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보자] #4465 법원주림(法苑珠林) 22권
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22권
법원주림 제22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13. 입도편(入道篇)[여기에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흔염부(欣猒部) 체발부(鬄髮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생각해 보면 대개 승과 속[道俗]의 어긋나는 모습과 깨끗하고 더러움의 나아가는 점이 다른 것은, 선과 악이 같지 않고 보응(報應)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의(仁義)의 성대한 덕의 풍모를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예의의 현묘한 법의 규범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애정을 끊어 부모와 이별하고 영화로운 권세의 자리를 버리며, 맛있는 음식을 절제하고 나물밥으로 고행하며, 거친 옷으로 몸을 덮고 장식을 돌아보지 않으며, 쓰임새를 따라 몸을 편안히 하고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3독(毒)을 눌러 막고 8음(音)을 제어해 그쳐서 3천의 위의와 5백의 계상(戒相)에 있어서 동정(動靜)이 마땅함에 부합하여 모두 다 법식이 있으며, 8만 수다라[修多]와 12부(部)의 별전(別傳)을 중생의 근기에 맞춰 설명하고 때를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면, 그야말로 인천(人天)의 모범이요 도에 들어가는 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흔염부(欣猒部)
『문수문경(文殊問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공덕 가운데 출가한 이의 마음만한 것이 없다. 왜냐 하면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허물과 걱정이 많기 때문이요, 출가한 이는 공덕이 무량하기 때문이다.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장애가 있지만 출가한 이는 장애가 없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온갖 악법을 행하지만 출가한 이는 온갖 악법을 떠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더러운 번뇌가 있는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더러운 번뇌를 제거한 곳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욕심의 진흙탕에 빠져 있지만 출가한 이는 욕심의 진흙탕에서 벗어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법을 따르지만 출가한 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법을 멀리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정명(正命)을 얻지 못하지만 출가한 이는 그 정명을 얻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근심과 슬픔으로 괴로운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기쁨에 넘치는 곳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번뇌로 얽힌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해탈하는 곳이다.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몸을 상하게 하고 다치게 하는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상하게 하고 다치게 하지 않는 곳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이익과 쾌락을 탐함이 있지만 출가한 이는 이익과 쾌락을 탐함이 없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시끄러운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고요한 곳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하천한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고귀한 곳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번뇌에 불타지만 출가한 이는 번뇌의 불을 끄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항상 남을 위하지만 출가한 이는 항상 자기를 위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삼지만 출가한 이는 괴로움에서 벗어남을 즐거움으로 삼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가시를 자라게 하지만 출가한 이는 가시를 제거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작은 법을 성취하지만 출가한 이는 큰 법을 성취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법의 작용이 없지만 출가한 이는 법의 작용이 있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3승(乘)의 나무람을 받지만 출가한 이는 3승의 찬탄을 받는다.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만족함을 알지 못하지만 출가한 이는 항상 만족함을 알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악마의 사랑을 받지만 출가한 이는 마군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방일함이 많지만 출가한 이는 방일함이 없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남의 종이 되지만 출가한 이는 종의 주인이 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어두운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밝은 곳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교만을 늘리지만 출가한 이는 교만을 없애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과보가 적지만 출가한 이는 과보가 많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아첨과 속임이 많지만
출가한 이는 순박함과 정직함이 많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항상 근심과 괴로움이 있지만 출가한 이는 항상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그것이 속임의 법이지만 출가한 이는 그것이 진실한 법이다.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산란함이 많지만 출가한 이는 산란함이 없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기가 유전(流轉)하는 곳이지만 출가한 이는 거기가 유전하지 않는 곳이며, 세속에 머무르는 것은 독약과 같지만 출가하는 것은 감로(甘露)와 같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내면의 사유(思惟)를 잃지만 출가한 이는 내면의 사유를 얻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귀의할 곳이 없지만 출가한 이는 귀의할 곳이 있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성냄이 많지만 출가한 이는 자비를 많이 행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무거운 짐이 있지만 출가한 이는 무거운 짐을 버리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죄과가 있지만 출가한 이는 죄과가 없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생사에 유전하지만 출가한 이는 그 한계가 있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재물을 보배로 삼지만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공덕을 보배로 삼으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생사의 흐름을 따르지만 출가한 이는 생사의 흐름을 거스른다.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번뇌의 큰 바다지만 출가한 이는 번뇌의 바다를 건너는 큰 배이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결박을 당하지만 출가한 이는 결박을 벗어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국왕의 훈계를 위하지만 출가한 이는 불법의 훈계를 위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짝을 얻기 쉽지만 출가한 이는 짝을 얻기 어려우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상해(傷害)하는 것을 훌륭하다 하지만 출가한 이는 섭수(攝受)하는 것을 훌륭하다 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번뇌를 증장시키지만 출가한 이는 번뇌를 벗어나며, 세속에 머물러 있는 이는 가시숲과 같지만 출가한 이는 가시숲을 나온 것과 같으니라.
문수사리야, 만일 내가 세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무라고 출가하는 것을 찬탄하려고 한다면 그 말로 허공을 다 채우고도 오히려 끝이 없으니, 이것을 세속에 머물러 있는 허물과 환란이라 하고 출가의 공덕이라고 한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재가(在家)의 협착함은 감옥과 같아 일체의 번뇌가 그 때문에 생기고, 출가의 광활함은 마치 허공과 같아 일체의 선법이 그 때문에 증장한다. 재가인은 안에 있으면 처자를 걱정하고 밖에 나가면 왕의 역사에 허덕인다. 부귀하고 지체가 높으면 마음대로 방종하고 빈궁하고 하천하면 굶주림과 추위에 의지를 잃으며, 공사(公私)의 일에 분주하면서 밤낮으로 괴로워하고 온갖 일에 얽매이는데, 어느 틈에 도를 닦을 것인가?”
또 『욱가장자경(郁伽長者經)』에서 말하였다.
“재가인은 온갖 번뇌가 많으니, 부모 처자의 사랑[恩愛]에 얽매여 항상 재물과 색(色)을 생각하고 탐하여 구하지만 만족할 줄 모른다. 그것을 얻었을 때에는 그것을 지켜 내려고 온갖 걱정이 많으며, 6취(趣)를 흘러 다니면서 불법을 어기고 떠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것을 원수나 악한 벗이라 생각해야만 하고, 가정 생활을 싫어해 출가할 마음을 내어야만 한다. 집에 있어서는 위없는 보리의 도를 닦아 모을 수 없으니, 모두 출가함으로써 위없는 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가하면 더렵혀지지만 출가하면 아주 좋으며, 재가하면 결박당하지만 출가하면 해탈하며, 재가하면 고통이 많으나 출가하면 쾌락이며, 재가하면 하천하지만 출가하면 존귀하며, 재가하면 종이 되지만 출가하면 주인이 되며, 재가하면 남을 의지하지만 출가하면 자유로우며, 재가하면 근심이 많지만 출가하면 근심이 없으며, 재가하면 무거운 짐을 지지만 출가하면 짐을 벗어 버리며, 재가하면 일에 바쁘지만 출가하면 한가롭다.”
또 『출가공덕경(出家功德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남녀와 노비와 인민들을 다 풀어 놓아서 출가시키면 그 공덕은 한량이 없다. 비유하자면 온 천하에 가득한 아라한에게 1백 년 동안 공양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사람이 열반을 얻기 위해 하루[一日一夜]를 출가하여 계를 받는 공덕의 한량없는 것만 못하다. 또 7보(寶)의 탑을 세워 그 높이가 삼십삼천에 이르더라도 그것은 출가한 공덕만 못하다.”
또 『대연경(大緣經)』에서 말하였다.
“하루 동안
출가하였기 때문에 20겁 동안 3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는다.”
또 『승기율(僧衹律)』에서 말하였다.
“하루 동안 출가하여서 범행(梵行)을 닦는 자는 6만 6천6십 년 동안 3도(塗)의 고통을 떠날 것이다.”
