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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01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권

by Kay/케이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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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

 

대반열반경 제2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 수명품②

그때 모인 대중 가운데 한 우바새가 있었는데, 구시나성에 사는 장인[工巧]의 아들로서 이름은 순타(純陀)였다. 그 동료 15인과 함께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과보를 얻게 하려고 몸의 위의(威儀)를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바라건대 세존과 비구 대중이시여,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마지막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그것은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부터 주인도 없고 어버이도 없으며, 구원해 줄 이도 없고 보호해 줄 이도 없으며, 귀의할 데도 없고 나아갈 데도 없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하고 굶주리고 곤고할 것이기에 여래에게서 장래의 먹이를 구하려 합니다. 바라건대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 작은 공양을 받으신 뒤에 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찰리ㆍ바라문ㆍ비사(毘舍)ㆍ수타(首陀)가 가난하고 곤궁하여 다른 나라에 가서 농사를 지을 때에, 길이 잘든 소를 얻고 반듯한 좋은 밭에 모래와 소금기가 없고 나쁜 풀이 자라지 않으니 다만 하늘에서 비 오기만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길이 잘든 소는 몸과 입으로 짓는 일곱 가지 업에 비유한 것이고, 반듯한 좋은 밭은 지혜에 비유한 것이며, 모래와 소금기와 나쁜 풀을 덜어내는 것은 번뇌를 끊는 데 비유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의 몸에는 길이 잘든 소와 좋은 밭이 있고 나쁜 풀을 베어 버렸고, 다만 여래의 감로 같은 법의 비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가난한 네 가지 종성[四姓]이란 곧 나의 몸이 위없는 법의 재물과 보배에 있어 가난함이니, 바라건대 가엾이 여기셔서 저희들의 가난하고 곤궁함을 없애 주시고, 고통 받는
한량없는 중생을 건져 주십시오. 저희의 이 공양이 보잘것없으나 부처님과 대중에게는 충분하게 하십시오. 저는 지금 주인도 없고 어버이도 없고 돌아갈 데도 없으니, 아드님 라후라처럼 아끼고 가엾이 여겨주십시오.”
그때 온갖 지혜를 갖추시고 위없는 조어장부(調御丈夫)이신 세존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내가 지금 너의 가난하고 곤궁함을 없애고, 위없는 법의 비를 너의 몸의 밭에 내려 법의 싹이 트게 하겠다. 너는 지금 나에게서 수명과 훌륭한 모습과 힘과 안락과 변재(辯才)를 얻으려 하니, 너에게 수명과 훌륭한 모습과 힘과 안락과 걸림 없는 변재를 베풀어주겠다.
왜냐하면 순타여, 음식을 보시하면 차별이 없는 두 가지 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받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며, 두 번째는 받고나서 열반에 드는 것이다. 나는 지금 너의 마지막 공양을 받고 너로 하여금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구족하게 할 것이다.”
그때 순타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보시를 받은 이는 번뇌가 다하지 못하였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지 못하였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보시 받은 이는 번뇌가 이미 다하였고 일체종지를 이룩하였으며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널리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앞에 보시 받은 이는 아직 중생이고 나중에 보시 받은 이는 하늘 중의 하늘이겠으며, 또 앞에 보시를 받은 이는 잡식하는 몸이고 번뇌가 있는 몸이고 최후의 끝이 있는 몸[後邊身]이고 무상한 몸입니다. 나중에 보시를 받은 이는 번뇌가 없는 몸이고 금강 같은 몸이고 법신이고 늘 있는 몸이고 끝없는 몸입니다. 어찌하여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고 하십니까?
앞에 보시 받은 이는 보시바라밀과 나아가 지혜바라밀[般若波羅蜜]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며, 오직 육신의 눈만 얻고 부처님의 눈이나 나아가 지혜의 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시 받은 이는 보시바라밀과 나아가 지혜바라밀을 구족하였으며, 부처님의 눈과 나아가 지혜의 눈을 구족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두 가지 보시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앞에 보시 받은 이는 받아먹어 배에 들어가 소화되어 수명을 얻고, 모습을 얻고 힘을 얻고, 안락을 얻고, 걸림 없는 변재를 얻을 것이지만, 나중에 보시 받은 이는 먹는 것도 아니고 소화되는 것도 아니라 다섯 가지 과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래는 이미 한량없고 끝없는 아승기겁 전부터 잡식하는 몸과 번뇌 있는 몸이 아니고, 또 최후의 끝이 있는 몸이 아니고 늘 있는 몸이며, 법신이며 금강 같은 몸이다.
선남자야, 불성(佛性)을 보지 못한 이는 번뇌의 몸이고 잡식하는 몸이니 이는 최후의 끝이 있는 몸이다. 보살이 그때 음식을 받고나서 금강삼매에 들었고, 이 음식이 소화된 뒤에는 곧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다.
보살이 그때도 네 가지 마군을 깨뜨렸고 지금 열반에 들면서도 네 가지 마군을 깨뜨리므로, 내가 말하기를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다. 보살이 그때 비록 12부 경전을 널리 말하지 않았으나 이미 통달하였고, 지금 열반에 들어서는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하는 것이므로 두 가지 보시의 과보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여래의 몸은 이미 한량없는 아승기겁부터 음식을 받지 않았지만 모든 성문(聲聞)들을 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전에 난타(難陀)와 난타바라(難陀波羅)라는 소 기르는 두 여자가 받드는 우유죽을 받고 그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로 먹지는 않은 것이며, 지금도 내가 여기 모인 대중을 위하여 너의 마지막 공양을 받기는 하되 실상은 먹지 않은 것이다.”
그때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두루 모인 이들을 위하여 순타의 마지막 공양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기뻐 뛰며 같은 소리로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드문 일입니다. 순타여, 그대의 이름이 헛되지 않습니다. 순타란 말은 ‘묘하게 안다’는 뜻이니, 그대가 지금 이러한 뜻을 세웠으므로 진실에 의거하고 뜻을 따라 순타라는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대는 이제 이 세상에서 큰 이름을 얻고 공덕과 소원을 만족하였으니 매우 기특합다.
순타여, 사람의 세상에 나서 얻기 어려운 다시없는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훌륭합니다. 순타여, 마치 우담바라꽃이 세간에 드문 것처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는 것도 매우 어렵고, 부처님 세상을 만나 신심을 내고 법문을 듣는 것은 더욱 어렵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마지막 공양을 마련하는 것은 이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나무 순타! 나무 순타! 그대 이제 보시바라밀을 구족하였으니, 마치 가을달이 보름밤에 깨끗하고 원만하며 한 점 구름도 없어 모든 중생들이 우러러보지 않는 이가 없는 것처럼, 그대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우러르는 자가 되었으며, 부처님께서 그대의 마지막 공양을 받으셔서 그대의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게 하셨습니다.
나무 순타! 그러므로 그대는 뚜렷한 보름달과 같아서 모든 중생이 쳐다보지 않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나무 순타! 비록 사람의 몸을 받았지만, 마음은 부처님 마음 같으니, 지금 순타는 참으로 부처님의 아들이며 라후라와 같아서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 대중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 비록 인간에 태어났으나
이미 욕계의 제6천을 초월하였습니다.
나와 모든 중생들이 이제 여기서
머리 숙여 간청합니다.

