻은 무엇인가?【답】존자 바수밀(婆須蜜)이 말하기를, “생기게 한다는 뜻과 기른다는 뜻과 증장시킨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다. 자라게 한다는 뜻과 받아들인다는 뜻과 채운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다. 원인이 선하지 않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다. 점차 바뀌어 선하지 않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다. 따라서 선하지 않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다. 받아들여 선하지 않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존자 담마다라(曇摩多羅)가 말하기를, “여러 존자의 처소 중의 종자가 불선법을 점차 따라서 받아들이니, 이 때문에 불선근의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문】만일 원인이 선(善)하지 않다는 뜻이 불선근의 뜻이라고 한다면, 전생의 선하지 않은 오음(五陰)과 후생의 신하지 않은 오음도 원인이며, 전생의 열 가지 악행과 후생의 열 가지 악행도 원인이며, 전생의 마흔네 가지 선하지 않은 사(使)와 무생의 마흔네 가지 선하지 않은 사도 원인의 뜻이다. 이 때문에 무량한 선하지 않음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3불선근이라고 말하였는가?【답】불세존 법의 참됨은 다른 참된 것이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가 법상(法相)을 모두 알며, 반드시 알고 반드시 행하여 불선근의 모습을 가진 자는 불선근을 세우고, 불선근의 모습이 일는 사는 불선근을 세우지 않는다.존자 구사(瞿沙)가 말하기를, “세존의 깨달음이란 그 힘을 따르니, 여러 가지를 따르며 그에 따르고 그예 가까이 한다. 이 3불선근은 모든 불선법의 원인이지만 다른 불선법은 그렇지 않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든 불선법의 우두머리로서 앞에 있으면서 주체가 되어 인솔하는 법이기 때문이나, 이 힘 때문에 모든 불선법이 전변(轉變)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든 불선법은 근을 말미암고 근본에 이끌려져서 소작연(所作緣) 등과 유습기[有習] 등이 일어난 것이다. 그 중에 종자에 기인하는 법이기 때문이며, 근본이 견고한 법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든 불선법을 오게 해서 지니며 똑같이 지니며, 생기게 하며 기르며 증장시키니, 이 때문에 불선근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공덕의 적이다.”라고 하였다.【문】이 가운데 무엇이 공리인가?
【답】세 가지 선근이다.【문】이는 어째서 적을 가까이 하여 친하지 않는가?【답】3불선근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마치 문지기가 문에 들여보내지 않는 것과 같으니, 머물러 문을 지키는 법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세 가지 선근과 서로 어긋남을 말한다. 그 중에 탐과 불탐(不貪)이 서로 어긋나고, 에(恚)과 불에(不恚)가 서로 어긋나고, 치(癡)와 불치가 서로 어긋난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행을 말함은 본래 말한 것과 같다『중아함』에 나옴. 가람의 이 세 가지 행의 본습이 있으니, 가람의 탐행의 본습(本習)과 가람의 에(恚)ㆍ치(癡)의 행의 본습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각각 서로 생기게 하며, 각각 서로 전변시킨다. 말한 것과 같이 탐애[愛]로부터 탐애를 내고, 탐애로부터 에(恚)을 내며, 에로부터 에를 내고, 에로부터 탐애를 내니, 그 중에 무명은….”이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서로 어긋남의 서로 어긋남과, 서로 어긋나지 않음의 서로 어긋남 때문에 중생은 투쟁의 번뇌를 많이 일으키나니, 천상과 아수라의 무리들이 가서 함께 싸우는 것을 말한다. 바라타(婆羅他)형와 마하바라타(摩訶婆羅他)동생와 라마(羅摩)형와 라차나(羅叉那)동생는 사타(私陀)아내 때문에, 계나(罽那)형와 아수나(阿詶那)동생는 저 한 여자 때문에 열여덟 해(姟)의 사람을 죽였다.”라고 하였다.【문】어째서인가?
【답】서로 어긋나지 않음과 서로 어긋남 때문이니, 서로 어긋나지 않음이라는 것은 탐애이고, 서로 어긋남이라는 것은 에(恚)이다.【문】무엇 때문에 치(癡)는 말하지 않는가?【답】그 가운데 이미 말하였다. 저 지혜로운 이는 천인의 경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악을 짓지 않는데, 어찌 인간의 악욕과 비교하겠는가? 인간은 나라와 집을 위하기 때문에 이러한 나쁜 짓을 하는데, 어찌 동산에서 이러한 나쁜 짓을 하며, 어찌 장자가 분소(糞掃) 때문에 나쁜 짓을 하겠는가? 혈기가 왕성한 청춘에는 투쟁의 번뇌를 일으킴이 많다. 이러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음과 서로 어긋남을 말하였으니, 이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세 가지의 고통에 의하여 부려지기 때문이니, 말한 낙통(樂痛) 중에 탐(貪)의 사(使)에 의해 부려지며, 고통(苦痛) 중에 에(恚)의 사에 의해 부려지며, 불고불락통(不苦不樂痛) 중에 치(癡)의 사에 의해 부려진다.”라고 하였다.【문】이와 같은 중에서 모든 것이 부려지는가[所使]?【답】많기 때문이다. 낙통 중에는 탐(貪)에 의해 부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고통 중에는 에(恚)에 의해 부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불고불락통 중에는 치(癡)에 의해 부려지는 경우가 많다.탐은 낙통을 인하여 일어나고, 그 낙통 중에서 근(根)을 받고 나서, 불선의 오음을 증장시키고, 불선의 오음을 증장시키고 나서 악행을 많이 일으키고, 악행을 많이 일으키고 나서 생사 가운데 괴로움을 많이 받는다.에는 고통을 인하여 일어나니, 그것이 고통 중에서 근(根)을 받고 나서 불선의 오음을 증장시키고, 불선의 오음을 증장시키고 나서 악행을 많이 일으키고, 악행을 많이 일으키고 나서 생사 가운데 괴로움을 많이 받는다.치(癡)는 불고불락통을 인하여 일어나니, 그것이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것에서 근을 받고 나서 불선의 오음을 증장시키며, 불선의 오음을 증장시키고 나서 악행을 많이 일으키며, 악행을 많이 일으키고 나서 생사 가운데 고통을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의 고통에 의하여 부려진다고 말하였으니, 이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다섯 가지와 6식신(識身)과 사(使)의 성질이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니,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다. 다섯 가지라는 것은 견고단(見苦斷)과 나아가 사유단(思惟斷)이다. 6식신이라는 것은 안식의 상응 견고단(見苦斷)과 나아가 의식의 상응이다. 사의 성질이라는 것은 담은 욕망의 사(使)이고, 에는 불가(不可)의 사이고, 치는 무명의 사이다.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킨다는 것은 탐욕 때문에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며, 에와 치 때문에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다는 것은 『시설』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문】만일 선근을 끊는다면 그가 어떻게 끊고 무엇으로 행하겠는가?
