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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442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3권

by Kay/케이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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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3

 

법구비유경 제3권

진세 사문 법거ㆍ법립 공역

19. 노모품(老耄品)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정사(祇樹精舍)에 계셨다. 공양을 마친 뒤에 천인(天人)ㆍ제왕ㆍ신하ㆍ백성ㆍ4부대중과 제자들을 위해 감로법(甘露法)을 말씀하셨다.
그때 멀리서 바라문 장로 일곱 사람이 부처님 처소로 와서 머리를 땅에 조아려 예배하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저희들은 멀리서 부처님의 거룩한 교화를 듣고 벌써 귀의하려 하였으나, 여러 가지 장애가 많아 이제야 이렇게 와서 거룩한 모습을 뵙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제자가 되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받아들여 모두 사문이 되게 하시고 일곱 사람이 함께 한 방에서 기거하게 하셨다.
그러나 이 일곱 사람은 세존을 뵙자 이내 도를 얻었지만 모든 것은 덧없는 것[無常]임을 생각하지 않고 항상 방 안에 함께 앉아서 세상일을 생각하면서 소곤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였다. 그들은 일의 성패와 목숨은 매일 재촉하여 사람에게 기약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모여 앉아 희희덕거리며 삼계(三界)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미혹만 일으키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세 가지 통달한 지혜로 그들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아시고 가엾게 여겨 선정에서 일어나 그들의 방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도를 닦아 세상을 제도하기를 구해야 하겠거늘 어찌하여 큰소리로 웃고만 있느냐? 모든 중생들은 다섯 가지 일에 대해 스스로 믿고 있다.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젊음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아름다움을 믿는 것이며, 셋째는 힘센 것을 믿는 것이요, 넷째는 재물을 믿는 것이며, 다섯째는 귀한 성(姓)을 믿는 것이다. 너희들이 소곤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는데 무엇을 믿고 그러느냐?”
그리고는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생각은 항상 불타고 있나니
깊고 어두운 데 덮여 있으면서

등불을 찾지 않는 것과 같구나.

이 몸뚱이 완전하다 보고서
그것을 의지해 편안해 하는구나.
생각이 많으면 병을 부르나니
그것이 진실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늙으면 이 몸뚱이 쇠해지고
병들면 광택(光澤)마저 없어지며
가죽은 늘어지고 살은 줄어들어
이 목숨 죽음을 재촉한다.

몸이 죽으면 정신도 따르나니
내버린 수레를 모는 것 같다.
살이 삭아버리면 뼈도 흩어지니
그런 몸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부처님께서 게송을 마치시자 일곱 비구들은 마음이 풀리고 욕망이 그쳐, 부처님 앞에서 곧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정사에서 여러 천인(天人)들과 제왕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어떤 바라문촌이 있었다. 5백 바라문 집에는 5백 명의 젊은 바라문들이 살고 있으면서 바라문의 술법을 닦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됨이 교만하여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잘난 체 스스로 뽐내는 것이 예사였다.
5백 범지들이 스스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사문 구담(瞿曇)은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세 가지 통달한 방편 지혜는 감히 같이 의논할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를 청해다가 같이 의논하되, 일일이 따져 물어보면 그가 어떤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곧 음식을 준비하고 가서 부처님을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범지의 마을로 가서 모두 자리에 앉자 물을 돌렸다. 공양을 마치고 손을 씻으셨다.
그때 어떤 장로인 범지 부부 두 사람이 그 마을에 와서 구걸하며 다녔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본래는 견줄 데 없는 큰 부자였고 또 과거에는 대신이었던 것을 아시고 젊은 범지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저 장로 바라문을 아는가?”
모두 말하였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또 물으셨다.
“본래는 어떠하였던가?”
“본래는 대신으로서 무수한 재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왜 저렇게 구걸하고 다니는가?”
모두 말하였다.
“함부로 돈을 썼기 때문에 저렇게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바라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사람으로서 실천하기 어려운 네 가지 일이 있다. 만일 그대로 실천하는 자는 복을 받아 저처럼 가난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나이 젊고 힘이 세지만 조심하고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늙어서도 정진하며 음행을 탐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지니고 있는 재물과 보물을 항상 보시하려고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스승에게 나아가 공부하여 바른 말을 들어 받드는 것이다.
이런 네 가지 일을 저 늙은이는 실천하지 않고,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일의 성패를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모두 탕진하고 만 것이다. 이것을 비유해 말하면 마치 늙은 따오기가 빈 못을 지키고 있다가 끝내 한 마리 고기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밤이고 낮이고 언제나 게으르고
늙어서도 음행을 그치지 않으며
재물이 있어도 보시하지 않고
부처님 말씀을 받들지 않는 것

이 네 가지 가리움으로 해서
자신을 해치고 속이며 산다.
아아, 어느새 늙음이 닥쳐
얼굴이 변하고 망령을 부리나니

젊을 때엔 마음대로 하였으나
늙어서는 남에게 짓밟힌다.
깨끗한 행도 닦지 않고
또 재물도 많이 모아두지 못한 채
늙어지면 마치 흰 따오기가
빈 못을 지키는 것 같으리.

이미 계율도 지키지 못하고
또 재물도 쌓아두지 못한 채
늙어 빠져 기운마저 다했으니
옛일을 생각한들 어이 미치겠는가.

늙으면 마치 가을 나뭇잎 같아
어찌 누추한 처지로 푸르름 넘보리.
목숨은 죽음을 향해 질주하나니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

부처님께서 범지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네 가지 시기가 있다. 그때에 도를 행하면 복을 얻고 해탈할 수 있어서 온갖 괴로움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그 네 가지 시기인가 하면 첫째는 젊어서 세력이 있는 시기요, 둘째는 부귀하고 재물이 있는 시기이며, 셋째는 삼존(三尊)의 좋은 복밭을 만난 시기요, 넷째는 만물이 떠나고 흩어지는 것을 보고 걱정하며 생각하는 시기이다. 이 네 시기에 도를 행하면 소원을 모두 이루어 반드시 도적(道跡:수다원)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목숨은 밤낮으로 줄어드나니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라.
세간의 이치는 덧없는 것이니
미혹하여 어둠 속에 떨어지지 말라.

마땅히 공부할 땐 마음의 등불 켜고
스스로 단련하여 지혜를 구하라.

번뇌[垢]를 여의어 더럽히지 말고
촛불을 잡고 도의 자리 관찰하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뒤 큰 광명을 놓아 온 천지를 두루 비추셨다.
5백의 젊은 범지들은 이것으로 인해 마음이 풀리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모두들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 귀의하겠습니다. 원하옵건대 제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야.”
그러자 그들은 곧 사문이 되어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도 도적(道迹)을 이룩하여 모두 기뻐하였다.

20. 애신품(愛身品)

옛날 다마라(多摩羅)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성에서 7리 쯤 떨어진 곳에 정사가 있었다. 5백 사문들은 항상 거기에서 경전을 읽고 도를 닦았다.
어떤 늙은 비구가 있었는데 이름을 마하로(摩訶盧)라고 하였다. 그는 사람됨이 우둔하고 답답하여 5백 도인들이 돌아가면서 가르쳤으나, 여러 해 동안 한 게송도 외우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같이 어울리지 않고, 항상 절을 지키면서 청소나 하게 하였다.
그 후 어느 날 그 나라 왕이 모든 도인들을 궁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그때 마하로 비구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 나서 이처럼 우둔하고 답답하여 게송 하나도 외우지 못하므로 남의 천대를 받는다. 살아서 무엇하랴?’
그리고는 노끈을 가지고 뒷동산 큰 나무 밑으로 가서 목을 매어 자살하려 하였다.
부처님께서 도안(道眼)으로 멀리서 그것을 보시고 나무 신[樹神]으로 변화하셨는데, 반쯤은 사람의 몸을 나타내어 그를 나무라며 말씀하셨다.
“쯧쯧, 못난 비구야,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하느냐?”
마하로는 곧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괴로움을 모두 하소연하였다.
변화한 신이 꾸짖어 말하였다.
“그런 짓을 하지말고 우선 내 말을 들어보라. 과거 가섭(迦葉)부처님 때, 너는 삼장(三藏) 사문이 되어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스스로 지혜가 많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겨 경전의 이치를 아껴 조금도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세상에 날 때마다 모든 감관이 우둔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제 자신을 탓해야 하거늘 왜 스스로 몸을 해치려 하는가?”

그리고는 세존께서 큰 광명을 나타내시고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제 몸을 사랑하거든
삼가고 단속하여 제 몸을 지키고
법 깨닫기를 바라는 사람은
바른 법을 배우되 게을리 하지 말라.

먼저 제 몸을 제일로 삼아
언제나 스스로 힘써 배우고
남을 가르쳐 이롭게 하되
게을리하지 않으면 지혜 얻으리.

먼저 제 자신 바로잡기를 배우고
그런 다음에 남을 바로잡아야 한다.
내 몸을 길들여 지혜에 들어가면
반드시 최상의 경지에 이르리라.

제 몸도 이롭게 하지 못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랴.
마음을 길들이고 몸을 바로잡으면
어떤 소원도 이루게 되리라.

원래 자신이 지은 업이기에
나중에 제 자신이 과보 받나니
악을 행하여 제 자신을 부수는 것
금강석이 구슬을 부수는 것 같네.