인간 중에 가장 높은 세존께서
지금 열반에 드시려는데
그대는 우리들을 가엾이 여겨
바라오니 한시바삐 부처님께 청해주십시오.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무시면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시고
찬탄 받을 지혜이며
그 위에 다시없는 감로 법문을
연설하여 주십사고 청해주십시오.

그대 만일 부처님께 청하지 않으면
우리의 목숨이 장차 안전하지 못할 것이니
조어장부 천인사께 머리 조아려
간절히 청하는 것 보여주십시오.

그때 순타는 기뻐 뛰는 것이 마치 어떤 사람의 부모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났을 때처럼, 순타도 그와 같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게송을 읊었다.

좋구나, 이내 몸 이익을 얻었구나.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났거니
탐욕과 성내는 것 모두 버리고
세 가지 나쁜 길을 아주 떠났네.

좋구나, 이내 몸 이익을 얻었구나.
금덩어리 보배를 얻은 듯이
조어장부 천인사를 만났으니
축생에 떨어질까 두렵지 않네.

부처님께서는 우담바라꽃과 같구나.
만나도 신심 내기 어렵다지만
만나 뵙고 선근까지 심었으므로
아귀의 쓰린 고통 영원히 없앴다.

또한 줄였는데
그것은 아수라 종류였네.
부처님 나시는 일은
겨자씨 던져 바늘 끝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려운데
나는 이미 보시로 인간과 천상의 생사 건넜다네.

부처님께서는 세상 법에 물들지 않으니
연꽃에는 물방울도 묻지 않는 것과 같다네.
삼계에 태어나는 종자를 끊어
나고 죽는 물결을 영원히 건넜네.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도 어렵지만
부처님 만나기는 더욱 어려워
큰 바다의 눈먼 거북이
나무 구멍 만나기보다 어렵다네.

내가 지금 받치는 이 음식으로
더 없는 좋은 과보 얻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 온갖 번뇌 끊어버려서
견고한 감옥[堅牢]도 부수어 버렸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 공덕으로
천상 인간 태어나기 바라지 않고
어쩌다가 그런 몸 받는다 해도
마음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

여래께서 나의 공양 받으시니
기쁘기 한량없어라.
마치 보기 흉한 이란(伊蘭)꽃에서
아름다운 전단 향기가 풍기는 것 같으니

이내 몸 더럽기가 이란꽃 같지만
부처님께서 나의 공양 받아 주시니
전단 향기 풍기는 것 같아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환희한다네.

내가 지금 훌륭한 과보를 받아
가장 좋고 묘한 곳에 태어나면
제석천왕 범천왕 등 모든 천신이
모두 다 내게 와서 공양할 것이리.

오늘날 모든 세간 많은 중생이
모두들 큰 걱정을 느끼는 것은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 함을 아는 까닭이라네.

한꺼번에 소리 높여 외치는 말
이 세간에 지도할 이가 없으니
원컨대 중생들을 버리지 마시고
외아들 보듯이 하소서.

부처님 대중 속에 항상 계시어
더없는 좋은 법문 연설하소서.
마치 저 보배덩이 높은 수미산이
바다 위에 우뚝한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는
우리들 무명을 잘 끊어주시니
마치 허공에서
구름이 일어나 시원해지는 것 같아라.

부처님의 좋은 방편
우리의 모든 번뇌 없애 주시니
해가 뜰 때
구름을 없애 그 빛이 두루 비치는 것 같아라.

이 세상 많은 중생들이
흐느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것은
끝없이 나고 죽는 고통의 바다
거친 물결에서 헤매는 까닭이라네.

그러므로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중생의 믿는 마음 길러 주시며
나고 죽는 그 고통 끊기 위하여
오래오래 세상에 머물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네가 말한 것처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는 것은 우담바라꽃이 피는 것처럼 어렵고, 부처님 세상에 함께 나서 신심을 내기는 더욱 어렵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 마지막 공양을 받들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기는 그보다도 더 한층 어려운 일이다.
그대 순타야, 너무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뛸 듯이 기뻐하며 경사스럽게 생각하고 다행하게 여겨라. 마지막 공양을 여래께 받들어 보시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니, 부처님께 세상에 오래 머물도록 청하지 마라. 너도 지금 보듯이 부처님들의 모든 경계는 모두 무상한 것이고, 여러 가지 변천하는 성품과 모양도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순타에게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난 것이란 죽고야 말고
목숨이 길다 해도
반드시 다한다.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고
모인 것은 마침내 헤어진다네.
젊음은 오래 못 가고
건강에는 병고가 침범하니

목숨은 죽음이 삼켜버려서
항상 있는 법이라곤 하나도 없네.
나라의 임금들은 멋대로 하고
서슬 푸른 세력이 비교할 짝이 없네.


온갖 것 무상하여 옮아가나니
이 목숨도 그러하다.
온갖 고통 바퀴 끝날 새 없고
나고 죽고 헤매는 일 쉬지 않네.

욕계ㆍ색계ㆍ무색계 덧없는 세상
모든 존재에게 즐거움이란 없으니
도(道)라는 것의 본래 성품과 모양
온갖 것이 모두 다 공하네.

견고하지 못한 법 바뀌고 흘러
근심과 걱정이 항상 있으며
두려워라, 모든 허물과 악함
늙고 병들고 죽고 쇠퇴하고 고뇌하는 것이네.

이런 것들은 끝도 없으니
부서지기 잘하고 원수가 침노하는구나
시끄러운 번뇌에 얽히는 일은
누에가 고치 속에 들어 있는 듯하네.

누구라도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즐겁다고 애착하리오
이 몸은 온갖 고통 모여서 된 것
하나하나 모든 것 더러울 따름이네.

눌리고 얽매이고 헌데 투성이
근본부터 보잘것없는 일이라네
인간에나 천상에 태어나는 몸
누구나 한결같이 다 그러하네.

온갖 탐욕 모두가 무상하거니
그러기에 이내 몸 애착 않는다네
모든 욕심 여의고 삼매를 닦아
진실한 바른 법을 증득하였네.

마침내 모든 생사 끊어 버린 이
오늘 큰 열반에 드시려 하는구나.
생사 없는 저 언덕 나는 건너가
이 세상 온갖 고통 벗어났네.

그러므로 오늘날 항상 즐거운
위없이 묘한 낙을 받을 뿐이네.

이러한 인연 때문에
희론이 없는 변(邊)을 증득하고
영원히 모든 계박을 끊고
오늘 열반에 들고자 한다네.

나에겐 늙음과 병과 죽음이 없고
수명도 다하지 않았으나
오늘 열반에 들고자 한다네.
마치 큰 불이 소멸하는 것과 같이.

순타야, 너는 마땅히
여래의 뜻을 헤아리지 말고
여래가 머무는 것이
마치 수미산 같음을 관하라.

나는 지금 열반에 들고자 한다.
제일의 즐거움을 받았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도 이와 같으니
부르짖으며 울지 마라.