【답】어떤 한 사람이 있는데, 치의 성질은 욕(欲)이 두터우며, 에(恚)가 두터우며, 치(癡)가 두텁다. 그가 욕이 두텁고, 에가 두텁고, 치가 두텁기 때문에 말해주기 어려우며, 가르쳐주기 어려우며, 벗어나게 해주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다섯 가지와 6식신과 사(使)의 성질이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니,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다.’라고 한 것이니, 그가 무엇 때문에 불선근을 짓겠는가?【문】삿된 견해 같은 것은 능히 선근을 끊는데, 그가 무엇 때문에 그것을 불선근 중에 세우지 않았는가?【답】방편은 증상력(增上力)을 감당하여[堪任] 모든 선악이 방편의 힘을 많이 쓰니, 감당의 작용이 아니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살은 세간의 생로병사의 괴로움에 눈이 멀어 이끌어 주지 못함을 보고서 비로소 무상의 바른 도의 뜻을 일으키니, 그 중에 처음 뜻이 가장 뛰어나다. 물러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여기에서 3아승기(阿僧祇) 동안 수행을 하니, 뒤에 진지와 무생지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미래에 삼계의 선근을 닦을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 삿된 견해[邪見]가 만일 선근을 끊는다면 그것은 모두 불선근의 힘이다. 만일 그 불선근이 선근으로 하여금 엷어지게 하여 힘을 감소시킨다면, 그런 다음에서야 그 삿된 견해로 선근을 끊는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것이 선근을 끊을 때 바뀌기도 하고 바뀌지 않기도 한다. 탐은 바뀌고, 에는 바뀌지 않으며, 치는 바뀌기도 하고 바뀌지 않기도 하니, 저 삿된 견해가 바뀌게 하거나 바뀌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전에 이미 다섯 종류를 말하였으니, 저 삿된 견해는 다섯 종류가 아니고 네 종류이며, 육식신이 아니고 의식이며, 비록 사(使)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문】어째서인가?【답】견단결(見斷結)은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킴이 없으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 그 삿된 견해는 가장 나중에 작용하니, 그 삿된 견해는 이것을 여의고 모인다. 이 때문에 불선근 중에 세우지 않은 것이다.이 5음(陰)이 불선근을 여읜 중에 그것 또한 이것을 여의고 색음을 모은다. 다섯 가지가 아니고 6식신이 아니고 사의 성질이 아니므로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지 못하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 통음(痛飮)과 상음(想陰)과 식음(識陰)과 그 상응행음(相應行陰)은 그것이 결을 여읜 것을 말한다. 다섯 가지와 6식신이나, 사의 성질은 아니니,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킬 수 없으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불상응행음(不相應行陰)은 다섯 가지이나, 6식신도 아니고 사의 성질도 아니니,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킬 수 없으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 결 가운데 5견(見)과 의심(疑)은 다섯 가지가 아니며 6식신이 아니고, 비록 사의 성질이 있으나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지 않으며 선근을 꿀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 거만함은 다섯 가지이나 6식신이 아니며, 비록 사의 성질이지만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지 못하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나머지는 10전(纏)인 진전(瞋纏)ㆍ불어전(不語纏)ㆍ수전(睡纏)ㆍ면전(眠纏)ㆍ조전(調纏)ㆍ회전(悔纏)ㆍ무참전(無慙纏)ㆍ무괴전(無愧纏)ㆍ간전(慳纏)ㆍ질전(嫉纏)에 대해 말한 것이다.그중에 진(瞋)과 불어(不語)는 다섯 가지가 아니고 6식신이 아니며 사(使)의 성질이 아니므로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킬 수 없으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 면(眠)은 다섯 가지이며 6식신이 아니고 사이 성질이 아니므로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킬 수 없으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 수(睡)와 조(調), 이 두 가지는 다섯 가지이고 6식신이지만 사의 성질이 아니므로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지 않으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무참(無慙)과 무괴(無愧), 이 두 가지는 다섯 가지이며 6식신이며 사의 성질은 아니나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며,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다. 간(慳)과 질(嫉), 이 두 가지는 다섯 가지가 아니며 육식신이 아니고 사의 성질이 아니므로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지 못하고,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지 않다.분(憤)ㆍ의(依)ㆍ광(誑)ㆍ첨(諂)ㆍ고(高)ㆍ해(害)의 모두는 결(結)이라고 하지만 구의결(垢依結)이지 근본결(根本結)은 아니며, 다섯 가지이고 육식신이고 사의 성질이므로 몸의 행과 입의 행을 일으키고 선근을 끊을 때 방편이 많다. 저것은 불선근을 세우나, 만일 이를 여의고 취(聚) 중에서는 불선근을 세우지 않는다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세 가지 불선근은 10악행(惡行)을 일으킬 수 있으며, 10악행을 일으키고 나서는 10악도(惡道)에 태어난다.”라고 하였다.【문】어떻게 이 세 가지 불선근이 10악행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십악행을 일으키고 나서 십악도에 태어나는가?
【답】부처님께서 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살생에 세 가지가 있는데, 탐 때문이며, 에 때문이며, 치 때문이다. 삿된 견해에 이르러서도 세 가지가 있는데, 탐 때문이며, 에 때문이며, 치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아비담에서. 역시 말하기를, “이 세 가지 불선근은 모든 불선법의 원인이며 근본으로서 근본을 이끌어 연을 삼아 습기가 일어나게 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불선근이 10악행을 일으킬 수 있다.【문】어떻게 10악행을 일으키고 나서 10악도에 태어나는가?【답】부처님께서 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살생을 익혀 많은 행위를 닦으면 지옥과 축생과 아귀 중에 태어나며, 인간 중에 태어나더라도 수명이 짧다.”라고 하셨다.아비담에서도 말하기를, “증상의 살생을 익혀 많은 행위를 닦으면 대아비니리(大阿鼻泥犁) 중에 태어나서 그 중에서 감소하기도 하고 그 중에서 유연해지기도 한다. 생열지옥(生熱地獄)과 대열지옥(大熱地獄)과 규환(叫喚)지옥과 대규환(大叫喚)지옥과 상(想)과 흑승(黑繩)지옥과 등활(等活)지옥에 태어나며, 축생과 아귀 중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십악행을 일으키고 나서 십악도 중에 태어나니, 이 때문에 3불선근이라고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이 증가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엷어진다고 말하기도 하였다.”라고 하였다.【문】말한 것과 같다면, 무엇을 증욕(增欲)ㆍ증에(增恚)ㆍ증치(增癡)라고 하는가?
【답】연욕(軟欲) 때문에 다시 중간이 있고, 중간 때문에 다시 증가함이 있다. 연에(軟恚) 때문에 다시 중간이 있고, 중간 때문에 다시 증가함이 있다. 연치(軟癡) 때문에 다시 중간이 있고, 중간 때문에 다시 증가함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증욕ㆍ증에ㆍ증치라고 한다.【문】무엇을 욕연(欲軟)ㆍ에연(恚軟)ㆍ치연(癡軟)이라고 하는가?【답】증상욕이 엷어져 다시 중간이 있고, 중간이 엷어져 다시 약함[軟]이 있다. 증상에가 엷어져 다시 중간이 있고, 중간이 엷어져 다시 약함이 있다. 증상치가 엷어져 다시 중간이 있고, 중간이 엷어져 다시 약함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욕박(欲薄), 에박(恚薄). 치박(癡薄)이라고 한다. 이러므로 ‘그것이 또한 증가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엷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 것이니, 이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것이 물러날 때 인이 많고 연이 많다. 말한 바와 같이 비구, 비구니 같은 이는 스스로 증상의 욕ㆍ에ㆍ치를 관하니, 비구ㆍ비구니는 ‘내가 선법 중에서 물러나면 세존께서 이것을 퇴전함이라고 하셨다.’고 함을 알아야 한다. 이러므로 저것이 물러날 때 인이 많고 연이 많다고 말한 것이니,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결(結)의 장애를 일컬으니, 말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문】무엇을 결의 장애라고 하는가?【답】만일 중생의 성질에 탐과 에와 치가 두터우면, 그 성품에 탐과 에와 치가 두텁기 때문에 가르치고 말해주고 이해시키기 어려우며, 벗어나게 해주기 어렵다. 이러므로 결의 장애라고 한 것이니, 이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문(門)ㆍ약(略)ㆍ도(度)를 나타낸 것으로 만일 이러한 불선근이 있다면 흑은 욕분(欲分)이며, 에이며, 치이다. 이는 계경에서 ‘바라문이 만일 21결의 염오가 있어서 집착한다면 그는 반드시 악도취인 니리(泥犁) 중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해설자인 존자 담마다라(曇摩多羅)는 ‘이 계경 중에서 모든 결은 세 가지 분을 이루니, 이러한 욕분(欲分)ㆍ에분(恚分)ㆍ치분(癡分)이다.’라고 하였다.만일 욕을 말하였다면 욕분을 이미 말하였음을 알아야 하며, 만일 에ㆍ치를 말하였으면 에분ㆍ치분을 이미 말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욕분ㆍ에분ㆍ치분과 같이 이와 같이 친분(親分)과 불친분과 친불친분(親不親分), 익분(益分)과 불익분과 익불익분(益不益分), 낙분(樂分)과 불락분과 낙불락분(樂不樂分)도 모두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 때문에 문(門)ㆍ약(略)ㆍ도(度)를 나타내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안의 더러움 말함을 일컫는다. 말한 바와 같이 욕이 안의 더러움이며, 에ㆍ치가 안의 더러움이다. 안의 더러움과 같이 안의 진하지 않음, 미워하는 적도 모두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티끌 말함을 일컫는다. 말한 바와 같이 욕이 티끌이며, 성냄ㆍ어리석음이 티끌이다. 티끌처럼 더러움의 장애와 독이 묻은 큰 칼도 모두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세 가지 불선근을 세운 것이다.”라고 하였다.【문】이 결은 어떻게 행해지는가?
【답】만일 생각 속에서 욕을 행한다면 여기에는 에가 없고, 만일 에라면 욕이 없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치가 있어야 한다.【문】무엇 때문에 만일 생각 중에서 욕을 행하면 이 중에는 에가 없고, 만일 에라면 욕이 없게 되는가?【답】성질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욕의 성질은 기뻐하는 것이고, 에의 성질은 근심하는 것이며, 탐신(貪身)은 길러서 받아들이고, 에신(恚身)은 길러서 받아들이지 못한다.탐신은 부드럽고 안온하여 연 중에서 장애되지 않으니, 부드럽고 안온하다는 것은 탐욕이 나타나서 모든 몸이 부드러운 것이고, 연 중에서 장애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 중에 염착하고 받아들여 밤새 가까이 하여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에신은 부드럽지 못하고 안온하지 못하여 연 중에 장애되니, 부드럽지 못하고 안온하지 못하다는 것은 에가 현전하여 일체의 몸이 부드럽지 않은 것이고, 연 중에 장애된다는 것은 생각 중에 에가 나타나서 눈이 보는 바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성질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이다.만일 생각 중에 욕을 행하면 이 중에는 에가 없고, 만일 에라면 욕이 없으나,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치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불선근은 다섯 가지와 6식신이다.【문】무엇 때문에 세 가지 불선근은 다섯 가지와 6식신인가?【답】만일 여기에 견단(見斷)이 있어서 사유단(思惟斷)이 아니라면, 그 사유단의 불선심은 마땅히 근본[根]이 아닐 것이고, 만일 사유단이지 견단이 아니라면, 그 견단의 불선심은 마땅히 근이 아닐 것이다.만일 5식신(識身)이 있어서 의식이 아니라면, 그 의식의 불선심은 마땅히 근이 아닐 것이고, 만일 의식이 있어서 5식신이 아니라면, 저 5식의 불선심은 마땅히 근이 아닐 것이다.모든 불선심 중에 이 세 가지의 불선근은 이러한 근이 혹은 둘이며, 혹은 하나다. 탐욕과 상응하는 불선의(不善意)에 두 가지 근이 있으니, 탐 및 그와 상응하는 무명이며, 에와 상응하는 불선의에 두 가지가 있으니, 성냄 및 그와 상응하는 무명이다. 이를 여의고 나면 모든 불선의는 그것이 모두 한 근본인 무명이다.이것은 다수의 근을 말한 것이니, 신견법근(身見法根)과 세존법근(世尊法根)과 욕법근(欲法根)과 불방일법근(不放逸法根)과 성근(性根)의 모든 법이다.【문】무엇 때문에 신견법근을 말하는가?
