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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136 불교 도지경(道地經)

by Kay/케이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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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도지경(道地經)

 

도지경(道地經)


천축(天竺) 수뢰나국(須賴那國) 승가라찰(僧伽羅刹) 편집
후한(後漢) 안식국(安息國) 안세고(安世高) 한역
김월운 번역


1. 산종장(散種章)

밝은 지혜는 돋는 해보다 수승하시고 또한 얼굴빛은 덕을 행하심이 많은 데서 연유하니, 이는 귀한 성(姓) 가운데 생하시어 행하신 덕을 지키기 때문이다. 본래 이러한 뿌리에서 생겼기에 세간과 하늘의 무리들이 모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위없으시고 천하에 견줄 이 없는 정진자(精進者)이신 부처님께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립니다.
귀신과 용과 하늘과 인간들이 삼계에 있더라도 수순하고 친근하여 미묘한 법을 지니면, 제도되지 않은 자 문득 제도되고, 죽은 자 다시는 죽지 않으며, 늙은 자 다시 늙지 않으리니, 모두가 수행함으로써 얻어지는 부처님의 법이다. 또한 행자(行者)는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둠이 없이 수행하며, 또한 덕(德)을 지켜서 제법(諦法)을 설함을 듣고 스스로 뜻을 지으니, 행자가 맛 본 것은 사탕수수를 짜낸 물처럼 달콤하다.
항상 두려움으로 관찰하라. 백여 개를 쌓아 두었더라도 늙음과 죽음이 다한 즐거움을 몸소 궁구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세간에 빠져 있으리니, 마치 힘없는 코끼리가 함정에 빠져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세간의 사람들도 또한 그러하니, 갖가지 경(經)에서 편안함(요점)을 취하라. 마치 갖가지 꽃에서 꿀을 따 쌓듯이 말이다. 행도지(行道地)를 설하는 뜻은 듣고 좇으라는 것이며, 세상을 제도하고자 하여 설하는 것이니, 행자들은 곧바로 행도지를 설하는 것을 들을지어다. 생ㆍ노ㆍ병ㆍ사의 근심스러움과 마음에 들지 않는 걱정스러움을 설하리라.
행자가 집에 있거나 혹은 집을 떠나 수행하여 괴로움의 뿌리를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도를 얻으려 하지만 달리 가까이할 곳도 없고 달리 돌아갈 곳도 없으며 달리 이해하여 머무를 곳도 없으니, 마땅히 일체를 버려야 한다. 이렇듯 행자는 다만 일체를 버리고 도지(道地)를 행해야 한다.

이로부터는 생ㆍ노ㆍ병ㆍ사를 말하리니, 뜻에 새겨 근심하면 온 몸에 고통이 생기리라. 이미 세상을 건지고자 했거든 문득 도지(道地)를 행할지언정 몸에 이미 생긴 노ㆍ병ㆍ사를 싫어하지 말지니, 이로부터 뜻에 배인 번뇌가 생긴다.
부처님의 계법을 따라 배우고자 한다면 문득 실행하라. 무위(無爲)를 이루게 될 것이다.
무엇이 하지 말아야 할 불가행(不可行)이고, 무엇이 해야 할 가행(可行)이며, 무엇이 수행하는 사람인 행자(行者)이고, 무엇이 수행의 경지인 지위[道地]인가?
불가행(不可行)이라 함은 음욕을 생각하고 성냄과 침략과 남의 나라 침략을 생각하되 죽을 것은 생각지 않거나, 나쁜 지식을 따라 계행을 지키지 않고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뜻을 거두지 않고 가르침과 실천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남에게 묻지 않고 혼자서 스스로 기약하거나, 몸으로는 여색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는 항상함ㆍ즐거움ㆍ청정함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 자신이 계교하기를 지혜롭지 못한 고을의 하천한 사람들과 뒤섞여 산다고 생각하거나 색(色)의 경계를 생각하기에 어두워서[瞢瞢] 탐욕을 여의지 못하거나, 욕정이 많고 성냄이 많으며 어리석음이 많고 인연이 많으며 많이 먹거나, 바른 수행을 버리고 일신의 편안함을 탐내고 잠을 탐하며 바른 기억을 잊고 의심이 지나치거나, 정진(精進)하되 잘못되게 정진하고 두려움 때문에 6근(根)을 거두지 못하거나, 분주하고 말이 많고 업이 많으며 일을 일으킴이 많거나, 오래 동안 가르침을 뒤바꾸고 속마음의 계교를 거꾸로 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면 금생의 법에서 도(道)를 따르나 혹 도에서 이탈하니, 이런 것들을 불가행(不可行)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이들을 불가행이라고 하는가? 무위(無爲)의 법을 여의었기 때문이니, 뒤에 속박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성냄은 살생을 하려 하고, 몸이 영원하고 즐겁고 청정하다고 여겨 이를 누리고 지혜롭지 못하여 지혜를 따르지 않는 것은 갖가지 악을 좇아 온 것이므로, 부처님께서는 이를 불가행이라고 하셨다.
무엇이 가행(可行)인가? 벗어나기를 생각하고, 성냄과 살생을 생각하지 않으며, 밝은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계를 지키길 청정하게 하여 식사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되물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않겠느냐고 하여야 하니, 그릇된 생각을 좋아하지 않으며, 괴로움과 부정함을 생각하며, 내 몸이 잘났다고 생각지 않고, 고을 사람이나 열약(劣弱)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정신을 어지럽고 어둡게 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번뇌를 줄이고 일을 줄이고 음식을 줄이며 방편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몸을 제어하여 수면(睡眠)을 버리고, 바른 도를 행하는데 뜻을 두며,
뜻을 지키어 의심을 없게 한다. 실행의 목표를 정진에 두고, 두려움을 여의고, 6근의 감관을 거두고, 말을 적게 한다. 진리의 행[諦行]에 있어서는 진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진리의 뜻을 닦는다. 고요한 숲에서 행하기를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좋은 법을 얻지 못했거든 곧 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이미 이룬 것은 철저하게 보존한다. 경전 말씀 듣기를 좋아하고, 몸에 쓰이는 것은 짐짓 쓰되 풍족하게 여기고, 법다운 수행이 부족함만을 생각한다. 머지않아 죽을 줄을 알아 세간의 덕(德)을 좋아하지 않고, 음식을 탐내지 않으면, 무위(無爲)의 법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무리의 수행법은 끝내 무위의 법을 이루나니, 이런 것들을 가행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이를 가행이라 하는가? 이로부터 무위를 이루기 때문이니, 뒤에 속박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청정한 계법에 대하여 믿음이 타락하여 몸을 거두고 법사(法事: 계)를 받아들일 것을 생각지 않으니, 이 법을 들은 이가 자세히 살펴보고 갖가지 계를 침범하지 않으면 이는 무위에 응하여 도를 얻을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갖가지 뜻을 생각하면 결단코 괴로움도 없고 피로함도 없다. 이상에 말한 공덕(功德)의 무더기는 근을 거두고 몸을 항복시키는 법이니, 마땅히 행할지어다.
행자(行者)라 함은 어떤 뜻인가? 행해야 할 행을 행하는 이를 가까이 섬기는 것이니, 행(行)이란 익힘[習]이다. 행자는 가까이하여 익혀서 익힌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 행자에 세 종류가 있으니, 도를 얻지 못한 이[未得道者]와 배우는 이[學者]와 더 배울 것이 없는 이[不學者]이다.
무엇이 도지(道地)인가? 행자가 행하여야 할 길이니, 이를 행자지(行者地:行道地)라고 한다.
아직 행도(行道)를 얻지 못한 이는 무엇으로 바탕[本]을 삼아 다음의 행을 일으키는가? 전에 이미 행을 말해 마쳤으니, 이로써 말씀을 끝낸다. 배우는 이[學者]와 더 배울 것이 없는 이[不學者]에 대해서도 역시 이미 말했다.
도행지(道行地)를 지관(止觀)이라 부르는데, 어찌하여 이 지관이 필요한가? 오직 4덕(德:果)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 이 4덕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무엇 때문에 이 4덕을 이루고자 하는가? 이를 좇아 무위(無爲)를 이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위를 이루는가? 유여(有餘)와 유위(有爲)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유여와 유위를 원하지 않는가? 다만 일체의 괴로움을 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자가 일체의 괴로움을 제거하고자 하거든 늘 항상 여의지도 말고 범하지도 말며 천착하지도 말고 지관(止觀)을 세워야 한다.
만일
수행자가 천착하면 지(止)도 얻지 못하고 관(觀)도 얻지 못하니, 공연히 헛되이 고행만 한다.
비유하건대 어떤 이가 불을 구하기 위하여 나무를 문지르는데 위에서 문지른 것이 아래 것에 닿아야 나무가 문질러질 터인데 때때로 멈추면 문지름도 때때로 멈추니, 이렇게 되면 불은 얻지 못하고 공연히 수고만 하는 것과 같다. 도를 닦는 것도 마치 이와 같으니, 뒤에 자세히 말하리라.
만일 법을 관(觀)하는 행자가 중도에 피로하다는 뜻이 생기면 싫증이 나니, 행자는 오직 행할 뿐이요, 천착하지도 말고 피로해하지도 말라. 게으른 이가 게으름을 좇아 행하면 문득 수행을 잃으리니, 마치 밤이 지극히 어두운데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 눈을 감고 가는 것과 같으니, 언제 광명을 볼 수 있겠는가?
만일 행자가 수행하되 천착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지혜로운 자이니, 마치 밝은 날에 눈을 뜨고 다니는 것과 같아서 차츰차츰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무위종(無爲種)을 얻으리라.
이는 경(經)의 뜻을 통달한 자 약간과 경을 소통시킨 이들이, 경(經)의 가르침을 살펴보고서 이 지관(止觀)을 설했으니, 나머지 경에도 흩어져 있는 말씀이다.
이를 도지(道地)의 산종장품(散種章品)이라 한다.