또 『출가공덕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출가한 이를 괴롭히거나 막아서 못하게 제지한다면 이 사람은 곧 부처의 종자를 끊는 것이니, 온갖 악이 그 몸에 모이는 것이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현세에서는 나병(癩病)에 걸리고, 죽어서는 흑암지옥(黑闇地獄)에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또 『가섭경(迦葉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대왕과 태자는 출가의 공덕이 매우 깊다는 말을 듣고 모두 다 발심하여 출가하였으므로, 온 천하에는 한 중생도 재가하는 자가 없이 모두 다 발심하여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그 모든 중생들이 출가한 뒤에는 농사지을 필요가 없이 그 땅에서는 모든 쌀이 저절로 나고 온갖 나무에서는 온갖 옷이 저절로 열렸으며, 모든 천인들이 다 그들에게 공양하고 공급했다.”
또 『불장경(佛藏經)』에서 말하였다.
“마땅히 일심으로 도를 행하여 법행(法行)에 수순(隨順)하고 의식(衣食)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래께서 백호상(白毫相)의 한 부분으로서 말세의 일체 출가한 제자들에게 공급하더라도 다하지 않을 것이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마치 백 사람 장님에게 어떤 한 밝은 의사가 있어서 그들의 눈을 고쳐 다 한꺼번에 환히 보게 하고, 또 눈이 뽑힐 죄를 지은 백 사람들에게 어떤 한 세력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을 다 구제해 눈을 잃지 않게 하였다면 이 두 사람의 복이 비록 무량하다 하더라도, 그것도 오히려 남의 출가를 허락하거나 자기가 출가한 그 공덕의 광대함만은 못하다.”
(3) 적발부(𩮜髮部)
처음 출가하고자 하는 자는 율법에 의해서 먼저 2사(師)를 청해야 하니, 첫째는 화상(和上)이고, 둘째는 아사리(阿闍梨)이다.[청하는 법은9) 율(律)과 같다.]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먼저
화상을 청해 10계(戒)를 받을 때에는 화상이 앞에 나타나 있지 않아도 10계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화상이 죽었다고 들었다면 계를 받을 수 없고, 만약 죽었다고 듣지 않았다면 계를 받을 수 있다. 아사리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
또 『청신사도인경(淸信士度人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삭발[𩮜髮]하려고 한다면 먼저 머리털이 떨어지는 자리를 향탕(香湯)으로 뿌려서 청소하고, 주위 7척의 네 귀퉁이에 번기[幡]를 달고, 하나의 높은 자리를 만들어 출가자가 앉는 시늉을 하고, 다음에는 또 두 개의 훌륭한 자리를 만들어 2사(師)가 앉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출가하려는 자는 본래 세속의 옷을 입고 부모와 존친(尊親) 등에게 절하고 하직한 다음에 게송을 외운다.
삼계 가운데 떠돌고 구르면서
은혜와 애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가
은혜 버리고 무위(無爲)로 들어가니
참으로 은혜를 갚는 자이네.
이 게송을 외운 뒤에는 세속의 옷을 벗어 버린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마땅히 향탕(香湯)으로써 백의(白衣)의 기운을 씻어 없애 버려야 한다.”
또 『도인경(度人經)』에서 말하였다.
“비록 출가자의 옷을 입더라도 다만 니원승(泥洹僧)10)과 승기지(僧祇支)11)만을 입을 뿐이고, 가사(袈娑)는 아직 입을 수 없다. 도량에 들어갈 때에는 화상 앞에 나아가서 꿇어앉아야만 한다. 화상은 자기 아이라 생각하고 미워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제자는 스승에 대해서 부모라는 생각으로 존중하고 공양해야만 한다. 그리고 화상은 갖가지로 설법하여 그 마음을 훈계한 다음에 그는 아사리 앞으로 가서 앉는다.”
또 『선견론』에서 말하였다.
“향탕을 그 정수리에 뿌리고[灌頂] 게송으로 찬탄한다.
훌륭하구나 대장부여,
세상의 덧없음을 능히 깨달아
세속을 버리고 열반으로 나아가니
희유하고 사의(思議)하기 참 어렵구나.
이 게송을 외운 다음에는 그로 하여금 시방의 부처님께 예배하게 하고는 다시 게송으로 찬탄한다.
위대하신 세존께 귀의하오니
3유(有)의 고통을 건널 수 있고
또한 원컨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무위(無爲)의 즐거움에 들게 하소서.
이 게송을 마치고 난 후에 아사리는 그의 머리를 깎는다.”
또 『도인경』에서 말하였다.
“그의 머리를 깎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위해 출가의 노래를 부른다.
몸을 훼손하여 뜻을 지키고
애욕을 끊어 친할 것 없어라.
집을 버리고 성도(聖道)에 들어서
모든 사람을 구제하기 원한다.
머리를 깎아 줄 때는 반드시 정수리에 머리털 다섯 가닥에서 세 가닥쯤을 남겨두고 화상 앞으로 가서 꿇어앉는다. 화상이 묻는다.
‘지금 너를 위해 정수리의 머리털을 깎아도 좋겠는가?’
그가 대답한다.
‘좋습니다.’
그런 뒤에 화상이 가사를 입힌다. 그가 바로 가사를 입을 때, 『선견론』에서는 다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위대하구나, 해탈의 옷이여
그 상(相)이 없는 복밭[福田]의 옷이여
그것을 입고 계율에 따라 봉행하여
널리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리라.”
『도인경』에서 말하였다.
“이미 가사를 입은 뒤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법도를 행하면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뒤를 따라서 세 번 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스스로 게송을 외워 경하(慶荷)하는 뜻을 나타낸다.
훌륭하구나,12) 부처님을 만난 이여
어떤 사람이 기뻐하지 않으리.
복과 소원이 때와 함께 모였으니
나는 지금 큰 법의 이익 얻었네.
법도와 도는 예의를 마치고 또 대중과 두 스승에게 예배한다. 그런 다음에 아랫자리에 앉아 6친(親)의 절을 받고, 출가하여 세속을 떠남을 감사하면서 매우 기뻐한다. 부모와 여러 친족들은 다 그에게 예배하여 그의 도를 향한 뜻을 기뻐하며 가운데와 앞의 머리털 깎음의 가장 좋음을 응하여 그로 하여금 재(齋)를 얻게 한다.”
『비니모론(毘尼母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다음에 화상은 그에게 3귀의, 5계 등을 준다.” [이 이외의 법의 의식은 모두 다 말할 수 없고, 그때 그때의 상황을 참작해 행하면 훌륭함이 더욱 더할 것이다.]
(4) 인증부(引證部)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어떤 여인이 얼굴이 단정하고 외모가 특출한데 외도의 법에서 출가(出家)하여 수도하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물었다.
‘얼굴과 외모가 그렇게 단정한데 속가에 있지 무엇 때문에 출가하였는가?’
여인이 대답했다.
‘내가 지금처럼 단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다만 젊어서부터 음욕을 싫어하여 그 때문에 출가했습니다. 나는 재가였을 때 얼굴이 단정했기 때문에 일찍 결혼하여 일찍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장대해지면서 비할 데 없이 얼굴이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여위고 약해지면서 무슨 병자와 같은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곧 아들에게 그 병의 까닭을 물었으나 아들은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꾸 캐묻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내게 말했습니다.
≺저는 진실로 말하지 않으면 제 목숨이 온전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다 말하지 않으려 한 것은 너무나도 염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정을 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병이 난 것입니다.≻
나는 곧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일 그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쩌면 아들은 죽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금 도리를 어김으로써 아들 목숨을 살리자.≻
곧 아들을 불러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을 데리고 침대에 올라가려고 하자 곧 땅이 갈라지면서 내 아들은 산 채로 그 구덩이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나는 놀라고 두려워서 손을 뻗쳐서 아들의 머리털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의 머리털은 지금도 내 품 안에 있습니다. 이 일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출가한 것입니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불법 안에서 출가한 사람은 비록 계를 깨뜨리고 죄에 떨어지더라도 그 죄가 끝나면 해탈할 수 있다. 이것은 『우발라화비구니본생경(優鉢羅華比丘尼本生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 비구니는 6신통을 얻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 비구니는 어떤 귀인(貴人)의 집에 들어가
늘 출가의 법을 찬탄하면서 그 귀부인들에게 말했다.