【답】말하기를 헤아리기 매문이다. 아를 헤아리고 나서 62견(見)을 내니, 이 때문이다.【문】무엇 때문에 세존법근을 말하는가?
【답】말하기 때문이니, 누가 염착을 말하는가? 청정의 속박에서 풀리어 점자 벗어나 부처를 요구하니, 이 때문이다.【문】무엇 때문에 욕법근을 말하는가?
【답】욕구는 선법을 얻기 때문이다. 얻고자 하는 자는 선법을 얻고, 얻고자 하지 않는 자는 선법을 얻지 못하니, 이 때문이다.【문】무엇 때문에 불방일법근을 말하는가?
【답】선법을 굳게 지니기 때문이다. 방일하지 않는 자는 선법을 굳게 지닐 수 있고, 방일한 자는 선법을 곧 잃으니, 하물며 다시 굳게 지닐 수 있겠는가?【문】무엇 때문에 성근(性根)의 모든 법을 말하는가?
【답】자기의 종자[種]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문】만일 네 말대로라면 무위 중에도 역시 근이 있을 것이며, 그것 또한 자기 종자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답】만일 무위 중에 근이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 또한 자기 종자를 버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다시 욕구가 있다. 이 허물을 다스리기 때문에 성근(性根)은 인(因)과 함께 한다고 말한 것이다.【문】무엇이 인(因)과 함께 하는 것인가?
【답】전생이 후생인(後生因)이 되는 것이다.【문】만일 네 말대로라면 고법인(苦法忍)은 근이 없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저 것은 타(他)로서 자연인(自然因)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답】저 고법인은 비록 타로서 자연인과 함께 하지 않으나, 그것은 타와 함께 하며, 그 열반은 타로서 인을 함께 하지 않으며, 또한 타의 인과 함께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째서 성근이 인과 함께 한다고 하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성근(性根)을 말한 것은 자기의 종자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성근의 모든 법을 말한 것이다.3불선처(不善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
3) 삼유루처(三有漏處)
세 가지 유루라는 것은 욕유루(欲有漏)와 에유루(恚有漏)와 치유루(癡有漏)이다.【문】누(漏)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
【답】욕유루의 성질은 마흔한 가지이니, 애(愛)가 다섯 가지, 에(恚)가 다섯 가지, 만(慢)이 다섯 가지, 의(疑)가 네 가지, 견(見)이 열두 가지, 그리고 열 가지의 전(纏)이다. 이 네 가지가 욕유루의 성질이다.【문】신악행(身惡行)과 구악행(口惡行)은 번뇌의 성질인가, 번뇌의 성질이 아닌가? 만일 번뇌의 성질이라면, 이것을 욕유루 중에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가? 만일 번뇌의 성질이 아니라면, 시설하여 말한 것과 어떻게 통하는가?
【답】그 가운데서는 말하기를, 신악행과 구악행은 결(結)도 아니고, 박(縛)도 아니고, 사(使)도 아니니, 번뇌요 전이 아니라고 하였다. 마땅히 버려져서 없어지니, 괴로움 내는 것을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논을 짓고 나서 말하기를, 번뇌의 성질과 같다고 하였다.【문】만일 그렇다면, 이 욕유루 중에서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가?
【답】마땅히 이 신악행과 구악행을 말하여 욕유루 중에 세워야 하며, 마땅히 마흔세 가지 욕유루의 성질을 지어야 한다. 만일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생략하여 말한 것이나. 다시 어떤 이는 번뇌의 성질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문】이 때문에 욕유루 중에서는 말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시설한 것과 어떻게 통하는가?
【답】여기서 시설하여 말한 것도 마땅히 그러하니, 신악행과 구악행은 결(結)도 아니고, 박(縛)도 아니고, 사(使)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고, 전(纏)도 아니다. 마땅히 버려져 없어지니, 괴로움을 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러하다.【문】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뜻인가?
【답】그것이 비록 번뇌의 성질은 아니나, 번뇌에 의하여 어지럽혀진다. 이 때문에 번뇌라고 말한 것이다.【문】그것이 결(結)의 성진은 아니지만 견에 의해 묶이는데, 어째서 결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박(縛)의 성질은 아니지만 박(縛)에 의해 묶이는데, 어째서 박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사(使)의 성질은 아니지만 사에 의해 부려지는데, 어째서 사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전(纏)의 성질은 아니지만 전에 의해 얽매이는데, 어째서 전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답】마땅히 그렇게 말해야 하나니, 만일 말하지 않았다면 말하는 것을 생략한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문(二門)과 이략(二略)과 이도(二度)와 이거(二炬)와 이명(二明)과 이광(二光)과 이수(二數)를 나타낸 것이다. 비록 그것이 번뇌의 성질은 아니지만 번뇌에 의해 번거롭게 어지럽혀지니, 이 때문에 번뇌라고 말한 것이다.이와 같이 그것이 결의 성질은 아니지만 결에 의해 묶이면 마땅히 결이라고 말해야 하며, 박의 성질은 아니지만 박에 의해 묶이면 마땅히 박이라고 말해야 하며, 사의 성질은 아니지만 사에 의해 부려지면 마땅히 사라고 말해야 하며, 전의 성질은 아니지만 전에 의해 얽매이면 마땅히 전이라고 말해야 한다.만일 그것이 결의 성질은 아니지만 결에 의해 묶였는데도 결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박의 성질은 아니지만 박에 의해 묶였는데도 박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사의 성질은 아니지만 사의 의해 부려지는데도 사라고 말하지 않으며, 전의 성질은 아니지만 전에 의해 얽매이는데도 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그것도 번뇌의 성질은 아니지만 번뇌에 의해 어지럽혀지는데도 마땅히 번뇌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문 내지 이수를 나타낸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유유루성(有有漏性)에 쉰두 가지가 있다수(睡)와 조(調)를 더하면 쉰네 가지가 될 것이다. 애(愛)가 열 가지니 색계의 다섯 가지와 무색계의 다섯 가지이고, 만(慢)이 열 가지니 색계의 다섯 가지와 무색계의 다섯 가지이고, 의(疑)가 여덟 가지니 색계의 네 가지와 무색계의 네 가지이고, 견(見)이 스물네 가지니 색계의 열두 가지와 무색계의 열두 가지다. 이 쉰두 가지가 유유루성이다.무명유루성(無明有漏性)은 열다섯 가지니 욕계의 다섯 가지와 색계의 다섯 가지와 무색계의 다섯 가지이다. 이 열다섯 가지가 무명유루성이다. 이 백여덟 가지의 3유루성에 각각 백여덟 가지의 번뇌가 있다. 이것을 3유루성의 자기 종자 모양의 몸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성질을 말하였으니, 행을 말하겠다.【문】무엇 때문에 유루라고 말하였으며, 유루는 어떤 뜻이 있는가?【답】‘머물러 있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담근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샌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증상주(增上主)’의 뜻이 유루의 뜻이며, ‘지니고 있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며, ‘취한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다.‘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중생이 무엇 때문에 욕계에 머물러 있으며, 중생이 무엇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이다.‘담근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종자를 물에 담가두어 싹을 틔우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결에 담겨져 유의 싹을 낸다.‘샌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누각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으며, 유방에서 젖이 새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6입(入)의 문 중에서 항상 결[結:번뇌]이 샌다.‘증상주’의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증상주에 의하기 매문에 동서남북으로 자재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결이 증상주가 되기 때문에 계와 취를 뛰어넘어 생사를 굴릴 수 없다.‘지닌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그릇된 사람에 의해 유지되어 말해서는 안 되는데 말하며, 일러 주어서는 안 되는데 일러 주며, 취해서는 안 되는데 취하며, 훔쳐서는 안 되는데 훔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도 결에 의해 유지되어 말해서는 안 되는데 말하며, 또한 훔쳐서는 안 되는데 훔친다.‘취한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뿌리로 담근 술과 줄기로 담근 술과 잎으로 담근 술과 꽃으로 담근 술과 과일로 담근 술을 마시고 취하여 부끄러움을 잃어, 일과 일 아닌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이 중생이 결의 술에 취하여 부끄러움을 잃고 일과 일 아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이 때문에 머문다는 뜻과 담근다는 뜻과 샌다는 뜻과 증상주의 뜻과 지닌다는 뜻과 취한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문】만일 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라고 한다면, 행(行)도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 중에 머물러 있게 한다. 말한 바와 같이 이인(二因)과 이연(二緣)의 생사의 행과 결행(結行)의 결은 생사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은 것이며, 깨지지 않은 것이며, 제거되지 않은 것이며,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만일 일곱 살ㆍ여덟 살에 아라한과를 얻으면 났다가 그가 백 세에 이르도록 생사 중에 머물면서 무량한 고통을 받을 것이니, 두통과 신열과 내지 사백네 가지의 병이다. 저 모든 결이 다하였으나, 다만 행에 기인하기 때문에 생사 중에 머문다. 만일 행에 기인하기 때문에 중생이 생사 중에 머문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결은 유루 중에 세우고 행은 세우지 알았는가?【답】이 결은 행의 근본이니, 결을 끊지 않고서는 행을 끊을 수 없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이 결에 기인하기 때문에 행을 일으키니, 결이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 이는 마치 사람이 진흙 덩어리로 마른 벽을 쳐도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근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것이 결을 인하기 때문에 행을 일으키니, 결이 과보를 받는 경우는 없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결이 다하여 반열반하는 것이니, 행이 다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행이 수미산처럼 머물러 있으나, 아라한은 음을 소멸하여 무여열반계(無餘涅槃界)에 들어간다.”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 행은 일정하지 않으니, 생사에 머물기도 하며 생사를 끊기도 한다. 이 결은 한결같이 생사 중에 머무니, 이 때문에 결을 유루 중에 세우고 행은 세우지 않은 것이니, 저 바수밀이 시설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문】무엇을 욕유루(欲有漏)라고 하는가?