마하로 비구는 부처님께서 나타내신 광명의 모습을 보자 기쁘면서도 슬프고 두려웠다. 그래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게송의 이치를 생각하면서 선정에 들었다가 이내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그리하여 전생의 무수한 세상일들을 생각할 때, 삼장의 많은 경전들을 모두 꿴 듯이 그 마음에 있었다.
부처님께서 마하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궁에 들어가 공양할 때 5백 도인들의 윗자리에 앉으라. 도인들은 모두 전생에 너의 5백 제자였다. 그리고 네가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다 도적(道跡)을 얻게 하고 또 국왕으로 하여금 죄와 복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하라.”
그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고 그 길로 궁중으로 들어가 맨 윗자리에 앉았다.
여러 사람들은 화를 내며 까닭을 괴상히 여겼다. 그러나 왕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감히 꾸짖지는 못하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우둔함을 생각할 때, 법시(法施)를 받는 마음이 그 때문에 피곤했다.
왕은 음식을 내어 손수 대접[斟酌]하였다. 공양을 마치고 마하로는 곧 그들을 위해 보시[達嚫]에 대하여 설법하였는데 그 음성은 우레처럼 울리고 맑은 법어(法語)는 비처럼 쏟아졌다. 그 자리의 도인들은 모두 놀라며 스스로 뉘우쳐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그의 설법을 왕은 모두 해득하였고 신하들과 관리들도 다 수다원도를 증득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 그때 5백 명의 바라문들은
항상 기회를 엿보아 부처님을 비방하려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통달한 지혜로 그들의 마음을 두루 보시고 그들을 가엾게 여겨 구제하시고자 생각하셨다.
‘그 과(果)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인연이 이르지 않았더라도, 모든 죄와 복이 오려고 할 때에는 스스로 인연을 만들어 죄와 복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 범지(梵志)들은 전생에 조그만 복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제도할 수 있을 것이니, 복덕의 힘이 그들을 이끌어 스스로 방편을 만들 것이다.’
그러자 과연 5백 범지들은 저희들끼리 의논하였다.
“백정을 시켜 짐승을 잡아 놓고 부처님과 대중들을 청하도록 하자. 부처님께서는 틀림없이 허락하실 것이고 반드시 백정을 칭찬하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앞으로 나가 그를 비방하자.”
그리하여 백정은 그들을 위해 부처님을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받고 백정에게 말씀하셨다.
“과일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고 복은 익으면 저절로 구제되느니라.”
백정은 돌아가 음식을 준비하였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백정이 있는 마을로 가서 시주하려는 집으로 가셨다. 범지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오늘에야 비로소 부처님의 허점을 얻었다. 만일 부처님께서 시주의 복덕을 찬탄하면, 우리는 그 백정이 이전부터 지금까지 살생하여 지은 죄를 들어 비방하고, 만일 부처님께서 백정이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해 말하면 우리는 마땅히 그가 지금 복을 짓는 것을 들어 비방하자. 이 두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의 허점을 노려보자.”
부처님께서 그 집에 이르러 자리에 앉으셨다. 물을 돌리고 공양이 나왔다.
그때 세존께서 대중들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들을 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곧 혀를 내어 얼굴을 덮었다가 다시 귀를 핥으시고는, 큰 광명을 놓아 온 성 안을 두루 비추시고, 맑은 음성으로 게송을 읊어 축원하셨다.

거룩한 진인(眞人)의 가르침대로
바른 도로써 몸을 살리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보고
질투하면서 악이라 한다.

악을 행하면 악의 과보 받는 것
마치 괴로움의 종자 심은 것 같나니
악을 지어 스스로 그 죄를 받고
선을 지어 스스로 그 복을 받는다.

선이든 악이든 반드시 무르익는 법이니
그것은 남이 대신할 수 없다.
선을 행하여 선의 과보 받는 것
마치 달콤한 종자 심은 것 같다네.

부처님께서 게송 읊기를 마치시자 5백 범지들은 마음이 저절로 풀려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온몸[五體]을 땅에 던져 예배한 뒤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고집 세고 어리석어 미처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원컨대 가엾게 여기시어 사문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받아들여 모두 사문으로 만드셨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건 늙은이건 부처님의 신통변화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어 모두 도적(道迹)을 증득하게 되어 현성이라 불려지고 다시는 백정이라는 이름이 없어졌다.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시고 이내 정사로 돌아오셨다.

21. 세속품(世俗品)

옛날 어떤 바라문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다미사(多味寫)라고 하였다.
그 왕은 아흔여섯 종류의 외도를 받들어 섬기다가 하루는 갑자기 선심(善心)을 내어 큰 보시를 행하려 하였다. 바라문의 법과 같이 일곱 가지 보물을 산처럼 쌓아놓고 그것을 보시하되 구걸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한 움큼씩 가져가게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을 지냈지만 그 보물더미는 줄어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그 왕이 전생에 복을 지었기 때문에 제도할 수 있음을 아시고 어떤 범지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그 나라로 가셨다.
왕이 나와 서로 인사하고 문안한 뒤에 물었다.
“무엇을 구하시는지 스스로 의심하지 마시오.”
범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멀리서 왔는데, 보물을 얻어 집을 지으려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한 움큼 집어 가십시오.”
범지는 한 움큼을 집어 가지고 일곱 걸음쯤 가다가 되돌아와서 그 보물이 있던 곳에 도로 갖다 두었다.
왕이 물었다.
“왜 가져가지 않습니까?”
범지가 대답하였다.
“이것으로는 겨우 집밖에 짓지 못할 것입니다. 장가갈 비용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세 움큼을 집어 가십시오.”
범지는 보물을 집어 가지고 일곱 걸음쯤 가다가 다시 돌아와 보물이 있던 곳에 갖다 두었다.
왕이 또 물었다.
“왜 또 그러십니까?”
범지가 대답하였다.
“이것으로 장가가기엔 충분하지만 농지와 종 그리고 소와 말이 없는데 계산해 보니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단념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러면 일곱 움큼쯤 더 집어 가십시오.”
범지는 보물을 집어 가지고 일곱 걸음쯤 가다가 다시 돌아와 보물이 있던 곳에 갖다 두었다.
왕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범지가 대답하였다.
“만일 사내나 계집애를 낳으면 또 그것들을 장가도 보내야 하고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길흉사(吉凶事)에 쓸 비용이 부족합니다. 그 때문에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이 쌓아둔 보물을 모두 다 드리겠습니다. 다 가져가십시오.”
범지는 그것을 받았다가 되돌려 주었다. 왕은 매우 괴상히 여겨 다시 그 이유를 물었다. 범지가 대답하였다.
“원래 구걸하러 온 것은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생각해 보면 세상에 얼마 살지 못하고 만물은 덧없어 아침저녁을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인연이 중하면 중할수록 근심과 괴로움은 날로 깊어 가리니, 보물을 산처럼 쌓아둔들 내 몸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탐욕으로 일을 꾀하면서 한낱 스스로 괴로워할 따름이니, 차라리 마음을 쉬고 무위의 도[無爲道]를 구하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왕은 마음이 열리고 풀려, 그 밝은 가르침을 받들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리자 범지는 부처님의 광명 모습을 나타내고 허공으로 솟아올라 게송을 말하였다.

비록 온갖 보물을 많이 쌓아
그 높이 하늘에 닿을 만하고
이렇게 온 세상을 가득 채우더라도
도적(道迹)을 깨닫는 것만 못하리.

착하지 않으면서 착한 체하고
애욕이 있으면서 없는 체하며
괴로우면서 즐거운 체하는 것
미친 사람의 행동이니 싫어해야 한다.

그때 국왕은 부처님의 광명 모습이 천지를 두루 비추는 것을 보고 또 그 게송을 듣고는 못내 기뻐 날뛰었다. 그리하여 왕과 신하들은 곧 다섯 가지 계율을 받고 수다원도를 증득하였다.

22. 술불품(述佛品)

옛날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선승도량(善勝道場)의 원길수(元吉樹) 밑에 서 계셨는데 덕의 힘으로 악마들을 항복받고 홀로 앉으시어 가만히 생각하셨다.
‘감로법고(甘露法鼓)의 소리가 3천세계에 두루 들린다. 옛날 부왕(父王)께서는 다섯 사람을 보내 나에게 깨를 공양하고 시중들게 하느라 수고가 많으셨다. 나는 그 은공에 보답해야 한다. 그때 그 다섯 사람이 지금 바라내국(波羅奈國)에 있다.’
그리고 여래(如來)께서는 나무 밑에서 일어나셨는데 그 상호(相好)와 존엄한 모습은 천지를 밝게 비추었고 그 신비한 위엄은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부처님께서 바라내국으로 가시다가 도중에서, 우호(憂呼)라는 범지를 만났는데, 그는 부모를 하직하고 집을 떠나 스승을 구하여 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거룩하고 미묘한 모습을 바라보고,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여 길 한쪽으로 피해서 소리 높여 찬탄하였다.
“위엄과 신비스러움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거룩한 거둥은 특별히 뛰어나시구나. 본래 어떤 스승을 섬겼기에 저 모습 저렇듯 훌륭한가?”
부처님께서 우호를 불러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여덟 가지 바른 깨달음 스스로 얻어
여윔도 없고 물들어 집착함도 없으며
애욕이 다하고 욕심의 그물을 찢으면
스승 없어도 스스로 깨달으리니

내 행에는 스승의 보호도 없었고
혼자 뜻을 내어 도반도 없었네.
오직 한마음으로 쌓아 부처가 되었나니
나를 따르면 거룩한 도 얻으리라.

우호는 부처님의 게송을 들었으나 그저 멍청하니 이해하지 못하고 곧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瞿曇)이시여,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바라내국으로 가서 감로법의 북을 두드리고 위없는 법륜(法輪)을 굴리려 한다. 삼계(三界)의 어떤 성인도 아직 나처럼 법륜을 굴려 사람들을 열반에 들어가게 한 이는 일찍이 없었느니라.”
우호는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하십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감로법을 열어 호응해 오는 이를 따라 설법해 주십시오.”
범지는 인사하고 곧 그대로 지나가 버렸고, 그는 스승이 있는 곳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도중에서 잠을 자다가 그 날 밤중에 갑자기 목숨을 마쳤다.
부처님께서 도안(道眼)으로 그가 죽은 것을 보시고 가엾게 여기시며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저 미련한 사람은 목숨이 항상한 것이라고 믿어 부처를 보고도 저버리고 가더니 그만 혼자 쓸쓸히 죽었구나. 법북이 진동하였는데도 유독 저만 듣지 못하였고 감로로써 온갖 괴로움 없앴건만 저만 홀로 맛보지 못하였구나. 다섯 세계[五道]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나고 죽음만 더욱 길어지고, 그렇게 오랜 겁을 지내리니 언제 구원을 얻겠는가?”
부처님께서 다시 그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시어 게송을 말씀하셨다.

진리를 깨닫고 깨끗해져 더러움 없으며
이미 다섯 갈래 세계의 깊은 못 건넜네.
부처님 나오시어 온 세상 비추심은
온갖 근심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네.