그때 순타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참으로 부처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진 지혜는 보잘것없어 마치 모기나 독충과 같으니 어찌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는 깊고 묘한 이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여러 큰 코끼리[龍象]인 보살마하살과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린 문수사리 법왕자 등과 함께 있습니다.
비유하면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못하였더라도
스님들 중에 참여하는 것처럼, 저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과 보살들의 신통력으로써 이런 큰 보살 축에 들어 있나이다. 그래서 저는 지금 부처님께서 오래도록 세상에 계시고 열반에 들지 마시기를 바라는 것이니, 마치 굶주린 사람이 변할 것도 토할 것도 없는 듯이, 바라건대 세존께서도 그와 같이 항상 세상에 계시고 열반에 들지 마십시오.”
그때 문수사리법왕자가 순타에게 말하였다.
“순타여, 그대는 지금 그와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항상 계시고 열반에 들지 말기를, 마치 굶주린 사람이 변하지도 토하지도 않는 것같이 하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모든 행법의 성품과 모양을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 수행하여 공한 삼매를 갖추어야 하니, 바른 법을 구하려거든 이렇게 배워야 한다.”
순타는 이렇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여래께서는 천상ㆍ인간에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시니 이러한 여래가 어찌 행법[諸行]이겠습니까? 행법이란 것은 났다 없어졌다 하는 법이니, 마치 물거품이 금방 생겼다 금방 꺼지며, 굴러가고 굴러오기를 수레바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모든 행법은 이런 것이 아닙니까? 제가 듣기에는 천신들의 수명이 매우 길다는데, 하늘 중에 하늘이신 세존의 수명이 이렇게 짧아서 100년도 차지 못한단 말입니까?
한 고을의 주인이 되어도 그 세력이 자재하고, 그 자재한 세력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다가 그의 복이 다하여 빈천해지면 다른 이의 경멸을 사고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세력을 잃은 탓입니다. 부처님도 그러하여 모든 행법과 같다면 행법과 같은 이를 어떻게 하늘 중의 하늘이라 하겠습니까? 행법은 나고 죽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 하지 마십시오.
또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법과 같다는 것은 알고 하는 말입니까,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만일
여래가 행법과 같다면 이 삼계 가운데서 하늘 중의 하늘로 자재하신 법왕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마치 어떤 임금에게 큰 역사(力士)가 있어 힘이 천 사람을 대적할 수 있다면, 그를 당할 사람이 다시없으므로 천 명을 대적하는 역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는 임금이 사랑하고 벼슬을 높여 녹(祿)과 상(賞)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천 명을 대적하는 역사란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반드시 천 명을 대적할 힘이 없더라도 그의 여러 가지 기술이 천 사람을 이길 수 있으므로 천 명을 대적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마군ㆍ5음의 마군ㆍ하늘 마군ㆍ죽음의 마군을 항복받으므로 여래를 3계의 가장 높은 이라 일컫습니다. 마치 저 역사가 천 명을 당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가지가지 한량없는 진실한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여래ㆍ응공ㆍ정변지라고 합니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억지 생각으로써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 분별하지 말 아야 합니다. 마치 큰 부자 어른이 아들을 낳았을 때에 관상쟁이가 상을 보고 단명하겠다고 하면, 부모가 듣고는 가문을 계승하지 못할 줄 알고 더는 귀여워하지 않고 초개같이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단명한 사람은 사문ㆍ바라문 등 남녀노소의 공경을 받지 못하는 것인데, 만일 여래가 행법과 같다면 어떻게 천상 인간 모든 중생의 공경을 받겠습니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변치 않고 달라지지 않는 진실한 법문도 받을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또 문수사리여, 비유하자면 어떤 가난한 여인이 집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는데, 병까지 걸리고 기갈에 못 견뎌 거지로 다니다가
어느 객점에서 아기를 해산했습니다. 그러나 객점 주인에게 쫓겨나 출산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기를 안고 다른 데로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옷이 젖고 떨리는 고통이 막심한 가운데, 모기ㆍ등에ㆍ벌ㆍ독충 따위에게 쏘이고 뜯겼습니다. 항하를 지나게 되자 아기를 안고 건너는데 그 물이 세차게 흘렀으나 아기를 놓지 않아 모자가 함께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여인이 아기를 사랑한 공덕으로 죽어서 범천에 태어남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선남자가 바른 법을 보호하려거든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도 같지 않다고도 말하지 말고, 다만 스스로 책망하기를 ‘내가 어리석어 지혜의 눈이 없으니 여래의 바른 법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를 가리켜 함이 있다[有爲]고도 함이 없다[無爲]고도 하지 말 것이니, 만일 바른 소견을 가진 이라면 여래는 반드시 함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생들에게 선한 법을 내게 하며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이니, 저 가난한 여인이 항하를 건너다가 아기를 사랑하여 생명을 버린 것과 같은 까닭입니다.
선남자여, 법을 보호하는 보살도 그와 같아서 생명을 버릴지언정, 여래가 함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 말고 함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래가 함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마치 저 여인이 범천에 태어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하건대 법을 수호한 까닭입니다. 어떻게 법을 수호하였는가 하면, 여래가 함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남자야, 이런 사람은 해탈을 구하지 않아도 해탈을 저절로 이룰 것이니, 저 여인이 범천에 나기를 구하지 않았지만 범천에 나게 된 것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피곤하여 남의 집에 들어가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잠이 든 사이에
그 집에 불이 나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뛰어 나갈 기운도 없고 죽을 것이 틀림없었으나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옷으로 알몸을 둘렀습니다. 그리하여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그 뒤부터 여든 번이나 대범천왕이 되었으며, 백천 대가 되도록 인간에 태어나서 전륜왕이 되었고, 이 사람이 다시는 나쁜 갈래에 나지 않고 항상 안락한 곳에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인연으로 부끄러움이 있는 선남자는 부처님께서 행법과 같다고 보지 말아야 합니다.
문수사리여, 외도들의 나쁜 소견으로는 여래가 함이 있는 법과 같다고 하겠지만, 계행을 가지는 비구는 부처님께 함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 말하면 이것은 허망한 말이니, 이런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기를 제집에 들어가듯 할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진실로 함이 없는 법이시니 다시는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나고 죽는 속에서 무지한 생각을 버리고 바른 지혜를 구하여 여래가 함이 없는 법인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여래를 관찰하면 32상을 구족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성취할 것입니다.”
그때 문수사리법왕자는 순타의 말에 감탄하여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그대는 지금 장수할 인연을 짓고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이며 변하지 않는 법이며 함이 없는 법임을 자세하게 알았다. 이제 또 이와 같이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렸으니, 마치 불에 타서 죽을 사람이 부끄러운 생각으로 옷으로 몸을 덮어 가리고,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나서 범천왕이 되고 또 전륜왕이 되며,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쾌락을 받는 것과 같이 그대도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린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32상과 80종호를 얻을 것이고, 보살과 2승으로는 따를 수 없는 18불공법(不共法)을 구족할 것이며, 한량없는 수명으로 생사에 들어가지 않고 항상 안락을 받다가 오래잖아 응공ㆍ정변지를 이룰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다음에 널리 연설하시겠지만, 나와 그대는 함께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릴 것이며,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이야기는 아직 그냥 두고, 그대는 이때에 빨리 공양을 올려라. 이렇게 보시하는 것이 모든 보시 중에 가장 으뜸이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나 우바새나 우바이가 먼 길을 가다가 피곤하여서 요구하는 물건이 있거든, 때를 놓치지 말고 깨끗하게 베풀어 주어야 하니, 이렇게 빨리 보시하는 것은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의 근본 종자를 구족하는 것이다.
순타야, 마지막 공양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올리려거든,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거나 만족치 못하거나 간에 시기를 놓치지 말고 빨리 베풀어라. 부처님께서는 지금 곧 열반에 드실 것이다.”
순타가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여, 당신은 어찌하여 이 음식을 탐내어서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거나 만족치 못하거나 간에 빨리 보시하라 합니까? 옛날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 고행하시면서도 스스로 견디셨는데, 더구나 오늘날 잠깐 동안이겠습니까?
문수사리여, 당신은 바로 깨달으신 여래께서 참으로 이 음식을 받으시리라 생각합니까? 나의 생각으로는 여래의 몸은 곧 법신인지라, 음식을 먹는 몸이 아닌 줄로 압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순타의 말과 같다. 순타는 이미 미묘한 큰 지혜를 이루었으며 깊고 깊은 대승 경전에 잘 들어갔다.”
문수사리는 순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여래께서는 함이 없는 법이며 여래의 몸이
장수한다고 하니, 그러한 지견을 부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나만 좋아하실 뿐 아니라 모든 중생들까지 좋아하십니다.”
“여래께서는 그대와 우리 모든 중생들을 두루 좋아하신다.”
순타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여래께서 좋아하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좋아하는 것은 뒤바뀐 생각이니, 뒤바뀐 생각이 있으면 그것은 나고 죽는 것이며, 나고 죽음이 있으면 곧 함이 있는 법[有爲法]입니다. 그러니까 문수사리여, 여래가 함이 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여래가 함이 있다고 말하면 나와 당신이 모두 뒤바뀜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사랑하여 염려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사랑하여 염려한다고 하는 것은 저 어미 소가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록 돌아다니면서 꼴과 물을 찾다가도 넉넉하건 못하건 간에 홀연히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들께는 이런 생각이 없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라후라와 같이 평등하게 생각하시니, 이렇게 생각하심은 곧 부처님들의 지혜의 경계입니다.
문수사리여, 마치 임금이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 달릴 때에 나귀 수레로는 따를 수 없는 것과 같이, 나와 당신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비밀하고 깊은 이치를 다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마치 금시조(金翅鳥)가 한량없이 높은 허공으로 날아다니면서 바다를 내려다보아도 물속에 있는 고기ㆍ자라ㆍ거북ㆍ용 따위를 분명히 보며 자기의 그림자 비친 것은 거울을 들고 얼굴을 보듯 하지만, 지혜가 없는 범부들은 그 이치를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아 나와 당신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지혜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순타에게 말하였다.
“그렇다,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나도 이 일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에게 보살의 경계를 시험하려 한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입으로 가지가지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이 찬란하게 문수의 몸을 비추었다. 문수사리는 이 광명을 받고 그 이유를 알고서 이윽고 순타에게 말하였다.
“순타야, 부처님께서 지금 이 상서로운 일을 나타내시는 것은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드시려는 것이다. 그대가 마련한 마지막 공양을 이때에 부처님과 대중에게 베풀도록 해라. 순타야, 부처님께서 이런 광명을 놓으심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순타는 이 말을 듣고 슬픔을 참으며 잠자코 있었다.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순타야, 네가 여래와 대중에게 보시하려는 공양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나는 이제 열반에 들겠다.”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도 이와 같이 하였다.
그때 순타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소리를 높여 통곡하면서 흐느껴 말하였다.
“괴롭습니다. 괴롭습니다. 세상이 텅 비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중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한꺼번에 몸을 던져 땅에 엎드려 한목소리로 부처님께 열반에 들지 마시기를 권청합시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순타에게 말씀하였다.
“너무 울어서 마음을 초췌하게 하지 말고, 이 몸은 파초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물거품ㆍ요술ㆍ건달바성ㆍ굽지 않은 기와ㆍ번갯불 같으며, 물에 그림 그리기ㆍ사형에 임한 죄수ㆍ물러진 과일ㆍ고깃덩이ㆍ다 짜고 남은 베틀ㆍ방앗공이의 오르내림과 같다고 관찰하라. 모든 행법은 독약 섞인 음식과 같으며, 함이 있는 법은 걱정이 많다는 것을 관찰하라.”
이에 순타는 부처님께 다시 여쭈었다.
“여래께서 세상에 오래 계시지 않으려 하시니, 제가 어떻게 울지 않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세간이 텅 비려 하니 바라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들과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오래오래 세상에 머무르시고 열반에 들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순타야, 너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무십시오’라는
말을 하지 마라. 나는 너와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오늘 열반에 들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들이 으레 그렇고, 함이 있는 법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들은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함이 있는 법이란
그 성품이 무상하여
나고서는 머물지 않으니
적멸(寂滅)만이 즐거움이라네.