2. 지오음혜장(知五陰慧章)

갖가지 경전에서 얻는 밝은 지혜는 견고하기 때문에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감로(甘露)의 법문이요, 음성이나 명자(名字)를 듣고 그로써 실행하면 마치 밝은 달과 같을 것이니, 섬기는 이와 청정한 이와 지혜로운 이는 밝아질 것이요, 혹은 법을 지키는 이는 더욱 밝아질 것이며, 아울러 집에서 수행하는 이도 그러하다.
나쁜 뜻을 간직하지도 않고 끌어당기지도 않아 뜻대로 하여서 도를 얻은 분께 보시하고 도를 얻은 분께 예경하여 머리를 조아리라. 그로 인해 감로를 얻기 때문이다.
탐욕이 종자가 되어, 많아짐으로써 태어남[生]이 있게 되고, 사랑함과 기뻐함은 근심의 가지를 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5음(陰)은 마치 공후(箜篌)와 같다 하셨으니, 들은 바에 의하면 여러 경에서 끌어다 비유하였다.
행도자(行道者)들이여, 마땅히 알라. 몸[身體]이란 원래 다섯 가지로 이루어졌나니, 색종(色種)ㆍ통양종(痛痒種)ㆍ사상종(思想種)ㆍ행종(行種)ㆍ식종(識種)이다. 예컨대 몇몇 집은 동쪽 고을[郡]이라 부르고, 몇몇 집은 남쪽 고을이라 부르며, 몇몇 집은 서쪽 고을이라 부르고, 몇몇 집은 북쪽 고을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한 집만을 일컬어 고을이라고 하지 않으니,
이는 색종(色種)이 또한 하나의 색(色)만으로 색종이 되지 않고 여러 가지 색으로 색종이 되는 것에 견준 것이다. 통양종ㆍ사상종ㆍ행종ㆍ식종도 또한 이와 같다.
색(色)은 10입(入)이나, 문장[文]으로는 법(法:法塵)도 이에 속하고, 받아들임[受入: 識]이 색종(色種)을 상대하는 108가지 통양(痛痒)이 바로 통종(痛種)이요, 108가지 사상(思想)은 사상종(思想種)이며, 108가지 행(行)은 행종(行種)이요, 108가지 식은 식종(識種)이다.
이렇듯 분명히 알라. 오종(五種: 五陰)은 차례차례 나타나 마치 말[說]과 같지만, 서로 연결되어 이어지지 않는 것은 다만 본래의 어리석음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혹은 어리석음을 익히기 때문이니, 비유하건대 나무에는 잎이 가지에 붙어 있듯이 어리석고 악한 행이 다섯 가지에 붙어 한 무리를 이루고, 다섯 가지 뜻으로 계교한다.
이것이 몸을 관찰하는 도지행(道地行)의 지오음혜장품(知五陰慧章品)이다.

3. 수응상구장(隨應相具章)

성품의 강이 흐르기 시작하여 원만히 제도한 그릇[滿度器]에 가득하다. 『파육족경(破六足經)』에 말씀하시기를, “조밀하게 솟아오른 것이 연꽃 같고 지혜의 해가 돋은 것 같으니, 수승한 연꽃을 들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라. 청정담박(淸淨淡泊)한 것이 그 모습이니, 지극히 존귀하신님은 세상을 뛰어넘는 복스러운 분이시기에 사람들은 그 정(精)이 견고함을 우러러본다.”라고 하였다.
행도자(行道者)를 데리고 경과 같이 부연하여 교화의 문을 여노니, 행도자는 다시 다섯 가지[五種]가 각기 응하는 모습과 종상(種相)을 알아야 한다.
색(色)은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며, 또 색은 바뀐다. 느낌인 통(痛:受)이 통상(痛相)이니,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님을 번갈아 느끼므로 통상이다. 인식의 모습[識相]이 사상(思想)이니, 남자와 여자, 혹은 그 밖의 것을 인식함이 사상이다. 짓는 바[所作]가 행(行)이니, 좋은 행, 나쁜 행,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행 등이 행상(行相)이다. 인식의 모습[識相]이 식(識)이 되니, 좋음과 좋지 않음과 좋지 않은 것도 아니고 좋지도 않다는 인식이 식상(識相)이다. 이렇듯 다섯 가지에는 각기 자기의 모습이 있으니, 뒤에 설하리라.
이 색에는 즐거움이 있으나 악이 더 많다. 부처님께서 경에서 알맞은 바에 응하여 말씀해 두셨으니, 예컨대
5음의 종상(種相)과 갖가지 모습으로 나눈 것이다.
이것이 도지(道地)의 수응상구장(隨應相具章)이다.

4. 오음분별현지장(五陰分別現止章)

타는 곳에 감로종(甘露種)을 뿌려 5음(陰)의 치성함을 씻고, 5음의 땔나무에 혜명(慧明)으로 밝혀 문득 나쁜 불을 끈다. 삼계가 모두 예를 올림에 따라 나도 예를 올리나니, 감로수를 가지고 3독(毒)을 멸하신 분을 위해서이다. 5음을 꿰뚫음으로써 얻어진 바로 마땅함에 따르고, 지혜의 뜻으로 나쁜 불의 뜻을 멸하니, 삼계에서 존경하는 분에게 나도 또한 존경하는 뜻으로 두 손을 모은다.
지혜에서 생기는 힘은 지혜로운 이라야 스스로 얻나니, 스스로가 부처님을 안 것처럼 문득 제자들에게 행해야 할 말씀을 가르쳐 주노라. 들으라. 이 뜻이 안정됨으로부터 5음의 분별이 나타나니, 지혜의 힘의 지킴을 받는 이는 청정한 자기 부처를 알 것이요, 뜻하는 바에 따라 문득 사물이 나타남을 아는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행해야 할 바에 따라 현전에 행해짐을 알 수 있고, 말씀을 듣고 뜻이 이 선정을 좇아 5음을 분별하니, 행도자는 마땅히 5음을 분별하여 알아야 한다.
행도자가 어떻게 하여야 5음을 분별해 아는가? 비유컨대 네거리에 한 꾸러미의 진주 보따리가 떨어져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지금 보거나 이미 보고는 문득 기뻐하면서 마음에 사랑하고, 구슬을 얻으려 하니, 그 사람이 본 구슬을 마음에 간직해 두면 이것이 색음종(色陰種)이요, 기뻐할 바를 기뻐하는 마음은 통양종(痛痒種)이며, 만일 첫머리에 이런 것이 구슬 꾸러미라고 띄워 올리면 이것이 사상종(思想種)이요, 만일 뜻을 내어 이 구슬꾸러미를 꼭 취하리라 하면 이것이 행종(行種)이며, 이를 좇아 인지[知]하면 이것은 식종(識種)이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종(種)의 뜻은 한 꾸러미의 구슬 위에 함께 동작하기도 하고 또는 몇 가지만 동작하기도 하고 혹은 단독으로 동작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한 꾸러미의 구슬에서 동시에 함께 동작하니, 5음도 다시 이와 같아서 눈으로 보는 색(色)이 다섯 가지 행[五行]과 함께 동작하고,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입으로 느끼는 맛이 그렇고, 몸으로 느끼는 것은 거칠고 부드러움인데 몸에는 네 가지 음(陰)은 없고
색종(色種)만이 생긴다. 이렇듯이 5음종이 제각기 분별해서 안다.
뒷날 도덕을 말하는 이가 있어 이와 같이 분별해서 말한다면, 이미 경의 말씀을 얻은 것이 된다. 도를 얻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과 같이 행하면, 나 또한 이 말씀과 도행을 시현하리라.
이는 도지행의 오음분별현지(五陰分別現止章)이다.