사람의 세상에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도 오래 살기 또한 어렵네.
부처님 계신 세상 만나기도 어렵지만
부처님의 법 듣기는 더욱 어렵네.


부처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셨을 때 허공에 있는 5백 하늘[天人]들은 이 게송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다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증득하였다.

23. 안녕품(安寧品)

옛날 부처님께서 나열기성(羅閱祇城)에 계셨다.
그 성 동남쪽 3백 리 밖에 5백여 채의 가구가 살고 있는 산간 마을이 있었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됨이 억세고 거칠었으므로 인도하여 교화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전생에 지은 복과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은혜를 입어 구제받을 수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한 사문으로 변화하여 그 마을로 가서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시고 마을 밖으로 나와 어떤 나무 밑에 앉아서 열반삼매[泥洹三昧]에 드시어 이레 동안 기침도 하지 않으시고 숨도 쉬지 않으셨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셨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목숨을 마친 것이라 생각하고는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이 사문은 이미 죽었다. 우리 함께 장사를 치뤄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은 각기 땔나무를 가지고 가서 불을 붙였다.
불이 꺼지고 땔감이 다 타자 부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도의 신통변화를 나타내셨고, 광명을 두루 비추어 시방(十方) 세계 중생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신통을 거두시고 다시 나무 밑에 앉아 계시니 몸은 고요하고 편안하여 본래 모습과 같았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저희들은 산에나 머무는 족속으로 미련하고 무식하여 신인(神人)을 몰라 뵙고 함부로 땔나무에 불을 붙였사온데 아직 타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니 저희들이 지은 죄는 태산보다 무겁습니다. 원하옵건대 인자한 마음으로 용서하시어 저희 허물을 보지 마시옵소서. 알 수 없습니다만 신인께서는 혹 다치시거나 병에 걸리시지나 않으셨으며, 장차 근심 걱정이나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또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온화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시면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원한에 대해 노여움 없으니
내 생(生)은 이미 편안하여라.
사람들은 누구나 원한을 품지만
내 행에는 아무런 원한 없다네.

병(病)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사람들은 모두 병을 앓지만
내 행에는 아무런 질병도 없다네.

근심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사람들은 누구나 근심이 있지만
내 행에는 아무런 근심 없다네.


맑고 깨끗하여 함[爲]이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즐거움으로써 음식을 삼으니
마치 광음천(光音天)과 같다네.

편안하여 아무 일이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온 나라에 가득 한 불인들
어찌 나를 태울 수 있으랴.

그때 그 마을에 살고 있던 5백 사람들은 이 게송을 듣고, 모두 사문이 되어 다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의 늙고 젊은 사람들도 다 부처님과 법과 승가[三尊]를 믿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그들 5백 사람과 함께 날아서 죽원(竹園)으로 돌아가셨다.
현자 아난(阿難)은 부처님께서 도를 증득한 그들과 함께 오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이 모든 비구들은 어떤 특별한 공덕이 있기에 세존으로 하여금 몸소 오셔서 제도하시게 하였습니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이 세상에 내려와 부처가 되기 전 어느 때에 이 세상에 벽지불(辟支佛)이 있었다. 그는 항상 이 산에서 살다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어떤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들려고 하였고, 도의 신통을 나타내어 열반[泥洹]에 들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땔나무를 가지고 가서 그를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보배병에 넣어, 그 산 꼭대기에 묻고는 각기 발원하였다.
‘원컨대 우리도 후생에 도를 얻어 이 사문처럼 편안히 열반에 들게 하소서.’
그들은 이 복의 인연으로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래께서 직접 가서 구제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무수한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도적(道迹)을 증득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정사에 계셨다. 그때 어떤 네 비구가 나무 밑에 앉아서 서로 의논하여 물었다.
“이 일체 세간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한 사람이 말하였다.
“천하의 괴로움 중에서 음욕보다 더한 것이 없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세상의 괴로움 중에서 성내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없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세상의 괴로움 중에서 배고프고 목마른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천하의 괴로움 중에서 놀라움과 두려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뜻을 두고 서로 다투기를 그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 곳으로 가서 그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무슨 일로 서로 다투느냐?”

그들은 일어나 예배하고 이야기하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 괴로움의 뜻을 깊히 알지 못하고 있구나. 천하에서 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느니라.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추위와 더위, 그리고 미워하고 성내는 것,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색욕과 원한은 모두 몸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무릇 몸은 온갖 괴로움의 근본이요, 모든 재앙의 근원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생각을 태우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온갖 실마리와 삼계의 모든 곤충들이 서로 해치는 것과 우리를 결박해 생사가 그치지 않는 것이 모두 이 몸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여의려면 마땅히 적멸(寂滅)을 구해야 하나니, 마음을 거두어 잡고 바른 길을 지켜, 말끔하게 아무 생각이 없어야 열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음욕보다 더한 뜨거운 것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毒)이 없으며
몸보다 더한 괴로움 없고
열반보다 더한 즐거움 없네.

조그만 즐거움과 조그만 말재주와
조그만 지혜를 즐거워하지 말라.
자세히 관찰해 큰 것을 구하면
비로소 큰 안락 얻게 되리라.

나는 이 세상 높은 이 되었나니
영원히 해탈해 근심이 없네.
삼계의 중생 바르게 제도하고
혼자서 많은 악마들을 항복받았네.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마치시고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없이 먼 옛날 어느 세상에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진 비구가 있었는데 이름을 정진력(精進力)이라 하였다. 그는 어느 산 속의 나무 밑에 앉아 고요히 도를 닦고 있었다.
그때 네 마리 짐승이 항상 그의 곁에 의지해 편안히 살고 있었는데 첫째는 비둘기요, 둘째는 까마귀이며, 셋째는 독사요, 넷째는 사슴이었다. 이 네 마리 짐승은 낮에는 나가 먹이를 구하다가 날이 저물면 돌아오곤 하였다.
어느 날 밤 네 마리 짐승은 저희들끼리 서로 물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괴로운가?’
까마귀가 말하였다.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가장 괴롭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에는 몸이 피로하고 눈이 어두워지며 정신이 편치 못해서 그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작살이나 칼날도 돌아보지 못한다. 우리가 몸을 죽이는 것이 모두 그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가장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둘기가 말하였다.
‘음욕이 가장 괴롭다. 색욕(色慾)이 불꽃처럼 일어날 때에는 아무 것도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몸을 위태롭게 하고 목숨을 잃는 것이 모두 그것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독사가 말하였다.

‘성내는 것이 가장 괴롭다. 독한 마음이 한 번 일어나면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고 남을 죽이기도 하고 또 스스로 죽기도 한다.’
사슴이 말하였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장 괴롭다. 나는 숲 속에서 놀면서도 늘 마음으로 사냥꾼이나 늑대나 이리들에게 습격당할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다가 어디서 그럴싸한 소리가 들리면 곧 내닫다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언덕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어미와 새끼가 서로 헤어져 애를 태우며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장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구가 그 말을 듣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논하는 것은 곧 지말적인 것만 말하는 것이지, 아직 괴로움의 근본을 궁구하지 못한 말들이다. 천하의 괴로움으로는 몸보다 더한 괴로움이 없다. 이 몸은 괴로움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근심과 두려움이 한량없다. 그러므로 나는 속세를 버리고 도를 공부하되, 뜻을 없애고 생각을 끊어 이 몸[四大]을 탐하지 않고, 괴로움의 근원을 끊으려고 오직 열반[泥洹]에 뜻을 두는 것이다. 열반의 도는 아주 걱정하여 형상이 없는 것이니, 근심과 걱정이 영원히 끝나야 비로소 큰 안락을 얻는 것이다.’
네 마리 짐승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곧 열렸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때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진 비구는 바로 나이고, 그때 네 마리의 짐승은 바로 지금의 너희 네 사람이다. 전생에 이미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이치를 들었는데 어째서 오늘 또 그런 말을 하느냐?”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책하고 이어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24. 호희품(好喜品)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정사(精舍)에 계셨다.
그때 새로 된 비구 네 사람이 함께 나가 벚나무 밑에 앉아 좌선하면서 도를 닦고 있었다.
마침 벚꽃이 한창 피어 빛깔도 곱고 또 향기로웠다. 그로 인해 그들은 저희끼리 말하였다.
“이 세상 온갖 물질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으로서,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한 사람이 말하였다.
“한창 봄이 되어 초목이 무성하고 꽃이 필 때 들에 나가 노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좋은 일이 있어 친척들이 한데 모여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많은 재물을 쌓아 두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되
수레와 말과 옷이 남보다 뛰어나, 드나들 때 화려한 광경에 사람들이 모두 놀라운 듯 바라보면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단정한 처첩(妻妾)들이 고운 옷을 입고 향긋한 향기를 피울 때, 그들과 마음껏 향락하는 것 이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네 사람을 제도할 수는 있으나 여섯 가지 탐욕에 마음이 끄달려 세상의 덧없음을 생각하지 않음을 아시고 곧 네 사람을 불러 물으셨다.
“너희들은 나무 밑에 모여 앉아서 무슨 일들을 이야기하였는가?”
네 사람은 즐거워하는 일에 대해 논한 것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네 사람이 논한 일들은 모두 근심스럽고 두려우며 위태롭고 망치는 길로서 그것은 영원히 편안하고 가장 즐거운 법이 아니다. 천지 만물은 봄에는 무성하였다가 가을과 겨울이 되면 시들어 떨어지고, 친척들과 즐거움도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며, 재물과 보배 그리고 수레와 말 따위는 모두 다섯 집[五家]1)의 몫이 되는 것이요, 처첩들의 아름다움은 사랑과 미움의 근본이 된다.
범부들이 세상에 살면서 원망과 재앙을 불러 일으켜 몸을 위태롭게 하고 집 안을 망치는 등, 근심되고 두려운 일들이 한량없으며, 세 가지 길[三塗:지옥ㆍ축생ㆍ아귀]과 여덟 가지 어려움[八難]2)의 온갖 고통이 모두 거기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는 세상을 버리고 도를 구하되, 오로지 뜻을 무위(無爲)에 두어 영화와 이익을 탐하지 않고 스스로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가장 즐거운 것이니라.”
그리고는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랑하고 기뻐하는 데서 근심 생기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데서 두려움 생긴다.
사랑하거나 기뻐할 것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좋아하고 즐겨하는 데서 근심 생기고
좋아하고 즐겨하는 데서 두려움 생긴다.
만일 좋아하고 즐겨할 것 없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탐하는 욕심에서 근심 생기고
탐하는 욕심에서 두려움 생긴다.
만일 해탈하여 탐욕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법을 탐하고 계율을 성취하고
지극히 진실하여 부끄러움을 알며
몸으로 실천함이 도에 가까우면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탐욕스런 태도를 내지 않고
바르게 생각한 뒤 비로소 말하며
마음 속에 탐욕과 애욕 없으면
반드시 생사[流]를 끊고 건너가리라.

