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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47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5권

by Kay/케이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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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5

 

대반열반경 제5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7. 네 가지 모양 ②

그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존에게 비밀한 장(藏)이 있다 하였으나, 그렇지 아니하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들께서는 비밀한 말만 있고 비밀한 장은 없으니, 마치 환술쟁이가 기관으로 만든 나무 사람과 같아서 구부리고 펴고 쳐다보고 내려다보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만 속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못하는데, 부처님 법은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보고 알게 하시나니, 어찌하여 부처님들의 비밀한 장이 있다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가섭을 칭찬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실로 비밀한 장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가을의 보름달이 허공에 떴을 적에 깨끗하게 드러나 가리움이 없음을 사람마다 보는 것같이, 여래의 말도 그와 같아서 환하게 드러나고 깨끗하여 가리움이 없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여 비밀한 장이라 하거니와, 지혜로운 이는 분명히 알고 장이라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한량없는 금은 보배를 쌓아 두고도, 아끼는 마음으로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여 구제할 줄을 모른다면 그것은 비밀한 장이라 하려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그지없는 오랜 세월에 한량없는 법의 보배를 쌓아 놓고 아끼는 마음이 없이 모든 중생에게 항상 보시하나니, 어찌하여 여래의 비밀한 장이라 하겠느냐.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몸이 불구가 되어 눈이 없거나 손이나 발이 없으면 부끄러워서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것인데, 사람이 보지 못하므로
비밀하게 감춘다 하겠지만,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가지고 있는 법을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거늘, 어찌하여 여래의 비밀한 장이라 하겠느냐.
선남자여, 어떤 가난한 사람이 남의 빚을 많이 지고는 빚쟁이가 무서워서 숨고 나오지 아니하므로 비밀히 숨었다 하려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모든 중생의 세간법을 빚지지 아니하였고, 중생의 출세간법을 빚졌다 하더라도 숨지는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중생을 대하여 항상 외아들이란 생각을 가지고 위없는 법을 연설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장자가 재물이 많은데 외아들을 두고는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보배를 모두 보이나니, 여래도 그러하여 중생을 외아들같이 여기느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은 남근(男根)과 여근이 흉하고 부끄럽다 하여 옷으로 가리므로 감춘다 하겠지만,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여 영원히 이 근(根)이 없으므로 감추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바라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論理)는 찰리나 비사나 수타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나니, 그 까닭은 그 논리에는 허물이 있는 연고지만, 여래의 바른 법은 그렇지 아니하여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훌륭하므로 비밀한 장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장자가 외아들을 두고 항상 사랑하고 그리워서 스승에게 보내어 공부하게 하려다가 빨리 성취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도로 데려다가 밤낮으로 반쪽 글자만 가르치고 성명론(聲明論)은 가르치지 못하나니, 나이가 어려서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그 장자가 반쪽 글자만 가르쳐도 그 아들이 능히 성명론을 알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장자가 아들에게 비밀히 감추는 것이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아들의 나이가 어려서 말하지 않았을지언정, 아끼느라고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오니, 만일 아끼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멈춘다 하려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옵거늘, 어찌 여래의 비밀한 장이라 말하오리까?”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미워하고 질투하며 아끼는 마음이 있으면 감춘다 하려니와, 여래는 그런 마음이 없거늘 어찌 감춘다 하겠느냐. 선남자여, 장자는 여래를 비유한 것이, 외아들은 모든 중생을 비유한 것이니, 여래가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생각하느니라. 외아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성문 제자를 말함이요, 반쪽 글자는 아홉 종류 경전을 말함이요, 성명론이란 것은 방등(方等) 대승경전을 말함이니, 성문들이 지혜가 없으므로 여래가 반쪽 글자인 아홉 종류 경전만을 말하고, 성명론인 방등 대승경전은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저 장자의 아들이 자라서 글을 배울 만하여도 성명론을 가르치지 않으면 장이라 하는 것과 같이, 성문들이 대승 성명론을 배울 만한 힘이 있어도 여래가 아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여래는 비밀한 장이 있다고 말하려니와, 여래는 그렇지 아니하므로 여래는 비밀한 장이 없느니라. 그 장자가 반쪽 글자를 가르치고 다음에 성명론을 말하듯이, 나도 그와 같이 제자들에게 반쪽 글자인 아홉 종류 경전을 말하고, 다음에 성명론을 연설하노니, 그것이 여래가 항상 머물고 변역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마치 여름철에 큰 구름과 우레가 일어나고 큰비가 오면, 농부들 가운데 씨를 심은 이는 열매를 많이 거두고, 씨를 심지 않은 이는 거둘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 거둘 것이 없음은 용왕의 허물이 아니며, 그 용왕도 감추는 것이 없느니라. 나도 그와 같아서 대열반경인 큰 법비를 내리거든, 중생들로서 선근의 씨를 심은 이는 지혜의 열매를 거두고, 선근의 씨가 없는 이는 거둘 것이 없나니, 거둘 것이 없음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며, 여래는 감추는 것이 없느니라.”
“저는 지금 여래께서 비밀한 장이 없음을 알았사오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성명론에서 여래께서 항상 머물며 변역하지 않는다 함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옛적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과 연각들과
여러 성문 제자들도
무상한 몸 버리거든
하물며 범부들이랴.

그랬는데 지금에는 항상 머물고 변역하지 않는다 하시니, 무슨 이치입니까?”