5. 오종성패장(五種成敗章)

이미 부처 이루기를 요해야 할 줄을 알았으니, 요체(要體) 가운데 끝내 요긴함[竟要]으로 요체를 삼으면 요체를 모두 얻어 마친다. 요체를 모두 얻기를 마치면 다시 찾아야 할 요체가 없으니, 마땅히 응화하여 집착함이 없는 분께 예경할지니라. 높은 명성이 한량없고, 말씀하신 내용은 마치 밝은 달의 광명 같아서 제자들로 하여금 밝은 지혜를 얻어 번뇌와 죄를 두려워해서 생기자마자 능히 그 줄기를 무너뜨리게 하니라.
이미 오종음(五種陰)에 대해서 알았으니 이제 그 성패(成敗)를 밝히리니, 만일 그러할 이가 있다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라.
행도자(行道者)는 마땅히 5음의 드나듦과 성패(成敗)를 알아야만 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수명이 다하여 호흡하는 사이에 운명할 처지에 이르면 문득 404가지 병(病)이 중간과 처음과 나중에 차례로 일어나니, 문득 보자마자 두려운 생각을 내서 꿈속에서 벌이 나무를 쪼는 것을 보고, 까막까치가 자신의 정수리를 쪼는 것으로 보며, 외기둥으로 세워진 누각에서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색의 옷을 입고 있음을 본다.
말을 탄 사람을 보되 더벅머리 말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며, 살대[▼(竹/奇):笴의 俗子, 음은 간, 살대ㆍ줄기 등의 뜻]를 베개로 삼아 흙무더기 속에 눕기도 하고, 죽은 사람이 시체를 지고 오는 것을 보기도 하며, 뒷간을 치는 사람과 같은 그릇에서 밥을 먹기도 하며, 또 이 사람의 수레에 실려 가는데 참기름이나 진흙에 발이 더럽혀졌거나 또 온 몸에 묻는 것을 보며, 또 그런 이들과 자주 마시는 꼴을 보며, 또 그물 가운데 떨어져 사냥꾼이 끌고 가는 것을 보며, 자신이 깔깔대고 좋아하거나 울기를 좋아하는 꼴을 보며, 혹은 길에 개미떼가 쌓여 있는데 자기가 그 위를 지나는 꼴을 본다.
혹은 밀린 세금이나 소금 값(세금의 일종)을 달라는 것을 보며, 혹은 머리를 풀고 알몸이 된 여인이 자신을 끌고 가는 꼴을 보며, 혹은 몸에다 재[灰]를 바르거나 그것을 먹는 꼴을 보며, 혹은 개나 원숭이가 뒤를 쫓아오는 무서운 꼴을 보며, 혹은
자신이 죽었는데 배우자가 시집이나 장가를 드는 꼴을 보고, 혹은 어느 집의 사당[神]이 무너지는 꼴을 본다.
혹은 말이 달려와서 수염과 머리칼을 핥는 꼴을 보고, 혹은 이[齒]가 땅에 떨어지는 꼴을 보며, 혹은 시체를 나르는 일꾼의 옷을 자신이 입고 있는 꼴을 보며, 혹은 자신의 몸이 나체가 되어 먼지투성이가 된 꼴을 보며, 혹은 흙무더기에서 자신이 뒹구는 꼴을 본다.
혹은 가죽이나 담요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 꼴을 보며, 혹은 자기 집 중문(中門)으로 무너진 수레가 왔는데 기름이나 꽃이나 향을 많이 싣고 온 꼴을 보며, 또 형제들이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는 꼴을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로 다가와서 함께 가자고 조르는 꼴을 보며, 혹 무덤 사이를 가는데 갑자기 버려진 꽃이 목에 걸리는 꼴을 보며, 혹은 자신이 강물에 거꾸로 떨어지는 꼴을 본다.
혹은 자신이 오호(五湖)나 구강(九江)에 떨어졌는데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꼴을 보며, 혹은 자신이 갈대밭에 들어가 벌거벗은 몸으로 몸을 베이면서 뒹구는 꼴을 보며, 혹은 나무에 오르니 열매도 없고 꽃도 없는데 꽃도 없는 데서 희롱하는 꼴을 보고, 혹은 단(壇) 위에서 춤을 추는 꼴을 보며, 혹은 숲 사이를 다니면서 혼자서 아름다운 향기를 즐기는 꼴을 보며, 또 얼마쯤의 줄기나무를 얻어 장작 패는 꼴을 보고, 혹은 집에 들어갔는데 캄캄해서 문을 찾아 나올 수가 없다.
혹은 산에 올라 깎아지른 벼랑 끝이 무너져 크게 통곡하는 자신을 보고, 혹은 새가 삼켜버리거나 발로 밟는 꼴을 보며, 혹은 먼지가 머리에 뒤덮이거나 혹은 범이 길을 막거나 또는 개나 원숭이나 나귀가 길을 막는 꼴을 보며, 남쪽으로 가다가 무덤 사이로 들어가니 숯 무더기와 털붙이와 뼈를 부수는 꼴을 보며, 머리에 꽃을 꽂고 자신이 염라왕을 뵙는 꼴을 보며, 염라왕의 사자가 따져 묻는 꼴도 본다.
이후로부터 현실의 일을 말하리라. 세간에서 이미 많은 쾌락을 얻었으나 몸이 무너지니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고, 떠나고자 해도 자유로움을 얻지 못하니, 병이 따라붙거나 이미 병에 걸리게 된다. 뜻이 문득 흔들리면서 목숨이 다하자, 근심이 심해지면서 꿈속에서 큰 두려움을 일으킨다. 그 사람이 속으로 계교하기를 ‘내 목숨은 머지않아 다하리라’라고 한다. 이렇듯 꿈에서 본 몸에 따라 문득 생각은 두려워지고 몸은 쇠잔해져서,
마치 새가 홰[梲:새장이나 닭장 속에 새나 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나무 막대]를 밟듯이 자기의 몸은 이미 지극한 고통에 가까워져서 심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문득 스스로 의원에게 가고자 하는데, 자기의 친척이나 형제들이 이미 병이 심한 것을 알고 심부름꾼을 의사의 집으로 보낸다. 그들이 심부름꾼을 불러 어서 가라고 하는데, 그 심부름꾼의 모습은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옷에 손발톱은 길고 머리와 수염은 어지럽다. 무너지고 해진 수레에 몸을 싣고, 구멍 뚫린 신을 신었으며, 얼굴은 검푸르고, 눈동자는 푸르다. 수레는 흰 소와 말에 멍에를 메고, 그 병자(病者)는 손수 수염과 터럭을 만지면서 의원을 속히 불러 오라고 더욱 다급하게 수레를 재촉하여 보낸다. 이 이후부터는 생각이 이에 묶여 다만 앉아서 나쁜 쾌락에만 잠겨 있을 뿐, 마음에 좋은 즐거움은 계교하지 않으니, 병 고칠 생각은 못하고, 이미 무너진 몸은 문득 죄의 그릇으로 타락한다.
심부름꾼이 도착하니, 의원이 문득 생각하길 ‘환자의 병은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심부름을 하는 이의 몰골과 행색이 누추하니, 입은 옷ㆍ말씨ㆍ수레ㆍ일산ㆍ수염ㆍ터럭 등이 그렇다. 또한 꺼리는 날 부르러 왔느니, 4일이나 6일이나 9일, 12일, 14일에 가는 것은 더욱 꺼리는 날이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의원인들 어찌 이런 날에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있겠는가?’라 한다.
의원은 네 차례에 걸쳐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하여 결론을 내리길 ‘부르러 온 날과 때와 시각과 별자리를 따라 의심하면서 이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무슨 까닭인가?
혹 그 시기가 나쁜 날이나 꺼리는 시각이라도 어떤 사람이 방편을 쓰면 병을 능히 고칠 수 있고, 병에 따라 때로는 치료하지 못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즉 반드시 날짜나 시각에 그 성패가 달려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역술(曆術)을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선인(仙人)은 항상 권하여 마땅히 방편을 찾아 다스리기를 힘써 다하니, 병이나 혹은 까닭 없이 생긴 병이 치료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목숨이 다하였다면 그저 가버릴 계책을 말하면 되니, 그러므로 병든 이의 집에 갈도 될 것이라. 생각을 정리하면, 함께 바다로 들어섰어도 그 중에 저쪽에 이르는 이도 있고 혹은 중도에 무너지는 이도 있듯이, 병을 고치는 일도 바다에 드는 것과 같아서 낫는 이도 있고 죽는 이도 있다’라 하였다.
의원이 곧 병자(病者)의 집에 이르렀는데, 무엇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는데, 태워 없애고 깨뜨려 버리고 찢어 헤치고
긁어내고 죽여 버리고 내다 버리고 멸하여 업어져 버린 것 같았다. 태워버리고 깨뜨려 버리고 찢어 헤치고 긁어내고 죽여 버리고 내다 버리고 멸하여 없어져 버려서 고칠 수 없어 이미 죽은 것 같았다. 남쪽을 보니 다시 까마귀와 새매 둥지에서 소리가 나고, 다시 아이들을 보니, 모두 먼지를 뒤집어쓰고 벌거벗은 채로 서로가 머리채를 잡고 있었으며, 깨진 병이나 동이ㆍ기왓장ㆍ단지가 있었고, 또 보니 빈 그릇 같은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걸어서 병자의 방에 이르러 병자를 보니, 집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병이 더욱 심해졌다고 말하였다. 의원이 곧 병자를 살펴보니, 병자가 허겁지겁 일어나 앉는데 병색이 짙고 힘이 없어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의원은 그 병세를 살펴보고는 곧 생각하였다.
‘이런 증세는 의경(醫經)에서 말하되 곧 죽을 증세라 했으니, 얼굴빛을 보니 살갗은 자글자글 주름이 지고, 몸은 마치 흙빛 같은 색을 띠며, 혀는 입 밖으로 나와 있었고, 혹 말을 하나 바로 잊어버린다. 몸을 보니 무거워서 뼈마디가 이를 따라 주지 않고, 콧날은 삐뚤어지고, 살갗은 검푸르고, 목구멍과 혀의 빛은 뼈의 빛과 같이 창백했으며, 더 이상 맛을 알지 못한다. 입은 바싹 말라 있고, 털구멍은 붉고, 힘줄은 분명하지 못하며, 머리를 풀었는데 머리칼이 곤두서고 머리칼을 당겨도 느끼지 못한다.
곧장 보고 반듯이 누웠는데, 놀라서 얼굴빛이 실룩거리고 얼굴은 쭈그러지고, 한 곳을 꿰뚫어 보고는 혹 몇 마디 말을 하니, 경에서 남은 목숨이 얼마 없는 모습을 말하되 마치 숲에 불씨가 떨어진 것 같다 하였고, 또 여섯 가지 모습을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 같다고 하였다.