부처님께서 네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보안(普安)이라는 국왕이 있었다.
그는 이웃 나라 네 왕들과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이 네 왕들을 청해 한 달 동안 연회를 열어 음식을 먹고 놀면서 한껏 즐겼다. 헤어질 날이 되자 보안왕은 그 네 왕들에게 물었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 무엇이 제일 즐거운 일이오.’
한 왕이 말하였다.
‘유희(遊戲)하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오.’
한 왕이 말하였다.
‘좋은 일로 말하자면 친척들이 한데 모여 음악을 즐기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오.’
한 왕이 말하였다.
‘많은 재물을 쌓아두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오.’
또 한 왕이 말하였다.
‘애욕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오.’
보안왕이 말하였다.
‘그대들이 논하는 것은 모두 괴로움과 번민의 근본이요, 근심과 두려움의 근원으로서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에는 괴롭다오. 온갖 걱정과 슬픔이 모두 다 거기서 생기는 것이오. 그러므로 아주 고요하여 구하는 것이 없고, 말끔하여 욕심 없이 하나를 지켜 도를 얻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니 이것만한 것이 없소.’
네 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깨달았다.”
부처님께서 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그 보안왕은 바로 지금의 나이고, 그때 네 왕은 바로 너희들 네 사람이다. 전생에 이미 말한 것을 지금 와서도 여전히 알지 못하여 생사가 넝쿨처럼 뻗어가거늘 무엇으로 그치게 할 것인가?”
그때 네 비구들은 거듭 이러한 이치를 듣고는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마음이 열렸다. 그래서 뜻이 사라지고 욕심을 끊어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25. 분노품(忿怒品)

옛날 부처님께서 나열기성(羅閱祇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다.
그때 조달(調達)은 아사세왕(阿闍貰王)과 함께 의논하여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비방하였다. 왕이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 부처님을 받들지 못하게 하였고, 또 승가 대중이 걸식하더라도 음식을 보시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사리불(舍利弗)과 목련(目連)과 가섭(迦葉) 그리고 수보리(須菩提) 등과 파화제(波和提) 비구니 등이 각기 그 제자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떠났고, 오직 부처님만이 5백 아라한들과 함께 기사굴산에 계셨다.
조달은 아사세왕에게 가서 의논하였다.

“지금 부처님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갔는데 아직 5백 명의 제자가 그 좌우에 남아 있소. 대왕은 내일 부처를 청해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오. 그러면 내 마땅히 5백 마리의 큰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였다가, 부처님께서 성 안으로 들어오면, 취한 코끼리들을 내몰아 저들을 다 밟아 죽여 그 종자를 없애 버리겠소. 그리고 내가 장차 부처가 되어 세상을 교화하겠소.”
아사세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곧 부처님 처소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내일은 저희 궁중에서 변변찮으나마 음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오셔서 궁중에서 공양하시도록 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음모를 아시고 대답하셨다.
“매우 좋은 일입니다. 내일 아침에 가겠소.”
왕은 돌아와 조달에게 가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초대를 받아들이셨소. 전날의 계획대로 코끼리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여 틈을 엿보고 기다리시오.”
이튿날 공양 때가 되자 부처님께서 5백 아라한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5백 마리의 술취한 코끼리들이 콧소리를 치면서 내달아 담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부러뜨렸다. 행인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으며 온 성이 다 벌벌 떨었다. 5백 아라한은 모두 공중으로 날아가고 오직 아난만이 부처님 곁에 서 있었다. 술취한 코끼리들은 머리를 나란히 하고 부처님 앞으로 달려들었으나, 부처님께서 손을 드시자 다섯 손가락은 이내 5백 마리의 큰 사자왕으로 변화하여, 한꺼번에 외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때 술취한 코끼리들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감히 머리도 들지 못하였고, 취했던 술이 이내 깨어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을 뉘우쳤다. 왕과 신하들은 모두 놀라고 숙연해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세존께서는 천천히 걸어 왕의 궁전으로 가서 여러 아라한들과 함께 공양을 마치고 축원하셨다.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 성품이 현명하지 못하여 그의 모함만 믿고, 역죄(逆罪)를 지어 감히 부처님을 해치는 짓을 도모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큰 자비심으로 저의 미욱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아사세왕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여덟 가지 일로써 비방을 일으키고 자라나게 하는데, 그것은 모두 명예 때문이며 또 이양(利養)을 탐함으로써 큰 죄를 지어 여러 겁 동안 누적되어 그칠 줄을 모르게 됩니다.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인가 하면,
이익과 손해, 헐뜯음과 기림, 칭찬과 비방, 괴로움과 즐거움으로서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것에 미혹되지 않은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서로 헐뜯고 비방하였다.
말이 많아도 그를 헐뜯고
말이 적어도 그를 헐뜯고
그 중간이라도 또한 헐뜯어
이 세상에 헐뜯지 않은 일이 없네.

욕심 품으면 성인 아니니
능히 그 마음 제어하지 못하리.
한 번 헐뜯고 한 번 칭찬하는 것
다만 제 이익과 명예만을 위함이네.

밝은 지혜 있는 이에게 칭찬받는 것
오직 그런 이를 어진 사람이라 하네.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지켜
누구의 비방도 받지 않는다.

마치 저 깨끗한 아라한처럼
남을 속이거나 비방하지 말라.
모든 하늘들도 찬탄할 것이요.
범천과 제석천의 공경 받으리라.

부처님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다시 왕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국왕이 기러기 고기를 좋아하여 늘 사냥꾼을 보내 그물로 기러기를 잡아오게 하였습니다. 사냥꾼은 날마다 기러기 한 마리씩 보내어 왕의 밥상에 바쳤습니다.
그때 어떤 기러기 왕이 5백 마리의 기러기떼를 데리고 먹이를 구하러 내려왔다가 그물에 걸려 사냥꾼에 잡히자, 다른 기러기들은 놀라서 날아올라 그 근처를 돌면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떤 기러기 한 마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좇아가면서 화살도 피하지 않고, 밤낮으로 쉴새없이 피를 토하며 슬피 울었었습니다. 사냥꾼은 그것을 보고 그 의리에 감동되고 가엾게 여겨, 기러기왕을 놓아주어 함께 돌아가게 하였소. 그러자 기러기떼들은 왕을 도로 맞아 매우 기뻐하면서 둘러싸고 날아갔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사냥꾼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고, 왕도 그 의리에 감동되어 다시는 기러기를 잡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어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그 기러기 왕은 바로 나이고 그 한 마리 기러기는 바로 여기 있는 아난이며, 5백 마리의 기리기떼는 바로 저 5백 아라한이요, 기러기 고기를 먹던 왕은 바로 지금의 대왕이며, 그 때의 사냥꾼은 바로 지금의 조달입니다. 그는 전생부터 항상 나를 해치려 하였으나 나는 큰 자비의 힘으로 그를 구제하였고. 원한을 품지 않아 스스로 부처가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왕과 신하들은 모두 마음이 열려 도를 깨달았다.


26. 진구품(塵垢品)

옛날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형제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 부모는 그를 매우 가엾게 여기고 사랑하였다. 그래서 항상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였고 심지어는 그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스승에게 데리고 가서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교만하고 허황하여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고, 아침에 배우면 저녁에 잊어버려 조금도 외워 익히지 못했다. 이와 같이 여러 해가 지났으나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부모가 다시 불러다 살림을 살게 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교만하고 허황하여 부지런히 노력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살림은 점점 궁색해지고 온갖 일이 잘 되지 않았다. 거기에 또 방탕하기까지 하여 뒤돌아보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집안 살림살이를 내다 팔아 마음껏 즐겼다. 흐트러진 머리에 맨 발로 다니며 의복은 더럽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인색하고 탐욕 많고 당돌하기까지 하여 부끄러움이나 욕됨을 꺼리지 않았으며 스스로 어리석은 짓을 행하여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고 천대하였다.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고 흉악한 사람이라 생각하였으므로 드나들거나 다닐 때에도 아무도 그 사람과는 말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제 잘못은 알지 못하고 도리어 남을 원망하였다. 위로는 부모를 원망하고 다음에는 스승과 친구들을 책망했다.
‘선조들의 신령이 돕지 않아 나를 부랑자로 만들어 이처럼 고생하는 것이다. 차라리 부처님을 섬겨 그 복을 얻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도는 너그럽고 넓어 용납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 되기를 원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구하고자 하면 먼저 그 행실이 청정해야 하거늘 너는 저 세속의 때[垢]를 가진 채 그대로 우리 도에 들어오려 하는구나. 부질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 한들 무슨 큰 이익이 있겠느냐?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외우고 익혀 목숨을 마칠 때까지 잊지 않느니만 못하다. 부지런히 생업에 힘써 부자가 되어 근심이 없게 하고 예의로 몸을 지켜 잘못을 저지르지 말며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마음을 다잡고 오롯하게 지켜 하는 일을 잘 분별하며, 민첩하게 행동하고 정밀하게 닦아 남에게 칭찬받고 흠모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라. 이렇게 실천해야 도를 닦을 수 있느니라.”
그리고 또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글을 읽지 않음은 말의 때[垢]이고
부지런하지 않은 몸은 집안의 때이며
단정하지 않음은 몸의 때이고
방일함은 일의 때이니라.

인색함은 보시의 때이고
착하지 않음은 행실의 때이니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나쁜 법은 언제나 때가 된다.