순타야, 너는 지금 이렇게 관찰하여라. 온갖 행(行)은 잡되고, 모든 법은 나라고 할 것이 없고 무상하고 머물지 않으며, 이 몸에는 한량없는 걱정이 있어서 마치 물거품 같다. 그러니까 너는 울지 마라.”
그때 순타는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그러합니다. 참으로 부처님 말씀과 같습니다. 비록 여래께서 방편으로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이는 줄 압니다만 저는 근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 스스로 생각하면 다시 기쁨을 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순타를 칭찬하셨다.
“순타야,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여래가 중생들과 같음을 보이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하는 줄을 네가 아는구나. 순타야, 너는 지금 들어라. 사라사(娑羅娑)새가 봄철이 되면 저 아뇩달(阿耨達) 못에 모이듯이 부처님들도 그와 같이 모두 이곳에 이른다.
순타야, 너는 지금 부처님이 장수하거나 단명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모든 법이 모두 허깨비의 모양과 같은 것인데, 여래는 그 속에 있으면서도 방편의 힘으로 물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들은 으레 그렇기 때문이다.
순타야, 내가 이제 네가 받드는 공양을 받으려는 것은 너로 하여금 나고 죽는 모든 무리들을 건져 해탈하도록 하려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나 천상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공양하는 이는 모두 변동 없는 과보를 얻어 항상 안락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중생들의 좋은 복전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일 중생들의
복전이 되려거든 빨리 공양을 마련하여 오래 지체하지 마라.”
그때 순타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복전이 되는 것을 감당하게 되는 때라면 여래의 열반하심과 열반하지 않으심을 분명히 알 수 있겠으나, 우리들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의 지혜는 마치 모기나 하루살이 같으니, 진실로 여래의 열반하심과 열반하지 않으심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때 순타와 그의 권속들은 수심에 잠겨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을 에워싸고 돌면서 향을 태우고 꽃을 흩어 마음껏 공경하여 받들다가, 이윽고 문수사리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나 공양거리를 마련하였다.
순타가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 이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범천에까지 그러하였다. 땅이 진동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지동(地動)과 대지동(大地動)이다. 조금 동하는 것을 지동이라 하고, 크게 동하는 것을 대지동이라 하며, 조금 소리 나는 것을 지동,
크게 소리 나는 것을 대지동이라 하며, 땅만 동하는 것은 지동, 산과 바다와 숲들이 모두 동하는 것은 대지동이라 하며, 한쪽으로만 동하는 것은 지동, 두루 도는 것을 대지동이라 하며, 진동만 하는 것은 지동, 진동할 때에 중생의 마음까지 동하는 것을 대지동이라 한다.
보살이 처음 도솔천에서 염부제로 내려올 때는 대지동이라 하고, 처음 나서 출가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고 법의 수레를 운전하고 열반에 드는 것도 대지동이라 하니, 오늘 여래께서 열반에 들려고 하시기 때문에 이 땅이 그와 같이 크게 진동하는 것이다.
그때에 하늘과 용과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이 소리를 듣고 털이 곤두서고 같은 소리로 슬피 울면서 게송을 읊었다.