만일 목욕을 하더라도 목욕하지 않은 때와 같으며, 전단향ㆍ밀향(蜜香)ㆍ다핵향(多核香)ㆍ나체향(那替香)ㆍ근향(根香)ㆍ피향(皮香)ㆍ화향(華香)ㆍ나향(蓏香)ㆍ곽향(藿香)을 피우더라도 숙세에 행한 모습에 따라 힘줄을 태우는 냄새나 머리칼ㆍ뼈ㆍ피부ㆍ살ㆍ피ㆍ대변을 태우는 냄새가 나고, 혹 새매ㆍ까마귀ㆍ전갈ㆍ돼지ㆍ개ㆍ검은 원숭이ㆍ쥐ㆍ뱀을 태우는 냄새가 나며, 때로는
그 사람의 소리가 나무 쪼개는 소리ㆍ기와 깨지는 소리ㆍ껄끄러운 소리ㆍ악한 소리ㆍ기러기 소리ㆍ공작새 소리ㆍ북 소리ㆍ말울음 소리ㆍ범의 소리 같다 하였다.
또 죽게 된 모습을 말하되, 사람이 죽어갈 때에는 죽는 모습이 있으니 입은 맛을 알지 못하고, 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모든 것이 쭈그러져 맥이 혈육(血肉)에 숨어 새어 나오고, 뺨이 위쪽으로 당겨지고, 머리를 흔들고, 눈에는 광채가 없으며, 볼기의 살은 굳어지고, 눈은 검고 눈빛도 검으며, 대소변이 통하지 않고, 마디마디가 풀리며, 입안의 입천장에는 두 줄의 푸른빛을 띠고, 재채기를 한다.
이런 병자의 모습은 고칠 수 없으니, 설사 편작(騙鵲)이라 해도, 모든 훌륭한 의원이 모두 사당에 제사를 하고 모두 모이더라도 이 병은 낫게 하지 못하리라.’
의원은 문득 생각하되 ‘이 병은 죽기마련이니, 마땅히 이 자리를 피해야 되겠다’라고 하고는, 그 집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 병은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던 바이니, 뜻에 맡길지언정 제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집에 약간의 일이 있어 가겠는데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리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병자의 식구에게 이르되 “다시 고칠 수 없다”고 말하고 떠나니, 병자는 이미 의사의 말을 듣고는 약과 믿고 있던 치료들을 모두 그만두었다.
친척과 친지들과 이웃이 함께 모여서 병자를 둘러싸고 슬피 울면서 바라보니, 마치 소가 백정[屠家]에게 죽을 때 다른 소들이 죽는 소를 보고서 자기에게도 미칠까 두려워하여 마당을 뛰쳐나와 숲속으로 달려들 듯하며, 또 돼지가 백정에게 죽을 때 다른 돼지들이 보고 놀라서 죽음을 무릅쓰고 솟구치면서 귀를 세우고 곧장 보듯 하며, 또 고기가 고기잡이의 그물에 걸려들었을 때 다른 고기들이 보고 놀라서 모래자갈 틈이나 마름 사이로 숨어들 듯하며, 또 새들이 줄을 지어 날아갈 때 그 중 한 마리가 매나 독수리에게 잡혀가면 다른 새들이 놀라서 흩어져 날아가듯이, 형제ㆍ친척ㆍ
친지ㆍ이웃들도 그와의 이별을 슬퍼하면서 끊어져가는 목숨을 지켜보고 있다.
지옥의 사자가 이미 도착하여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이쯤에서 죽음의 화살[死箭]을 날린다. 생사의 밧줄로 죄를 따져 묶은 뒤 문득 끌고 세상을 지나서 가니, 친척들은 머리를 풀고, 거적 옷을 걸친다. 기를 써서 입에 가득 악 쓰기를 그치지 않으며, 애달픈 말을 토해내어 애정을 보이며, 갖가지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어찌 할꼬’를 외치지만 병자는 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안에서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도풍(刀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마디마디를 풀어헤치고,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거풍(遽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뼈 매듭을 끊어지게 하고,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침풍(鍼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힘줄을 느슨하게 하고,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파골풍(破骨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골수를 상하게 하고,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장풍(藏風)이라 하는데 눈과 귀와 콧구멍이 모두 푸르게 되고 모든 털구멍으로 드나들어 이 구멍들이 파괴되면서 터럭들이 끊어지고 뽑히게 된다.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복상풍(復上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몸속에 있는 무릎ㆍ겨드랑이ㆍ어깨ㆍ등ㆍ가슴ㆍ배ㆍ배꼽ㆍ아랫배ㆍ소장ㆍ대장ㆍ간장ㆍ폐장ㆍ심장ㆍ비장ㆍ신장ㆍ그 밖의 장부 모두를 각각 끊어지게 하며,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성풍(成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청혈(淸血)ㆍ기름ㆍ대소변ㆍ밥통ㆍ똥집 등을 추위와 껄끄러움으로 제자리에서 막히게 하고, 또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니 절간거풍(節間居風)이라 하는데 병자의 골격을 경직되게 만드니 때로는 손발을 들고 때로는 허공을 잡고 때로는 일어나고 때로는 앉고 혹은 신음하고 때로는 통곡을 하고 혹은 화를 낸다.
이미 뼈마디가 풀리고, 이미 매듭이 끊어지고, 이미 힘줄이 풀리고, 이미 골수가 상하고, 이미 정기가 떠났으니, 몸은 있다고 할 것이나 마음은 이미 싸늘하니, 마치 나무가 오행(五行)을 버린 것 같다. 마음속까지도 파리해져 겨우 미약한 것만 남았으니, 마치 등불이 꺼진 뒤에 불똥만 남은 것과 같다.
마음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미약한 의식만이 있으니, 이는 본인이 행했던 좋고
추하고 죄스럽고 복스러운 마음이 문득 나타났을 뿐이다.
금생에 선을 행한 이는 마음이 기쁘며, 악을 행한 이는 마음이 문득 부끄럽고, 좋은 곳에 태어날 이는 마음이 기쁘며, 나쁜 곳에 떨어질 이는 마음이 문득 근심스러우니, 마치 어떤 사람이 맑은 거울에 비추어 보면 얼굴모양을 다 볼 수 있어서 머리가 희고 가죽이 쭈그러지고 몸에 때가 끼며 또 이가 빠지고 아예 때가 낀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마음속으로 ‘이 몸이 차츰 늙어서 자주 변해 이렇게 된 것이다’ 하고는 스스로 부끄러워서 곧 눈을 감고 거울을 던지고는 더 보지 않으려 한다. 거울을 던지고 근심하되 ‘나의 젊음은 이미 떠났고 늙음이 이르러서 얼굴은 추해졌고 모든 쾌락은 이미 사라졌구나’ 한다. 이렇듯 평소에 악을 행하여 생각을 악한 행을 쫓는 데 두었다가 문득 근심하고 뉘우치고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꾸짖되 나는 지금 나쁜 곳에 떨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만일 여법하게 행하는 이라면 세 가지 좋음[三好]을 행하니, 갖가지 행원(行願)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다. 행자(行者)에게는 좋음이 많으니 즉시 기쁘고 기쁨이 많아서 뜻이 스스로 기뻐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하늘에 태어나리니 또한 좋은 곳이다. 비유하건대 장사꾼이 험한 길에서 벗어나 많은 이익을 얻고서 집에 돌아가 문에 도달한 기쁨과 같고, 농사꾼이 오곡을 얻으려는 원을 이루고는 창고에 쌓아두는 것과 같으며, 또 비유하건대 병을 앓는 이가 병이 나아 편안함을 얻는 것과 같고, 또 비유하건대 빚을 진 자가 빚을 다 갚은 것과 같다’라고 한다.
평소에 좋음[好]을 행하는 이도 이와 같으니, 마땅히 좋음을 행하여야 한다. 비유하건대 벌이 꿀을 다 채운 것같이, 문득 생각하기를 ‘나는 이미 좋은 곳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때 즉시 몸 안의 정식(精識)이 사라지고 문득 중유음(中有陰)이 생기되 마치 저울이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죽음을 버리고 삶의 씨앗을 받으니, 마치 벼를 심어 뿌리가 쌍으로 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간 시기[中時]에 식이 멸하면 즉시 중음이 생기는데 5음이 구족되어 모자람이 없다.
죽음에 이르러 중음에서 5음이 가는 것도 아니요, 또 죽음을 떠나서 5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음의 5음이 있는 것은 다만 죽은 5음일 뿐이니, 그러므로 중음의 5음이 생기는 것은 비유하건대 어떤 이가 인장(印章)을 가지고 좋은 인주에 찍으면 인주에도 인장의 형상이 있으나, 인장의 문양이 인주로 옮겨간 것이 아니요, 또 인주가 인장의 문양을 여의지도 않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건대 종자를 심어 뿌리가 날 때 종자는 뿌리가 아니지만 뿌리 또한 종자를 여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의 정신도 또한 그러하여 크고 작음이 법과 같다.
삶으로부터 중음에 이르면 여기서부터는 본래 짓고 모은 것에 달려 있으니, 좋은 행을 한 이는 중음에서 좋은 5음을 얻고, 악을 행한 이는 나쁜 중음을 얻는다. 중음을 얻는 것은 천안(天眼)으로 행한다. 중음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는 세 가지 음식이 있으니 즐거움[樂]과 생각[念]과 식(識)이다.
중음은 하루를 머물거나 혹은 칠 일을 머물다가 부모가 만나는 곳에 이르며, 또한 떨어질 곳에서 중음으로 머무른다. 떨어질 곳에 도착하면 바로 죽는 때에 이미 중음으로 태어나며, 태어나자 문득 천 가지 생각이 발생하는데 혹 보고, 혹 생각하면서 문득 어리석음을 일으킨다.