때 중에 가장 큰 때는
어리석음보다 심한 것이 없다.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것을 버려야 하나니
비구들은 부디 그 때를 없애라.

그 사람은 이 게송을 듣고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깨닫고는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항상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의 이치를 생각하면서 잘못을 뉘우쳐 고치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효도로써 부모를 섬기고 스승과 어른을 존경하며, 경전을 외워 익히고 생업에 부지런히 힘쓰며, 계율을 받들고 자신의 마음을 거두어 잡아 도가 아닌 일은 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척들은 그의 효도를 칭찬하고 고을에서는 그의 공손함을 기리어 좋은 명성이 멀리 퍼지니 온 나라에서 어진 이라 일컫게 되었다.
3년 뒤, 그는 다시 부처님께 돌아와 온몸으로 예배한 뒤에 간절히 하소연을 하였다.
“부처님의 존귀하신 가르침으로 이 몸이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여 위ㆍ아래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드리우시어 저를 받아들여 도를 닦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이내 떨어져 곧 사문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으로 네 가지 진리의 바른 도를 지관(止觀)하여 사유하고 날로 정진하여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27. 봉지품(奉持品)

옛날 살차니건(薩遮尼犍)이라는 장로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기로 나라 안에서 제일이었고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잘난체 뽐내어 그 눈앞에는 천하가 없었다.
그는 철판으로 자신의 배[腹]를 동여매고 다녔는데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지혜가 넘쳐흘러 새어나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밝고 지혜로우며 도로써 교화하신다는 말을 듣고, 그는 늘 질투하는 마음에 자나깨나 편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사문 구담이 스스로 부처라 일컫는다 하니, 지금 내가 가서 깊고 묘한 이치를 물어 그로 하여금 겁에 질려 말할 바를 잃게 해야겠다.”

그는 곧 제자들과 함께 기원(祇洹)정사로 가서 문 밖에 나열해 서서, 세존의 위엄스러운 광명이 마치 해가 처음 뜨는 것처럼 빛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다섯 가지 감정[五情:기쁨ㆍ즐거움ㆍ욕심ㆍ성냄ㆍ슬픔]이 용솟음치며 기쁨과 두려움이 한데 뒤섞였다. 그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자, 부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라 명하셨다. 니건(尼犍)은 자리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이를 도인이라 하고 어떤 이를 지혜롭다 하며, 어떤 이를 장로라 하고 어떤 이를 단정하다 하며,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고 어떤 이를 비구라 하며, 어떤 이를 어질고 현명하다[仁明] 하고, 어떤 이를 도가 있다 하며, 어떤 이를 계율을 받든다고 합니까? 만일 이것에 대한 해답을 잘 풀어주신다면 저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대답할 바를 관(觀)하시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배우기 좋아하는 이를 항상 돌보고
올바른 마음으로 법답게 행하며
오직 보배로운 지혜를 지닌 이
그를 도인이라 한다.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이란
꼭 말을 잘해서가 아니니
겁 없고 두려움 없는 선을 지키는 사람이니
그런 이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한다.

이른바 장로(長老)란
꼭 나이 많음을 일컫는 것 아니니
얼굴에 주름지고 머리가 희어도
어리석고 용렬할 수 있다네.

진리의 법 가슴에 간직하고
조순하고 인자한 마음 가지며
밝게 통달하여 깨끗한 사람
그런 사람을 장로라 부른다.

이른바 단정한 사람이란
얼굴이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탐냄과 질투와 허식(虛飾)
말과 행동에 어긋남 있는 것

이상의 모든 악을 능히 버리되
그 뿌리까지 끊어버리고
지혜롭고 성냄 없으면
그런 사람 단정하다 이르느니라.

이른바 사문(沙門)이란
꼭 머리를 깎아서만은 아니니
거짓말과 탐내 취함과
욕심이 있으면 범부와 같다네.

크고 작은 악을 능히 그치고
도량이 크고 도가 넓으며
마음이 쉬고 생각을 아주 멸한 이
그런 사람을 사문이라 이르느니라.

이른바 비구(比丘)란
걸식하러 다님을 말하는 것 아니니
삿된 행으로 상대방에 바라는 것 있으면
그것은 다만 이름만 구할 뿐이네.

이른바 죄업을 잘 버리고
범행을 깨끗이 닦아
지혜로 능히 악을 부수면
그런 사람을 비구라 이르느니라.

이른바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란
입으로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니
마음 씀이 순수하지 못하면
겉으로만 유순한 체 할 뿐이네.

마음에 아무 함[爲]이 없어서
그 마음의 행이 맑고 텅 비고
이것저것 모두 적멸(寂滅)하게 되면
이런 사람을 어질고 현명하다 하느니라.

이른바 도가 있다는 것은
한 사물만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를 두루 구제하고
해침이 없음을 도가 있다 하느니라.

법을 받들어 지니는 사람이란
말 많은 사람을 말함이 아니고
비록 법 들은 것 아주 적더라도
법에 의지해 몸을 닦아 행하고

도를 잘 지켜 잊지 않는 이
그를 법 받드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살차니건(薩遮尼犍)과 그의 5백 제자들은 부처님의 이러한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마음이 열려 모든 교만을 버리고 다 사문이 되었다. 니건 한 사람은 보살심(菩薩心)을 내었고, 5백 제자들은 다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28. 도행품(道行品)

옛날 어떤 바라문이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집을 떠나 도를 배웠으나 나이 60이 되도록 도를 얻지 못하였다.
바라문 법에는 나이 60이 되도록 도를 얻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맞아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도 가정으로 돌아가 한 아들을 낳았는데 용모가 단정하여 매우 사랑스러웠다. 나이 일곱 살이 되자 글을 가르쳤는데 매우 총명했고, 또 말재주[才辯]가 있어서 말하는 솜씨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갑자기 중병에 걸려 하룻밤 사이에 목숨을 마쳤다. 범지는 몹시 애석하게 여겨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그 시체 위에 엎드려 기절했다가는 다시 깨어나곤 하였다. 그러자 친척들은 충고하고 달래면서 억지로 시체를 빼앗아 염을 하고 관에 넣어 성 밖에 매장하였다.
범지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아무리 울어봤자 아무런 이익이 없을 테니, 차라리 염라대왕(閻羅大王)에게 가서 아들의 목숨을 구걸해보는 것이 낫겠다.’
이에 범지는 목욕 재계한 뒤 꽃과 향을 가지고 집을 떠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디쯤 있습니까?”
이렇게 전전하면서 수천 리를 갔다. 그러다 어느 깊은 산중에 이르렀을 때 여러 득도(得道)한 범지들을 만났는데, 그들에게도 앞에서와 같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러 범지들은 도리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알아 무엇 하려 하는가?”
그는 곧 대답하였다.
“내게는 말재주와 지혜가 남보다 뛰어난 한 아들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죽었소. 슬픔과 괴로움을 씻을 길 없어 염라대왕에게 아들의 목숨을 구걸해 그를 되찾아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내 노후(老後)를 돌보게 하려 하오.”
여러 범지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 말하였다.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산 사람으로서는 갈 수 없소. 우리는 당신에게 다른 방법을 일러주겠소. 여기서 서쪽으로 4백 리를 가면 큰 시내가 있고 그 가운데 성이 있소. 거기는 여러 천신들이
인간 세상을 순찰하다가 머무는 곳이오. 염라대왕은 매달 8일에는 인간 세상을 순찰하다가 반드시 그 성을 지날 것이니, 당신이 재계를 닦고 그곳에 가면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오.”
그러자 범지는 기뻐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들고 그 시내에 이르렀다. 그곳엔 좋은 성곽과 아름다운 궁전과 집들이 즐비하게 있어 마치 도리천(忉利天)과 같았다. 범지는 그것을 보고 성문에 이르러 향을 사르고 발돋움하고 축원하면서, 염라대왕 만나기를 간청하였다.
염라대왕은 문지기를 시켜 그 이유를 물었다. 범지가 아뢰었다.
“늦게서야 아들 하나를 얻어 내 노후를 돌보게 하려고 길렀는데, 일곱 살이 된 요 근래에 그만 목숨을 마쳤습니다. 바라건대 대왕은 은혜를 베푸시어 제 아들의 목숨을 되돌려 주십시오.”
염라대왕이 말하였다.
“매우 훌륭하다. 그대의 자식은 지금 동쪽 동산에서 놀고 있다. 그대가 직접 가서 데리고 가라.”
범지는 곧 그 동산으로 가서, 그 아들이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쫓아가 안고 울면서 말하였다.
“나는 밤낮으로 네 생각에 음식도 맛이 없었고 잠도 자지 못했다. 그런데 너는 정녕 이 부모의 고통을 생각인들 하느냐?”
그러자 아이는 놀라 외치고 도로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미련한 이 노인은 아무 이치도 모르는구려. 잠깐 동안 몸을 의탁한 나를 아들이라 부르는구려. 부질없는 잔소리하지 말고 빨리 떠나시오. 나는 지금 이 세간에 내 부모가 따로 있거늘 황당하게 만나자마자 왜 껴안는 것이오.”
범지는 실망하고 슬피 울면서 그곳을 떠나와서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문 구담(瞿曇)은 사람의 영혼이 변화하는 이치를 잘 아신다고 한다. 지금 가서 물어보리라.’
그래서 범지는 이내 돌아와 부처님께 갔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범지는 부처님을 뵙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뒤,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아뢰고 물었다.
“그 아이는 진실로 내 아들임이 분명한데 나를 알아 보지도 못할 뿐더러 도리어 나를 어리석은 늙은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잠깐 동안 몸을 의탁한 나를 아들이라 부르냐고 하면서 전혀 부자(父子)의 정이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떠나 곧 다른 곳에서 몸을 받는다.
부모와 처자의 인연으로 모여 사는 것은 마치 여관의 나그네가 아침에 일어나면 이내 흩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거늘 어리석고 미혹하여 얽매어 집착하고 있구나. 그것을 자기 소유라 생각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번민하면서도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있구나. 그것은 생사에 빠져 헤매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은정(恩情)과 애욕에 탐착하지 않고 그 괴로움을 깨달아 그 원인[習]을 버리며 부지런히 법과 계율을 닦아 온갖 생각을 없애버리고 생사를 끝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보살피면서
병이 되는 법을 관찰하지 못하면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치는데
마치 여울물의 빠름과 같네.