‘두 자매(姉妹)는 출가하십시오.’
모든 귀부인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아직 젊고 얼굴이 아름다워 계를 지키기 어려워서 혹시라도 파계할지 모릅니다.’
비구니는 말하였다.
‘파계하면 곧 파계하고 그저 출가만 하십시오.’
그녀들이 물었다.
‘파계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인데 어째서 파계해도 된다고 하십니까?’
비구니가 대답하였다.
‘지옥에 떨어지면 떨어지지요.’
모든 귀부인들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지옥에 가면 죄를 받을 것인데 어째서 떨어져도 된다고 하십니까?’
비구니가 말하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본래 나는 전생에 희녀(戱女)가 되어 갖가지 옷을 입고 잡된 말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비구니의 옷을 입고 희롱하며 웃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가섭불(迦葉佛) 때에 비구니가 되어 귀한 신분과 단정한 얼굴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내어서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갖가지 죄를 받았습니다. 그 죄를 다 받은 뒤에는 석가모니불을 만나 출가하여 아라한 도를 얻었으니, 비록 또 파계하더라도 도과(道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祇桓]에 계실 때 술에 취한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와서 비구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시켜서 그의 머리를 깎고 법의(法衣)를 입혀 주었다. 술이 깬 바라문은 제 몸이 갑자기 비구가 된 것에 놀라고 두려워해서 곧 달아나 버렸다.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그 취한 바라문에게 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바라문은 무량한 겁 동안에 출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지금 취했기 때문에 잠깐 그런 마음이 조금 생겼다. 이 인연 때문에 그는 나중에 출가하여 도를 얻을 것이다.’
이같이 갖가지 인연으로 출가의 이익과 공덕은 무량한 것이다. 그러므로 재가자[白衣]들이 비록 5계를 지녔더라도 출가인의 큰 공덕만은 못한 것이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노류성(盧留城)에 있는 우타선왕(優陀羨王)은
총명하고 통달하여 큰 지혜가 있었다. 그에게는 부인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은 유상(有相)이었다. 그녀는 단정하여 짝할 이가 적었고 아울러 덕행이 있었으므로 왕이 매우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 때 그 나라의 법에 왕은 손수 거문고를 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에 그 부인은 구석진 방에서 왕과 함께 즐기며 놀고 있었는데, 왕의 총애를 믿고 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고 자신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 왕은 상(相)을 잘 보았는데, 부인이 처음 손을 들었을 때 왕은 그 부인에게서 죽을 상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그 남은 목숨이 이레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왕은 곧 거문고를 놓고 슬퍼서 길게 탄식했다.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대왕님의 은총을 받아 구석진 방에서 감히 대왕님에게 거문고를 타라고 하고 저는 일어나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옵는데 무엇이 마땅하지 못해서 거문고를 놓으시고 길게 탄식하십니까? 대왕께서는 말씀해 주소서.’
그러나 왕은 말하려 하지 않았으나 그녀가 간절히 조르므로 왕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부인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곧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석실(石室)의 비구니에게 들으오니, 만약 신심으로 하루 동안만이라도 출가하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출가하고자 하오니 원컨대 대왕님은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사랑하는 정이 두터워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
‘엿새가 되거든 당신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겠소. 그 뜻을 어기지 않으리라.’
드디어 6일이 되자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선한 마음으로 출가하고자 하니, 만약 천상에 태어나거든 꼭 내게 와서 알리시오. 나도 가리다.’
이렇게 맹세하자 부인은 좋다고 하고서 곧 출가하여 8계재(戒齋)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날로 돌에서 나는 꿀물[石蜜漿]을 마셔 뱃속이 얽혀서 7일이 되자 곧바로 목숨을 마쳤다. 이 좋은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나서는 옛날의 맹세를 생각하고 왕이 있는 곳으로 왔다. 광명이 환하게 일어나 왕궁을 두루 비추었다. 그 때 왕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천녀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아내 유상입니다.’
왕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원컨대 이리 와서 앉으시오.’
천녀가 대답하였다.
‘제가 지금 대왕을 보니 더러운 냄새 때문에 가까이 가기 어렵습니다. 다만 옛날 약속 때문에 와서 대왕을 뵙는 것뿐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풀어져 스스로 탄식하여 말하였다.
‘지금의 저 천녀는 본래 내 아내였지만 하루 동안 출가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되어 정신과 뜻이 높고 원대해 비천하게 보는구나.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출가하지 않는가. 나는 일찍이 하늘나라의 손톱 하나가 한 염부제 땅의 가치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이 한 나라를 탐할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말하고는 왕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출가하여 도를 닦아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도론』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공작새가 아무리 그 몸을 아름답게 꾸몄다 해도
기러기와 학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만은 못하며
재가자들이 아무리 부귀의 힘이 있다 해도
출가자의 그 깊은 공덕만은 못하네.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형제 두 사람은 가세가 부귀하여 재산이 한량없이 많았다. 그러나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 의지할 데가 없고, 비록 형제가 되었어도 뜻이 각각 달라 형은 도의(道義)를 좋아하였고, 아우는 가업(家業)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 아우는 형이 가업에 친하지 않은 것을 보고 늘 미워하고 한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함께 형제가 되었지만 부모를 일찍 여의었으니 생활을 늘 생각해야 할텐데도 도리어 가업을 버리고 사문을 쫓아다니면서 불경만 들으니, 사문이 어찌 우리에게 옷과 재보를 준답니까? 집은 더욱 빈곤해지고 재물은 날로 모자라 남의 비웃음을 사고 집안을 망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형이 대답하였다.
‘5계와 10선으로 삼보께 공양하고 도(道)로써 부모를 교화하는 것이 효도가 되는 것이다. 도(道)와 속(俗)이 서로 반대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도가 즐거워하는 것을 속은 미워하고, 속이 보배로 여기는 것을 도는 천하게 여기며, 지혜와 어리석음이 같지 않은 것은 마치 밝음과 어두움과 같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어두움을 버리고 밝음으로 나아가며 도로써 진실을 이루는 것이다. 그대가 지금 즐거워하는
고뇌의 거짓이 어찌 쓰라린 고통[辛苦]인 줄을 알겠는가?’
그 아우는 분노를 머금고 머리를 흔들며 믿지 않았다. 형은 그것을 보고 다시 아우에게 말했다.
‘그대는 가사(家事)를 탐하여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나는 경전의 도를 좋아하여 슬기를 보배로 여기므로 지금 집을 버리고 복밭에 목숨 바쳐 귀의하려 한다. 세상에 붙어 있는 목숨을 생각하면, 그 초라함이 날리는 티끌과 같아서 덧없음이 갑자기 닥치고 죄 때문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을 버리고 위태로움을 피해 편안함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아우는 형의 뜻이 도의(道義)로 달려감을 보고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형은 곧 집을 버리고 나가 사문이 되어 밤낮으로 정진하고 좌선하고 사유하여 그 행이 경법(經法)에 맞아 도를 증득했다.
아우는 이 말을 듣고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가업을 탐하고 법을 위하지 않다가 그 뒤에 목숨을 마치고 소가 되었는데, 살이 쪄서 몸집이 매우 컸다. 소장수는 그것을 사들여 소금을 싣고 다니면서 장사했다. 여러 번 오가면서 그 소는 차츰 야위어져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언덕길을 오르다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장수가 매를 때리자 머리를 흔들면서 겨우 조금 움직였다.
그 때 형은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멀리서 그 아우를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는 전에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가. 스스로 그 몸을 던져 소가 되어 짐승들 속에 떨어졌구나.’
형이 위신력으로 그 본래의 목숨을 비추어 보이자, 아우는 곧 제 신세를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책했다.
‘불선(不善)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아끼고 탐내고 질투하면서 불법을 믿지 않고 성스런 무리들을 업신여겨 형의 말을 믿지 않고 대들기만 일삼았다. 그러므로 지금 소가 되어 몹시 힘들고 고생하지만 후회한들 어쩔 수 있겠는가.’