가장 악하게 행한 이는 문득 자연스럽게 큰불 주변에 있게 되며, 또 무수한 백천 마리의 까마귀ㆍ새매ㆍ매와 함께 모여 있음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이 험악한 손톱ㆍ얼굴ㆍ이빨ㆍ더러운 의복에 머리에 불붙는 모습으로 나타나 손아귀에서 갖가지 독을 뿜는 것을 본다. 문득 자기에게서 멀리 우거진 숲이 있는 것을 보고, 뜻을 내어 그 속으로 들어가면 문득 중음이 사라지고, 떨어질 곳에 태어난다. 이때 오래지 않은 사이에 자신이 도엽수(刀葉樹) 사이에 떨어져 있음을 보는데 이것이 지옥(地獄)이다.
5음의 삶으로 죄에 들어간 이가 악하게 행한 것을 되받을 때엔 문득 사나운 연기ㆍ먼지ㆍ불길ㆍ바람ㆍ비가 몰려와서 몸에 붙는 것을 보며, 또 코끼리ㆍ사자ㆍ호랑이ㆍ독사들이 저절로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을 보며, 또 언덕과 우물이 모두 합쳐진 곳에 그 뒤에 다시 자신이 절벽 위에 섰음을 본다.
이때 마음을 내어 그 속으로 들어가서 곧바로 중음의 몸을 버리고 나면, 뜻이 생겨나 문득 중음의 몸이 사라지고 떨어질 곳에 태어나는데, 이때 오래되지 않아 축생(畜生)에 이른다. 다음은 행동을 나타냄이 지극히 어리석어 예절이 없고, 나쁜 뜻으로 부모를 대하기를 항상 좋아하며, 거친 말과 성냄으로써 결박하거나 채찍질하는 등 악을 행하면, 이 사람은 주지 않는 것을 취했으니 곧바로 축생에 떨어진다.
죄가 가볍고 적은 이에게는 문득 뜨거운 바람이 발생하여 굶주리고 몸이 피곤하여 칼과 창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보며, 또 큰 구덩이를 보고는 들어가리란 생각을 낸다. 이런 생각을 내자 문득 중음이 멸하여 떨어질 곳의 몸[陰]을 받으며,
즉시 아귀(餓鬼)에 떨어지니, 이를 아귀에 떨어졌다고 한다.
두 가지로 말하는 천한 도적들이 함께 말하는 것을 따라, 자신도 참소하는 말이나, 경계를 잃은 말이나, 속이고 거짓된 논의를 일삼거나, 온갖 음식에서 악하고 부정한 것을 먹거나, 착한 이를 따르되 도리어 법어(法語)를 행하지 않으면, 문득 그릇에 피와 가래가 엉겨 있는 곳에 떨어지리니, 이를 일러 아귀(餓鬼)에 떨어졌다 한다.
가장 좋음을 행한 이는 가장 좋은 즐거움을 얻으며, 또 향기로운 바람이 몸에 부는 것을 보고, 갖가지 종류의 꽃이 자신의 몸에 흩어짐을 보며, 갖가지 종류의 풍악이 서로 따름을 보고, 갖가지 나무가 동산에 있음을 보고는 곧 그리로 들어가리란 생각을 내며, 그런 뜻을 내기를 마치면 문득 중음이 멸하고 떨어져야 할 곳에 몸을 받아 태어나니, 문득 이렇게 하늘의 몸을 받아 이와 같이 하늘[天上]에 떨어진다. 복스러운 행이 있는 이는 떨어질 곳이 응당 천상이거니와, 이미 법을 여의지 않은 공덕이 있으면 이것이 하늘 종자에 떨어지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중음[人中]에 떨어지면 본래의 행에 따라 복과 재앙을 받는다. 부모도 또한 모이는데 전생의 행이 응당 남자이면 그에 따라 복을 내는 것도 중음의 머무름[中止]과 동등하다.
바로 그때에 부모는 정(精)을 거두는데 포문(胞門)이 견고하지 않으며, 바람ㆍ열기ㆍ냉기를 쫓되 물들지 않고, 삿되게 왜곡하지도 않으며, 누(屢:곱사)도 아니고, 껄끄럽지도 않으며, 국[汁]이 아닌 밥을 생각하며, 일어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고, 포문(胞門)을 죽이지도 않는다. 좁쌀 같지도 않고, 바퀴 같지도 않으며, 삵[狸] 같지도 않고, 보리 같지도 않으며, 속[中央]은 강철 같지도 않고, 속은 주석[錫] 같지도 않으며, 속에는 아무런 나쁜 정[惡精]이 없다. 또 얇지도 않고 두텁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붉지도 누르지도 않고 빛에 따라 흩어지지도 않는다. 또 바람이나 피ㆍ추위ㆍ더위와 섞이지도 않고, 또 소변이 정(精)과 섞이지도 않았다.
신(神)이 이미 정(精)에 머무르니, 신(神)이 지나간 뜻을 생각하여 태어나고자 해서 저 남자를 물리치고 자신이 대신해서 파리한 사람[羸人]과 함께 즐기고자 한다. 파리한 사람은 문득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를 좋아해서, 이미 좋아함과 좋아하지 않음을 더하는 생각을 내고는, 마땅히 이 남자를 물리치고
이 파리한 사람과 단독으로 함께 즐기려고 한다. 그리고는 곧 포문(胞門)에 멈추어서 뜻을 내어 남자를 물리치고 생각하기를 ‘나는 이미 예를 행하였다’고 한다.
부모는 그때에 정신을 좇아 문득 이르러서 생각하기를 ‘이것이 나의 정(精)이다’라고 한다. 그리고는 기뻐하는 생각을 내니, 이미 기쁨을 내는 사이에 자취가 사라지고 문득 정혈(精血)이 나오는데, 식(識)이 정혈 안에서 다시 애(愛)를 낸다. 중음은 식(識)을 사랑하여 정(精)에 떨어지지 않거니와 다만 본래의 업에 따라 다시 애식(愛識:사랑하는 감정)을 내고, 정(精)은 아기의 몸(身:色)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정(精)에서 생기니 이것이 통양종(痛痒種)이요, 이미 정(精)이 된 것을 알았으니 정이 된 것이 사상종(思想種)이 되며, 본래의 업에서 변천해가던 생각[行念]이 생사종(生死種)이요, 이미 정(精)을 알았음이 식종(識種)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종(種)의 요체이다.
즉시 두 가지 근[兩根], 즉 신근(身根)과 심근(心根)을 얻으니 정(精)이다. 첫 번째 7일은 줄어들지 않고[不減], 두 번째 7일은 정기가 생기니 얇기가 연유[酥] 위의 기름진 낙(酪)과 같고, 세 번째 7일은 정기가 엉기니 오래 묵은 낙(酪)이 그릇에 있는 것과 같다. 네 번째 7일은 정기가 약간 굳어지니 낙(酪)이 이루어진 것과 같고, 다섯 번째 7일은 정이 변화하니 낙소(酪酥)와 같고, 여섯 번째 7일은 낙소가 변화해서 굳어지는 것과 같다.
일곱 번째 7일에는 굳은 덩어리로 변화하니 마치 익은 보리죽 같고, 여덟 번째 7일에는 변화해서 익은 보리죽을 소멸시킬 만큼 굳으니 마치 맷돌[磨石子]과 같고, 아홉 번째 7일에는 맷돌 위에 다섯 군데 수(睡)가 생기니 두 어깨와 두 뺨과 하나의 머리이다. 열 번째 7일에는 역시 맷돌 위에 네 군데 주(肘)가 생기니 두 팔과 두 다리요, 열한 번째 7일에는 역시 맷돌 위에 스물네 군데 주(肘)가 생기니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이요 넷은 귀ㆍ눈ㆍ코ㆍ입이 붙은 곳이다.
열두 번째 7일에는 이러한 주(肘)들이 반듯해지고, 열세 번째 7일에는 배[腹]가 일어나고, 열네 번째 7일에는 심장ㆍ비장ㆍ신장ㆍ간장이 생기고, 열다섯 번째 7일에는 대장이 생기고, 열여섯 번째 7일에는 소장이 생기고, 열일곱 번째 7일에는 위가
생기고, 열여덟 번째 7일에는 생처(生處:生腸)ㆍ폐처(肺處)ㆍ숙처(熟處:熟腸)가 생긴다. 열아홉 번째 7일에는 볼기ㆍ무릎ㆍ팔ㆍ손바닥의 마디ㆍ발꿈치가 형성되고, 스무 번째 7일에는 음부ㆍ배꼽ㆍ젖ㆍ턱ㆍ목이 형성된다.
스물한 번째 7일에는 뼈와 골수가 필요에 따라 생기니, 아홉 가지 뼈는 머리에 붙고, 두 가지 뼈는 뺨에 붙고, 서른두 가지 뼈는 입에 붙고, 일곱 가지 뼈는 목구멍에 붙고, 두 가지 뼈는 어깨에 붙고, 두 가지 뼈는 팔에 붙고, 마흔 가지 뼈는 팔뚝에 붙고, 열두 가지 뼈는 무릎에 붙고, 열여섯 가지 뼈는 겨드랑이에 붙고, 열여덟 가지 뼈는 등줄기에 붙고, 두 가지 뼈는 목구멍에 붙고, 두 가지 뼈는 볼기에 붙고, 네 가지 뼈는 정강이에 붙고, 열네 가지 뼈는 발에 붙고, 백여덟 가지 미세한 뼈는 살 속에 섞여서 이렇듯 삼백 마디의 뼈가 연약하게 몸에 붙어 있는 것이 마치 표주박과 같다. 스물두 번째 7일에는 뼈가 약간 굳어지니 마치 거북이의 갑옷 같아진다.
스물세 번째 7일에는 정기가 더욱 굳어지니 마치 호두의 두꺼운 껍질과 같다. 이렇듯 삼백 마디의 뼈가 서로 이어지니, 발의 뼈는 장딴지에 붙고 장딴지는 볼기 뼈에 이어지고, 볼기 뼈는 등ㆍ척추ㆍ허리뼈에 이어져 다시 어깨에 이어지고, 어깨는 목에 이어지고 목은 다시 턱에 이어지고, 턱은 다시 이[齒]에 이어진다. 이렇듯이 뼈 무더기가 모여 쌓여 뼈의 성(城)을 이루거든 힘줄이 얽히고 피가 돌고 살이 붙고 가죽이 덮이니, 복업(福業)에 따라 이렇게 받아 통양(痛痒)이 없지는 않으나 바람에 따르고 뜻에 따라 이렇게 배열된다.
스물네 번째 7일에는 칠천 가닥의 힘줄이 몸을 얽고, 스물다섯 번째 7일에는 칠천 가닥의 맥이 이루어지나 아직 구족되지 않다가, 스물여섯 번째 7일에는 모든 맥이 모두 끝까지 구족하게 성취되니 마치 연뿌리의 구멍과 같다. 스물일곱 번째 7일에는 삼백육십 마디가 모두 이루어지고, 스물여덟 번째 7일에는 살이 생기기 시작하고, 스물아홉 번째 7일에는 살이 약간 굳고 풍만해지고, 서른 번째 7일에는 피막(皮膜)이 밀랍같이 형성되고, 서른한 번째 7일에는 피막이 약간 굳어지고, 서른두 번째 7일에는 겉 피막이 생긴다.
서른세 번째 7일에는 귀ㆍ코ㆍ배ㆍ지라ㆍ기름ㆍ마디마디의 간략한 모습이 나타나고, 서른네 번째 7일에는 몸 밖에 나타날 피부에 구십구만의 털구멍이 몸 안에서 이루어지고,
서른다섯 번째 7일에는 구십구만의 털구멍이 차츰차츰 이루어져 나타나고, 서른여섯 번째 7일에는 손톱이 생긴다.
서른일곱 번째 7일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갖가지 바람이 일어나는데 혹은 바람이 일어나서 눈ㆍ코ㆍ입이 열리게 하고, 열린 뒤에는 들어가고, 혹은 다시 바람과 먼지가 일어나 머리칼이나 손톱이 돋게 하되 단정하기도 하고 단정하지 못하게도 하며, 혹은 다시 바람이 일어나 피부색을 진하게 하되 혹은 희고 혹은 검고 혹은 노랗고 혹은 붉게 하거나 또는 예쁘게도 하고 밉게도 하며, 이 7일 동안에 골[腦]ㆍ피[血]ㆍ지방[肪]ㆍ기름[膏]ㆍ골수[髓]가 생기는데 뜨겁기도 하고 차기도 하며, 콧물과 대변과 소변의 길이 열린다.
서른여덟 번째 7일에는 어머니 뱃속에서 바람이 일어나 전생의 선과 악을 누리게 하는데, 좋은 일을 행한 이는 문득 향기로운 바람이 일어나 몸과 뜻을 기쁘게 하고 또 단정하여 사람들이 좋아하게 하고, 악을 행한 이는 냄새나는 바람이 일어나서 몸과 뜻을 불안하게 하고, 사람들이 싫어하게 하며, 뼈마디가 단정하지 않아 혹은 절음발이, 혹은 꼽추, 혹은 앉은뱅이, 혹은 난쟁이가 되어 사람들이 보면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괴이하게 여기게 한다. 서른여덟 번째 7일에는 아홉 달에서 나흘이 모자라는데 아기의 뼈마디가 다 갖추어진다.