【답】욕계의 무명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욕계의 결과 박과 사와 번뇌와 전이다.【문】무엇을 유루라고 하는가?
【답】색계와 무색계의 무명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색계와 무색계의 결과 박과 사와 번뇌와 전이다.【문】무엇을 무명루(無明漏)라고 하는가?
【답】삼계의 무지[三界無智]다. 여기서는 삼계의 무지라고 말하는 것이 좋으니, 만일 삼계의 부지[三界不智]라고 말한다면 삼계의 무지를 취하지 않는 것이니, 삼계의 무지라고 말하는 것이 잘 말한 것이다.【문】무엇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를 세웠으며,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유루를 세웠는가? 무엇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무명유루(無明有漏)를 세우는가?【답】만일 욕계에 머문다면 저것은 모두 욕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욕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욕을 구하기 때문이며, 욕을 즐기기 때문이며, 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를 세운 것이다.만일 색계와 무색계에 머문다면 그것은 모두 유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유를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유를 구하기 때문이며, 유를 즐기기 때문이며, 유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유유루(有有漏)를 세운 것이다. 그것이 욕계에 머물고 색계와 무색계에 머무는 것은 그것이 모두 무명을 말미암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무명유루(無明有漏)를 세운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욕계의 결은 아(我)에 애착하고자 하며, 다르게 하고 해독을 끼치니, 이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를 세운 것이다.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아에 애착함이 없으며, 다르게 하지도 않고 해독을 끼치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유유루를 세운 것이다. 그 욕계에서 아에 애착하는 것과 색계와 무색계에서 아예 애착하는 것은 그것이 모두 무명을 말미암으니, 이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삼계의 무명유루를 세운 것이다. 비유자의 말이다.”라고 하였다.【문】두 가지의 근본결(根本結)은 무명과 유(有)에 대한 애착이니, 무엇 때문인가?
【답】그 두 가지 근본결 중에서 무명은 본래 연기(緣起)의 근본이고, 유에 대한 애착은 미래의 유다.【문】만일 그렇다면 그 세 가지 유루는 어떠한가?【답】저것은 애(愛)이기도 하고, 불선이기도 하고, 무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혹은 과보가 있기도 하고, 혹은 과보가 없기도 하며, 혹은 두 가지 과보를 받기도 하고, 혹은 한 가지 과보를 받기도 하며, 혹은 무참ㆍ무괴와 상응하기도 하고, 혹은 무참ㆍ무괴와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그것이 만일 불선이고, 과보가 있고, 두 가지 과보를 받고, 무참ㆍ무괴와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욕계의 애이다. 그것으로 인하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서 욕유루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일 무기이고, 과보가 없으며, 한 가지의 과보를 받고, 무참ㆍ무괴와 상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색계와 무색계의 애이다. 저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서 유유루의 이름을 얻는다.【문】이 논 가운데 다시 어떤 논의가 생겨서, 무슨 까닭에 욕계의 애 때문에 욕계의 결이 무명을 제외하고서 욕유루의 이름을 얻으며, 무슨 까닭에 색계와 무색계의 애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이 무명을 제외하고서 유유루의 이름을 얻는가?【답】애 때문에 경계[界]가 끊기고, 경지[地]가 끊기고, 종자[種]가 끊기니, 애 때문에 모든 많은 결에 애착한다. 이러므로 욕계의 애욕 때문에 욕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 욕유루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며, 이러므로 색계와 무색계의 애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의 결은 무명을 제외하고서 유유루의 이름을 얻은 것이다【문】무엇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은 따로 무명루를 세우는가?【답】무명은 전무지(前無知)ㆍ후(後)무지ㆍ중(中)무지며, 내(內)무시ㆍ외(外)무지ㆍ내외(內外)무지며, 행(行)무지ㆍ보(報)무지ㆍ행보(行報)무지며, 각(覺)무지ㆍ법(法)무지ㆍ승(僧)무지며, 고(苦)무지ㆍ습진도(習盡道)무지며, 6도(道)에 다시 즐겨 들어가는 여진(如眞)무지이니, 견해와 어리석음(癡)의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종자가 중복되며, 행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종자가 중복된다는 것은 모든 결이 하나의 무명과 같은 것이고, 행이 중복된다는 것은 모든 결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따로 불공무명사(不共無明使)를 세운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나태함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말한 바와 같이 이 비구 중에 나태한 자가 무명이다. 물 가운데 어떤 곤충을 나태라고 하는데, 스스로 눈이 멀었으며 남으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무명은 이미 스스로 눈이 멀었고, 모든 행위자도 눈이 멀게 하니,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홉 가지는 한 가지 연(緣) 중의 치(癡)이기 때문이다. 아홉 가지라는 것은 증상으로부터 연연(軟軟)까지고, 한 가지 연 중의 치라는 것은 저 유상무상연연(有想無想軟軟)의 일종이다.”라고 하였다.【문】이 사가 모든 비기계변사(非己界遍使)이다. 삿된 견해에 있는 아홉 가지는 한 가지의 연 중에 방언(謗言 )과 무견(無見)이고, 도(盜)의 아홉 가지는 한 가지의 연 중에 수(受)이고, 제일계(第一戒)의 아홉 가지도 한 가지의 연 중에 수정(受淨)이고, 의(疑)의 아홉 가시도 한 가지의 중에 유예(猶豫)다. 이와 같이 사는 모든 비기계변사인데, 저것은 어째서 불공사(不共事)로서 오직 무명만을 말하였는가?