“선남자여, 나는 모든 성문 제자들에게 반쪽 글자를 가르치느라고 그런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또 선남자여, 바사닉왕이 어머니가 죽은 뒤에 슬프게 울고 부르짖으며 나에게 왔길래 ‘대왕은 어찌하여 이렇듯이 서러워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왕은 대답하기를 ‘나라의 태후가 돌아가셨는데 누구든지 어머니의 명을 도로 살릴 이가 있다면 나는 나라와 코끼리와 7보와 목숨까지 버려서 은혜를 갚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대왕은 그렇게 서러워하고 통곡하지 마시오. 모든 중생의 목숨이 다한 것을 죽었다 하나니, 부처님이나
연각이나 성문 제자들도 이 몸을 버리거늘 하물며 범부이겠소?’ 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바사닉왕에게 반쪽 글자를 가르치느라고 이 게송을 말하였거니와, 지금은 성문 제자들에게 성명론을 말하는 터이므로 여래는 항상 머물러서 변역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는 무상하다고 말하면 어찌 그 사람의 혀가 빠지지 아니하랴.”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 쌓아 두지 말고
음식에 만족할 줄 알며,
새들이 허공에 날아도
자취를 찾을 수 없도록.

그런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존이시여, 이 대중 가운데 누가 쌓아 둠이 없다 이를 만하며, 누가 음식에 만족한다 이를 만하며, 누가 허공에 행하매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를 만하며, 이렇게 가는 이는 어느 곳에 이르겠습니까?”
“가섭이여, 쌓아 두는 것은 재물이니라. 선남자여, 쌓아 두는 일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함이 있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함이 없는 것이니라. 함이 있게 쌓아 둠은 성문의 행이요, 함이 없게 쌓아 둠은 여래의 행이니라. 선남자여, 스님도 두 가지니, 함이 있는 스님과 함이 없는 스님이니라. 함이 있는 스님은 성문이라 하며, 성문인 스님은 쌓아 두는 일이 없나니, 종이나 법답지 아니한 물건이나 광이나 미곡이나 소금ㆍ메주ㆍ참깨ㆍ콩ㆍ팥 따위니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여래가 종이나 하인 따위의 물건들을 쌓아 두도록 허락하셨다 하면, 혀가 말려 들어가게 될 것이니, 나의 성문 제자들은 쌓아 두는 일이 없다 할 것이며, 음식에도 만족할 줄을 안다 할 것이니, 음식을 탐하는 이는 만족한 줄을 모르는 것이요, 음식을 탐하지 않는 이라야 만족한 줄을 안다고 이름하리라. 자취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위없는 보리에 가까운 것이니, 이 사람은 비록 가더라도 이를 곳이 없다고 하느니라.”

“함이 있는 스님도 쌓아 두는 일이 없거늘, 하물며 함이 없는 스님이리이까? 함이 없는 스님은 여래이오니 여래가 무슨 쌓아 둠이 있사오며, 쌓아 두는 것은 감춘다는 것이니, 여래의 말씀하심은 감추거나 아낌이 없거늘, 어찌하여 장이라 하리이까?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열반이니, 열반 가운데는 해ㆍ달ㆍ별, 차고 더움, 바람과 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따위의 25유가 없으며, 모든 근심과 번뇌를 여의었으며, 이러한 열반이야말로 여래의 머무는 곳이며, 항상 변역하지 않는 것이오니, 이런 인연으로 여래께서 이 사라나무 밑에 이르러 대열반에 드시나이다.”
“가섭이여, 대(大)라는 것은 성품이 넓고 많음을 말함이니, 사람이 한량없이 오래 사는 것을 대장부라 하고, 이런 사람이 바른 법에 머물면 사람 중에 훌륭한 이라 하는 것 같으니라. 내가 말한 큰 사람이 깨달을 여덟 가지[八大人覺]는 한 사람이 가질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가질 수도 있나니, 만일 한 사람이 여덟 가지를 모두 갖춘다면 가장 훌륭한 것이니라. 열반이라 함은 헌 데[瘡疣]가 없다는 뜻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고 고통을 받을 적에 좋은 의사를 만나 독화살을 빼고 약을 발라서 고통을 여의고 낙을 받게 한다. 그 의사가 다시 다른 도시나 시골로 다니면서 병환이 있고 부스럼을 앓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병을 치료하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등정각을 이루고 훌륭한 의사가 되어 염부제에서 괴로움 받는 중생들이 한량없는 세월에 음욕, 성내는 일, 어리석은 번뇌의 화살을 맞고 크게 고통하는 것을 보고, 이런 이를 위하여 대승 경전의 감로 법약을 말하여 병을 치료하여 마치고는, 다시
다른 곳으로 다니면서 번뇌의 화살이 있는 곳에서 부처가 되어 병을 치료하나니, 그러므로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대반열반은 해탈하는 곳이니, 조복받을 중생이 있는 곳을 따라서 여래가 그곳에 나타나는 것이며, 이런 진실하고 깊은 뜻으로써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 세상 의사들이 모든 중생의 헌 데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이 세상의 헌 데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치료할 수 있고 하나는 치료할 수 없나니,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의사가 치료할 것이요,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의사가 고치지 못하느니라.”
“부처님의 말씀이 여래가 염부제에서 중생의 병을 치료하였다 하시니, 만일 치료하였다면 모든 중생들 가운데 어찌하여 열반을 얻지 못한 이가 있습니까? 만일 다 열반을 얻지 못하였으면 여래께서 어찌하여 치료하여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간다 하십니까?”
“선남자여, 염부제의 중생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신심이 있고 다른 하나는 신심이 없느니라. 신심이 있는 이는 치료할 수 있다 하나니, 왜냐 하면 결정코 열반을 얻어 헌 데가 없는 까닭으로 염부제의 중생들을 치료하여 마쳤다는 것이요, 신심이 없는 중생은 일천제라 하나니, 일천제는 치료할 수 없느니라. 일천제를 제하고는 모두 치료하였으므로 열반에는 헌 데가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합니까?”