아기가 태어날 때 전생의 행으로 두 가지 나뉨이 있으니, 하나는 아버지를 좇고, 하나는 어머니를 좇는다. 이때 터럭ㆍ머리칼ㆍ혀ㆍ목구멍ㆍ배꼽ㆍ심장ㆍ간장ㆍ지라ㆍ눈ㆍ볼기ㆍ피는 어머니를 좇고, 손톱ㆍ뼈ㆍ대소변ㆍ맥ㆍ정기, 그리고 뼈마디는 아버지를 좇는다.
전생의 행으로 어머니를 좇아 태어나니, 숙장(熟腸)은 아래에 있고 생장(生腸)은 위에 있거든 남자 아기는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등을 앞으로, 배를 뒤로 향해 자리하고, 여자 아기는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배를 앞으로 향하고 등을 뒤로 향하여 자리 잡는다.
머무는 곳은 냄새나는 오로(惡露)요, 모든 뼈마디는 가죽 주머니에 웅크린 채, 배 안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밖에는 똥오줌의 거름이 왕성하다.
아홉 달에 모자라는 4일(서른여덟 번째 주의 마지막 4일) 동안의 첫째와 둘째 날엔 전생부터 선을 행한 이는 문득 생각하기를 ‘나는 좋은 공원에 있다’ 하거나 혹은 ‘나는 지금 천상에 있다’ 하는데, 전생에 악을 행한 이는 생각하기를 ‘나는 지옥에 머무르고 있다’ 한다. 둘째 날에는 셋째 날을 생각하니 뱃속에서 즐거워하고, 셋째 날엔
넷째 날을 생각한다.
하루 낮, 하루 밤에 어머니 배 안에 아래위로 나부끼는 바람이 일어 아기는 이 바람을 따라 머리를 아래로 발을 위로 향하여 어머니의 포문(胞門)에 떨어진다.
전생에 선을 행한 이는 어머니의 포문에서 생각하기를 자신이 연못의 물[池水]에 떨어져 못물에서 놀고 있다 하거나, 혹은 높은 평상 위나 혹은 향기 나는 꽃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전생에 악을 행한 이는 생각하기를 높은 산에 있는 나무 위에 떨어졌다 하거나, 혹은 언덕 위나 구렁텅이나 진흙구덩이나 잡초 밭이나 그물이나 띠[茅]밭이나 칼과 창의 난간 위에 떨어졌다고 하여, 이렇듯 근심과 걱정에 시달려 정신이 없기도 하고 또 기쁨과 좋은 칭송을 즐기기도 하니, 좋은 행과 나쁜 행은 간 곳마다 자신을 속박하기도 하고 또 벗어나게도 한다.
이미 포문(胞門)에 얽히고 싸였다가 산호(産戶:陰門)가 갑자기 열리면서 땅에 떨어지니 바람은 다시 불고, 사람들이 따뜻한 물로 손발을 거칠게 씻으니 온몸이 아프기가 종기와 같다. 이로부터는 곧바로 전생의 일과 배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문득 다 잊는다.
이미 냄새나는 핏덩이에서 생겼기 때문에 문득 삿된 귀신과 혼ㆍ비시(魂飛屍)ㆍ속발(▼(鬼+屬)魃)ㆍ고매(蠱鬽)ㆍ허행(魖行)이 모여드니, 아버지도 이와 같아서, 마치 네 거리에 한 덩이의 살덩이가 있으면, 새매ㆍ수리ㆍ까치 등 뭇 새가 앞 다투어 모여들어 제각기 먹으려는 것과 같다. 아기를 둘러싸고 흐르는 것이 이와 같으니, 전생에 착한 행을 한 것이 있으면 붙지 못하고, 전생에 악을 행한 것이 있으면 능히 붙는다.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아 어머니가 문득 젖을 주어 기르니, 차츰 차츰 자라면서 문득 음식을 먹게 된다. 이미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80가지 벌레가 몸 안에 생기니, 두 종류는 머리카락 뿌리에 생기고, 세 종류는 머리에 붙고, 한 종류는 골[腦]에 붙고, 두 종류는 속골[中腦]에 붙으며, 세 종류는 이마에 있다.
두 종류는 눈의 뿌리[眼根]에 붙고, 두 종류는 귀에 붙고, 두 종류는 귀의 뿌리에 붙고, 두 종류는 코의 뿌리에 붙으며, 두 종류는 입[口門]에 붙고, 두 종류는 이[齒]에 있으며, 두 종류는 이의 뿌리에 있다. 한 종류는 혀에 있고, 한 종류는 혀의 뿌리에 붙으며, 한 종류는
입천장에 붙고, 한 종류는 목구멍에 있다.
두 종류는 무릎 밑에 있고, 두 종류는 팔 뿌리[臂根]에 붙으며, 두 종류는 손에 있고, 한 종류는 팔뚝에 붙어 있다. 두 종류는 볼기에 붙고, 한 종류는 가슴에 붙고, 한 종류는 유방 뿌리에 붙고, 한 종류는 척추 뿌리에 붙으며, 두 종류는 겨드랑이에 붙고, 두 종류는 등에 붙었으며, 한 종류는 배꼽 뿌리에 붙어 있다.
한 종류는 가죽에 붙고, 두 종류는 살에 붙으며, 네 종류는 뼈에 붙고, 다섯 종류는 골수에 붙으며, 두 종류는 대장에 붙고 두 종류는 소장에 붙으며, 한 종류는 숙처(熟處)에 있고, 한 종류는 한처(寒處)에 있으며, 한 종류는 대변 길[大便道]에 있다. 세 종류는 대장의 뿌리에 있고, 두 종류는 볼기 뿌리에 있으며, 다섯 종류는 음의 뿌리[陰根]에 있고, 한 종류는 손가락 마디에 있으며, 한 종류는 장딴지에 있고, 한 종류는 무릎에 있으며, 한 종류는 발꿈치에 있다.
이렇듯 80종류의 벌레가 몸에 붙어 낮밤으로 몸을 갉아 먹으니, 몸에는 문득 추위ㆍ더위ㆍ바람의 병(病) 등 세 가지에 각기 101가지씩 있고, 그 밖에 잡병이 또 101가지가 있다. 이와 같은 404가지 병이 몸 안에 있는 것이 마치 나무에서 불이 나와 다시 나무를 태우듯이 병도 또한 몸에서 나와 이와 같이 다만 몸을 무너뜨림도 다름이 없다. 이렇듯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병 또한 속에서 생기며, 다시 물을 것도 없이 밖에서 들어오는 번뇌도 항상 한 평생을 시달리게 하고 현재의 이 몸을 항상 쇠퇴하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들은 것이 없어서 다만 말하기를 자신은 즐겁다고 하나, 단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칼ㆍ손톱ㆍ치아ㆍ심장ㆍ피부ㆍ뼈ㆍ정혈(精血)은 뜨겁게 번거롭고, 대장ㆍ밥통ㆍ콧물ㆍ침ㆍ똥오줌은 몸에서 흘러나와 항상 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깨끗하다고 계교한다.
서역 오랑캐[都盧兒]가 피부를 걸어 합쳐 꿰매어 마치 한 무더기의 멧대추[酸棗]를 싼 꾸러미 같은 것을 몸이라고 집착하니, 이러한 멧대추를 싼 가죽 주머니를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쾌적한 몸이라 여기면서 스스로 무너뜨려 번뇌에 떨어진다.
마치 물고기가 먹이만 보고 낚시나 그물은 보지 못하는 것 같으며, 또 마치 어린애가 예리한
칼끝의 꿀을 핥되 꿀만 보고 날카로운 칼날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또 마치 금을 갈아 구리에 발라 속여서 팔거든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순금이라 여겨 짐짓 샀다가 스스로 손해를 보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멧대추를 싼 가죽 주머니 같은 몸을 보되 갖가지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이러한 멧대추를 싼 가죽 주머니를 풀어헤치면 단순히 뼈와 살과 피 뿐이어서 사람들이 바로 밟아 버릴지언정 더러워서 차마 볼 수도 없거늘, 하물며 껴안을 이가 있겠는가?
평소에 재앙을 행하여 복이 이미 다했거나 혹은 비명에 죽는 것이 마치 옹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데, 혹은 만들 때 깨지고, 혹은 칼1)질을 할 때, 혹은 물레를 돌릴 때, 혹은 돌리고 난 뒤, 혹은 말릴 때, 혹은 가마에 넣고 불을 땔 때, 혹은 가마에서 꺼냈을 때, 혹은 사용할 때 기회만 만나면 깨지는 것과 같다.
사람의 몸도 이와 같아서 혹은 배에 들자마자 죽고, 혹은 근(根)이 이루어지기 전에, 혹은 근이 미처 다 이루어지기 전에, 혹은 태어나는 도중에, 혹은 태어나자마자, 혹은 학업을 익히다가, 혹은 16세, 30세, 80세, 100세에 죽으니, 오래되어야 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연(機緣)에 따라 죽는다.
5음(陰)이란 것은 이와 같이 결단코 오래가지 못해서 태어나자마자 죽는 이도 있고, 발을 들 때 죽기도 하고, 발을 내릴 때 죽기도 하거늘, 세상 사람들은 들은 것이 없어서 젊었을 때의 몸, 장년일 때의 몸, 늙었을 때의 몸을 계교하여 자기의 몸이라 여기니, 행도자(行道者)의 뜻과는 다르다. 행도자는 이것으로부터 이것이 있고, 이것이 없음으로부터 이것이 없다.
어떤 것이 이것으로부터 이것이 있는 것인가? 죄의 행으로부터 죽음과 중음(中陰)이 있고, 중음의 식(識)으로부터 업(業)의 엷음에 떨어지고, 엷음을 좇아 엉김[凝]이 있고, 엉김으로부터 약간 굳어 6근(根)이 있고, 6근을 좇아 문득 태어나고, 태어남으로부터 아기가 있고, 아기로부터 자라남[壯長]이 있고, 자라남으로부터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있다. 이와 같이 항상 좇아서 이렇듯 세간은 바퀴 돌듯 끊어짐이 없고 속한 곳이 없으며, 비어서 허깨비 같고, 뒤쫓기를 그치지 않으니, 마치 성 안에 불이 나면 불과 바람이
집에 불어와 집들을 연이어 태우는 것과 같아서, 첫 번째 집의 불은 두 번째 집의 불이 아니지만, 또한 다만 윗집만 태울 뿐 아니라 다음 집도 다시 태운다. 이렇듯 차례차례 돌고 도는 것과 같이 나고 죽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 인연이 있지 않으면 이것도 또한 있지 않고, 이것이 멸하면 이것도 사라진다.
어떤 것이 이것이 있지 않으면 이것도 또한 있지 않은 것인가? 평소에 재앙과 복을 행한 것이 없으면 죽은 뒤의 중음도 있지 않으니, 이미 중음이 없다면 어찌 다시 갈 곳이 있으며, 이미 갈 곳이 없다면 어찌 태어남이 있으며, 이미 태어남이 없다면 어찌 늙음과 죽음이 있겠는가? 생사(生死)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니, 생사의 업을 행하지 않으면 즉시 멈춘다.
행도자(行道者)는 마땅히 알라, 이 5음(陰)은 본래 생멸의 법을 쫓는다.
이는 도지(道地)의 오종성괴장(五種成壞章)이라 부른다.