【답】아니다.【문】만일 그렇다면 이는 어째서인가?【답】이 욕계의 치(癡)는 아홉 가지를 일으키며, 한 가지도 아홉 가지를 일으킨다. 한 가지가 아홉 가지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이와 길이 아홉 가지도 아홉 가지를 일으킨다. 욕계에서 아홉 가지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의 아홉 가지를 일으킨다. 모든 비기계변사(非己界遍使)는 이 작용이 없다. 그것이 심는 바대로 제도하는 바대로, 이제 중생이 생사에서 어리석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이 일시에 머무는 중에 다섯 가지의 인과 연과 사에 의하여 부려지니,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에 멀리 두루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문】앞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답】사성제(四聖諦)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명의 얽매임[纏]이기 때문이다. 고(苦)는 고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는 것이고, 습(習)은 습, 진(盡)은 진, 도(道)는 도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는 것이니, 마치 굶주린 사람이 처음에 나쁜 음식을 배불리 먹고서, 나중에 매우 맛있는 음식을 얻고서도 원하지 않는 것과 같다.이와 같이 그 치(癡)는 나쁜 음식과 같으니, 무명의 얽매임 때문에 나중에 감로(甘露)와도 같은 사제(四諦)를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는 고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으며, 습은 습, 진은 진, 도는 도를 원하지 않고 견디지 않는 것이다. 원하지 않기 때문에 머뭇거리면서, “고가 있는 것인가, 고가 없는 것인가? 습과 진과 도가 있는 것인가, 습과 진과 도가 없는 것인가?”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의심하여 무명 중에서 점점 의심을 내니, 모든 머뭇거림이 그것으로 하여금 고정되게 하기 때문이다.만일 바른 가르침을 얻으면 곧 바른 선정으로부터 고ㆍ습ㆍ진ㆍ도가 있다고 여겨 이것이 바로 바른 견해가 되며, 만일 삿된 견해를 얻으면 곧 삿된 선정으로부터 고ㆍ습ㆍ진ㆍ도가 없다고 여겨 이것이 바로 삿된 견해가 된다. 이와 같이 저 의심 중에서 점점 삿된 견해를 낸다. 만일 고ㆍ습ㆍ진ㆍ도가 없다고 여기게 되면 아가 있다고 여기게 되니, 이것이 신견(身見)이다. 이와 같이 저 삿된 견해 중에서 점점 신견을 내게 된다.만일 아가 있다고 여기게 되면 곧 ‘이것이 항상하는 것인가, 단멸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만일 차제의 서로 비슷함을 본다면 항상함이 있다고 하게 되니, 이것은 상견(常見)이라고 헤아리는 것이고, 만일 무너지는 것을 본다면 곧 단멸(斷滅)된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단견(斷見)이다.이와 같이 그 신견 중에서 점점 변견(邊見)을 함께 낸다. 이 중에서 한 변(邊)의 청정함을 취하여 이로써 청정함을 삼고, 해탈의 출요(出要)를 삼는다. 이것이 계도(戒盜)니, 이와 같이 그 변견 중에서 점차 계도(戒盜)를 낸다. 만일 이것이 청정ㆍ해탈의 출요라면 제일의 최상의 모함이 되니, 이것이 견도(見盜)다. 이와 같이 저 계도 궁에서 점차 견도를 낸다.만일 그가 보고 나서 곧 애착하면 이것은 애사(愛使)고, 그가 보고서 곧 성내면 이것은 불가사(不可使)이며, 그가 보고서 자랑하면 이것은 만사(慢使)다. 이와 같이 그 견 중에서 점차 사를 내며, 사 중에서 점차 전(纏)을 낸다.전이라는 것은 10전이니, 진전(瞋纏)과 불어전(不語纏)과 수전(睡纏)과 면전(眠纏)과 조전(調纏)과 회전(悔纏)과 무참전(無慙纏)과 무괴전(無愧纏)과 간전(慳纏)과 질전(嫉纏)이다.그 가운데 진전과 질전은 불가사에 의지하고, 불어전은 애(愛)에 의지하기도 하며 무명에 의지하기도 한다. 애에 의지한다는 것은 애착 때문에 덮고 가리우는 것이며, 무명에 의지한다는 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덮고 가리는 것을 말한다. 수와 조와 간은 애에 의지하며, 면과 무참과 무괴와 회는 무명에 의지한다.다시 어떤 설에서는 결구(結垢)는 결에 의지하니, 근본결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분(憤)은 첨(諂)과 광(誑)과 고(高)와 해(害)에 의지한다. 그 가운데 분과 해는 불가사에 의지하고 광에 의지하며, 고는 견도에 의지하며, 광은 오견에 의지한다.이와 같이 무명 중에서 점차 모든 곁을 낸다. 이 때문에 ‘앞(前)’이라고 말하였다. ‘널리(普)’라는 것은 아비(阿鼻)로부터 제일유(第一有)에 이르기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 때문에 ‘널리’라고 말한 것이다. ‘두루한다.’라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지 않고, 한때 중의 다섯 가지에 머물며 다섯 가지 연과 다섯 가지 소사(所使)를 인한다.【문】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는 무엇을 말한 것인가?【답】자계일체변사(自界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하며, 비기계일체변사(非己界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하며, 기지일체변사(己地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하며, 비기지일체변사(非己地一切遍使) 중에서도 또한 일체변사를 함께 한다. 기계연사(己界緣使)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하며, 비기계연사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한다.기지연사(己地緣使)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하며, 비기지연사 중에서도 연사를 함께 한다. 유루연사(有漏緣使) 중에서는 유루연사를 함께 하며, 무루연사 중에서는 무루연사를 함께 한다. 유위연사(有爲緣使) 중에서는 유위연사를 함께 하며, 무위연사 중에서는 무위연사를 함께 한다. 일체결(一切結)과 함께 하여 깨끗함을 버리고 안의 잡다함에 흩어져 들어간다.이를 그러한 문(門)에서 제도할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 중에서 어리석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모든 삼계의 무명에는 따로 무명유루를 세운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저 바르지 못한 사유가 아직 생기지 않아도 욕유루가 곧 생기니, 생기고 나서는 증장된다.”라고 한 것과 같다.【문】이와 같은 결은 일어난 것과 같이 소멸하고 머무는 것도 일시에 지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았는데 욕유루가 곧 생기고, 생기고 나서는 증장된다고 하는가?
【답】여기서 연(軟)ㆍ중(中)ㆍ상(上)을 말하였기 때문에 그 결은 연이 생긴다.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중을 내고, 중이 상을 증장한다. 이 때문에 존자 바수밀(婆須蜜)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생기지 않아도 욕유루가 곧 생기고, 생기고 나서는 증장된다.”라고 하였다.【문】어떻게 증장되는가?【답】증장하지는 않으나, 다만 생기고 다시 생기기 때문에 증장한다고 한 것이다. 그 결은 한 번 생길 뿐이다.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아니하여 곧 생기기를 백천(百千)이면, 이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거듭 말하기를, 연ㆍ중ㆍ상이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다. 그 결의 연품이 생길 때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중품이 있게 되고, 중품은 상품을 증장하니 이 때문에 증장이라고 한다. 거듭 말하기를, 증장하지 않고 다만 생기고 다시 생기고 거듭 생기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결의 연품이 생길 때,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중품이 있게 되고, 중품은 상품을 증장하고 상품이 증장하여 궁극적으로 상품이 증장하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거듭 말하기를, 증장하지 않고 다만 경계를 헤아리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한 경계가 생김으로 인하여 그 결이 생기고 머문 뒤 나머지 경계를 반연하며, 그것을 버리고 나서 다시 나머지 경계를 반연한다. 눈에 의하여 그 결을 내니,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다시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 생김으로 인하여 색을 반연하여 낸다. 만일 바르지 않은 사유가 바른 일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다시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법을 반연하여 낸다. 이 때문에 증장한다고 말한 것이다.존자 담마다라(曇摩多羅)가 말하기를, “모든 존자들은 당연히 증장하지 않으나, 다만 사람은 일유(一有) 가운데에서 전을 많이 행하기 때문에 증장한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문】그는 무엇을 말한 것인가?【답】그 존자가 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모든 중생의 결(結) 등은 악취(惡趣) 등에 나아가, 제일유(第一有)에 난다. 역시 중품과 같아서 혹은 결을 많이 행하고 흑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모든 존인(尊人)이 일유 중에서 전(纏)을 많이 행하기 때문에 중장이라고 말한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의과(依果)와 보과(報果)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의과와 보과를 받지 않으나, 일어나고 나서 곧 의과와 보과를 받는다. 그러므로 의과와 보과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과를 주고 과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만일 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는 과를 주지도 않고 과를 받지도 않으나, 생기고 나서는 과를 주고 과를 받는다. 그러므로 과를 주고 과를 받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연을 주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결이 아직 일어나지 알았을 때에는 차제의 연을 주지 못하나, 만일 연이 일어나면 곧 차제의 연을 준다. 그러므로 연을 주기 때문에 증장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일곱 가지 유루가 근심과 슬픔의 번뇌를 많이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문】세 가지 유루라고 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일곱 가지 유루라고 하였는가?【답】이 가운데 유루라고 말한 것은 다 유루라고 하니, 마치 나머지는 모두 나머지로써 이름을 감으며, 아비담은 모두 아비담으로써 이름을 삼으며, 즐거움[樂]은 모두 즐거움으로써 이름을 삼는 것과 같다. 이는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음식을 즐겨 헤아리고
옷을 즐겨 지니며,
행보(行步)하기를 즐겨
산굴(山窟)의 사이에 의지한다.
더러움[垢]은 모두 더러움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이는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자는 범행(梵行)을 더럽히며,
여자는 세간을 얽어맨다.
고행과 범행을
이에 씻으려 해도 물이 없다.