머리 조아려 부처님께 예배합니다.
저희들이 지금 간청하오니
인간의 신선님을 멀리 여의면
영원히 구호할 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을 지금 보게 되면
저희들은 고통 바다 빠지게 되어
근심 걱정하며 슬퍼하고 고뇌하며
어미 잃은 송아지처럼 될 것입니다.

가난하고 곤궁하고 돌볼 이 없는 것이
마치 고통스런 병자가
의사가 없어서 제 마음대로
못 먹을 것을 먹은 것과 같습니다.

중생들의 번뇌 병도 그와 같아서
잘못된 소견들의 해를 받나니
바른 법의 의사를 멀리 여의면
나쁘고 독한 약을 먹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세존이시여
버리고 떠나지 마십시오.
임금 없는 나라에
백성이 모두 굶듯이

저희들도 역시 그러하니
보호를 받는 일과 법미(法味)를 다 잃게 됩니다.

부처님 열반한다는 말씀 듣고
저희들의 가슴이 미혹하고 혼란하니
그 같은 큰 지동(地動)이 일어나면
방향을 살필 정신도 없을 것입니다.

대선(大仙)께서 열반에 들게 되시면
지혜의 해[佛日]가 땅속에 꺼질 것이고
법의 물[法水]이 한꺼번에 말라 버려
저희들은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중생들이 한없이 고통스러워함은
비유컨대 장자의 아들이
부모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열반에 한번 드시고
다시는 이 세상에 안 오신다면
우리들과 다른 모든 중생들을
구호(救護)할 이가 없습니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니
사람부터 축생들까지
너도나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괴로움이 모든 마음 태우니

하물며 오늘 저희 중생들
어찌 근심스럽고 괴롭지 않겠습니까?
여래께서 저희들 버리시기를
예사로 침 뱉듯이 하시겠습니까?

동녘 하늘 떠오르는 아침 햇빛이
밝은 광명 한없이 찬란하여서
그 자체를 스스로 환히 비추고
온 세상의 어둠을 없애 버리듯

부처님 신통 광명 그와 같아서
우리들의 괴로움을 없애 주시고
의젓하게 대중 속에 계시는 것은
수미산이 우뚝하게 솟아 있는 듯하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금이 여러 아들을 두었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마음이 올곧기에 항상 사랑하면서, 먼저 기술을 가르쳐 잘 통달케 하고, 그 뒤에 장차 포악한 살인자가 되게 한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오늘 법왕의 아들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바른 소견을 갖추었으니, 바라건대 버리지 마십시오.
만일 버리신다면 저 버림받은 임금의 아들과 같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래 세상에 머무시고 열반에 드시지 마십시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논리를 배우고 도리어 그 논리에 공포심을 내듯이, 부처님도 그와 같아 모든 법을 통달하고 도리어 모든 법에 공포심을 내는 듯합니다. 만일 여래께서 세상에 오래 계시면서 감로 같은 법을 말씀하셔서 중생들을 모두 만족하게 하시면 이 중생들은 다시는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할일을 배우다가 법관에게 붙들려 옥에 갇혔을 때에 누가 묻기를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느냐?’ 하면 ‘내가 지금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만일 이 일을 벗어나면 안락을 얻을 것이다’ 라고 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께서도 그러하시어 저희들을 위하여 괴로운 행을 닦으셨는데, 저희들이 아직도 나고 죽는 고통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여래께서 어찌 안락하시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의사가 약과 처방을 잘 알아서 비밀한 처방을 그 아들에게만 가르쳐 주고, 다른 데서 온 제자들에게는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여래께서도 그러하여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으로 문수사리만 가르치시고, 우리들은 버려두고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여래께서는 법에 대하여 감추거나 인색하지 않으실 것인데, 저 의사가 그 아들에게만 가르치고 밖에서 온 다른 제자에게는 가르치지 않으니, 그 의사가 두루 가르치지 않는 것은 낫고 못하다는 관념이 있어 널리 가르치지 못하므로 아끼는 것입니다.
여래의 마음은 낫고 못하다는 것이 없으실 것인데, 어찌하여 이같이 가르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바라건대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시고 열반에 들지 마십시오.
세존이시여, 마치 늙은이ㆍ어린이ㆍ병든 이들이 평탄한 길은 버려두고 험난한 길을 가면서 갖은 고초를 겪고, 많은 괴로움과 번뇌를 당할 때에 어떤 사람이 보고 딱하게 여겨 곧 평탄하고 좋은 길을 가리켜 주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우리도 그와 같으니, 어린이란 것은 아직
법신이 자라지 못한 사람에 비유하고, 늙은이란 것은 번뇌가 많은 데 비유하고, 병든 이란 것은 생사를 해탈하지 못한 데 비유하고, 험난한 길은 생사의 과보가 있는 25유(有)에 비유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여래께서는 우리에게 감로의 바른 길을 지도하시며 오래도록 세상에 머무시고 열반에 들지 마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비구여, 다른 범부나 천상과 세간 사람들처럼 근심하며 울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음을 바른 생각에 매어 두어라.”
그때 모든 하늘과 인간들과 아수라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울음을 그치는 것이, 마치 아들 죽은 사람이 장례를 치르고 나서는 억지로 통곡을 참는 듯하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대중을 위해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음을 활짝 풀고서
그렇게 수심하고 괴로워 마라.
부처님의 모든 법 그런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잠잠하여라.

방일하지 않는 행을 좋아하면서
마음을 잘 지키고 바르게 기억해
잘못된 모든 법을 멀리 떠나면
위로하는 뜻으로 즐거움 받게 되리라.