6. 신족행장(神足行章)

지혜가 맑으니 마음으로 들어옴이 물과 같고, 악을 깨뜨리니 나무가 종자와 꽃을 여읜 것과 같다. 세상을 건지는 즐거움과 그 공덕의 쌓임은 서늘한 바람을 즐거워할만하니 지나치지 않다. 스스로 한 마음에 귀의하노니,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는가? 지(止)와 관(觀)의 뜻은 저울의 추와 같은 것이니, 경에서 들은 바의 지와 관을 이끌어 세간을 밝힌다.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삼계에 거룩하신 모든 님께 예경을 드린다.
어떤 때엔 행자가 먼저 지(止)에 머물다가 문득 관(觀)을 얻기도 하고, 어떤 때엔 행자가 지(止)를 얻기 위하여 관(觀)에 머물다가 먼저 지를 얻는다. 어떤 행자는 지(止)를 이미 얻고 다시 관(觀)을 쫓아 해탈을 얻으며, 어떤 행자는 관이 이미 구족한 뒤에 지를 쫓아 해탈을 얻는다.
지(止)와 관(觀)의 모습은 어떠한가? 만일 뜻을 한 인연에 두어 그치게 하고, 그친 뒤에는 움직이지 않으며, 미혹되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이 지(止)의 모습이다. 만일 지처(止處)에서 치우친 분별의 치우침을 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어떤 느낌이 있는 듯하면 이것이 관(觀)의 모습이다.
비유컨대 금을 사려는 이가 금을 보고서 시험해 보지 않고 알면, 이를 지(止)라 할 것이요,
만일 금을 가지고 시험해 본 뒤에 이 금은 어느 나라 어느 곳의 것이라거나 구리가 섞여 진짜가 아니라거나 돌인 줄 알거나 빛깔이 좋고 나쁨과 길고 짧고 둥글고 모남을 알거나 그 밖의 다른 병통(病通)을 살펴 안다면, 관(觀)이란 것도 비유하자면 이와 같다.
비유컨대 사람이 꼴[芻]을 벨 때 왼손은 꼴을 잡고 오른 손은 낫을 잡고서야 꼴을 베는 것과 같으니, 이 비유에서처럼 꼴을 잡는 것은 지(止)요, 꼴을 베는 것은 관(觀)이다.
비유컨대 마치 행자(行者)가 해골바가지를 만나 자세히 보고 나면 눈을 떠도 보이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지(止)라 하고, 만일 자세히 분별하고 관찰하여 머리ㆍ턱ㆍ치아ㆍ목ㆍ팔ㆍ손ㆍ겨드랑이ㆍ목구멍ㆍ무릎ㆍ발의 뼈가 각기 다름을 안다면, 이것이 바로 관(觀)이다.
이와 같이 뼈가 이어졌으되 네 가지 인연으로 이루어졌음을 보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밥[食]과 예(禮)와 행(行)과 합(合)인데, 이 뼈들은 영원하지 않고 괴롭고 공(空)하고 내 몸이 아니니, 깨끗하지 못함을 좇아 생겨나 있는 바가 없다고 본다면, 이것이 관(觀)이다.
지와 관의 상(相)을 요구하여 들어서 분별하지 않으면 지(止)요, 분별하면 관(觀)이 된다.
지(止)에 뜻을 둔 행자(行者)는 어떤 행을 가지고 지의 뜻을 얻는가? 갖가지 인행(因行)으로 지의 뜻을 이루거니와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두 가지 인연의 방편으로 지의 뜻을 얻으니, 하나는 오로(惡露)를 생각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안반수의(安般守意)를 생각하는 것이다.
오로행(惡露行)은 무엇인가? 이것을 들은 행자는 평등한 뜻으로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는 곧바로 떠나서 부수(父樹:墓地)에 이르러 문득 수행하되 죽은 지 하루 된 시체를 관하고, 나아가서는 7일 된 것, 부풀어 터진 것, 푸른빛이 나는 것, 희생물[盟獸]같이 된 것, 반쯤 파괴된 것, 살이 다 빠진 것, 피가 씻겨나간 것, 뼈와 뼈가 연이어진 것, 힘줄이 서로 얽힌 것, 백골이 된 것, 백골이 사방에 무수하게 흩어진 것, 손으로 부수어 마치 비둘기 빛깔 같은 것을 관한다.
그 행자가 자연스럽게 하나를 선택하여 뜻을 펼쳐 알게 하면, 오래지 않아 뜻이 지(止)에 집중되니, 뜻을 펼쳐진 곳에 있게 해서 자세하고도 익숙하게 관찰한다. 만일 스스로 지금 이 펼쳐진 곳에서 안다면 그 근처
다른 곳에서도 스스로 볼 것이요, 먼 곳에 있어도 보이는 바가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텅 빈 한 곳에 문득 똑바로 앉아도 문득 보기를 마치 펼쳐진 인연이 있는 곳에서 본 것과 똑같을 것이요, 어디에서도 보이고 때에 따름도 이와 같을 것이다. 문득 길을 떠나 소리 없는 곳이나 말씀이 없는 곳이나 사람이 없어 빈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문득 반듯하게 앉으면 문득 위에서와 같이 오래 앉았던 곳을 보게 되니, 뜻으로 생각을 보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행자가 펼쳐진 인연을 잃어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뜻이 생기지 않거든, 문득 다시 부수(父樹)로 가서 펼쳐진 인연의 모습을 뜻으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해서 뜻을 거기에 앉히고, 다시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끌어내어 항상 눈앞에 있게 해야 한다.
만일 행자가 펼쳐진 인연에 뜻을 두었거든, 출입하거나 멀리 갔거나 항상 뜻을 지(止)에 두어 멀리 여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뒤에 밤낮으로 마음에 두어 반 달, 한 달, 한 해에 이르게 하면, 다시 행하게 할 뿐 아니라 행을 잃지 않게 된다. 다닐 때, 멈췄을 때, 홀로 앉았을 때, 여러 대중과 함께 앉았을 때, 병들어 피곤할 때, 힘이 있을 때에 연속하여 펼쳐진 뜻의 인연을 항상 생각하여 눈앞에 있도록 한다. 그리하면 펼쳐진 인연은 이와 같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자신이 아니어서 부정(不淨)하여 있는 바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본래의 인연을 뜻에 펼쳐서, 다닐 때에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게 하며, 만일 자기의 뜻이 펼쳐진 곳에서 자재(自在)함을 얻었거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되 죽은 시체와 자신이 평등하여 차이가 없다고 보며, 또 남자ㆍ수척한 사람ㆍ늙은이ㆍ젊은이ㆍ소년ㆍ단정하지 않은 이ㆍ반만 벗었거나 홀딱 벗은 이ㆍ옷을 입은 이ㆍ혹은 잘 장엄한 이 등을 볼 때에도 그렇게 관하여 생각을 펼쳤던 곳과 같이 한다.
만일 뜻과 생각이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모두 차이가 없게 보기를 문득 마치면, 응당 오로(惡露)를 생각함으로부터 지(止:寂滅)의 뜻을 얻은 것이니, 이때 뜻이 행을 따르되 생각을 여의지 않으면 행이 늘어나 가득 차는 것이 마치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7. 오십오관장(五十五觀章)