부모자식 간에도 구제하지 못하거늘
다른 친척에게서 무엇을 바랄 건가.
목숨이 다할 때 친한 이를 믿는 것은
장님이 등불을 지키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이치 알아
경계(經戒)를 부지런히 닦고
열심히 실천하여 세상일 벗어나
모든 괴로움 떨어버린다.

생사의 깊은 못 멀리하기를
바람이 구름을 쓸어버리듯 하라.
이미 온갖 생각 없애버리면
그를 지견(知見) 있는 이라 하리라.

지혜란 이 세상에 으뜸인 것
마음이 깨끗하여 함[爲]이 없으면
바른 가르침 받은 대로
나고 죽음 다하게 되리.

범지는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탁 트여 목숨은 덧없는 것이며 처자는 손님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머리를 조아리고 온몸을 맡겨 자세히 여쭙고는 사문이 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이내 비구가 되었다.
그는 게송의 이치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욕을 없애고, 잡념을 끓고 그 자리에서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29. 광연품(廣衍品)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설법하여 교화하고 계실 때 천(天)ㆍ용(龍)ㆍ귀신ㆍ제왕ㆍ사람들은 하루 세 번씩 가서 설법을 들었다.
그때 왕의 이름은 바사닉(波斯匿)이었는데 그는 사람됨이 교만하여 정욕(情慾)을 마음껏 누렸고, 눈은 빛깔[色]에 현혹되고, 귀는 소리에 혼란해지며, 코는 냄새에 집착하고, 혀는 다섯 가지 맛[五味]을 한껏 맛보며, 몸은 마음껏 촉감을 향락하였다. 그러다가 매우 맛있는 음식도 처음부터 전혀 만족할 줄 몰랐고 분량은 갈수록 늘어났었지만 늘 허기로 괴로워하였으므로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일삼았다. 그러자 몸은 자꾸 살찌고 불어나 가마를 타는 것조차 지겨워하였고 누웠다 일어날 때는 호흡이 가빠 괴로울 뿐이었다.
그러다가 기운이 막히고 숨이 끊어졌다가 한참만에 다시 깨어났으며 앉거나 눕거나 항상 앓으면서 무거운 몸을 늘 고통스러워하다가 끝내는 몸을 뒤집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그는 명령하여 수레를 장엄하게 꾸며 타고 부처님께 나아가, 시자(侍者)가 부축한 채 문안드리고는 한쪽에 물러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랫동안 뵙지 못하여 여쭈어 볼 길이 없었습니다. 이 무슨 죄인지 몸이 저절로 자꾸 살만 찌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알지 못하여 늘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나와 뵙고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늘 사람을 살찌게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주 먹는 것이고, 둘째는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셋째는 잘났다고 뽐내면서 즐거워하는 것이고, 넷째는 근심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사람을 살찌게 하는 것이니 만일 살찌지 않게 하고 싶으면 음식을 줄이고 마음을 애타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람은 마땅히 유념해야 하나니
먹을 때마다 적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로 인해 식탐의 고통 점점 적어지리니
적게 먹고 소화시켜 목숨 보전하라.

왕은 이 게송을 듣고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곧 요리사를 불러 말하였다.
“이 게송을 잘 받들어 외워 두었다가, 음식을 내올 때마다 먼저 나를 위해 이 게송을 외운 뒤에 음식을 가져오너라.”
왕은 부처님께 하직하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요리사는 음식을 내올 때마다 이 게송을 외웠고, 왕은 이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하루에 한 숟갈씩 줄여 차츰 적게 먹게 되었다. 그래서 몸이 가벼워지며 전처럼 여위어졌다.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왕은 매우 기뻐하여 부처님을 생각하고, 곧 일어나 걸어서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앉게 하시고 왕에게 물으셨다.
“수레나 말이나 시종들은 어디에 두고 혼자 걸어서 왔습니까?”
왕은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전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법대로 받들어 행하여 지금은 몸이 가벼워졌는데 이것은 다 세존의 힘이옵니다. 그래서 걸어오면서 어떤가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몸뚱이의 정욕만 기르면서 복 짓기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정신은 떠나고 몸은 무덤에 남겨 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정신을 기르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기릅니다. 만일 이런 줄을 알았거든 성인의 가르침을 받들어 닦으십시오.”
그리고는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많이 들어 알지 못하면
늙어서도 마치 저 황소처럼
그저 나이만 먹고 살만 쪄
아무런 지혜도 없다네.

아무런 의미 없이 나고 죽으며
가고 오면서 괴로워하건만
마음은 몸을 탐하고 집착하여
거듭된 괴로움 끝이 없다네.

지혜로운 사람은 그 고통 보고
그런 줄 알아 몸을 버리고
잡념을 없애 욕심을 끊고
애욕이 다하여 태어남 없으리.

왕은 거듭 이 게송을 듣고 기뻐하면서 마음이 열려 곧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그리고 설법을 들은 무수한 사람들은 다 법안(法眼)을 얻었다.

30. 지옥품(地獄品)

옛날 사위국에 부란가섭(富蘭迦葉)이라는 바라문 스승이 있었다. 5백 명의 제자들이 그를 따랐고 국왕과 시민들이 모두 그를 받들어 섬겼다.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나열기성(羅閱祇城)에서 사위국으로 가실 때 몸과 모습이 환히 밝고 도에 대한 가르치심이 넓고 훌륭하셨으므로, 국왕과 궁중 그리고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받들고 공경하였다.
그때 부란가섭은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 세존을 헐뜯고 혼자서만 존경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가서 호소하였다.
“우리 장로들은 먼저 오랫동안 공부한 이 나라의 옛 스승입니다. 그런데 저 사문 구담은 나중에 나와서 도를 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실은 아무런 신통력도 없으면서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왕께서는 우리를 버리고 오로지 그를 받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저 부처와 도력을 겨루어 누가 이기는가를 판가름하려 합니다. 왕께서는 이기는 이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수레를 장식하여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아뢰었다.
“부란가섭은 세존과 도력을 겨루어 그 신통 변화를 보이려고 합니다. 세존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이레 뒤에 장차 신통변화를 겨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왕은 성 동쪽 편편하며 넓고 좋은 땅에 높은 자리 두 개를 만들었다. 높이는 40장(丈)이고. 일곱 가지 보배로 얽어 장식하였으며, 번기와 당기를 세우고 좌석을 정돈하였다. 두 자리의 사이는 2리(里)쯤 떨어졌고 양쪽 제자들은 각각 그 밑에 앉기로 하였다. 국왕과 신하와 대중들은 두 사람이 신통변화를 겨루는 것을 보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때 가섭은 모든 제자들과 함께 먼저 그 장소에 와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그때 반사(般師)라는 귀신 왕이 있었는데, 그는 가섭 등이 허망하게 질투하는 것을 보고 큰 바람을 일으켜 그 높은 자리를 쳤다. 좌구(坐具)들은 넘어지고 번기와 당기들은 휘날리고 모래와 자갈이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존의 높은 자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대중과 함께 질서정연하게 걸어오셔서 막 높은 자리로 향하자, 어느새 올라가셨고 제자들도 모두 잠자코 차례대로 앉았다.
왕과 신하들은 더욱 공경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신통변화를 나타내시어 저 삿된 견해를 가진 무리들을 억눌러 항복받으시고 또 이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바르고 진실한 법을 깊이 믿게 하소서.”
그때 세존께서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지더니 곧 허공에 올라 큰 광명을 떨치셨다. 동쪽에서 사라져서는 서쪽에 나타나고, 이와 같이 4방에서도 또한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곤 하는 것이었다. 몸에서는 물과 불을 내니 아래ㆍ위로 교차하고 공중에서 앉고 누우시는 등 열두 가지 신통변화를 하시다가 공중에서 몸이 사라져 다시 자리로 돌아오셨다. 하늘ㆍ용ㆍ귀신들은 꽃과 향으로 공양하면서 찬양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부란가섭은 스스로 도가 없음을 깨닫고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면서 감히 눈을 들지 못하였다.
그때 금강역사(金剛力士)3)가 금강저(金剛杵)를 들었는데, 그 금강저 끝에서 불이 나와 가섭을 겨누면서 말했다.
“왜 그대는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그러자 가섭은 두렵고 무서워서 자리를 내던지고 달아났다. 5백 제자들도 물결처럼 내달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세존의 위의와 얼굴에는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돌아가셨다. 국왕과 신하들도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하직하고 모두 물러갔다.

이에 부란가섭과 그 제자들은 곤욕을 치르고 가다가 길에서 마니(摩尼)라는 한 늙은 우바이(優婆夷)를 만났는데, 그 우바이가 꾸짖어 말하였다.
“그대 미련한 사람들은 자기 재주는 헤아리지 못하고 부처님과 도덕(道德)을 겨루려 하였다. 어리석은 것들이 세상을 속이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구나. 그런 면목을 해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돌아다니는가?”
부란가섭은 제자들 보기가 창피하여 어느 강가에 이르러 제자들을 속여 말하였다.
“내가 지금 물에 몸을 던지면 틀림없이 범천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내가 돌아오지 않거든 거기서 즐기는 줄로 알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기다렸으나 그가 돌아오지 않자 저희들끼리 의논하여 말하였다.
“스승은 틀림없이 천상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는 한 명씩 물에 몸을 던지면서 스승을 뒤따르려고 할 뿐 저들 자신이 지은 죄에 이끌려 지옥에 떨어질 줄은 알지 못하였다.
그 뒤 국왕은 그 소문을 듣고 매우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겨져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부란가섭의 무리들은 무슨 인연으로 그처럼 어리석고 미혹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부란가섭의 무리들은 두 가지 막중한 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 가지 독이 불꽃처럼 왕성한데도 도를 얻었다고 자칭한 일이요, 다른 하나는 여래를 비방하여 헐뜯고 사람들의 공경과 섬김을 받으려 한 것이니, 이 두 가지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앙과 허물이 재촉하고 핍박하여 그들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지게 한 것일 뿐, 몸은 죽었어도 정신은 그곳을 떠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마음을 거두어 잡아 안에서 악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밖에서 죄가 이르지 않게 합니다. 비유하면 마치 국경에 있는 성이 적국과 맞닿아 있을 때, 수비를 튼튼히 하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 안으로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밖으로는 도적이 침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제 자신을 보호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이어 게송을 말씀하셨다.