“선남자여, 열반은 해탈이라 하느니라.”
“해탈이라고 말하는 것은 색(色)입니까, 색이 아닙니까?”
“선남자여, 혹은 색이기도 하고 혹은 색이 아니기도 하니, 색이 아니라 말함은 성문과 연각
의 해탈이요, 색이라 말함은 부처님의 해탈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해탈은 색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여래는 성문 제자들을 위하여 색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성문과 연각이 만일 색이 아니라면 어떻게 머뭅니까?”
“선남자여,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이 색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기도 하므로, 나는 색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어떤 이가 묻기를 ‘비상비비상천이 색이 아니라면 어떻게 머물며 가고 오고 행동하느냐? 하면, 이런 이치는 부처님들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바가 아니니, 해탈도 그러하여 색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기도 하므로 색이 아니라 말하고, 생각이기도 하고 생각이 아니기도 하므로 생각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니, 이런 이치는 부처님들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알 바가 아니니라.”
이때에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대반열반의 행과 해탈의 뜻을 거듭 널리 말씀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참 해탈은 모든 속박을 여의었다고 이름하나니, 참으로 해탈하여 모든 속박을 여의었으면 남[生]도 없고 화합함도 없느니라. 비유컨대 부모가 화합하여 아들을 낳거니와, 참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므로 남이 없다 하느니라. 가섭이여, 마치 제호의 성품이 청정함같이 여래도 그러하여 부모의 화합으로 난 것이 아니며, 성품이 청정하건만 일부러 부모가 있는 것을 보였음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함이니라. 참 해탈은 곧 여래니, 여래와 해탈은 둘이 아니요 다름도 없나니, 비유컨대 봄철에 심은 씨가 따뜻하고 축축한 기운을 얻으면 나게 되거니와, 참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또 해탈은 허무(虛無)라 하나니, 허무는 곧 해탈이요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가 곧 허무이어서 지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며, 짓는 것은 성곽이나 누각이어니와, 참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므로 해탈이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함이 없는 법이니, 비유컨대 옹기장이는 만들었다 도로 부수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참 해탈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니, 그러므로 해탈이 곧 여래며, 여래도 그러하여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깨어지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아니하여 함이 있는 법이 아니니, 이런 뜻으로 여래라 하느니라.
대열반에 들어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함은 무슨 뜻인가. 늙은 것은 변천한다고 하나니, 머리카락이 세고 낯이 쭈그러짐이요, 죽는 것은 몸이 식고 목숨이 끊어짐이니, 해탈한 가운데는 이런 일이 없으며, 이런 일이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여래도 머리카락이 세고 낯이 쭈그러지는 함이 있는 법이 아니므로 여래는 늙지 아니하며, 늙지 아니하므로 죽지도 않느니라.
또 해탈은 병이 없다고 이름하나니, 병이라 함은 404병과 밖으로부터 와서 내 몸을 침해하는 것인데, 이런 일이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병이 없는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는 병이 없으므로 법신도 병이 없나니, 이렇게 병이 없는 것이 곧 여래니라. 죽는 것은 몸이 식고 목숨이 끊어짐이니, 여기에는 죽음이 없으므로 곧 감로며, 감로는 참 해탈이며, 참 해탈은 곧 여래니, 여래는 이런 공덕을 성취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무상하다고 말하겠느냐. 무상하다는 말은 옳지 못한 것이니,
금강 같은 몸이 어찌하여 무상하랴. 그러므로 여래는 목숨이 마친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여래는 청정하여 때가 없으며 여래의 몸은 태(胎)에 더럽혀진 바가 아니어서 백련화의 성품이 청정한 것 같나니, 여래의 해탈도 그와 같아서 해탈이 곧 여래며, 그러므로 여래는 청정하여 때가 없느니라.
또 해탈은 번뇌의 헌 데가 영원히 남아 있지 않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의 헌 데가 없느니라. 또 해탈은 다툼이 없나니, 굶주린 사람은 남의 음식을 보고는 빼앗을 생각을 내지만,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또 해탈은 안정(安靜)이라 이름하나니, 범부들은 안정이라 하면 마혜수라를 말하지만, 그런 말은 허망한 것이며, 참말 안정은 끝까지 해탈함이니, 끝까지 해탈한 것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안온(安穩)이라 하나니, 마치 도둑이 많은 데는 안온치 않다 하고 청평[淸夷]한 데를 안온하다 하는 것같이, 해탈 가운데는 공포가 없으므로 안온이라 하며, 그래서 안온한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는 곧 법이니라.