형은 아우의 생각을 알고 슬퍼서 가슴 아파하면서 곧 소 주인에게 그 본말을 다 이야기했다. 주인은 이 말을 듣고 그 소를 형에게 주었다. 형은 소를 끌고 절로 돌아와 삼보를 생각하게 하고 때를 맞추어 먹이를 주었다. 그리고 소는 목숨을 마치고 죽어 도리천에 태어났다.
그 때 그 장사꾼들은 각자가 생각하였다.
‘우리는 생활하느라고 보시하지 못하고
도의(道義)를 알지 못하였으니 죽어서도 그럴까 두렵구나.’
그리고는 그들은 모두 집을 나와 처자와 아끼던 보물들을 다 버리고 모두 사문이 되어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모두 도를 얻었다.
이로써 본다면 세간의 재물과 보배는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하며 3존(尊)을 공경하고 받들면서 몸을 닦고 도를 배우면 어느 세상에서나 편안함을 얻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아라한인 사야다(闍夜多) 존자가 여러 제자들을 데리고 덕차시라성(德叉尸羅城)으로 갔다. 그 성에 다다르자 슬퍼하면서 기뻐하지 않았다. 조금 더 가다가 길에서 한 마리 까마귀를 보고 기쁘게[欣然] 미소지었다. 제자들이 그 스승에게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그 인연을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처음 성에 다다라 그 성문에서 어떤 귀신 아들을 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몹시 배고프다고 하면서 내게 말하였다.
≺제 어머니가 저를 위해 음식을 구하려고 성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헤어진 지 5백 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배가 몹시 고파 허기가 져서 오래지 않아 죽게 될 것입니다. 존자께서는 성내로 들어가시어 만약 제 어머니를 보시거든 제 쓰라린 고통을 말씀하시고 빨리 오라고 해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 그 어머니를 만나 아들의 뜻을 다 이야기했더니, 그 귀신 어머니는 내게 대답하였다.
≺저는 성내에 들어온 지 5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 사람의 침도 얻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아이를 갓 낳아 기력이 아주 쇠약해 있으므로 혹 조금의 침을 얻더라도 다른 귀신들이 모두 와서 그것을 뺏아 가버렸습니다. 지금 막 어떤 사람의 침을 조금 얻었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성을 나가 제 아들과 나눠 먹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문에는 힘센 귀신들이 많이 있으므로 그것이 두려워 감히 나가지 못합니다. 존자께서는 저를 데리고 이 성을 나가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그를 데리고 나와 그 아들에게 먹이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귀신 어머니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나 되는가?≻
그 귀신이 나에게 대답했다.
≺저는 이 성(城)이 일곱 번 세워지고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귀신의 말을 듣고 오랫동안 생사의 고통을 받는 것을 슬퍼했다. 그 때문에 슬퍼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 까마귀는 다음과 같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毘婆尸)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나는 그 때 장자(長者)의 아들로서 출가하려 했다. 그 때에 출가했으면 반드시 아라한이 되었을 것인데, 내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고 억지로 나를 결혼시켰었다. 내가 아내를 맞아들인 뒤에도 다시 출가하기를 청하자, 부모님은 내게 말하였다.
≺만약 아들 하나만 낳으면 출가시킬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분부를 따랐고 뒤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들의 나이 여섯 살이 되어 내가 다시 출가하려 하자, 부모님은 아이를 시켜 내 다리를 안고 울면서 말하게 했다.
≺아버지가 나를 버리시면 누가 나를 기르겠습니까? 먼저 나를 죽이고 떠나십시오.≻
그 때 나는 이것을 보고 곧 애착하는 마음이 생겨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다시는 출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 때문에 그로부터 91겁 동안 5도(道)에 흘러 다니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지금 도안(道眼)으로 보니, 그 까마귀가 옛날의 내 아들이다. 그것이 어리석어 오랫동안 생사 속에 있은 것을 가엾이 여겨 이로써 미소를 지은 것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남의 출가를 막는다면 이 사람은 그 죄의 과보로 항상 악도에 있어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해탈을 얻지 못하고, 악도의 죄가 끝나 혹 인간에 나더라도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출가하려는 사람을 보거든 부지런히 방편으로 그를 권하고 도와주어 그것을 이루게 할 것이요, 말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출가공덕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부처님께서 아난을 데리고 비사리성(毘舍離城)에 들어가셨는데 마침 걸식할 때였다. 비라선나(鞞羅羨那)라는 왕자가 여러 미녀들과 함께 높은 누각에서 즐기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즐기는 소리를 듣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알기로는 저 왕자는 지금부터 이레 뒤에 반드시 목숨을 마칠 것이니, 만약 출가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은 이 말을 듣고 곧 교화하러 가서 그에게 출가하기를 권했다. 왕자는 이 권유를 듣고 엿새 동안 마음껏 향락하고, 이레가 되는 날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그리하여 하루 낮과 밤 동안 깨끗한 계율을 닦아 지니고는
곧 목숨을 마치고 사천왕천에 태어나서 북천왕 비사문(毘沙門)의 아들이 되어 여러 미녀들과 함께 5욕락(欲樂)을 누리면서 천상의 수명 5백 세를 채웠다. 그 뒤에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서 제석천의 왕자가 되어 천상에서 천 년을 살았다. 다음에는 염마천(燄摩天)에 태어나서 또 왕자가 되어 2천 년을 살았다. 다음에는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서 또 왕자가 되어 4천 년을 살았다. 다음에는 화락천(化樂天)에 태어나서 또 왕자가 되어 8천 년을 살았다. 화락천에서 목숨을 마치고 다시 제6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나서 또 왕자가 되어 여러 미녀들을 데리고 5욕락을 누렸다. 여기에서 가장 으뜸으로 모두 천상의 수명만 6천 년을 살았다. 이렇게 향락하면서 욕계의 6천을 일곱 번을 왕래할 때에는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없었다.
하루의 출가로 20겁 동안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천상에 나서 저절로 복을 받았다. 최후로 인간에서는 부유한 집에 태어나 재물이 풍족하였고, 장년을 지나 노년에 이르러서는 세속을 싫어해 출가 수도하여 벽지불이 되어 이름을 비류제리(毘流帝梨)라 하였고, 한량없는 천인과 인간을 널리 제도했다.
이 인연으로 출가하는 공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비유할 수가 없다. 가령 온 천하에 가득한 아라한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1백 년 동안 마음을 다해 공양하여 4사(事)가 모자람이 없고, 나아가 그들이 열반한 뒤에는 모두 탑을 세우고 꽃과 향과 영락 등 갖가지로 공양하여 얻는 공덕도, 만약 어떤 사람이 열반을 구하기 위해 하루 낮과 밤 동안 출가하여 계를 지키는 공덕보다는 못한 것이다.”
이로써 말하자면, 출가의 법은 참으로 존귀하게 여길 만하다. 조그만 재색(財色)으로 세속 일에 탐착하여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본기경(中本起經)』에서 말하였다.
“제바달다(提婆達多).”[제(齊)나라 말로 천열(天熱)이니 그가 태어날 때에 사람과 천인들의 마음이 다 뜨거움에 놀랐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또 『무성섭론(無性攝論)』에서 말하였다.
“제바(提婆)는…….”[당(唐)나라 말로 천수(天授), 또는 천여(天與)이니, 하늘에 빌어 그를 얻었기 때문에 천수라 한다.]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제바달다[提婆達]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하옵건대 불도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속세에 있으면서 재가 신도의 직분[分檀]으로 보시하는 데 힘써야 마땅하다. 사문이 되는 것은 진실로 쉬운 것이 아니다.’
그는 다시 두세 번 간청했지만 부처님께서는 또 출가하지 말라고 하셨다. 제바달다는 곧 성을 내었다.
‘이 사문은 질투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손으로 머리를 깎고 범행(梵行)을 잘 닦으리라. 어떻게 이 사문의 말을 들을 것인가.’