“또한 비구들아, 만일 의혹이 있거든 지금 모두 묻도록 해라. 공(空)한가, 공하지 않은가, 항상한가 무상한가, 고통인가 고통이 아닌가, 의지할 데인가의지할 데 아닌가, 간 것인가 가지 않은 것인가, 귀의 할 곳인가 귀의할 곳이 아닌가, 늘 있는 것인가 늘 있는 것이 아닌가, 아주 없는 것인가 항상 있는 것인가, 중생인가 중생이 아닌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 참인가 참이 아닌가, 멸(滅)인가 멸이 아닌가, 비밀한가 비밀하지 않은가, 둘인가 둘 아닌 것인가, 이러한 가지가지 법에 대하여 의심이 있으면 지금 모두 묻도록 해라. 내가 마땅히 묻는 대로 대답하여 줄 것이며, 또는 너희에게 먼저 감로 같은 법을 말하고 그런 뒤에 열반에 들것이다.
여러 비구들아,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기 어려운 것이고 사람 되기도 어려우며, 부처님을 만나 믿는 마음을 내기는 더욱 어렵다. 또한 참기 어려운 일을 참기가 또 어려우며, 계행을 빠짐없이 성취하고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기는
더구나 어려운 것이어서 금싸라기나 우담바라꽃을 구하기와 같은 것이다.
너희들 모든 비구들은 여덟 가지 어려운 것을 끊고 사람의 몸을 얻었으며, 또 너희들이 나를 만났으니 속절없이 지내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지나간 옛적에 가지가지 고행을 하고서야 지금 이같이 더할 수 없는 방편을 얻은 것이다. 너희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세월에 몸과 손발과 머리와 눈과 골수까지 버렸으므로 너희들은 방일하지 않도록 해라.
너희 비구들이여, 법보의 성곽을 어떻게 장엄할 것인가? 가지가지 공덕 보배를 갖추고 계행과 선정과 지혜로써 성벽과 해자를 삼아야 한다. 너희는 지금 불법의 보배 성을 만났으니, 이 헛된 가짜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치 장사꾼이 진짜 보배의 성을 만나고도 기왓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너희들도 그와 같이 불법의 보배 성을 만나고서 헛된 가짜 것을 가지는구나.
너희 모든 비구들은 용렬한 마음으로 넉넉하다는 생각을 내지 마라. 너희가 지금 비록 출가는 하였지만 이 대승을 사모하는 마음을 내지는 못하였으며, 너희 모든 비구들이 몸에는 물든 가사를 입었으나 마음은 대승의 깨끗한 법에 물들지 못하였으며, 너희 모든 비구들이 비록 걸식하느라고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나 대승의 법식은 아직 구하지 못하였으며, 너희 모든 비구들이 비록 머리카락과 수염은 깎았으나 바른 법으로 번뇌의 맺힌 것을 끊지 못하였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이제 참으로 너희를 가르치겠다. 내가 지금 대중에 화합하여 있으니 여래의 법의 성품이 진실하고 뒤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정진하여 용맹한 마음으로 모든 번뇌를 꺾어 버리도록 해라. 10력을 가진 지혜의 해가 꺼져 버리면 너희들은 무명에 가려지고 말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마치 땅과 모든 산의 약초가 중생을 위하여 쓰이듯 나의 법도 그러하여 묘하고 좋은 감로의 법맛을 내어
중생들의 가지각색 번뇌 병을 고치는 약이 된다. 내가 이제 모든 중생과 나의 제자인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비밀장(秘密藏) 속에 머물게 하며, 나도 역시 그 가운데 머물러서 열반에 들고자 한다.
어떤 것을 비밀장이라 하는가? 마치 이자(伊字:∴)의 세 점이 나란히 있어도 ‘이’자가 되지 못하고, 세로로 있어도 ‘이’자가 되지 못하며, 마혜수라(摩醯首羅)의 얼굴에 있는 세 눈과 같아야 ‘이’자가 되는 것이고, 세 점이 따로 있어도 ‘이’자가 되지 못한다.
나도 그와 같아 해탈법도 열반이 아니고 여래의 몸도 열반이 아니고 마하반야도 열반이 아니며, 세 가지 법이 제각기 달라도 열반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러한 세 가지 법에 있으면서 중생을 위하여 열반에 든다 하는 것도 세상의 ‘이’자와 같은 것이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반드시 열반에 드실 줄을 알고 모두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수없이 주위를 돌고 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음을 통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온갖 중생의 발자취 중에 코끼리의 발자취가 가장 으뜸이듯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그러하여 여러 생각 중에 가장 제일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부지런히 닦는 이가 있으면 온갖 욕계의 탐애(貪愛)와 색계ㆍ무색계의 탐애와 무명(無明)과 교만과 무상하다는 생각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만일 무상하다는 생각을 떠나셨으면 지금 열반에 들지 않으실 것이고, 만일 떠나지 못하셨다면 어찌하여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으면 삼계의 탐애와 무명과 교만과 무상하다는 생각을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농사꾼이 가을에 땅을 깊이 갈면 여러 가지 풀을 없앨 수 있듯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그러하여 온갖 욕계의 탐애와 색계ㆍ무색계의 탐애와 무명과 교만과 무상하다는 생각을 없앨 수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밭을 가는 데는 가을에 가는 것이 으뜸이며, 발자취 중에는 코끼리 발자취가 가장 뛰어나고, 모든 생각 중에는 무상하다는 생각이 제일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제왕이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천하에 은사(恩赦)를 내려 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두 놓아 주고 그 뒤에 목숨을 마치듯이, 여래께서도 그와 같이 중생들을 제도하여 모든 무지(無知)와 무명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한 뒤에 열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아직 제도를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저희들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귀신에게 들린 사람이 주문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주문의 신력으로 말미암아 귀신을 떼어 버릴 수 있듯이, 여래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성문들에게 무명의 귀신을 떼어 버리고 마하반야와 해탈과 법신의 법에 머무르게 하기를 ‘이’자의 세 점과 같게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향상(香象)이 사람에게 잡혔을 때에 비록 길을 잘 들이는 사람이 있더라도 억누를 수 없고 필경에 굴레나 사슬을 끊고 제 뜻대로 달아나듯이, 저희는 쉰일곱 가지 번뇌의 얽힘을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저희를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고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학질에 걸렸을 때에 좋은 의사를 만나면 학질을 뗄 수 있듯이, 저희도 그와 같습니다. 모든 고통과 근심과 나쁜 열병에 걸렸는데, 비록 여래를 만났으나 병이 낫지 못하고 위없는 편안과 즐거움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저희를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술 취한 사람이 자기도 알지 못하고, 친척인지 남인지, 어미인지 딸인지, 누나인지 동생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면서 혼미하고 황당하게 음탕한 말을 함부로 지껄이며 방자하게 부정한 가운데 누워 있을 때에, 어떤 의사가 좋은 약을 주어 먹게 하면
술을 토하고 본정신이 돌아옵니다. 그리하여 지난 일을 생각하고 마음에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하니, 술이란 본래 좋지 못하여 여러 가지 나쁜 죄의 근본이므로 만일 영원히 끊을 수 있다면 모든 죄악을 멀리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우리도 그와 같아서 오랜 옛적부터 생사에 헤매면서 색정에 취하고 5욕을 탐하여 어미가 아닌 이에게 어미란 생각을 내고, 누이가 아닌 이에게 누이라는 생각을 내며, 여인이 아닌 자에게 여인이라는 생각을 내며, 중생이 아닌 데에 중생이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갈래로 돌아다니면서 나고 죽는 고통을 받는 것이, 저 술 취한 사람이 부정한 가운데 누운 듯합니다. 그런데 여래께서 지금 법의 약을 주셔서 번뇌의 나쁜 술을 토하게 하시나 아직 깨닫는 마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문득 저희를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고 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파초를 속이 단단하다고 찬양한다면 옳지 못한 것처럼, 중생이 만일 칭찬하기를 나란 고집[我]ㆍ사람이란 고집[人]ㆍ 중생이란 고집[衆生]ㆍ오래 산다는 고집[壽命]ㆍ양육하는 것[養育]ㆍ알음알이 소견[知見]ㆍ짓는 이[作者]ㆍ받는 이[受者]가 진실하다고 한다면 옳지 못합니다. 저희들은 이와 같이 내가 없다는 생각[無我想]을 닦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거른 찌꺼기는 다시 소용이 없는 것처럼, 이 몸도 그와 같아서 나도 없고 주재(主宰)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칠엽수(七葉樹)의 꽃이 향기가 없듯이, 이 몸도 그러하여 나도 없고 주재도 없습니다. 저희들도 그와 같이 마음으로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항상 닦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법이 나도[我] 없고 내 것[我所]도 없으니 너희 비구들은 그렇게 닦아라. 그렇게 닦으면 나라는 교만이 없어지고, 나라는 교만을 여의면 곧 열반에 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새의 발자취가 공중에 나타날 수 없듯이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는 이에게는 모든 소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이 내가 없다는 생각을 잘 닦는구나.”