또 해탈은 동무가 없음이니, 동무가 있다는 것은 마치 나라 임금이 이웃 나라가 있음 같거니와, 참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며, 동무가 없음이 마치 전륜왕이 대등할 이가 없음 같나니, 해탈도 그와 같아서 동무가 없으며, 동무가 없음이 참 해탈이며, 참 해탈한 이는 곧 여래인 전법륜왕(轉法輪王)이니, 그러므로 여래는 동무가 없으며 동무가 있다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또 해탈은 근심이 없다고 하나니, 근심이 있는 것은 어떤 임금이
강한 이웃 나라가 무서워서 근심함과 같지만, 해탈은 그런 일이 없으며, 마치 원수를 없애 버리면 두려움이 없는 것같이, 해탈도 그러하여 두려움이 없으며, 두려움이 없는 이는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근심과 기쁨이 없나니, 어떤 여인이 외아들을 부역으로 멀리 보냈을 적에 중도에서 죽었단 말을 듣고 크게 걱정하다가 다시 살았단 말을 들으면 한없이 기뻐하거니와, 해탈 가운데는 그런 일이 없으며, 근심과 기쁨이 없음이 참 해탈이며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티끌이 없나니, 마치 봄철 해가 진 뒤에 흔히 바람이 티끌을 일으키거니와, 해탈 가운데는 그런 일이 없나니, 티끌이 없는 것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마치 임금의 상투에 꽂는 진주 동곳에는 때가 없는 것과 같이 해탈의 본성에도 그와 같이때가 없다. 때가 없다는 것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순금에는 돌이 섞이지 않았으므로 참 보배라 하며, 순금을 얻은 사람은 훌륭한 재물이라 생각하나니, 해탈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참 보배라 하며, 참 보배는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비유컨대 옹기병이 깨어지면 뎅그렁 소리가 나거니와, 금강병은 그렇지 아니하며, 해탈은 뎅그렁 깨어지지 않나니, 금강병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 그러므로 여래의 몸은 깨뜨릴 수 없느니라. 뎅그렁 소리가 나는 것은 피마자를 뜨거운 데 넣으면 튀어나면서 소리를 내는 것 같거니와 해탈은 이런 일이 없나니, 마치 금강의 진실한 병은 뎅그렁 하는 이런 일이 없나니, 마치 금강의 진실한 병은 뎅그렁 하고 깨지는 소리가 없는 것 같으며, 설사
백천 명 사람들이 한꺼번에 쏘더라도 깨뜨리지 못하나니, 뎅그렁 소리가 없음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가난한 사람이 남의 빚을 지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얽어매이거나 매를 맞거나 하여 무수한 괴로움을 받거니와, 해탈한 가운데는 그런 일이 없고, 빚을 지지 아니하나니, 마치 장자는 억만의 보배가 있고 세력이 자재하여 남의 빚을 지지 않는 것처럼, 해탈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법의 보배가 있고 세력이 자재하여 빚진 것이 없나니, 빚진 것이 없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한 해탈을 핍박당함이 없음이라고 하는데, 마치 봄에 더위를 먹는다거나 여름날에 단것을 먹고 겨울날에 찬 기운이 몸에 닿는 것과 같다. 참 해탈에 이와 같이 적당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핍박당함이 없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이다.또 핍박당함이 없음은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고기를 먹고 배부른데 다시 우유를 마시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곧 오래지 않아 배불러 죽게 될 것이다. 참 해탈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다. 만약 이 사람이 감로(甘露)의 양약(良藥)을 얻으면 아픈 곳이 말끔하게 낫게 된다. 참 해탈도 또한 이와 같다. 감로의 양약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이다.어떤 것을 핍박이다, 핍박이 아니다라하는가.
비유컨대 범부가 교만한 마음으로 내가 제일인 체하면서 생각하기를 온갖 물건 중에는 나를 해할 이가 없다 하면서 독사나 호랑이나 독한 벌레를 손으로 잡는다면, 이 사람은 명이 다하기 전에 횡사할 줄을 알 것이니, 참 해탈에는 이런 일이 없느니라. 핍박이 아니라 함은 마치 전륜왕이 가진 신주(神珠)가 말똥구리 따위의 아흔여섯 종류의 독한 벌레들을 항복받음과 같으니,
이 진주의 향기를 맡으면 모든 독기가 소멸되느니라. 참 해탈도 그와 같아서 25유를 모두 멀리 여의나니, 독기가 소멸됨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핍박치 않음은 허공과 같나니 해탈도 그러하며, 허공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핍박이라 함은 마른 풀 곁에서 불을 켜는 것 같아서 가까이하면 곧 타려니와, 참 해탈에는 그런 일이 없느니라. 또 핍박하지 아니함은 마치 해와 달이 중생을 핍박하지 않는 것같이, 해탈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핍박함이 없나니, 핍박이 없음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동하지 않는 법이라 하나니, 마치 원수와 친한 이와 같은 것, 참 해탈 가운데는 그런 일이 없느니라. 또 동하지 않음은 마치 전륜왕이 다른 왕으로 친구를 삼는 일이 없음 같으니, 만일 다시 친한 이가 있다면 옳지 아니한 것처럼 해탈도 그와 같아서 다시 친한 이가 없으며, 만일 친한 이가 있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전륜왕이 친한 이가 없음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는 곧 법이니라. 또 동함이 없다 함은 비유컨대 흰 옷이 물들기는 쉽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며, 또 동함이 없음은 마치 바사꽃[婆師花]을 냄새가 있게 하거나 푸른 빛이 있게 할 수 없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냄새가 있게 하거나 모든 빛이 있게 할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해탈이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희유한 것이라 하나니, 비유컨대 물 속에서 연꽃이 남은 희유가 아니거니와, 불 속에서 연꽃이 남은 희유한 일이어서 사람들이 보고는 기뻐함같이 참 해탈도 그와 같아서
보는 이는 기쁜 마음을 내나니, 희유한 것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고, 참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는 곧 법신이니라. 또 희유한 것은 비유컨대 아기가 이가 나지 않았다가 점점 자라서야 이가 나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나고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또 해탈은 비고 고요함이라 이름하며 결정되지 않음이 없나니, 결정되지 않은 것은 마치 일천제는 끝까지 변하지 못한다거나 중대한 계를 범한 이는 불도를 이루지 못한다 함과 같아서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이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깨끗한 신심을 내면 곧 일천제를 소멸할 것이요, 또 우바새가 되더라도 일천제를 없앨 것이며, 중대한 계를 범한 이도 그 죄를 멸하면 불도를 이룰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못한다거나 불도를 이루지 못한다 함이 옳지 아니하며, 참 해탈 가운데는 이렇게 없어지는 일이 없느니라. 또 비고 고요함은 법계에 떨어지나니, 법계의 성품과 같은 것이 곧 참 해탈이며,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일천제가 만일 없어지면 일천제라 할 수 없느니라. 무엇을 일천제라 하는가? 일천제는 온갖 선근이 아주 끊어져서 마음에 모든 선한 법을 반영하지 아니하며, 한 생각도 선한 마음을 내지 아니하거니와, 참 해탈에는 그런 일이 없으므로 곧 참 해탈이니,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헤아릴 수 없음을 이름이니, 비유컨대 곡식 더미는 그 수량을 알 수 있거니와, 참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며, 마치 바닷물은 헤아릴 수 없는 것같이, 해탈도 그러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한량없는 법이라 하나니 마치 한 중생에게 업보가 많은 것같이, 해탈도 그러하여 한량없는 과보가 있으며, 한량없는 과보는 곧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넓고 큼을 이름이니, 마치 큰 바다는 견줄 데가 없듯이 해탈도 그와 같아서 견줄 데가 없으며, 같을 것이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가장 높다 하나니 마치 허공이 가장 높아서 견줄 수 없으며, 높아서 견줄 수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지나갈 수 없음을 이름이니, 마치 사자가 있는 데는 모든 짐승이 지나갈 수 없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지나갈 수 없으며, 지나갈 수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위가 없음을 이름이니, 마치 북쪽이 여러 방위에서 가장 위가 되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위가 없으며, 위가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위가 없는 위[無上上]를 이름이니, 마치 북쪽이 동쪽에 대하여 위가 없는 위가 되듯이, 해탈도 그와 같아서 위가 없는 위가 되며, 위가 없는 위는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항상한 법이라 이름하나니, 비유컨대 인간이나 천상에서 몸이 부숴지고 목숨이 마치어도 항상하다 이름하나 항상치 못함이 아닌 것같이 해탈도 그러하여 항상치 못한 것이 아니니, 항상치 못한 것이 아님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견실(堅實)이라 이름하나니,