행도자(行道者)는 마땅히 55가지 인연으로 자신의 몸을 관(觀)해야만 하니, 이 몸은 거품과 같아서 잡을 수 없고, 이 몸은 바다와 같아서 다섯 가지 즐거움을 싫어하거나 만족하게 여기지 않으며, 이 몸은 큰 강과 같아서 날마다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를 원하고, 이 몸은 대변(大便)과 같아서 지혜로운 사람은 좋아하지 않으며, 이 몸은 모래성과 같아서 빨리 무너져 흩어져 버린다. 이 몸은 무너지는 성(城)을 만난 것과 같아서 원망하는 이가 많으며, 이 몸은 퇴화하는 성(城)과 같아서 가지고 있을 수도 잡을 수도 없고, 이 몸은 뼈의 관문[骨關] 같아서 피와 살이 묻어 있으며, 이 몸은 망가진 수레와 같아서 힘줄로 얽혀 있고, 이 몸은 집고양이[家猫]와 같아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몸뚱이다.
이 몸은 황폐해진 연못과 같아서 항상 어리석음으로 잃어버리며, 이 몸은 잊어버림[忘]과 같아서 좋은 뜻을 항상 잊어버리고, 이 몸은 방망이[楡]와 같아서 백여덟 가지 애욕이 횡행하며, 이 몸은 깨어진 병과 같아서 항상 새고, 이 몸은 그림이 그려진 병과 같아서 안에는 온갖 악이 뒤섞여 가득하다. 이 몸은 깨끗한 뒷간 같으니 아홉 문(門)이 있기 때문이고, 이 몸은 수레에 묻은 피 같아서 사람들이 싫어하며, 이 몸은 허깨비 같은데 어리석은 이는 진실이라 계교하고, 이 몸은 학질[疥]과 같으며, 이 몸은 여의(如意)와 같으니 괴로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 몸은 곡식을 썩히는 집 같으니 음식을 썩히기 때문이며, 이 몸은 큰 굴의 많은 벌레와 같아서 많은 벌레가 머물러 있고, 이 몸은 유골통과 같아서 죄가 차면 여우와 원숭이가 잊지 않으며, 이 몸은 굽지 않은 그릇 같으니 빨리 깨지기 때문이고, 이 몸은 입이 두 개인 자루와 같아서 깨끗한 것이 들어가 부정(不淨)한 것이 나온다. 이 몸은 횃대[幹]와 같아서 때 묻은 의상을 걸치며, 이 몸은 수레와 같아서 항상 굴러 죽음의 땅에 이르고, 이 몸은 이슬과 안개 같아서 오래 머물지 않으며, 이 몸은 종기와 같아서
항상 고름이 새고, 이 몸은 장님과 같아서 진리를 알지 못한다.
이 몸은 광장과 같아서 404가지 병이 모이며, 이 몸은 구덩이와 같아서 온갖 더러움이 모이며, 이 몸은 땅굴 같아서 독사가 머물고, 이 몸은 허공을 잡는 것과 같아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속는 바가 되며, 이 몸은 무덤 같아서 항상 두렵다. 이 몸은 범이나 사자가 함께 사는 것 같아서 갑자기 화를 내며, 이 몸은 간질병이 심한 것 같아서 88가지의 번뇌가 횡행하고, 이 몸은 담 밑의 길 같아서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며, 이 몸은 구리[銅]와 같아서 금빛 피부에 덮였고, 이 몸은 허공이 모인 것 같으나 항상 그 가운데 미세하게 6쇠(衰)가 있다.
이 몸은 아귀와 같아서 항상 음식을 구하며, 이 몸은 두려운 곳과 같아서 항상 늙고 병들어 죽고, 이 몸은 썩은 해골과 같아서 항상 궂은 물에 덮여 있으며, 이 몸은 원수와 같아서 항상 일을 이루면 악한 인연을 만나고, 이 몸은 가타(迦陀)나무 껍질 같아서 껍질 밑에는 아무 것도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이 몸은 나루터와 같아서 짐은 많은데 배는 적고, 이 몸은 썩은 주머니와 같아서 냄새가 나며, 이 몸은 깊은 어둠과 같아서 62가지 의심이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이 몸은 마치 부드러운 질투와 같아서 만나지 않을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으며, 이 몸은 썩은 담벼락 같아서 나쁜 생각의 인연을 쫓는다.
이 몸은 더러움의 무더기 같아서 속에 악을 품었으며, 이 몸은 뜻하지 않음[不意]과 같아서 항상 외부의 쇠퇴함을 만나고, 이 몸은 의지할 데 없는 것과 의지할 데 없는 집 같아서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모두 독살시키며, 이 몸은 가까이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가까이하면 항상 부서지고, 이 몸은 지킬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때때로 병마에 의해 모두가 독살되며,
이 몸은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것과 같아서 죽음이 닥치면 여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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