그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을 뿐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생각도 닦으니, 괴롭다는 생각, 무상하다는 생각 내가 없다는 생각 등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사람이 술에 취하면 마음이 현란하여 산이나 강물이나 성곽ㆍ궁전ㆍ해ㆍ달ㆍ별 따위를 볼 때에 그것들이 모두 빙빙 도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괴롭다는 생각ㆍ무상하다는 생각ㆍ내가 없다는 생각 등을 닦지 않는 이런 사람은 거룩한 이[聖者]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항상 방일하여 생사에 헤매는 탓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한 인연으로 저희들은 이런 생각들을 잘 닦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너희가 말한 술 취한 사람의 비유는 글만 알고 이치는 모르는 것이다. 이치는 무엇인가? 그 취한 사람이 해와 달 따위를 볼 때에 돌지 않는 것을 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중생도 그러하여 모든 번뇌와 무명에 가려져서 뒤바뀐 마음을 낼 때에, 나에 대하여 내가 없다 생각하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생각하고,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 생각하고, 즐거운 것을 괴롭다 생각하는 것이다. 번뇌에 가렸으므로 그러한 생각을 내는 것이니, 마치 술 취한 사람이 돌지 않는 것을 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나란 것은 곧 부처라는 뜻이고, 항상하다는 것은 법신이라는 뜻이고, 즐겁다는 것은 열반이란 뜻이고, 깨끗하다는 것은 법이란 뜻이다. 너희 비구들은 어찌하여 나란 생각이 있으면 교만하고 잘난 체하여 생사에 헤맨다고 하느냐? 너희들이 말하기를 ‘우리도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다는 생각들을 닦는다’고 하지만 그 세 가지를 닦는 다는 것이 진실한 뜻은 아니다.
내가 지금 세 가지 뛰어나게 닦는 법을 말하겠다. 괴로운 것에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즐거운 것에 괴롭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 뒤바뀐 법이며, 무상한 것에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항상한 것에 무상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다. 내가 없는 것에 나라는 생각을 내고 나에게
내가 없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며, 부정한 것에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고 깨끗한 것에 부정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도 뒤바뀐 법이다. 이렇게 네 가지 뒤바뀐 법이 있으므로 사람이 법을 옳게 닦을 줄 모르는 것이다.
너희 모든 비구들이 괴로운 법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무상함 속에서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내가 없는 속에서 나라는 생각을 내고 부정함 속에서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세간에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고, 출세간에도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지만 세간법은 글자만 있고 뜻이 없는 것이며, 출세간법은 글자도 있고 뜻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간법에는 네 가지 뒤바뀜이 있으므로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뀜이 있는 탓이니, 세 가지가 뒤바뀐 까닭에 세간 사람들은 즐거운 데서 괴로움을 보고 항상한 데서 무상을 보고, 나에 대하여 내가 없음을 보고, 깨끗한 데서 부정함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뒤바뀌었다 이름하고, 뒤바뀐 까닭에 세간 사람은 글자만 알고 이치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치라고 하는가? 내가 없는 것은 생사이며 나라는 것은 여래이며, 무상이라는 것은 성문ㆍ연각이며 항상한 것은 여래의 법신(法身)이며, 괴로운 것은 모든 외도들이며 즐거운 것은 열반이며, 부정한 것은 함이 있는 법[有爲法]이며 깨끗한 것은 부처님과 보살이 가지는 바른 법이다. 이것은 뒤바뀌지 않은 것이니, 뒤바뀌지 않았으므로 글자도 알고 이치도 안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네 가지 뒤바뀜을 멀리 여의려거든 마땅히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알아야 한다.”
그때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네 가지 뒤바뀜을 벗어난 이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여래께서는 지금 네 가지 뒤바뀜이 없으시니 이미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아셨을 것입니다. 이미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한 겁이나 반
겁을 머무시면서 저희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네 가지 뒤바뀜을 여의게 하지 않으시고 저희를 버리고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여래께서 만일 불쌍히 여겨 가르쳐 주시면 우리도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익힐 것이나,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저희들이 어떻게 이 3독의 몸과 함께 있으면서 범행(梵行)을 닦겠습니까? 저희들도 역시 세존을 따라 열반에 들겠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지 마라. 내가 가진 위없는 바른 법을 이제 모두 마하가섭에게 부촉(付囑)하였으니, 가섭은 너희들의 큰 의지가 될 것이다. 마치 여래가 모든 중생이 의지할 데가 되듯이, 마하가섭도 너희들의 의지할 데가 될 것이다. 마치 저 임금이 다스릴 일이 많지만 여러 곳으로 순행할 때에는 국가의 온갖 일을 대신에게 부촉하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정법(正法)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였다.
너희들이 먼저 익히던 무상하고 괴롭다는 생각은 진실하지 않다. 비유하면 봄철에 여러 사람이 큰 연못에서 목욕하고 배를 타며 놀기도 하다가 유리 보배를 깊은 물속에 빠뜨려 잃어버리고 여러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다투어 그 보배를 찾을 때에 돌이나 기왓장이나 나무나 자갈을 집어 들고 유리 보배를 찾은 줄 여기면서 기쁜 마음으로 가지고 나와서 보고서야 참 보배가 아닌 줄을 아는 것과 같다.
보배는 아직도 물속에 있어서 보배의 힘으로 물이 맑아지므로 여러 사람들이 물속에 있는 유리 보배 보기를 공중에 밝은 달을 우러러보듯 한다. 그때 대중 가운데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있어서 방편으로 천천히 물에 들어가 보배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너희들 비구도 그렇게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는 생각을 닦으면서 참된 이치라고 생각하기를 ‘저 여러 사람이 돌이나 기왓장이나 나무나 자갈을 가지고 진짜 보배라고 생각하듯이 하지 말고,