거짓으로 깨달았다 하며 재물을 구하고
그 행실이 이미 바르지 못해
선량한 사람을 미워하고 모함하며
억울하게 세상 사람들을 다스리면
죄가 그 사람을 결박하여
스스로 구덩이에 빠지게 되리라.

마치 국경의 성을 지킬 때
안팎을 모두 튼튼히 하는 것처럼
그 마음을 스스로 잘 지키면
나쁜 법이 거기서 생기지 않지만
행에 틈이 있으면 근심이 생겨
그를 지옥에 떨어지게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마치시고 거듭 왕에게 말씀하셨다.
“먼 옛날 세상에 두 마리 원숭이 왕이 있었는데 각기 5백 마리의 원숭이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왕이 질투하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왕을 죽이고 저 혼자 다스리고 싶어 여러 번 가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창피만 당한 채 후퇴하여 큰 해변으로 갔습니다. 바다가 굽이치는 가운데 바람이 불어 물거품이 쌓여 있었는데 그 왕은 어리석어 그것을 설산(雪山)이라 생각하고 무리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오래 전부터 듣기로는 바다 가운데 설산이 있는데 그 곳은 아주 유쾌하고 즐거우며 입에 맞는 감미로운 과일도 많다고 하더니 오늘에야 비로소 보게 되었구나. 지금 내가 먼저 가서 살펴보고 과연 즐거우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테고, 만일 즐겁지 않으면 다시 와서 너희들에게 말해주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나무에 올라가 힘껏 뛰어 거품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은 그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틀림없이 크게 즐거운 일이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고는 한 마리씩 모두 몸을 던져 제각기 빠져 죽어 종자가 끓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어 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질투한 원숭이왕은 바로 지금의 저 부란가섭이고, 그 무리들은 바로 지금 가섭의 5백 제자들이며, 그리고 다른 원숭이 왕은 바로 지금의 나였습니다. 부란가섭은 전생에서도 나를 질투하다가 죄에 끄달려 스스로 물거품 더미에 몸을 던져 그 종자가 끓어졌는데 지금 또 나를 비방하다가 모두 강물에 몸을 던진 것입니다. 그것은 다 죄의 대가로 그렇게 된 것으로서 한량없는 겁을 지내야 할 것입니다.”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믿고 깨달아 예배하고 떠났다.

옛날 어떤 일곱 비구가 산에 들어가 도를 배웠는데, 12년이 되어도 도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들끼리 의논하였다.
“도를 증득하기는 참으로 어렵구나. 모습을 바꾸고 절개를 지켜 추위와 괴로움도 피하지 않고, 몸이 마치도록 걸식하면서 곤욕을 당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도는 갑자기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죄를 없애는 것도 어려운 것인데 한낱 스스로 애쓰다가 저 산중에서 목숨을 마치겠구나.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가문을 일으키고 아내를 맞이하여 자식들을 기르면서
이로운 사업을 널리 경영하여 마음껏 즐기는 것만 못하겠다. 그 뒤의 일이야 어찌 알겠는가?”
그리하여 일곱 사람은 곧 일어나 산을 나왔다.
부처님께서 멀리서 그들을 보시고 장차 그들을 제도할 수 있음을 아셨다. 그러나 조그만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지옥에 떨어질 것을 못내 가엾게 여기시어 부처님께서는 곧 한 사문으로 변화하여 그 산골짜기 입구로 가서 일곱 비구를 만나셨다.
변화한 사문이 그들에게 물었다.
“도를 배운다는 말을 오래 전부터 들었는데 왜 산에서 나오는가?”
일곱 사람이 대답하였다.
“부지런히 힘써 도를 배웠으나 고통스런 죄의 뿌리는 뽑기 어려웠고 걸식하면서 당하는 곤욕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소. 또 이 산 속에는 공양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쓸쓸히 여러 해 동안을 언제나 검소하게 지내고 절약할 수밖에 없었소. 다만 스스로 곤궁함을 괴로워할 뿐, 끝내 도를 얻지 못하였소. 그래서 우선 집으로 돌아가 이로운 사업을 널리 경영하여 큰 부자가 된 뒤 늙어서 도를 구하려 하는 것이오.”
변화한 사문이 말하였다.
“제발 그러지 마시오, 제발 그러지 마시오. 우선 내 말을 들으시오. 사람의 목숨은 무상(無常)한 것이어서 아침ㆍ저녁을 보존하기 어렵고, 도를 배우기는 비록 어려우나 처음에는 괴롭다가 나중에는 즐거운 것이오. 그렇지만 가정 생활은 어렵고 험하여 억 겁을 지내더라도 그칠 줄 모르는 것이오. 처자와 같이 살면서 안락과 이익을 같이하기 원하고, 영원히 즐겁고 환난(患難)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마치 병을 고치려고 독약을 먹어 병세가 더 심해지고 나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오.
이 삼계의 중생들은 모두 근심과 번민이 있으나 오직 믿음과 계율을 가져 방일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 도를 얻으면, 모든 괴로움은 아주 끝나고 말 것이오.”
이어 변화한 사문은 광명의 모습이 매우 위풍당당한 부처님의 몸으로 나타나시어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배우기 어렵고 죄 버리기 어려우며
집에서 살아가기 또한 어렵다.
한데 모여 이익을 같이하기도 어렵지만
이 몸보다 더 심한 어려움 없다네.

비구로서 걸식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어떻게 스스로 힘쓰지 않겠는가.
정진하면 자연(自然)을 얻으리니
그 다음엔 남에게 바랄 것 없으리라.

믿음이 있으면 계율을 성취하고
계율을 따라 많은 보배 얻으며
또 계율을 따라 많은 벗 얻으리니
가는 곳마다 공양을 받으리라.

한 번 앉거나 한 번 누울 때에도
한결같이 행하여 방일하지 않고
한결같이 지켜서 마음이 바르게 되면
숲 속에 살아도 그 마음 즐거우리라.

그때 일곱 비구들은 부처님 몸을 뵙고 또 이 게송을 듣고는, 부끄럽고 두려워
몸을 떨면서 온몸을 땅에 던지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마음을 거두어 잡고 허물을 뉘우치고는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들은 산으로 다시 들어가 목숨을 걸고 정진하면서, 게송의 이치를 생각하였고, 한결같이 지켜서 마음을 바르게 가지며 고요히 살면서 번뇌를 없애 이내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31. 상품(象品)

옛날 라운(羅雲:羅睺羅)이 아직 도를 얻기 전이었다. 심성이 거칠고 사나워 그의 말에 성실함과 믿음이 적었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저 현제정사(賢提精舍)로 가서 머물면서 입조심 하고 뜻을 다잡아 경전과 계율을 부지런히 읽고 닦으라.”
라운이 분부를 받들어 예배하고 떠났다. 그리고 그 절에 90일 동안 머물면서 밤낮을 쉬지 않고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뉘우쳤다.
부처님께서 그를 보러 들리시자 라운이 반가워하면서 앞으로 나가 예배한 뒤, 노끈으로 얽어 만든 평상을 펴고 옷을 받아 챙겼다. 부처님께서는 평상에 걸터앉아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내 발을 씻겨다오.”
라운은 분부를 받고 부처님 발을 씻어드렸다.
발을 씻고 나자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발을 씻은 대야물이 보이느냐?”
라운이 아뢰었다.
“네,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그 물을 먹거나 양치질할 수 있겠느냐?”
라운이 대답하였다.
“다시 쓸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 물이 본래는 참으로 깨끗했으나 지금은 발을 씻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쓸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그와 같아서 비록 나의 제자요, 국왕의 자손으로서 세상의 영화를 버리고 사문이 되었지만, 정진하여 몸을 다잡고 입 지키기를 생각하지 않고, 세 가지 독의 더러움만 네 가슴에 가득 찼으니, 이 물과 같아 다시는 쓸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그 발 씻은 대야의 물을 버려라.”

나운은 즉시 버렸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그 대야가 비었지만 거기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담을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발을 씻은 대야라서 일찍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그와 같이,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입에는 진실한 말이 없고, 마음은 거칠고 고집이 세며 정진하기를 생각하지 않아 일찍이 나쁜 이름을 받았기 때문에 저 발을 씻은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발로 대야를 차셨다. 그러자 대야는 굴러 달아나면서 여러 번 튀어 올랐다 떨어졌다 하다가 멈췄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혹 저 대야를 아껴 깨질까 두려워하느냐?”
라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발을 씻은 그릇이요, 또 값이 싼 물건이라 그리 애닯지는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그와 같다. 네가 비록 사문이기는 하나 몸을 다잡지 않고 입으로 거친 말과 나쁜 욕설로 남을 중상하는 일이 많으므로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껴주지 않는다. 그리고 몸이 죽고 정신이 떠나 세 갈래 길[三塗]에 윤회할 때 스스로 나고 죽으면서 고뇌가 한량없이 많을 것이다. 또 여러 부처님과 성현들이 애석해 하지 않는 것은 네가 말했듯이 발 씻은 대야는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으니라.”
라운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기 그지없었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하리니 잘 들으라. 옛날 어떤 국왕이 큰 코끼리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코끼리는 용맹하고 영리하여 잘 싸웠으며, 그 힘은 작은 코끼리 5백 마리보다 더 세었다.
왕이 군사를 일으켜 적국을 치려고 할 때 코끼리에 쇠갑옷을 입혀 가지고 코끼리 조련사가 몰고 나갔다. 또 코끼리의 두 어금니에는 두 개의 창을 잡아매고 두 귀에는 두 개의 칼을 붙들어 매었으며, 또 네 발에는 구부러진 칼을 붙들어매고
또 코끼리 꼬리에는 쇠몽둥이를 붙들어 매었다. 이렇게 아홉 가지 날카로운 무기로 코끼리를 장엄하였다. 그러나 코끼리는 코만 감추어둔 채 싸움에 쓰려 하지 않았다.
코끼리 조련사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코끼리는 제 몸을 잘 보호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 하면 코끼리의 코는 부드럽고 약해서 화살을 맞으면 곧 죽기 때문에 코를 꺼내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끼리가 오랫동안 싸우다가 코를 꺼내 칼을 찾았다. 그러나 조련사는 칼을 주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용맹스런 코끼리는 제 목숨을 아끼지 않는구나.’
코끼리는 코를 꺼내 칼을 얻어 가지고 코끝에 붙이려 하였다. 그러나 왕과 신하들은 이 큰 코끼리를 매우 아꼈기 때문에 싸우게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라운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아홉 가지 악을 범했더라도 오직 입만은 보호하여야 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큰 코끼리가 코를 보호하기 위하여 싸우지 않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화살에 맞아 죽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사람도 입을 단속하는 이유는 지옥 따위의 세 갈래 길에서 고통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라.
열 가지 악을 다 범하여 입을 단속하지 않은 사람은 큰 코끼리가 화살에 맞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코를 꺼내 싸우다가 제 목숨을 잃는 것과 같으니라. 사람도 그와 같이 열 가지 악을 모두 범한다면 그것은 세 갈래 길에서 겪을 혹독한 고통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과 입과 뜻을 잘 단속하여 열 가지 선을 행하고 어떤 악도 범하지 않으면 도를 얻어 세 갈래 길을 아주 여의나 나고 죽음의 근심도 없게 되리라.”
그리고는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마치 싸움에 나간 코끼리가
화살에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정성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계율이 없는 사람 제도하리라.