가타라전단나무나 침향의 성질이 견실한 것같이 해탈도 그와 같아서 성품이 견실하며, 성품이 견실함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비지 않음을 이름이니, 비유컨대 대와 갈대는 속이 비었지만,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더럽힐 수 없음을 이름이니, 비유컨대 담벼락이 회벽을 하기 전에는 파리ㆍ모기 따위가 붙어 유희하여 더럽혀지지만, 회를 바르고 단청을 한 뒤에는 벌레가 단청 냄새를 맡고는 붙어 있지 않나니 이렇게 붙어 있지 않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가[邊]가 없음을 이름이니, 비유컨대 촌락은 가가 있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며, 마치 허공은 가가 없음같이 해탈도 그와 같이 가가 없나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볼 수 없음을 이름이니, 마치 공중에 새 발자국을 보기 어려움 같아서, 그렇듯 보기 어려움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매우 깊음을 이름이니, 왜냐 하면 성문과 연각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연고니라. 들어갈 수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매우 깊은 것은 부처님과 보살들의 공경하는 바라, 마치 효자가 부모에게 공양하면 공덕이 매우 깊은 것 같으니, 공덕이 깊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보지 못함을 이름이니, 마치 사람이 자기의 정수리를 보지 못함 같이 해탈도 그러하여 성문이나 연각이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집이 없는 것이라 하나니, 마치 허공에는
집이 없는 것 같아서 해탈도 그러하며, 집이라 함은 25유(有)에 비유한 것이고, 집이 없다 함은 참 해탈에 비유한 것이니,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가질 수 없나니, 아마륵 열매는 사람이 가질 수 있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가질 수 없으며, 가질 수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잡을 수 없나니, 마치 환으로 된 물건은 잡을 수 없거든, 해탈도 그러하여 잡을 수 없으며, 잡을 수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몸이라 할 것이 없나니, 마치 사람은 몸에 옴이 오르고 대풍창과 등창이 나고 미치고 조갈병 들고 마르는 병이 있거니와, 참 해탈 중에는 그런 병이 없나니, 그런 병이 없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한 맛이라 하나니, 마치 젖이 한 맛인 것처럼 해탈도 그와 같아서 다만 한 맛이니, 한 맛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청정하다 하나니, 마치 물에 진흙이 없으면 고요하고 청정한 것처럼 해탈도 그러하여 고요하고 청정하며, 고요하고 청정함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한결같은 맛이니, 마치 공중에서 내리는 비가 한결같이 깨끗한 것처럼 한결같이 깨끗함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없애 버림이니, 마치 보름달은 구름이 가리지 않는 것처럼, 해탈도 그러하여 가린 구름이 없으며, 가린 구름이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고요함이니, 마치
사람에게 앓던 열병이 나으면 몸이 고요하여지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몸이 고요하여지며, 몸이 고요함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평등이니, 마치 벌판에 있는 독사나 쥐나 이리는 모두 죽이려는 마음이 있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죽이려는 마음이 없으며, 죽이려는 마음이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평등하다는 것은 마치 부모가 아들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지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마음이 평등하며, 마음이 평등함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다른 곳이 없나니, 어떤 사람이 훌륭하고 깨끗한 집에만 살고 다시 다른 데가 없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다른 곳이 없으며, 다른 곳이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만족한 줄 앎이니, 굶주린 사람이 맛난 음식을 만나면 싫은 줄 모르고 먹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우유죽을 먹은 이에게는 다른 음식이 필요하지 않나니, 다른 것이 필요치 않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끊음이니, 결박을 당한 사람이 결박한 것을 끊고 벗어나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모든 의심의 결박을 끊음이라, 의심을 끊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저 언덕에 이름이니, 큰 강에는 이 언덕과 저 언덕이 있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이 언덕은 없으나 저 언덕은 있나니, 저 언덕이 있는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잠잠한 것이니 큰 바다는 물이 출렁거리며 요란한 소리가 나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
이런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아름답고 묘하니, 모든 약에 하리륵(呵梨勒)을 섞은 것은 맛이 쓰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고 맛이 감로 같나니, 맛이 감로 같음을 참 해탈에 비유하였고,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번뇌를 제함이니 마치 좋은 의사는 신기한 약으로 모든 병을 잘 치료하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모든 번뇌를 제하는 것이며, 번뇌를 제한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비좁지 않음이니, 작은 집에는 많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으나,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얼마든지 용납하는 것이며, 얼마든지 용납함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애욕을 멸하여 음욕이 없나니, 여인들은 애욕이 많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는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교만 따위의 번뇌가 없느니라. 또 해탈은 사랑이 없음이라 하거니와, 사랑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아귀 같은 사랑이요, 하나는 법에 대한 사랑이다. 참 해탈은 아귀 같은 사랑을 여의고 중생을 불쌍히 여기므로 법에 대한 사랑이 있나니, 법에 대한 사랑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나와 내 것을 여의었으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법이니라. 또 해탈은 구호함이니, 모든 두려워하는 이를 구호하는 것이므로,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법이니라.