마땅히 좋은 방편을 배우되, 가는 곳마다 나라는 생각ㆍ항상하다는 생각ㆍ즐겁다는 생각ㆍ깨끗하다는 생각을 항상 닦아야 한다. 또 먼저 익히던 네 가지 법은 모두 뒤바뀐 것임을 알아야 하며, 진실한 생각을 닦으려 하거든 저 지혜 있는 사람이 보배를 집어내듯이 나이고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하다는 생각을 닦아야 한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되, 모든 법은 나랄 것이 없다는 것을 너희들이 닦아야 하니 이것을 닦으면 나란 생각을 여의게 되고 나란 생각을 여의면 교만을 여의고 교만을 여의면 열반에 든다고 하셨는데, 이 이치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지금 이런 이치를 물어서 의심을 끊으려 하는구나. 비유하면 어떤 임금이 어리석어 지혜가 없었다. 어떤 의사가 있어 성품이 미련하였는데, 임금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녹을 후하게 주면서 모든 병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랬더니 의사는 한 가지 우유약만 쓰면서 병이 생긴 원인은 알지 못하였다. 우유약을 쓰면서도 풍으로 생긴 병인지 냉기나 열기로 생긴 병인지도 알지 못하고, 무슨 병이든지 우유약을 먹게 하였지만 임금은 그 의사가 우유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할 줄 모르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떤 뛰어난 의사가 있어서 먼 나라로부터 오게 되었는데, 여덟 가지 의술을 통달하여 가지각색 병을 분명하게 치료하면서 여러 가지 처방과 약을 잘 알았다.
그때 예전 의사는 그 뛰어난 의사에게는 물으려고도 하지 않고 제가 잘난 듯이 업신여기는 마음만 내었다. 그 명의는 일부러 예전 의사에게 청하여 스승이 되어 달라 하면서 의술과 처방의 비법을 묻고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당신을 선생으로 섬기려 하니 나에게 잘 가르쳐 주십시오.’
옛 의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위하여 48년 동안만 섬기면 그 뒤에 가르쳐 주겠소.’
그 명의는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의 능력을 다하여 심부름하겠습니다.’
그런 뒤에 예전 의사는 손님으로 온 의사를 데리고 임금께 가서 보였다. 그때 손님으로 온 의사는 임금에게 여러 가지 의술과 처방을 말하고 다른 기술도 설명하면서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잘 살피십시오. 이 법은 이러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며, 저 법은 저러하게 병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때 임금이 그 말을 듣고는 비로소 예전 의사가 미련하여 지혜가 없음을 알고 곧 국경 밖으로 쫓아버렸다. 그런 뒤에 손님 의사를 갑절이나 더 공경하였는데, 손님 의사는 생각하기를 이때야말로 임금을 잘 지도할 시기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저를 사랑하신다면 한 가지 소원을 청하려 합니다.’
임금은 대답하였다.
‘내 오른팔 및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그대가 요구하는 대로 주겠다.’
손님 의사는 다시 여쭈었다.
‘대왕께서는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모두 주신다고 하나 저는 구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원하는 바는 대왕께서 나라 안에 명령을 내리셔서 이제부터는 예전 의사가 쓰던 우유약을 먹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이유는 그 약이 독해서 해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시 먹는 사람은 머리를 벤다고 하셔서 우유약을 아주 금하면 다시는 횡사하는 사람이 없고 항상 편안하겠기에 이런 원을 청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대답하였다.
‘경의 소원은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나라 안에 조칙을 내렸다.
‘무릇 병자는 누구든지 우유약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만일 다시 우유약을 쓰는 자는 머리를 벨 것이다.’
그때 손님 의사는 맵고 쓰고 짜고 달고 신 여러 가지 재료로 약을 지어서 모든 병을 다스리니 온갖 병이
낫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임금이 병이 나서 손님 의사에게 명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심하여 고통스러워 죽고만 싶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겠는가?”
의사는 임금의 병을 살펴서 우유를 써야 할 것을 알고 이렇게 여쭈었다.
‘대왕의 병환에는 우유약을 써야 하겠습니다. 제가 앞서 우유약을 금하게 한 것은 참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우유약을 쓰시면 병환이 곧 쾌차할 것이니, 대왕의 병환은 열기로 생긴 것이므로 우유를 잡수셔야 합니다.’
임금은 손님 의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경은 지금 머리가 돌았는가? 열병이 들었는가? 어찌하여 우유를 먹으면 이 병이 낫겠다고 하는가? 앞서는 우유약이 독하다고 했다가 이제는 먹으라고 하니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예전 의사가 시키던 우유약이 해롭다고 하여서 쫓아내게 하더니 이제는 병에 가장 적당한 좋은 약이라 하니, 경의 말과 같다면 예전 의사가 경보다 낫지 않은가?’
이때에 손님 의사는 다시 여쭈었다.
‘대왕은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 아닙니다. 마치 어떤 벌레가 나뭇잎을 먹어서 글자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이 벌레는 글자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지혜 있는 이는 이 벌레가 글자를 안다고 하지도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예전 의사도 그와 같아서 병의 증세는 알지도 못하면서 일률적으로 우유약을 쓰라 한 것은 마치 저 벌레가 우연히 글자를 이룬 것과도 같습니다. 예전 의사는 우유약의 성질도 모르고 쓰게 한 것입니다.’
임금은 물었다.
‘어찌하여 우유의 성질을 모른다 하는가?’
손님 의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유약은 독한 것도 있고 감로 같은 것도 있습니다. 우유약이 감로 같다는 것은 젖소가 술지게미나 미끄러운 풀이나 깨어진 보리 따위를 먹지 않고, 송아지가 유순하고, 놓아먹이는 데가 높은 데도 아니고 낮은 데도 아니며 맑은 물만 먹고 뛰어 달리지도 않고 황소와 함께 있지도 않으며, 먹는 것이 알맞고 다니고 머무는 데가 적당하면, 그런 소의 젖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감로 같은
좋은 약이라 합니다. 그런 우유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독하고 해로운 것입니다.’
그때 임금은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다.
‘큰 의사여, 참으로 훌륭하다. 나는 오늘에야 우유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는 줄을 알았다.’
그리고는 우유를 먹고 병이 나았고, 다시 나라에 명령을 내려서 지금부터는 우유약을 먹으라고 하였다. 백성들은 이 명령을 듣고 모두 성을 내고 원망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임금은 지금 귀신에게 휘둘리는가? 머리가 돌았는가? 어찌하여 우리를 속여 우유를 다시 먹으라 하는가?’
그리고 모두들 분노와 원망을 품고 임금 있는 데로 모여왔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를 원망하지 마라. 이 우유를 먹지 말라고 하였다가 또 먹으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의사가 시킨 것이지 나의 허물이 아니다.’
그리하여 임금과 백성들은 모두 뛸 듯이 기뻐하며 손님 의사를 공경하고 공양하였고, 모든 병자들이 우유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
너희 비구들이여,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도 그와 같아서, 훌륭한 의사로서 세간에 나서 모든 외도인 나쁜 의사를 항복받는 것이다. 그리고 사부대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유명한 의사인지라, 외도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나라는 고집도 없고, 사람이란 고집ㆍ중생이란 고집ㆍ오래 산다는 고집도 없고, 양육과 지견과 짓는 이 받는 이가 모두 없다고 하였다.
비구들이여, 외도들이 나라고 말하는 것은 벌레가 나뭇잎을 먹어 글자를 이룬 것과도 같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불법에는 내가 없다고 말하였으니 중생을 조복하기 위한 것이며 시기를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랄 것이 없다고 하다가,
인연이 있어서 또 내가 있다고 하였으니, 저 명의가 우유의 약 되는 일과
약 되지 않는 일을 잘 아는 것과 같은 것이며, 범부들이 헤아리는 나라는 것과는 같지 않다.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이 나라고 헤아리는 이는 혹은 크기가 엄지손가락 같다 하고 혹은 겨자씨 같다 하고 혹은 티끌 같다고 하는데, 여래가 말하는 나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내가 없다고 하지만 진실로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니, 어떤 것이 나인가? 만일 어떤 법이 진실하고 참되고 항상하고 주재(主宰)가 있고 의지가 있어서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이것을 나라고 할 것이니, 저 명의가 우유약을 잘 아는 것 같다.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모든 법 가운데 진실로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사부대중은 이렇게 이 법을 닦아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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