제바달다는 뒤에 5역죄(逆罪)를 범하여 악한 마음으로 여래께서 계신 곳으로 가고자 했는데,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땅 속에 큰 불바람이 일어나 제바달다의 몸을 감싸 돌아서 그 몸이 불타게 되자, 그는 곧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 ‘나무불(南無佛)’ 하고 불렀다. 그러나 끝내 구제받지 못하고 그는 곧 지옥에 떨어졌다. 아난이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바달다는 얼마 동안이나 지옥에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겁(大劫)을 지나 목숨을 마치고는 사천왕천에 태어나고 차례로 타화자재천에 이르러 60겁이 지나도록 3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최후에는 사람의 몸을 받아 벽지불이 되어 그 이름을 나무라 할 것이니, 목숨을 마칠 때 ≺나무불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 때 목건련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아비지옥에 가서 제바달다를 만나 보고 그를 위로하고 경하하고 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비지옥의 죄인은 사람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목건련이 말씀드렸다.
‘저는 64음(音)을 알아들으므로 이 소리로 그에게 가서 말하겠습니다.’
목건련은 팔을 굽혔다 펼 사이에 아비지옥에 가서 공중에서 불렀다.
‘제바달다야.’
옥졸(獄卒)이 말하였다.
‘이곳에서는 구루진불(拘樓秦佛)과 가섭불(迦葉佛) 때의 제바달다도 있습니다.
지금 어느 제바달다를 찾습니까?’
목건련이 말하였다.
‘나는 석가모니불의 숙부의 아들인 제바달다를 찾는다.’
옥졸은 그 몸을 불로 지지고 깨우면서 말하였다.
‘너는 저 공중을 우러러보아라.’
제바달다가 목건련이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존자님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목건련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세존을 해치려 한 인연으로 아비지옥에 들어왔으나 최후에는 벽지불이 되어 이름을 나무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제바달다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아비지옥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1겁을 지내더라도 조금도 피곤함이 없을 것입니다.’
목건련이 다시 물었다.
‘그동안의 고통이 어떠했는가?’
제바달다가 대답하였다.
‘뜨거운 쇠바퀴로 내 몸을 갈아 부수었고, 또 쇠절굿공이로 내 몸을 찧었으며, 검고 사나운 코끼리가 내 몸을 짓밟았고, 또 불산이 와서 내 얼굴을 짓눌렀으며, 옛날의 가사가 구리쇠 조각으로 변해 극히 치성했습니다. 지금 나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옵고 또 존자 아난에게 예배합니다.’
목건련이 신족통을 거두어들이고 부처님께로 되돌아왔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제바달다의 제자 구가리(俱迦離)는 사리불과 목건련을 비방하여 목숨을 마친 뒤에는 연화(蓮華)지옥에 떨어졌다.”
또 『본기경(本起經)』에서 말하였다.
“구화리(衢和離)…….”
또 『보은경(報恩經)』에서 말하였다.
“제바달다는 아주 먼 과거의 헤아릴 수 없는 겁 이전에 있었는데, 그 때 응현(應現)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고, 그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상법(像法) 때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서 혼자 좌선하고 있었다. 그 때 그 비구는 항상 이[虱]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어서 이에게 약속을 하며 말했다.
‘내가 좌선할 때 너는 가만히 몸을 숨기고 있어야만 한다.’
그 이는 법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 뒤 어느 때 벼룩 한 마리가 곁으로 와서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해서 그처럼 몸에 살이 쪘는가?’
이가 대답했다.
‘내가 의지해 있는 주인은 항상 선정을 닦고 있으면서 내게 음식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법대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몸이 곱고 살찐 것이다.’
버룩이 말했다.
‘나도 그 법을 배우고 싶다.’
이가 말했다.
‘마음대로 하라.’
그 때 비구는 좌선하고 있었는데, 그 때 벼룩이 비구의 피와 살 냄새를 맡고 곧 달려들어 빨아먹었다. 그래서 비구는 마음에 괴로움이 생겨 곧 옷을 벗어 불살라 버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좌선 비구는 지금의 저 가섭이요 그 때의 그 벼룩은 지금의 저 제바달다이며, 그 때의 그 이는 지금의 나이다. 제바달다는 이양(利養)을 위해서 나를 해쳤지만 나는 지금 부처까지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도 이양을 위해 부처의 몸에 피를 내고 지옥에 들어간 것이다. 제바달다는 항상 악한 마음을 품고 나를 해치려 했으니, 그 일은 겁이 다하도록 말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또 『잡보장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에 걸식하러 들어가 그 아우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의 집으로 가셨다. 마침 난타는 집에 있었고, 그 부인은 눈썹 사이에 향을 바르고 있었다. 난타는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문에 나가 맞이하려 하자, 그 부인이 말하였다.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가려면 내 이마의 화장이 마르기 전에 도로 들어와야 합니다.’
난타는 나가서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그 발우를 받아 들고 집에 들어와 음식을 담아 부처님께 바쳤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지 않으시자, 다시 아난에게 주었는데 아난도 받지 않고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누구로부터 그 발우를 받았는가? 그 본인에게 돌려드려라.’
그러자 그는 발우를 가지고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니구루(尼拘屢) 정사(精舍)로 가시어 곧 삭발사[𩮜髮師]에게 난타의 머리를 깎게 하셨다. 그러나 난타는 응하지 않고 주먹을 쥐고 성내면서 삭발사에게 말하였다.
‘가비라성의 모든 인민(人民)의 머리를 그대는 지금 다 깎으려 하는가?’
부처님께서 삭발사에게 물으셨다.
‘왜 머리를 깎지 않느냐?’
삭발사가 대답하였다.
‘두려워서 감히 깎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그에게로 가셨다. 난타는 부처님이 두려웠기 때문에 감히 머리를 깎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머리를 깎은 뒤에도 항상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지만 부처님께서 항상 데리고 다니셨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그 뒤에 하루는 난타가 방을 지키는 차례가 되자 그는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제는 참으로 틈을 얻었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과 스님들이 다 떠난 뒤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리라.’
부처님께서는 성으로 들어가시면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물을 길어 저 병들을 채우고 병이 다 차거든 돌아가거라.’
그는 곧 물을 긷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병이 차면 다른 한 병이 곧 넘어졌다. 이렇게 여러 시간을 지내도 병을 다 채울 수 없게 되자 그는 생각했다.
‘이 병들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저 비구들이 돌아오면 스스로 물을 채우게 하자. 나는 지금 이 병들을 방 안에 두고 떠나자.’
그리고 곧 문을 닫았다. 그러나 한 문짝을 닫으면 다른 문짝이 열리고, 한 지게문을 닫으면 다른 지게문이 열리자 그는 생각했다.
‘이 문짝들을 다 닫을 수는 없다. 그냥 두고 떠나자. 비록 비구들의 옷이나 물건을 잃어버리더라도 나는 재산이 많으니 갚아 주면 되지 않겠는가.’
승방을 나가다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이 길로 오실 것이다. 나는 다른 길로 가자.’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다른 길로 오셨다. 그는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는 곧 나무 뒤에 가서 숨었다. 나무신이 나무를 들어 공중에 두었으므로 그는 한데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난타를 보시고 그를 데리고 정사로 돌아오셔서 그에게 물으셨다.
‘너는 부인을 생각하는가?’
그가 답하였다.
‘예, 사실은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그를 데리고 아나파산(阿那波山)으로 가셔서 다시 물으셨다.
‘네 부인은 단정한가?’
그가 대답하였다.
‘예, 단정합니다.’
그 산에는 늙은 애꾸눈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또 난타에게 물으셨다.
‘네 부인 손타리(孫陀利) 얼굴의 단정함이 저 원숭이와 어떤가?’
난타는 괴로워하면서 생각했다.
‘내 아내의 단정함은 세상에서 짝할 이가 드문데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내 아내의 단정함을 저 애꾸눈 원숭이에게 비교하실까?’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를 데리고 도리천으로 가서 천상의 궁전을 함께 보셨다. 그리고 그는 모든 천자들이 여러 천녀들과 함께 즐기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한 궁전에서는 5백 명의 천녀만 있고 천자는 없었다. 그는 부처님께 그 까닭을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직접 가서 물어 보아라.’
난타가 그녀들에게 가서 물었다.
‘다른 모든 궁전에는 다 천자가 있는데 왜 여기만 천자가 없는가?’
천녀들이 대답했다.