또 해탈은
귀의할 곳이니, 만일 귀의할 데가 있으면 이런 해탈은 다른 귀의할 데를 구하지 않느니라. 마치 사람이 임금에게 의지하면 다른 의지할 데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나니, 임금에게 의지한 것은 흔들림이 있거니와 해탈에 의지하면 흔들림이 없으며, 흔들림이 없는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즉시 법이니라.
또 해탈은 집이니, 어떤 사람이 거친 벌판에 다니려면 험난한 일이 있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험난이 없으며 험난이 없는 것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두려움이 없나니, 사자가 모든 짐승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모든 마군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두려움이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협착한 일이 없나니, 마치 협착한 길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갈 수 없는 것과 같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착박[迮]하지 않다는 것은 비유컨대 사람이 범이 무서워서 우물에 떨어질 수 있는 것과 같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착박하지 않다는 것은 마치 큰 바다에서 낡은 배를 버리고 견고한 배를 얻어 타면 바다를 건너 편안한 곳에 이르러 마음이 쾌락함 같나니, 해탈도 그와 같아서 마음이 쾌락하니, 쾌락함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모든 인연을 뽑아 버림이니, 비유컨대 젖을 인하여 타락을 얻고, 타락을 인하여 소(酥)를 얻고 소를 인하여 제호를 얻거니와, 참 해탈에는 이런 인연이 없나니, 인연이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교만을 항복받음이니,
큰 임금은 작은 임금을 업신여기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법이니라. 또 해탈은 방일을 굴복함이니, 방일하면 탐욕이 많거니와, 참 해탈에는 그런 말이 없으며, 그런 말이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무명을 없앰이니, 가장 좋은 생소에서 찌꺼기를 없앤 것을 제호라 하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무명의 찌꺼기를 없애면 참 밝음[眞明]이 나타나나니, 참 밝은 것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고요하여 하나뿐이요 둘이 없나니, 마치 빈 들판에 코끼리가 하나뿐이고 짝이 없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하나뿐이고 짝이 없으며, 하나뿐이고 짝이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견실하다 이름하나니, 마치 대나 갈대나 피마자가 줄기는 속이 비었지만 씨는 견실함 같으니라. 부처님을 제하고는 모든 인간ㆍ천상 사람들이 다 견실하지 못하며, 참 해탈은 온갖 번뇌와 생사를 여의었나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잘 깨달아 나를 이익케 함이니, 참 해탈도 그와 같으며, 이런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모든 것을 버림이니, 마치 사람이 먹고는 토하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모든 것을 버렸으며, 모든 것을 버린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이름이 결정이니, 마치 바사꽃의 향기가 칠엽수(七葉樹)에는 없는 것같이 해탈도 그러하며,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이름을 수대(水大)라 하나니, 수대는
다른 대(大)보다 훨씬 뛰어나서 온갖 초목의 씨를 축이는 것이며, 해탈도 그러하여 모든 생류들을 축이나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들어감이라 하나니, 문이 있으면 들어갈 수가 있고 금의 성질이 있는 데서는 금을 얻을 수 있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그 문으로는 나가 없음[無我]을 닦은 이가 들어갈 수 있나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선한 것이니, 마치 제자가 스승을 따라다니며 가르치는 말을 잘 받들면 선이라 하듯이 해탈도 그와 같으니,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세상에 뛰어난 법이라 이름하나니, 모든 법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며, 여러 가지 맛 가운데 소(酥)의 맛이 가장 훌륭하듯이, 해탈도 그러하며,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흔들리지 않음을 이름이니, 마치 문턱을 바람이 흔들지 못하듯이 참 해탈도 그러하며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파도가 없음이라 하나니, 저 바다에는 파도가 요란하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며,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마치 궁전과 같으니, 해탈도 그러하며 이러한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쓸 데가 많은 것이니, 염부단금은 쓰이는 데가 많으며 그 금의 나쁜 허물을 말할 이 없음같이 해탈도 그러하여 허물이 없으며, 허물 없는 것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어린애의 버릇을 버림이니, 마치 어른이 어린애의 버릇을 버리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5음(陰)을 제하여 버렸으며, 5음을 버린 것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이름이 필경[究竟]이니, 마치 결박되었던 사람이 결박에서 풀려나면 목욕하여 깨끗이 하고 집에 돌아가듯이 해탈도 그러하여 필경까지 깨끗한 것이니, 끝까지 깨끗함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함이 없는 즐거움이니, 함이 없는 즐거움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토한 연고니라. 