부림[使]은 모두 부림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비구는 색(色)에 의하여 부림을 당하고 색에 애착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비구가 부림을 당하면 곧 거기에 애착하고, 애착하고 나서는 마구니에게 묶이게 된다. 욕(欲)은 모두 곡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5욕의 공덕은 모두 세간의 애락(愛樂)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각의 물러남은 모두 물러남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다섯 가지 인과 다섯 가지 연 등을 뜻으로써 해탈한 아라한은 혹은 물러나기도 하고 혹은 잊기도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많이 외움이요, 둘째는 업(業)이요, 셋째는 화합의 논쟁이요, 넷째는 멀리 감이요, 다섯째는 오랜 병이다. 행은 모두 행으로써 이름을 삼으니, 이 여섯 가지가 다시 본래 지은 바와 본래 생각한 바와 본래 행한 바에 즐겨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보는 모두 과보로써 이름을 삼으니, “모든 현자여, 내가 이미 한 번 보시하였기 때문에 일곱 번 천강에 나서 천왕이 되었고, 일곱 번 인간에 나서 인간의 왕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유루는 모두 유루로써 이름을 삼는다.존자 바사(婆奢)가 말하기를, “저기서 말한 법신(法身)이 다하고, 다시 교화를 받은 사람이 온다. 그가 이 뜻의 다른 구(句)와 다른 의미를 아니, 이 때문에 세존께서 이 뜻은 다른 구며 다른 의미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존자 구사(瞿沙)는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이 계경을 말씀하신 중에 두 가지 누(漏)가 있으니, 첫째는 견단(見斷)이고, 둘째는 사유단(思惟斷)이다.” 견단이라는 것은 자기 모습과 같은 것이고, 사유단이라는 것은 대치(對治)하기 때문이다. 사유단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유치(須臾治)고, 둘째는 근본단(根本斷)이다. 5품 중에는 수유치를 나타내고, 최후품에서는 근본단을 나타낸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그가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아서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었으며, 유유루(有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을이 해탈되었다고 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문】만일 그가 욕계에서 욕심을 없앤 때에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고,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없앨 때에 유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유상무상처 중에서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되고 유유루와 무명루에서 마음이 해탈된다고 말하였는가?【답】본래 이미 해탈하였으므로 해탈이라고 한 것이니, 마치 이미 왔기 때문에 왔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는 “대왕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는가? 이러한 때를 맞아서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이미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이미 증득을 취하였기 때문에 증득하였다고 하니, 이는 “보살은 바른 것 가운데 증득을 취할 때 등지(等智)를 얻고, 여래는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를 얻을 때 욕계에서 욕(欲)이 없어지고, 에(恚)가 없어지고, 치(癡)가 없어진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선의 근본이 이미 다하여 다하였다고 하니, 이는 “저 괴로움이 이미 다하고 즐거움이 이미 다하여, 근심과 기쁨의 근본이 이미 없어져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어서 생각의 청정함을 얻으니, 4선을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미 정수(正受)한 것을 바르게 받았다고 하니, 말한 바와 같다.【문】어떻게 생각이 자(慈)에 들어가 정수(正受)하는가?【답】욕(欲)은 중생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고 이미 고통스럽기 때문에 고통이라고 이름하니, 그것은 쾌락과 고통을 느낀 때에 쾌락과 고통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본래 이미 해탈하였기 때문에 해탈이라고 하는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 가지가 모두 영구히 없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라는 것은 욕유루ㆍ무명유루와 유유루(有有漏)ㆍ무명유루이다. 그 욕계에서 욕심을 없앨 때에 비록 차이가 있어 영구히 다하지는 않았으나, 그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없앨 때에 영구히 없애어 두 가지 모두가 영구히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속박[縛]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본제(本際)는 알 수 없으니, 유유루와 무명유루가 그 욕계에서 유루가 끊어지고 나서, 끊어졌다가 다시 묶이는 것과 같다. 만일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제거하고 나면 그 속박이 끝내 끊어짐에 다다르게 된다. 이 속박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본제는 알 수 없으니 유유루와 무명유루가 욕계에서 유루가 끊어지고 나서 세 가지 연인 차제연(次第緣)과 연연(緣緣)과 증상연(增上緣)을 끊는 것과 같다. 만일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제거하고 나면 저 연이 모두 끊어지니, 이 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꾸짖어 대치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수행인이 유상무상처에서 욕심을 제거하고 나서 욕유루와 유유루와 무명유루를 꾸짖고 자주 간(諫)하여 내가 욕유루와 유유루와 무명유루를 벗어났으니, 장차 내가 생사 중에서 기(欺)와 조(調)를 없앨 것이라고 말한다. 이 꾸짖어 대치함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문】말한 바와 같이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욕유루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유루와 무명유루에서 마음이 해탈하면, 모든 심수법(心數法) 같은 것도 해탈할텐데, 어째서 유독 마음이 해탈한다고 하였는가?【답】미묘하게 설명한 것이고 미묘한 뜻이기 때문이다. 저 모든 심(心)과 심수품(心數品) 중에서 무엇이 가장 미묘한 심인가? 말한 바와 같이 심왕과 권속의 행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심주(心主)를 설명한 것을 말한 것이니, 그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심수법을 세운다. 심이라는 것은 대지(大地)를 말하니, 그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10대지를 세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 신통(神通)을 증득할 때에 무애도(無礙道)가 심을 반연한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멀리 감을 설명함을 이른 것이니,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멀리 가는 데 홀로 가니,
몸이 없이 몸에 의지하고,
제어하기 어려운 것을 잘 제어하는 것을
세범지(世梵志)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서 감을 설명한 것이니,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뜻과 법이 앞에 있어,
뜻이 묘하고 뜻이 빠르다.
뜻으로 악을 생각하여
말하거나 지으면
죄와 고통이 저절로 따르나니
수레 길에서 치어 죽는 것 같네.
뜻과 법이 앞에 있어
뜻이 묘하고 뜻이 빠르다.
뜻으로 선을 생각하여
말하거나 지으면
복락이 저절로 따르나니
그림자가 모양을 쫓는 것과 같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왕과 같다고 말한 것을 이르니 게송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제6 증상왕은
더러움으로써 그것을 물들이니,
물들이지 않으면 더러움이 없다.
더러움이라는 것은 어리석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주(城主)를 말한 것을 이른 것이니, 이는 비구의 성주는 식성음(識盛陰)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선과 불선의 계율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타바제(他婆提)의 불선계는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가? 나는 일어난 곳이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타바제의 선계는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가? 나는 일어난 곳이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동등하지 않은 자는 악도에 태어나고 동등한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 동등하지 않은 자가 악도에 태어난다는 것은 말한 바와 같으니, 이제 이때 앵무동자(鸚鵡童子)가 도타자(兜他子)가 되어 생명이 다하여 마치 팔을 펴고 지옥 가운데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무엇 때문인가? 만일 그가 나에 대해서 불선심을 일으키면 중생의 악심 때문에 몸이 사라지고 목숨이 다할 때 악취 중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동등한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말한 바와 같으니, 이제 이때 앵무동자가 도타자가 되어 만일 목숨이 다할 때 마치 팔을 펴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무엇 때문인가? 만일 그가 나에 대해서 선심을 일으키면 중생의 선심 때문에 몸이 사라지고 목숨이 다할 때 천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이러므로 동등하지 않은 자는 악도에 태어나고 동둥한 자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 심(心)이 의지하거나 행하거나 반연하거나에 따라서 반복되니, 심수법(心數法)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심이 눈에 의지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심이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범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심이 청행(靑行)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심이 적행(赤行)ㆍ황행(黃行)ㆍ백행(白行)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다.만일 심이 색의 연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심이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법의 연에 의하여 따라서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다. 마치 물고기가 곳에 따라 전전(展轉)하면 모든 새끼들도 역시 그러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심이 의지하거나 행하거나 반연하여 곳에 따라 반복되면 심수법도 역시 그러하다.”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신행(身行)과 구행(口行)을 아직 조절하여 제어하지 않았고, 조절하여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이른 것이다. 이른바 조절하여 제어하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조절하여 제어하는 것이다. 조절하여 제어하지 못하면 심수법도 또한 제어하지 못하고, 조절하여 제어하면 심수법도 역시 제어한다는 것이다.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정하지 않은 것이고, 정한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정하는 것이다. 바르지 않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바르게 하지 않은 것이고, 바르게 한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부드럽게 하지 않는 것이고,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이다.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지니지 않는 것이고, 지닌다는 것은 신행과 구행을 지닌다는 것이다.만일 그 법의 두레박이 입구를 덮지 않으면 새고, 덮으면 새지 않으니, 이와 같이 심이 간직되지 않으면 심수법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미세한 법 가운데서 새며, 심이 간직되면 심수법은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미세한 감촉과 범 가운데서 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심을 지니지 않으면 심수법도 역시 간직되지 않으며, 심을 간직하면 심수법도 역시 간직된다고 말하였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법의 두레박과 같다.”고 하였다.세 가지 유루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
4) 사류처(四流處)
사류(四流)라는 것은 욕류(欲流)와 유류(有流)와 무명류(無明流)와 견류(見流)다.【문】4류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답】욕류(欲流)의 성질은 스물아홉 가지이다. 애(愛)가 다섯, 에(恚)가 다섯, 만(慢)이 다섯, 의(疑)가 넷, 전(纏)이 열이니, 이 스물아홉 가지가 욕류의 성질이다.유류(有流)의 성질은 스물여덟 가지이다. 애가 열이니 색계에 다섯, 무색계에 다섯이고, 만이 열이니 색계에 다섯, 무색계에 다섯이고, 의(疑)가 여덟이니 색계에 넷, 무색계에 넷이다. 이 스물여덟 가지가 유류의 성질이다.무명류(無明流)의 성질은 열다섯 가지이니, 욕계의 무명이 다섯이고, 색계의 무명이 다섯이고, 무색계의 무명이 다섯이다. 이 열다섯 가지가 무명류의 성질이다.견류(見流)의 성품은 서른여섯 가지이니, 욕계의 견(見)이 열둘이고, 색계의 견이 열둘이고, 무색계의 견이 열둘이다. 이 서른여섯 가지가 견류의 성질이다.이 백여덟 가지가 4류의 성질이다. 이 유(流)의 성질은 이종상신(已種相身)에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질을 말했으니, 행(行)에 대해서 말하겠다.【문】무엇 때문에 유(流)를 말하며, 유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답】흘러 내려간다는 뜻과 떠다닌다는 뜻과, 떨어진다는 뜻이 유의 뜻이다.흘러 내려간다는 뜻이 유의 뜻이라는 것은 모든 계(界)와 모든 취(趣)와 모든 생(生)에 흘러 내려가서 생사 가운데 유전하니, 이 때문에 흘러 내려간다는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 떠다닌다는 뜻이 유의 뜻이라는 것은 모든 계와 모든 취와 모든 생에 떠다니며 생사 가운데 교류하니, 이 때문에 떠다닌다는 뜻이 유의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 떨어진다는 뜻이 유의 뜻이라고 한 것은 모든 계와 모든 취와 모든 생에 떨어져서 생사 가운데 떨어지니, 이 때문에 떨어진다는 뜻이 유의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물러 내려간다는 뜻과 떠다닌다는 뜻과 떨어진다는 뜻이 유의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문】만일 모든 계와 모든 취와 모든 생에 흘러 내려가서 생사 가운데 유전한다면 마땅히 상분(上分)의 결은 세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또한 장차 상계에 이르러 상상계(上上界)의 박(縛)을 낼 것이다.