마치 잘 길들여진 코끼리는
왕이 타기에 알맞은 것처럼
자신을 길들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남에게 진실한 믿음 얻으리라.

라운은 부처님의 간곡한 가르침을 듣고, 감격하여 스스로 노력하고
뼈에 새겨 잊지 않으며, 정진하여 온화하고 부드럽게 참고 견디기를 땅과 같이 하였다. 그리하여 온갖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하여 이내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정사(祇樹精舍)에서, 사부대중[四部]의 제자들과 천(天)ㆍ용ㆍ귀신ㆍ제왕ㆍ신민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고 계셨다.
그때 아제담(呵提曇)이라는 장자 거사가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합장하고 꿇어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오래 전부터 세존께서 널리 교화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우러러 흠모하여 진작 뵙고 싶었으나 사사로운 일에 쫓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원컨대 자비로운 마음을 드리우시어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앉으라 하시고 물으셨다.
“어디서 오는 길이며 이름은 무엇인가?”
그는 꿇어앉아 대답하였다.
“원래 거사의 종족으로서 이름을 아제담이라 하며, 선왕 때에는 왕을 위하여 코끼리를 길들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거사에게 물으셨다.
“거사가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늘 세 가지 법으로 코끼리를 길들입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단단한 쇠갈고리로 입을 걸어 고삐에 매는 것이고. 둘째는 먹이를 적게 주어 굶주리고 여위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몽둥이로 때려 고통을 주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법이라야 잘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 법을 써서 어떤 것을 길들이려는 것인가?”
그가 대답하였다.
“쇠갈고리로 입을 거는 것은 억센 성질을 제어하려는 것이요, 먹이를 적게 주는 것은 함부로 날뛰는 몸을 제어하려는 것이며, 몽둥이로 때리는 것은 그 마음을 항복받으려는 것이니, 그렇게 하여 잘 길들입니다.”
“그렇게 훈련시켜 무엇에 쓰려는 것인가?”
“그렇게 훈련시켜야 왕이 타시기에 알맞고 또 싸울 때 마음대로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나게 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정녕 그 방법 외에 다른 법은 없는가?”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은 이것뿐이옵니다.”
부처님께서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코끼리를 잘 길들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잘 길들여야 하느니라.”
그가 말하였다.
“알 수 없습니다. 자기를 길들인다는 그 이치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원컨대 세존께서는 아직 제가 듣지 못한 그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세 가지 법으로 모든 사람들을 다루고 또 내 자신도 다루어 무위(無爲)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즉 첫째는 지극정성을 다하여 입의 업[口業]을 제어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자함과 꼿꼿함으로써 거센 몸을 항복받는 것이며, 셋째는 지혜로써 뜻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이다. 대개 이 세 가지 법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세 갈래 나쁜 길을 여의게 하고, 또 나 자신도 무위의 경지에 이르러 남 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통ㆍ번민을 받지 않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저 호재(護財)라 불리는 코끼리는
사납게 해치므로 제어하기 어렵다.
고삐로 붙잡아 매고 밥을 주지 않아도
여전히 사납게 날뛰는 코끼리와 같네.

본 마음으로 순수한 행을 행하고
또 안온한 일을 항상 행하여
마치 갈고리로 코끼리를 길들이듯
모두 버려 번뇌를 항복받아야 하리.

도를 즐겨 방일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면
그로써 몸의 온갖 괴로움 없애나니
코끼리가 함정을 벗어나는 것 같으리라.

아무리 항상 길들여
저와 같이 새롭게 치달리고
또한 가장 훌륭한 코끼리로 만들어도
제 자신을 길들임만 못하리라.

저들이 갈 수 없는 곳이면
사람도 가지 못하나니
오직 제 자신을 잘 길들인 사람만이
능히 그곳까지 갈 수 있으리라.

거사는 이 게송을 듣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기쁘고 마음이 트여 곧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리고 설법을 들은 무수한 사람들도 모두 도적(道迹)을 증득하였다.

32. 애욕품(愛欲品) ①

옛날 부처님께서 나열기국(羅閱祇國) 기사굴산에 있는 정사에서 천인(天人)ㆍ용ㆍ귀신들을 위하여 큰 법률을 굴리고 계셨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가정과 처자를 버리고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받아들여 사문을 만드시고, 나무 밑에 앉아 도덕(道德)을 생각하라고 분부하셨다.
그 비구는 분부를 받고
절에서 백 여리쯤 떨어진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숲 속에 혼자 앉아 3년 동안 도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굳세지 못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가정을 버리고 나와 고생스럽게 도를 구하기보다는 빨리 가정으로 돌아가 내 처자를 돌보는 것만 못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산을 나왔다.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그 비구가 장차 도를 얻을 수 있는데도 어리석기 때문에 가정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곧 신통을 부려 사문으로 변화하여 길을 거슬러 가시다가 도중에서 그를 만났다.
변화한 사람이 물었다.
“어디서 오시오? 여기는 평평한 땅이니 함께 앉아 이야기나 하면 어떻겠소?”
이에 두 사람은 같이 앉아 쉬면서 이야기하였다. 그는 변화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가정과 처자를 버리고 나와 사문 되기를 구하여 이 깊은 산에서 살았으나 도를 얻지 못하였소. 처자와 이별한 뒤 본래의 소원대로 되지도 않고 그저 상심하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목숨만 잃을 것 같았소. 그래서 지금 후회하고 가정으로 돌아가 내처자들과 서로 즐기다가 이 다음에 다시 계획을 세워볼까 하오.”
그때 어느 틈엔가 늙은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숲을 멀리 떠나 숲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변화한 사문이 그 비구에게 물었다.
“저 늙은 원숭이는 왜 이런 평지에 홀로 살면서, 나무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즐기는 것일까요?”
비구가 변화한 사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저 원숭이를 보아왔는데, 두 가지 일로 여기에 와서 살고 있소.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숲 속에 살면 처자와 권속이 많아 입에 맞는 음식을 얻어도 마음껏 즐겨먹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숲 속에 있으면 밤낮으로 나무를 오르내리느라고 발바닥이 찢어져 편히 쉴 수 없기 때문이오. 이 두 가지 일 때문에 숲을 버리고 여기에 와서 사는 것이라오.”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할 때 그 원숭이는 도로 나무 위로 달려 올라갔다.
변화한 사문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저 원숭이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보입니다. 저 짐승은 어리석게도 숲을 떠났으면서도 군중의 시끄러움과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않고 도로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변화한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도 그와 같소. 저 원숭이와 무엇이 다르겠소? 당신도 본래 두 가지 일 때문에 이 산속에 들어왔소. 무엇이 그 두 가지 일인가 하면, 첫째는 아내와 가정이 감옥 같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식과 권속들이 수갑과 같기 때문이었소. 그 때문에 당신은 여기 와서 도를 닦아 생사의 괴로움을 끓으려 한 것이오.
그런데 지금 다시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도로 수갑에 묶이고 감옥에 들어가 은정(恩情)과 애욕과 연모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들어가려는 것이오.”
그리고는 변화한 사문이 곧 상호(相好)를 나타내자 60척 몸에서 금빛 광명이 두루 비쳐 온 산을 감동시켰다. 모든 날짐승과 길짐승들은 그 광명을 따라와 모두 제 전생의 일임을 알고 마음 속으로 잘못을 뉘우쳤다.
그러자 세존께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무 뿌리가 깊고 단단하면
나무를 베어내도 다시 나는 것처럼
애욕의 생각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면
이내 도로 괴로움 받으리라.

마치 저 원숭이가 숲을 떠났다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지옥에서 나왔다가도 다시 들어간다네.

탐욕의 생각은 늘 물처럼 흐르고
익힌 습관과 교만한 마음과
생각은 또 음욕에 빠져들어
제 자신을 덮으므로 보지 못한다.

온갖 잡생각 흘러 번지고
애욕의 얽힘 칡이나 등넝쿨 같아서
오직 지혜로 분별해 보아야
의근(意根)의 근원을 끊을 수 있다네.

대개 애욕의 촉촉한 번짐을 따라
생각은 더욱 더 뻗어만 가고
애욕은 깊고 깊어 끝이 없나니
그 때문에 늙음과 죽음도 불어만 간다.

그 비구는 부처님의 광명 모양을 보고, 또 이 게송을 듣고는 두려워 벌벌 떨다가 온몸을 땅에 던져 참회하고 사과하며 속으로 꾸짖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물러나 수식관(數息觀)4)을 닦고 지관(止觀)을 따라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應眞]을 증득하였다.
여러 하늘들도 그 설법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꽃을 뿌려 공양하고 한량없이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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