마치 사람이 잘못하여 독약을 먹고는 독을 제하기 위하여 토할 약을 먹으며, 토하고 나면 독이 없어지고 몸이 편안해짐 같으니, 해탈도 그러하여 번뇌에 속박된 독을 토하고 몸이 안락하여짐을 함이 없는 즐거움이라 하며, 함이 없는 즐거움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네 가지 독사인 번뇌를 끊음이니, 번뇌를 끊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모든 생사를 여의고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온갖 즐거움을 얻으며,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영원히 끊고 모든 번뇌의 뿌리를 뽑아 버린 것이니, 번뇌의 뿌리를 뽑은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모든 함이 있는 법을 끊고, 온갖 무루(無漏)의 선근을 내며 여러 갈래를 막음이라 하나니, 이른바 나다, 내가 없다, 내가 아니고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는 데서, 다만 집착만 끊고 나란 소견을 끊지 않는 것이다. 나란 소견은 불성이요 불성은 참 해탈이며,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공하지 않은 공[不空空]이니, 공한 공[空空]은 있는 것이 없음이요, 있는 것이 없음은 니건자 외도들이 억측하는 해탈이니, 니건자는 해탈이 없으므로 공한 공이라 하고, 참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므로
공하지 않은 공이라 하나니, 공하지 않은 공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공하고 공하지 않은[空不空] 것이니, 마치 물병ㆍ술병ㆍ우유병ㆍ타락병ㆍ꿀병 따위에 물이나 술이나 우유나 타락이나 꿀이 없더라도, 물병 내지 꿀병이라 하나니, 이 병들은 공하였다고도 할 수 없고 공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느니라. 만일 공하다면 빛과 냄새와 맛과 촉(觸)이 없어야 할 것이고, 공하지 않다면 물이나 내지 꿀이 있어야 할 것이니, 해탈도 그와 같아서 빛이라 빛 아니라 말할 수 없으며, 공하다 공하지 않다 말할 수 없느니라. 만일 공하다고 말한다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常樂我淨]이 없을 것이요, 공하지 않다면 누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받겠느냐. 이런 이치로 말미암아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 말할 수 없느니라. 공하다 함은 25유와 모든 번뇌와 온갖 괴로움과 온갖 모양새와 온갖 함이 있는 행법(行法)이 없다는 것이니, 마치 병에 타락이 없는 것을 빈 병이라 함과 같고, 공하지 않다 함은 진실한 참 빛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병의 빛깔과 냄새와 맛과 촉함이 있으므로 공하지 않다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해탈을 병에 비유하건대 병은 인연을 만나면 깨어질 수 있지만,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깨뜨릴 수 없나니, 깨뜨릴 수 없음이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또 해탈은 사랑을 떠난 것이라 하나니,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석천왕이나 대범천왕이나 자재천왕을 희망하거니와, 해탈은 그렇지 아니하여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사랑도 없고 의심도 없나니, 사랑도 없고 의심도 없음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니, 만일 해탈에 사랑과 의심이 있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또 해탈은 모든 탐욕을 끊고 온갖 모양새, 온갖 속박, 온갖 번뇌, 온갖 생사, 온갖 인연, 온갖 과보를 끊음이니, 이런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열반이니라. 모든 중생은 번뇌와 생사를 무서워하여서 3귀의를 받나니, 마치 사슴들이 사냥꾼을 무서워하다가 벗어나고 한 번 뛰는 것을 1귀의에 비유하고, 나아가 세 번 뛰는 것을 3귀의에 비유하면, 세 번 뛰었으므로 편안함을 얻게 되느니라. 중생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마군의 사냥꾼을 무서워하므로 3보에 귀의하고 3보에 귀의하므로 편안함을 얻나니, 편안함을 받는 것은 참 해탈이요, 참 해탈은 곧 여래요, 여래는 곧 열반이며, 열반은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음은 불성이요, 불성은 결정함이요, 결정함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열반과 불성과 결정과 여래가 한 뜻이라면, 어찌하여 3귀의가 있다 이르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생사가 두려워서 3귀의를 구하고, 3귀의를 하였으므로 불성이 결정이요 열반임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법은 이름은 같으나 뜻이 다르고, 어떤 법은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르니라. 이름은 같으나 뜻이 다른 것은, 부처도 항상하고 법도 항상하고 비구 스님도 항상하고 열반과 허공이 모두 항상하므로 이름은 같으나 뜻이 다르다는 것이요,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이요 법은 깨닫지 않음이요 스님은 화합이요 열반은 해탈이요 허공은 선한 것이 아니며 또 걸림이 없음이라고 이름하나니, 이것은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른 것이니라.