【답】그렇지 않다.【문】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어째서인가?
【답】모든 계이기 때문에 상분의 결을 세운 것이니, 그것이 장차 상계에 이르러 상상계박을 낸다고 하는 것이다. 해탈과 정지(正智)와 성도(聖道)와 선법(善法) 때문에 유를 세운 것이다. 비록 생기나 제일유(第一有) 중에 이르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이니, 해탈과 정지와 성도와 선법 때문이다. 존자 바발라다(婆跋羅多)도 그렇게 말하였으니, 오래 상계에 나서 흘러 내려가기 때문에 유라고 말한 것이고, 베풀어 누르기 때문에 액(扼)이라고 말한 것이다.【문】무엇 때문에 유(流) 중에서 따로 견류를 세우고, 유루(有漏) 중에서는 세우지 않았는가?
【답】비유자(譬喩者)는 4유루를 말하였으니, 욕유루(欲有漏)와 유유루(有有漏)와 무명유루(無明有漏)와 견유루( 見有漏)다. 내가 욕류(欲流)라고 한 것을 그는 욕유루라고 하였고, 내가 유류(有流)라고 한 것을 그는 유유루라고 하였고, 내가 무명류(無明流)라고 한 것을 그는 무명유루라고 하였고, 내가 견류(見流)라고 한 것을 그는 견유루라고 하였다. 저 비유자는 이 가운데 묻지도 않았고, 답하지도 않았다【문】만일 세 가지 유루라고 한다면, 이것은 어째서인가?【답】부처님 법 진리는 다른 어떤 법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는 법의 모양을 알며, 행을 모두 안다. 유유루의 모양 같은 것은 유루(有漏) 중에 세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견의 동요는 욕심을 없앨 때에 잘 따르게 된다. 욕심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잘 따르지 않으니, 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다. 이러므로 나머지는 동요하시 않으니, 결이 머물고, 결이 문드러지며, 결이 섞이게 된다. 이미 유루 중에 흘러 내려가는 것과 잘 따르는 것을 세웠으니, 이 때문에 유(流) 중에 따로 견류를 세운 것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견은 매우 빠르고 예리하게 행하여, 머물러 있을 때에는 잘 따르지 않으니, 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나, 이 때문에 나머지는 동요하지 않으니, 결(結)이 머물고, 결이 문드러지며, 결이 섞이게 된다. 이미 유루 중에 흘러 내려가는 것과 따르는 것을 세웠으니, 그러므로 유(流) 중에 따로 견류를 세운 것이다.이는 마치 두 마리의 미친 소가 하나의 말뚝에 묶여 있는데, 그것은 말뚝을 당겨서 쓰러뜨리고 달아나는 것과 같다. 만일 하나는 미치고 하나는 미치지 않은 것을 묶어 놓았다면 저 미치지 않은 것이 미친 것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견도 매우 빠르고 예리하게 행하여, 머물러 있을 때에는 잘 따르지 않으니, 머문다는 뜻이 유루의 뜻이다. 이러므로 나머지는 동요하지 않으니, 결이 머물고, 결이 무르녹으며, 결이 섞이게 된다. 이미 유루 중에 흘러 내려가는 것과 따르는 것을 세웠으니, 이러므로 유 중에 따로 견류를 세운 것이다. 4류(流)와 4액(扼) 같은 것도 이러하다.”라고 하였다.【문】무엇 때문에 모든 경에서 유(流)를 말하고 나서 뒤에 4액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하였는가?【답】이른바 유가 바로 액이며, 액이 바로 유다. 흘러 내려가기 때문에 유라고 말하였으며, 베풀어 누르기 때문에 액이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중생이 흘러 내려가는 곳으로 흘러가고, 누르는 것을 베풀어 누르니, 그것이 마땅히 어째서 생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겠는가? 이는 마치 저 소가 쟁기에 매어 있을 때 베풀어 눌러서 질곡을 채우니, 마땅히 어째서 쟁기를 당기지 않는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이 물러 내려가는 곳에 흘러가고 누르는 것을 베풀어 누르니, 그것이 마땅히 어째서 생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모든 경에서는 유를 말하고 나서 액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 것이다.4류와 4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
5) 사수처(四受處)
사수(四受)라는 것은 욕수(欲受)와 계수(戒受)와 견수(見受)와 아수(我受)다.【문】4수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답】욕수의 성질은 서른네 가지이니, 애(愛)가 다섯이고, 에(恚)가 다섯이고, 만(慢)이 다섯이고, 무명(無明)이 다섯이고, 의(疑)가 넷이고, 전(纏)이 열이니, 이 서른네 가지가 욕수의 성질이다. 계수의 성질은 여섯 가지이니, 욕계에 둘, 색계에 둘, 무색계에 둘이다. 이 여섯 가지가 계수의 성질이다.견수의 성질은 서른 가지이니, 욕계에 열, 색계에 열, 무색계에 열이다. 이 서른 가지가 견수의 성질이다. 아수의 성질은 서른여덟 가지이다. 애가 열이니, 색계에 다섯, 무색계에 다섯이고, 의가 여덟이니, 색계에 넷, 무색계에 넷이다. 이 백여덟 가지가 4수의 성질이다. 이 4수의 성질은 이종상신(已種相身)에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문】성질을 말하였으니, 행(行)에 대해서 말하겠다.
무엇 때문에 수(受)라고 말하였으며 수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답】두 가지 일 때문에 수라고 말하였으니, 능연행(能燃行)과 첩질행(捷疾行)이다. 능연행이라는 것은 오취 증의 행을 태우는 것이고, 첩질행이라는 것은 예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세 가지 일 때문에 수라고 말하였으니, 태우고, 받고, 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라고 말하였다.”라고 하였다.【문】무엇이 태운다는 뜻인가?【답】섶[薪]의 뜻이 수의 뜻이며, 허문다는 뜻이 수의 뜻이며, 묶는다는 뜻이 수의 뜻이다. 섶의 뜻이 수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섶 때문에 불이 타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이 결(結)의 섶 때문에 행(行)의 불이 탄다. 이 때문에 섶의 뜻이 수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허문다는 뜻이 수의 뜻이라는 것은 마치 예리한 칼이 몸 가운데 들어가 몸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수의 날카로운 칼이 법 가운데 들어가 법신(法身)을 무너뜨린다. 이 때문에 허문다는 뜻이 수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묶는다는 뜻이 수의 뜻이라고 한 것은 마치 누에고치가 비단실로 자신을 묶어 그 가운데에서 죽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중생이 결로써 자신을 묶어 악취(惡趣) 가운데 난다. 이 때문에 묶는다는 뜻이 수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 설의 뜻과 허문다는 뜻과 묶는다는 뜻이 수의 뜻이다.【문】무엇 때문에 무명유루 중에서 무명루를 따로 세우고, 유 중에서는 무명류를, 액 중에서는 무명액을 따로 세웠으면서, 수 중에서는 무명수를 따로 세우지 않았는가?【답】부처님 법 진리는 다른 어떤 법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가 법의 모양을 다 알며 행을 다 아니, 법을 맡을 만하여 그것을 따로 세운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서 이미 두 가지 일을 말하였기 때문이니, 수의 행은 연행과 첩질행이라고 말하였다. 저 무명은 비록 오취의 행을 태우기는 하나, 첩질행은 아니니 둔하기 때문이며, 문드러지기 때문이며, 예리한 행이 아니기 때문이며, 정하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끊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에 앞서 이미 세 가지 일을 말하였기 때문이니, 수의 행은 태우는 것과 받는 것과 끊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무명은 비록 태우고 받는 것은 있으나, 금지는 않는다. 빠르고 예리한 것은 끊을 수 있으나, 그것은 둔하고, 문드러지고, 예리하지 않은 행이며 정하여지지 않고, 끊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 가운데 무명수를 따로 세우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문】무엇 때문에 다섯 가지 견류(見流) 중에서는 견류를 합하여 세웠고, 액(扼) 중에서는 견액을 합하여 세웠으면서, 무엇 때문에 수 중에서는 4견은 견수에 세웠고, 1견은 계수(戒受)에 세웠는가?【답】부처님 법 진리는 다른 어떤 법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가 법의 모양을 다 알며, 행을 다 아니, 법을 맡길 만하여 따로 세운 것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서 이미 두 가지 일을 말하였기 때문이니, 수의 행은 연행(然行)과 첩질행(捷疾行)이라고 말하였다. 그 계도 등은 오취의 행 등을 태우는 나머지 견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앞서 이미 세 가지 일을 말하였기 때문이니, 수는 태우고 받고 끊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저 계도(戒盜) 등은 태우고 받고 끊는 등의 나머지 견이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며, 해탈과 멀기 때문이다. 도에 어긋난다는 것은 욕의 여러 가지 고행을 청정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해탈과 멀다는 것은 만일 그가 이 견에 의지한다면 열반과 멀어진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 가지 일의 속임[欺] 때문이다. 두 가지 일이라는 것은 내 법과 외법이다.”라고 하였다.【문】무엇이 이 내법(內法)의 속임인가?【답】걸식하고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길에 앉아 있는 행을 똑같이 받아 지니며 사문의 열두 가지 청정행(淸淨行)을 받아 지니면 사람들은 청정행이라고 여긴다. 마치 저 존자 바야(婆耶)가 매일매일 씻고 목욕하여 깨끗한 행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것을 내법의 속임이라고 한다.이 외법(外法)은 어떻게 속이는가? 욕(欲)의 여러 가지 고행을 청정하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은 존자 구사(瞿沙)도 또한 그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세간에서 일을 나타내 보임이 마치 불을 보는 것과 같고, 두 가지의 일의 속임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이 때문에 수중의 4견예서 견수(見受)를 세웠고, 1견에서 계수(戒受)를 세웠다.【문】무엇 때문에 “아수(我受)는 행인가, 연(緣)인가?”라고 말하였는가? 만일 행이 아수라면 마땅히 신견(身見)은 아수이니 아행(我行)일 것이고, 만일 연이 아수라고 한다면 무아(無我)일 것이다.