‘염부제에 계시는 부처님의 아우 난타를 부처님께서 핍박하여 출가시키셨습니다. 그는 그 출가한 인연으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이 천궁에 와서 우리들의 천자가 될 것입니다.’
난타가 말하였다.
‘내가 바로 난타다.’
그는 곧 거기 있으려 했지만 천녀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천인이지만 당신은 사람입니다. 사람과 천인은 길이 다릅니다. 우선 가서 사람의 목숨을 버리고 곧 여기 와서 태어나면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부처님께 돌아와서 위와 같은 사실을 다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부인의 단정함이 저 천녀들과는 어떠하던가?’
그가 대답하였다.
‘저 천녀들에게 비하면 애꾸눈 원숭이를 제 아내에게 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데리고 염부제로 돌아오셨다. 난타는 천상에 나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욱 부지런히 계율을 지켰다. 아난이 그 때 이 일로 게송을 외웠다.
비유하면 거세한 양이 싸울 때
나아가려다가 물러나는 것처럼
네가 계율을 지키려는 것
그것도 또한 그와 같구나.
부처님께서 난타를 데리고 다시 지옥으로 가셨다. 모든 확탕(鑊湯)에서 사람들이 모두 삶아지는데 오직 한 확탕만은 물만 끓고 비어 있었다. 그는 괴상히 여겨 부처님께 가서 그 까닭을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직접 가서 물어 보아라.’
난타는 곧 가서 옥졸에게 말하였다.
‘다른 모든 솥에서는 다 사람을 삶아 죄를 다스리는데 왜 이 솥에만은 사람을 삶지 않고 비어 있는가?’
옥졸이 대답하였다.
‘염부제에 난타라는 여래의 제자가 있는데 그는 출가한 공덕으로 장차 천상에 날 것이지만 도를 파하고자 한 인연 때문에 천상의 수명을 마친 뒤에는 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솥에 불을 피우면서 그 난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난타는 이 말을 듣고 옥졸이 붙들까 두려워하여 곧 말하였다.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오직 저를 옹호하시어 데리고 염부제로 돌아가시기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난타에게 물으셨다.
‘너는 부지런히 계율을 지키면서 천상의 복을 닦을 수 있겠는가?’
난타가 대답하였다.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오직 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만을 원할 뿐이옵니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그는 이레 동안에 아라한이 되었다.
여러 비구들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매우 기이하고 아주 특별한 일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과거에도 그러했다.’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과거에도 그러했다 하셨는데 그것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가시국(迦尸國)에 만면(滿面)이라는 왕이 있었고, 비제희국(毘提希國)에는 어떤 음녀(婬女)가 있었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아주 뛰어났었다. 그 때 그 두 나라는 서로 원수 사이였다. 어떤 간사한 신하가 가시국왕에게 이를 찬탄하며 말하였다.
≺저 비제희국에 음녀가 있는데 얼굴이 단정하여 세상에서 드뭅니다.≻
가시국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마음이 홀리어 사자를 보내어 비제희 왕에게 청했으나 그 나라에서 주지 않았다. 거듭 사자를 보내어 말하였다.
≺잠깐 만나 보고 4, 5일 만에 돌려보내겠노라.≻
그 때 비제희국 왕은 그 음녀에게 분부했다.
≺너는 그런 자태와 온갖 재주를 모두 다 가지고 있다. 가시국 왕을 홀려서 잠깐이라도 너를 멀리 떠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곧 음녀를 보내었다. 4, 5일이 지나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큰 제사를 지내려는데 이 여자가 꼭 필요하다. 잠깐 놓아 보내면 뒤에 다시 보내주리라.≻
그리하여 가시 왕은 곧 그녀를 돌려보내었다. 제사가 끝난 뒤에 가시 왕은 사자를 보내 돌려달라 했다. 비제희 왕이 대답하였다.
≺내일 보내 주리라.≻
이튿날이 되어도 보내지 않았다. 이렇게 거짓말로 여러 날이 지났다. 가시왕은 못 견디어 몇 사람을 데리고 몸소 저 나라로 가려 했다. 모든 신하들이 간언을 하여 말렸으나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때 선인산(仙人山)에 한 마리의 원숭이 왕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널리 통해 아는 것이 많았다. 마침 그 아내가 죽어 다른 어떤 암원숭이를 데리고 왔다. 모든 원숭이들이 성을 내어 나무라면서 말하였다.
≺저 암원숭이는 우리들 모두의 소유인데 왜 혼자 차지하느냐?≻
그 때 원숭이 왕은 그 암원숭이를 데리고 가시국으로 달아나 왕이 있는 곳에 숨자, 모든 원숭이들이 다 쫓아갔다.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 집과 담을 부수어 제지시킬 수 없었다. 가시국 왕은 원숭이 왕에게 말했다.
≺너는 왜 저 암원숭이를 모든 원숭이들에게 돌려주지 않는가?≻
원숭이 왕이 말하였다.
≺제 아내가 죽어 버려서 다시 아내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왕은 지금 왜 저를 돌아가라고 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지금 너희 원숭이들이 우리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어찌 돌아가라 하지 않겠는가?≻
원숭이 왕이 말하였다.
≺이것이 좋지 않습니까?≻
≺좋지 않다.≻
이렇게 두세 번 되풀이했으나 왕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했다. 원숭이 왕이 말하였다.
≺지금 당신의 궁에는 8만 4천의 부인이 있는데, 당신은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고 적국의 음녀를 쫓아가려고 하십니까? 저는 지금 아내가 없어 이 하나만을 취했는데 당신은 좋지 않다고 하십니다. 일체 온 백성들은 당신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한 음녀 때문에 국사를 저버리십니까? 대왕님은 아십시오. 음욕이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이 많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바람을 거슬러 횃불을 잡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을 놓지 않으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셔야만 합니다.
음욕이 더럽기는 저 똥무더기와 같고 음욕이 바깥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은 얇은 가죽에 덮인 것이며, 음욕을 되풀이할 수 없음은 똥에 발린 독사와 같고, 음욕은 마치 원수가 사람에게 친근히 다가오는 것과 같으며, 음욕은 마치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과 같고, 음욕을 미워해야 하는 것은 마치 변소에 난 꽃과 같으며, 음욕은 마치 옴과 같아 불을 향해 긁으면 더욱 가려운 것과 같고, 음욕은 마치 개가 마른 뼈다귀를 씹는 것과 같아서 침이 고일 때는 맛있다고 하지만 입술과 이빨이 모두 상하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과 같으며, 음욕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짠물을 마실 때 갈증이 더하는 것과 같고, 음욕은 마치 한 조각 고기를 여러 새들이 다투어 쫓아가는 것과 같으며, 음욕은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탐해 싸우다가 죽는 것과 같이 그 환란이 매우 큰 것입니다.≻
그 때의 그 원숭이 왕은 바로 지금의 나이고, 그 때의 그 왕은 지금의 저 난타이며, 그 때의 그 음녀는 지금의 저 손타리다. 나는 그 때에 저 난타를 진흙 구덩이에서 건져 내었고, 지금도 생사의 고통에서 건져 내었느니라.’”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라후라는 9세에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다. 왕은 호족의 여러 사람과 왕자 50인도 모두 다 라후라에게 딸려 보내 출가시켰다. 사리불이 화상이 되고 대목건련이 아사리가 되어 그들에게 10계를 주었다.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타라(耶輸陀羅)는 태자(석가모니)의 부인이 된 지 3년이 못 되어 출가했다.”[이 이외의 제자의 일은 너무 번다하여 다 적지 못하고 우선 간략하게 서너 가지만 말한다.]
사미(沙彌)에 대해서는 『야사전(耶舍傳)』에서 말하였다.[수(隨)나라 말로 힘써 노력하는 어린애라는 뜻이니, 수도함으로써 노력하기 때문이다. 또 식자(息慈)라고 번역하니, 이른바 세상에 물든 정(精)을 쉬고[息] 자비로 만물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또 비로소 불법에 물들었으나 세속의 감정은 오히려 남아 있으므로 모름지기 악을 쉬고 자비를 행하라는 뜻이다.]