선남자여,
3귀의도 그와 같아서 이름과 뜻이 모두 다른 것이어늘 어찌 하나라 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 교담미(憍曇彌)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공양하지 말고 승가에 공양하라. 승가에 공양하면 3귀의에 구족히 공양함이 되리라’ 하니, 마하파사파제가 대답하되 ‘승가 가운데는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거늘 어찌하여 승가에 공양하면 3귀의에 구족히 공양함이 된다고 합니까?’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내 말을 따름은 부처에게 공양함이요, 해탈을 위하므로 법에 공양함이요, 승가가 받으므로 승가에 공양함이 된다’고 하였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3귀의는 하나가 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하나를 말하여 셋이라 하고, 또 셋을 말하여 하나라 하나니, 이런 이치는 부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들의 알 것이 아니니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필경까지 안락한 것이 열반이라 하심은 무슨 뜻입니까? 열반은 몸을 버리고 지혜를 버림이니, 몸과 지혜를 버렸으면 누가 안락을 받겠습니까?”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밥을 먹고 가슴이 답답하여 토하려고 밖에 나갔다가 이미 토하고 다시 들어왔는데, 동무가 묻기를 ‘그대의 답답한 병이 모두 나아서 돌아왔는가?’ 하기에 그가 대답하기를 ‘아주 나아서 편안해졌다’ 하였으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25유를 끝까지 여의고 열반의 안락한 곳을 영원히 얻으면, 변동할 수도 없고 끝나는 일도 없어서 온갖 받음[受]을 끊었으므로 받는 일 없는 즐거움[無受樂]이라 하나니, 이렇게 받는 일 없음이 항상한 즐거움이어늘, 만일 여래가 즐거움을 받는다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필경까지 즐거움이 열반이요, 열반은 참 해탈이며 참 해탈은 곧 여래니라.”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해탈이라 합니까?”
“그러니라. 선남자여,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이 해탈이니, 이러한 해탈이 곧 여래니라.”
“만일 나지도 멸하지도 않음이 해탈이라면, 허공의 성품이 나지도 멸하지도 아니하오니, 마땅히 여래일 것이오며, 여래의 성품과 같아서 곧 해탈이겠습니다.”
“선남자여,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렇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가란가새[迦蘭伽鳥]나 명명새[命命鳥]의 소리가 맑고 아름다움이 까마귀ㆍ까치의 소리와 같겠느냐?”
“그렇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까마귀ㆍ까치 소리를 공명조의 소리에 비교하면 백천만 곱으로도 비길 수 없나이다.”
가섭보살이 또 말을 계속하였다.
“가란가의 소리는 아름답고 몸매도 같지 아니하옵거늘, 여래께서 어찌하여 까마귀ㆍ까치에 비교하나이까? 겨자씨로 수미산에 비교함과 같으며, 부처님을 허공에 비유함도 그와 같겠으니, 가란가의 소리를 부처님 음성에는 비유하려니와 까마귀ㆍ까치의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깊고 깊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치를 그대가 잘 이해하는구나. 여래가 어떤 때에는 까닭이 있어서 허공으로 해탈에 비유하거니와, 이와 같은 해탈은 곧 여래니라. 참 해탈은 천상ㆍ인간에 비유할 것이 없으며, 허공도 비유가 되지 못하건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비유가 안 되는 것으로 비유하나니, 해탈은 곧 여래며, 여래의 성품이 곧 해탈이어서 해탈과 여래가 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않은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가 안 된다 함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비유가 되지 않건만 인연이 있으므로 비유하는 것이니, 경전에 말하기를, 얼굴이 단정한 것을
보름달 같다 하고, 흰 코끼리가 깨끗함을 설산과 같다 하는 따위니, 보름달이 얼굴과 같을 수 없고, 설산이 코끼리 같을 수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슨 비유로도 참 해탈을 비유할 수 없건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비유하는 것이니, 모든 비유로써 법의 성품을 알게 함도 그와 같으니라.”
“여래께서 어찌하여 두 가지 말씀을 하십니까?”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성난 마음으로 여래를 해하려 할 적에 여래는 화평한 얼굴로 한탄하는 기색이 없으리니, 그 사람이 여래의 몸을 상하여 역적죄를 이루겠느냐?”
“그렇지 못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상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 이유를 말하면, 빛깔로 된 몸은 없고 법성신(法性身)만 있으니, 법성신의 성품은 깨뜨릴 수 없거늘, 그 사람이 어찌 부처님 몸을 상하오리까만 다만 악독한 마음인 까닭으로 무간죄를 이룰 뿐이오니, 이런 인연으로 모든 비유를 끌어서 참된 법을 알게 하나이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또 가섭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내가 하려는 말을 그대가 하는구나.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흉악한 사람이 자기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밭에 쌓은 낟가리 곁에 있을 적에 어머니가 밥을 가지고 오거늘 그 사람이 보고 죽이려는 마음을 내어 칼을 갈거든, 어머니가 알아차리고 낟가리 속에 숨었는데, 그 사람이 칼을 들고 낟가리를 들면서 여러 번 찌르고 죽인 줄 알고 기뻐하는 동안에 어머니가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면, 이 사람이 무간지옥 죄를 이루게 되겠느냐?”
“세존이시여, 일정하게 말할 수 없나이다. 왜냐 하면 죄가 있다고 말하려면 어머니의 몸이 상하였어야 할 터인데 상하지 않았으니 죄가 있다 할 수 없고,
죄가 없다 하려 해도 죽인 줄 생각하고 쾌한 마음을 가졌으니 어떻게 죄가 없다 하오리까? 이 사람이 비록 역적죄를 구족하지는 않았더라도 역적죄를 면치는 못할 것이오니, 이런 인연으로 비유를 들어 참된 법을 알게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러한 인연으로 가지가지 방편과 비유를 말하여 해탈에 비유하거니와, 아무리 한량없는 아승기 비유를 들더라도 실로는 비유로 비교할 수 없느니라. 어떤 인연으로는 비유로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인연으로는 비유하지 못하기도 하나니, 그러므로 해탈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열반에 나아가는 것이며, 열반과 여래도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원만히 성취하였으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에야 여래의 이르시는 곳이 그지없음을 알겠사오며, 이르는 곳이 그지없사올새, 수명도 끝이 없음을 알겠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제 바른 법을 잘 보호하는구나.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모든 번뇌의 결박을 끊으려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바른 법을 보호하여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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