【답】이 논을 지은 이가 이미 말하기를, “행도 아니며, 연도 아니다.”라고 하였다.【문】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는 무엇 때문인가?
【답】처소 때문이다. 이 욕계의 결은 욕처(欲處)이기 때문이며, 중생처에 전전하여 행하기 때문이며, 구유의 처[具處]이기 때문이다. 색ㆍ무색계의 결은 욕처가 아니기 때문이며, 비중생처에 전전하여 행하기 때문이며, 구유의 처[具處]가 아니기 때문이며, 다만 아처(我處)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계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문】이 4수는 무엇이 근본이며, 무엇이 익혔으며[習], 무엇이 냈으며, 무엇이 반연하는가?
【답】이 4수는 무명이 근본이며, 무명이 익혔으며, 무명이 냈으며[生], 무명이 반연한다.【문】모든 계경에서는 애욕이 수를 반연한다고 말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이 계경에서는 무명 이 수를 반연한다고 말하였는가?【답】이학(異學)들 때문이다. 이학들도 출가하여 집과 처자를 버리고, 집도 없고, 지킴도 없고, 재산을 쌓음도 없으며, 또한 많은 악이 없다. 그러나 무명을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견해에 의하여 악취 중에 떨어지니,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탕에 들어가 빠져 죽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저 이학들은 무명을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편견에 의하여 그로 하여금 악취 중에 태어나게 한다. 이 때문에 계경에서 “4수는 무명이 근본이며, 무명이 익힌 것이며, 무명이 낸 것이며, 무명이 반연한다.”라고 말하였다.
4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
6) 사박수처(四縛受處)
사박(四縛)이라는 것은 욕애신박(欲愛身縛)과 진에신박(瞋恚身縛)과 계도신박(戒盜身縛)과 아견신박(我見身縛)이다.【문】4박(縛)에 어떤 성질이 있는가?
【답】욕애신박은 욕계의 애가 다섯 가지이고, 진에신박은 에가 다섯 가지이극 계도신박은 삼계의 여섯 가지이고, 아견신박은 삼계의 열두 가지이다. 이 스물여덟 가지가 4박의 성품이다. 이 박의 성질은 이종상신(已種相身)에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문】성질을 말하였으니, 행을 말하겠다.
무엇 때문에 박이라고 말하였으며, 박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답】묶는다는 뜻이 박의 뜻이고, 연속한다는 뜻이 박의 뜻이다.묶는다는 뜻이 박의 뜻이라는 것은 저 『시설[족론]』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이 무명이 아직 다하지 않아서 저러저러한 몸을 알지 못하니, 저러저러한 것이 저러저러한 것에 의지하여 자기의 몸을 얻으니, 인(因)이 되기도 하고 연(緣)이 되기도 한다. 묶고 묶어서 묶음을 두루하여 연속하고 서로 연속하니, 마치 솜씨 있는 가발사와 가발사의 제자가 긴 끈을 묶어서 여러 가지의 가발을 맺어 만드는 것과 같으니, 저 끈이 저 꽃장식에 대해서 인이 되기도 하고 연이 되기도 한다. 맺고 맺어서 맺음을 두루하여 연속하고 서로 연속한다.”이와 같이 이 무명이 아직 다하지 않아서 저러저러한 몸을 알지 못하여 저러저러한 것이 저러저러한 것에 의시하여 자기의 몸을 얻으니, 인이 되기도 하고 연이 되기도 하며, 묶고 묶어서 묶음을 두루하여 연속하고 서로 연속하니, 이 때문에 묶는다는 뜻이 박의 뜻이며, 연속의 뜻이 박의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서로 연속한다는 것이 박의 뜻이라는 것은 계경에서 “이때에 향식(香食中陰)이 두 마음 중에 반드시 하나가 있으니, 흑은 애(愛)와 상응하고 혹은 에(恚)와 상응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연속의 뜻이 박의 뜻이라고 한 것이다.【문】만일 중생이 생사 중에서 묶이고 묶여서 묶임을 두루한 것이 박의 뜻이라고 한다면, 모든 결도 그러하여 중생이 생사 중에서 묶이고 묶여서 묶임을 두루할 것인데, 무엇 때문에 4박을 세우고 나머지는 세우지 않았는가?【답】이것은 세존께서 나머지 말을 간략히 말씀하셔서 행을 말씀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며, 세존께서 교화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을 위하기 때문이며, 권속 때문이며, 근기 때문이며, 교화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존자 구사는 말하기를, “부처님법의 진리는 다른 어떤 법도 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그가 법의 모양을 다 알고 행을 다 아니, 만일 박(縛)의 모양을 박 가운데 세웠다면 박이 없는 상은 박 가운데 세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삼계의 중생을 심하게 묶기 때문이니, 욕애신박(欲愛身縛)과 진에신박(瞋恚身縛)은 욕계의 중생을 심하게 묶으며, 계도신박(戒盜身縛)과 아견신박(我見身縛)은 삼계의 중생을 심하게 묶는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 가지 일이 재가인과 수행자를 심하게 묶기 때문이니, 욕애신박과 진에신박은 재가인을 심하게 묶고, 계도신박과 아견신박은 수행자를 심하게 묶는다. 백의(白衣)와 학도(學道)들처럼 출가자와 출가하지 않은 자도 마찬가지며, 집과 처자를 버린 자와 집과 처자를 버리지 않은 자, 집이 있는 자와 집이 없는 자, 쌓아놓은 재산이 있는 자와 쌓아놓은 재산이 없는 자도 모두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두 가지 다툼을 일으킬 수 있으니, 첫째는 음욕 때문에 다투며, 둘째는 견욕 때문에 다툰다.”라고 하였다.이는 계경에서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두레박과 지팡이를 가진 범지(梵志)가 존자 가전연(迦栴延)의 처소에 와서 가전연에게 묻기를 ‘무슨 인연 때문에 왕과 왕이 함께 다투게 되며, 범지와 범지가 함께 다투며, 거사와 거사가 함께 다투며, 고을과 고을이 함께 다투며, 나라와 나라가 함께 다툽니까?’라고 하자, 답하기를, ‘범지여, 음욕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 왕과 왕이 함께 다투게 되며, 범지와 범지가 함께 다투게 되며, 거사와 거사가 함께 다투게 되며, 고을과 고을이 함께 다투게 되며, 나라와 나라가 함께 다투게 된다.’라고 하였다.거듭 묻기를, ‘가전연이여, 이 사문도 집이 없으며, 지키는 것이 없으며, 재산을 쌓아두지도 않았습니다. 가전연이여, 무엇 때문에 무슨 인연으로 사문과 사문이 함께 다툽니까?’라고 하자, 답하기를, ‘견욕(見欲)에 집착하기 때문이니, 범지여, 사문과 사문이 함께 다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그가 두 가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첫째는 음욕이며, 둘째는 견욕 때문이다. 다툼과 마찬가지로 이변(二邊)과 이전(二箭)과 이전(二轉)과 이희(二戱)도 다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4박을 세우고, 나머지는 세우지 않은 것이다.4박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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