또 『증일아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4성(姓)으로서 출가한 자는 다시는 본래 성으로 돌아갈 수 없고, 다만 사문인 석가의 아들이라 하라. 왜냐 하면 태어나기도 나로 말미암아 태어났고, 이루어지기도 법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4대해(大海)가
모두 다 아뇩천(阿耨泉)에서 나온 것과 같다.”
또 『미사색률(彌沙塞律)』에서 말하였다.
“너희 비구들은 온갖 신분[雜類]으로 출가했지만 모두 본래 성(姓)을 버리고 석자 사문(釋子沙門)이라고 하여라.”[사문은 악행을 쉬어 버린 이[息惡]라는 뜻이다.]
또 『장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미륵이 세상에 나오면 모든 비구 제자들도 모두 자자(慈子)라고 하여라. 그것은 마치 지금의 내 제자들을 다 석자(釋子)라 하는 것과 같다.”[미륵은 성이니 이는 자씨(慈氏)라고 한다.]
대각(大覺)께서 굽어 응하시는 것을 보니 그 자취는 속전(俗典)과 같다. 그러므로 후손[苗裔]들이 그 슬기를 계승하고 인척[姻婭]들이 중첩하여 모두 아득히 오래전부터 나왔으므로 신령스런 교화를 잘 돕고 찬탄한다. 또 4하(河)가 바다로 들어가면 모두 바다라 하고, 4족(族:4성 계급)이 도에 귀의하면 모두 석(釋)이라 부르니, 그것은 이른바 모두의 근원은 다르지만 그 한맛[一味]은 같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게송으로 읊노라.
전생 복의 종자가 무르익어
금생에 출가하여 득도함을 입었으니
세속의 티끌을 떨쳐 버리고
초연하게 깨달음 기뻐하네.
슬기는 고요하고 맑음에 달려 있어
그 오묘함은 헤아릴 수 없으며
때를 느끼고 도를 깨달아
얽매인 일의 굴레를 벗어났어라.
도 배우기를 사모하고 부지런히 힘써서
이제 이 감로수를 마시니
이 공업(功業)은 타락하지 않아
성인의 아름다운 가호하심 느끼노라.
엄숙하여라, 신령스런 거동이여.
의의(依依)하여라, 신령스러운 걸음이여.
너와 내가 다르지 않나니
법의 반려자로 서로 만나네.
감응연(感應緣)[대략 다섯 가지 증험만 인용한다.]
송(宋)나라의 사문 지엄(智嚴)
송나라의 사문 구나발마(求那跋摩)
송나라의 비구니 석담휘(釋曇輝)13)
송나라의 거사 조습(趙習)
송나라 동궁(東宮) 윤(侖)의 두 딸
①송나라의 사문 지엄(智嚴)
송(宋)나라 서울의 스님[京師] 지원사(枳園寺)의 석지엄(釋智嚴)은 서량주(西凉州) 사람으로 약관(弱冠)에 출가하여 곧 정근을 잘하기로 이름이 났다. 서역(西域)을 두루 다니면서 선법(禪法)을 묻고 경론(經論)에도 널리 통달해 함께할 부류들이 아주 드물었다. 서역에서 돌아와서는
거기서 얻은 경론을 아직 번역하고 서사하지 못했다가 송나라 원가(元嘉) 4년(427)에 보운(寶雲) 등과 함께 번역해 내면서도 따로 공양을 받지 않고 걸식하면서 살아갔으며 그 도화(道化)가 신령스러워 그윽한 감화가 드러나 어둠을 모두 밝혔다.14)
귀신을 보았다는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서주(西州) 태사(太社) 안에서 귀신들이 서로 말하기를, ‘엄공이 오거든 우리 모두 피해야만 한다’고 하더라.”
그러나 그는 이 말뜻을 몰랐는데, 조금 있다가 지엄이 거기 가자 그는 예사로 그 성명을 물었는데, 과연 지엄이라 하였다. 가만히 있다가 알아차리고는 잠자코 인사하고는 이상하게 여겼다.
난릉(蘭陵) 소사화(蕭思話)의 부인 유(劉)씨가 병이 나서 항상 귀신이 와서 부르는 것을 보고 무섭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지엄을 맞이해 설법하기로 했다. 지엄이 그 집 사랑채에 이르자 유씨가 곧 귀신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엄이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위해 설법하여서 병이 나았기 때문에 5계를 받고 온 집안이 모두 믿고 받들었다.
지엄은 청렴하고 소탈하여 욕심이 적어 보시를 받으면 그대로 다 보시하였다. 젊어서부터 사방으로 유행하면서 방편에 조금도 걸림이 없었으며, 품성이 충직하고 내성적이어서 제 일을 자랑하지 않았으므로 아름다운 행이 많았지만 세상에 다 전해지지 않았다.
지엄이 옛날 아직 출가하기 전에 일찍이 5계를 받고 조금 범한 일이 있었으므로 뒤에 불도에 들어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나 항상 계를 얻지 못할까 의심하고 그 때문에 늘 두려워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선관(禪觀)을 닦았으나 깨닫지 못하였고, 드디어 다시 바다를 통해 천축(天竺)으로 또 가서 밝게 통달한 아라한 비구에게 이 사정에 대해 물었으나 그 아라한이 답해 주지 못하였다. 그러자 지엄이 선정에 들어 도솔천궁으로 가서 미륵에게 물었더니, 미륵이 대답하였다.
“계를 얻었느니라.”
지엄은 크게 기뻐하면서 여기서 걸어서 계빈국(罽賓國)으로 돌아가 아무런 병 없이 죽었으니, 그 때의 나이는 78세였다.
그 나라에서는 범인과 성인의 몸을 각각 다른 곳에서 태워서 화장하였다. 지엄은 비록 계행이 높고 밝았으나 그 실행을 가려낼 수 없었으므로 처음에 그 시신을 범승(凡僧)의 묘지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시신이 무거워 들 수 없어서 다시 성인의 묘지로 옮기려 하자 시신이 거뜬히 옮겨졌다.
지엄의 제자 지명(智明)과 지원(智遠)이 일부러 서역에서 와서 이 상서로운 징험을 알려 주고 모두 외국으로 돌아갔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지엄은 참으로 도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 향과(向果)의 중간의 깊고 얕은 것만은 알 수 없을 뿐이다.
②송나라의 사문 구나발마(求那跋摩)
송나라 서울의 기원사(祇洹寺)15)에 구나발마(求那跋摩)가 있었는데 이곳 중국 말로 번역하면 공덕개(功德鎧)이다. 그는 본래 찰제리 종족[刹利種]으로서 여러 대에 거쳐서 왕이 되어 계빈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변재가 걸출하고 큰 도량을 지니고 있었으며, 어짊과 사랑이 드넓었으며 덕을 숭상하고 선행에 힘썼다.
송나라 원가(元嘉) 8년(431) 정월에 건업(建業)으로 왔다. 문제(文帝)가 그를 접견하여 노고를 위로하고 친절히 대했다. 그리고 곧 물었다.
“제자는 항상 재계를 지켜서[持齋] 살생하지 않으려고 하나 몸의 사정에 구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법사께서는 이미 만 리를 멀다 하지 않으시고 이 나라를 교화하러 오셨습니다. 무엇으로 교화하려 하십니까?”
“대개 도는 마음에 달려 있지 일에 달려 있지 않으며, 법은 나를 말미암는 것이지 남을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또 대왕이 닦는 것은 필부(匹夫)와 서로 다릅니다. 필부는 몸이 천하고 명망이 하열하여 그 말과 명령에 위엄이 없습니다. 만약 자기를 이기고 몸을 괴롭히지 않으면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나 제왕은 4해(海)를 집으로 삼고 만민을 아들로 삼음으로써 한 번 아름다운 말을 하면 남녀들이 모두 기뻐하며, 한 가지 선한 정사를 펴면 사람과 귀신이 그로써 온화해집니다. 그리고 형벌로 목숨을 요절시키지 않고 역사로 그 힘을 수고롭게 함이 없으면 바람과 비가 때를 맞추고 추위와 더위가 철을 맞추어서 온갖 곡식이 무성히 자라고 뽕나무와 삼이 울창히 우거지게 될 것이니, 이같이 재계를 지킨다면 그 재계도 위대한 것입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도 중요한 것입니다. 차라리 한나절의 끼니를 굶을지언정 새 한 마리의 목숨을 온전히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널리 구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문제는 책상을 어루만지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대개 속인들은 먼 이치에 미혹하고, 사문들은 가까운 가르침에 막혀 있습니다. 먼 이치에 미혹함은 이른바 허망한 말을 지극한 도라 하고, 가까운 가르침에 막힘은 편장(篇章)에 구애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사의 말씀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밝게 깨치고 통달했으니, 하늘과 사람의 끝까지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왕은 그를 기원사에 머물게 하고 융숭하게 대접했으며, 왕공(王公)과 뛰어난 선비들[英彦]이 모두 존경하고 받들지 않음이 없었다.
그가 경론을 크게 번역한 것은 다 『고승전(高僧傳)』에 실려 있는데, 문장과 의미가 자세하고 진실하며 범문(梵文)과 한문이 서로 틀리지 않았다.
그 때 복영사(福影寺)의 비구니 혜과(慧果)와 정음(淨音) 등이 구나발마에게 청하였다.
“지난 6년 동안에 사자국(師子國)의 비구니 여덟 명이 서울에 왔었다고 합니다. 우리 송나라에는 아직까지 비구니가 없었는데 어떻게 2중(衆)이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아마도 계품(戒品)이 완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나발마가 말하였다.
“계법은 본래 큰스님들이 내놓은 것이니, 설령 받들어 섬기지 않는다 해도16) 계를 얻는 데에는 상관이 없다. 이것은 애도(愛道)의 인연과 같은 것이다.”
여러 비구니들이 또 말하였다.
“햇수[年月]가 차지 않았더라도 괴롭지만 다시 받고 싶습니다.”
구나발마가 칭찬하며 말하였다.
“훌륭하다. 진실로 더욱 밝히고자 한다면 크게 돕고 기뻐하리라. 다만 서역 비구니들의 나이가 아직 차지 않았을 뿐이다. 또 사람 수가 차지 않으면 우선 송나라 말을 배우게 하겠다.”
따로 서역의 거사(居士)를 통해서 외국의 비구니를 다시 청해 와서 그 수가 열 명이 찼다. 그 해 여름에는 정림하사(定林下寺)에서 안거(安居)했다. 그 때 신자들이 꽃을 따서 자리에 깔았는데 오직 구나발마가 앉은 꽃빛만이 더욱 선명했으므로 대중은 모두 그를 성인으로 높여 예배했다. 여름 안거를 마치고 그는 기원사로 돌아왔다. 그 해 9월 28일에 점심을 마치기 전에 그는 먼저 일어나 도리어 그 제자들에게 문안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나이 65세였다.
그가 목숨을 마친 뒤에 곧 부축해 승상(繩床)에 앉히니, 그 얼굴이 변하지 않고 흡사 선정에 들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승속 천여 명이 몰려와 모두 향기를 맡았고, 모두 용타(龍陀) 같은 어떤 물건을 보았는데, 길이가 1장(丈)쯤 되는 것이 그 시신 곁에서 곧장 일어나 하늘을 찌르며 바로 올라가는데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향섶으로 화장하고 향기름을 거기 뿌리니 5색 불꽃이 일어나 하늘을 빛내었다. 사부 대중이
모두 모여 슬픈 소리로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슬피 울면서 바라보기를 그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③송나라의 비구니 석담휘(釋曇輝)
송나라 비구니 석담휘(釋曇輝)는 촉군(蜀郡)의 성도(成都) 사람이다. 그의 본성은 청양(靑陽)이고, 이름은 옥(玉)이다. 7세 때부터 좌선(坐禪)하기를 좋아하여 앉을 때마다 어떤 경계를 얻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그저 꿈일 뿐이라고 했다.
일찍이 그 언니와 함께 자다가 밤중에 선정에 들었다. 언니는 그녀가 병풍 구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몸이 마치 나무나 돌과 같았고 숨도 쉬지 않았다. 언니는 크게 놀라 집안 사람을 불러 같이 부둥켜 안았으나 새벽이 되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급히 달려가 무당에게 묻자 그들 모두가 말하기를 귀신이 씌였다고 했다.
그녀의 나이 11세 때에 외국의 선사 강량야사(畺良耶舍)라는 사람17)이 촉군으로 들어왔다. 담휘는 그를 청해 자기가 본 것을 물었다. 강량야사는 담휘의 선정이 이미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을 알고, 그녀에게 권해 출가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 때 담휘는 이미 결혼하려고 날까지 정해 두고 아직 법육(法育)만을 거행하지 못했었다. 강량야사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데리고 절로 돌아갔다. 집에서 그것을 알고 담휘에게 결혼을 강요했으나 그녀는 듣지 않고 깊이 맹세하며 말하였다.
“내가 만일 도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고 드디어 기한을 정한 대로 결혼을 강요당하면 곧 불 속에 뛰어들거나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이 더러운 몸을 버릴 것이니, 원하옵건대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이 지극한 마음을 증명해 주소서.”
자사(刺史) 견법숭(甄法崇)은 바른 법을 믿고 숭상했다. 담휘의 이 뜻을 알고 맞이해 만나 보고, 또 강좌(綱佐)와 유회(有懷)라는 사문을 함께 불러 담휘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게 하였다. 담휘가 설명하는 것이 굽힘이 없어서 듣는 사람들이 다 찬탄하였다. 이리하여 견법숭은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불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원가(元嘉) 19년에 임천강왕(臨川康王)은 그녀를 광릉사(廣陵寺)에 머물게 하였다.
④송나라의 거사 조습(趙習)
송나라 회남(淮南)의 조습(趙習)은 원가(元嘉) 20년에 위군부좌(衛軍府佐)가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앓으면서 결코 낫지 않으리라 믿고는,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했다.
어느 날 밤 꿈에 얼굴이 빼어난 신인(神人) 같은 어떤 사람이 들보 위에서 조그만 봉지와 머리 깎는 칼을 조습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 약을 먹고 이 칼을 쓰면 병이 반드시 나을 것이다.”
조습이 놀라 깨어나니 과연 칼과 약을 얻어 곧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 그리고 그는 출가하여 이름을 승수(僧秀)라 하고 나이 80이 넘어서 죽었다.
⑤송나라 동궁 윤(侖)의 두 딸
송나라 원가(元嘉) 원년에 동궁 윤(東宮侖)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는 10세였고, 아우는 9세였다. 그 마을 사람들은 우둔하고 몽매하여 불법을 알지 못했다. 그 해 2월 8일에 갑자기 그녀들이 간 곳 없이 사라졌다가 3일 만에 돌아와 부처님을 보았다고 대강 이야기했다. 9월 15일이 되자 또 사라졌다가 열흘 만에 돌아와서는 외국 말을 쓰고 범서(梵書) 경전을 외우며 서역(西域)의 스님을 만나 서로 이야기했다.
그 이듬해 정월 15일에 그녀들은 또 사라졌다. 어떤 농부가 보니, 그녀들은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더라고 하였다. 부모들은 슬피 울면서 귀신에게 빌었다. 그녀들은 한 달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모두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법복을 입고 머리털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부처님과 비구니를 보았는데, “너희는 과거의 인연으로 우리 제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손으로 머리를 만지자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졌으며, 큰 딸에게는 법연(法緣), 작은 딸에게는 법채(法綵)라는 법명(法名)을 주더라고 했다. 그리고 돌려보내면서는 “가거든 절을 지어라. 불경을 주리라”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녀들은 돌아오자 곧 귀신의 자리를 없애고 거기에 절을 짓고 아침 저녁으로 예배하고 경을 외웠다. 그럴 때마다 5색의 광명이 나타나 산봉우리까지 흘러넘쳤다. 그 뒤로는 그들의 거동과 말씨가 다 법도에 맞아서 서울의 풍속과 법도도 그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자사ㆍ위랑(韋朗)ㆍ공묵(孔黙) 등이 모두 그녀들을 맞이해 공경했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