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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4 불교(개원석교록 9권 1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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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91

 

지승 지음

 

1. 총괄군경록

20) 대당 시대

(12) 나제(那提)

사자장엄왕보살청문경(師子莊嚴王菩薩請問經) 1권일명 팔만다라경(八曼茶羅經)이라고도 한다. 용삭(龍胡) 3(663)에 자은사(慈恩寺)에서 번역되었다. 대주록(大周錄)에 보인다.

이구혜보살소문례불법경(離垢慧菩薩所問禮佛法經) 1권용삭 3(663) 자은 사에서 번역되었다. 대주록에 보인다.

아타나지경(阿吒那智經) 1권용삭 3년 자은사에서 번역되었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 보인다.

이상은 33권이다.앞의 22권은 현재 그 경본이 남아 있고, 뒤의 11권은 궐본(關本)이다.

사문 나제는 당나라 말로는 복생(福生)이라 부른다. 범어로 갖추어 말하면 포여오벌야(布如烏伐耶))라 하는데, 이 말은 부르기가 번거롭다 하여 중국에서는 잘못 줄여서 나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본래 중인도 사람이다.

젊어서 출가하여 이름난 스승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뜻과 기개가 높고 웅대하여 불도를 널리 펼 생각을 품고 있었다.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중생을 깨우치는 일로 업을 삼았다. 또 성명학(聲明學)에도 통달하여 모든 훈고(訓詁)를 두루 통하였으므로 대하(大夏)에서 초빙하여 문사(文士)로 삼았고, 이곳 난대(蘭臺:宮中)의 저작을 맡기려고 하였다.

그의 성품은 대범하고 기이한 일을 좋아하였으므로 깨우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멀고 험함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일찍이 집사자국(執師子國)을 찾아간 일도 있었다. 또한 동남쪽에 있는 능가산(楞伽山)을 오르기도 하였고, 남해(南海)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인연 따라 멀리 교화하였다.

그리고 지나(脂那:중국)라는 동쪽 나라에서 대승의 불법이 융성하여 남섬부주(南贍部洲)에서는 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이에 대ㆍ소승의 경ㆍ율ㆍ논 500여 갑() 도합 1,500여 부를 찾아 모아, 천황(天皇) 영휘(永徵) 6(655)에 처음으로 경사(京師)에 도착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명을 내려 그를 대자은사(大慈恩寺)에 모시도록 하고, 담당 관청에서는 그가 필요로 하는 물자를 공급하게 하였다.

당시 현장법사는 번역하는 일을 맡아 그 명성이 자자하게 드날렸으나, 나제의 명성은 드러내주는 이가 없었으므로 쓸쓸한 마음만을 억누르고 있었다.

반야경(般若經)의 번역은 어려운 일인데도 나제는 천거되는 은전을 입지 못했으므로 스스로 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현경(顯慶) 원년(656)에 칙명으로 곤륜산(昆崙山) 부근의 여러 나라로 가서 기이한 약을 채취하게 되었다. 남해에 이르게 되자, 여러 왕들이 귀의하여 공경하고 따로 절을 세워 사람들을 제도하고 법을 전수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넓은 교화의 폭이 전에 왔을 때보다 갑절이나 더하였다. 그러나 먼저 나라의 명을 받고 그 곳에 갔으므로 도리로 보아 그 명을 따라 돌아가서 자은사(慈恩寺)에 보관된 범어 원본을 다시 찾아 연구하려 하였다.

용삭(龍朔) 3(663)에 옛 절로 되돌아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여러 경전은 모두 현장이 북쪽 땅으로 가지고 가서 번역해 내고 있었다. 그의 뜻은 경을 번역하고 중생을 제도하려 하였으나 의지하고 기댈 것이 없었다. 오직 팔만다라경(八曼陁羅經)3부만을 번역하고 그 중 가장 정밀한 것을 요약하여 일상생활에서 행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선림사(禪林寺) 사문 혜택(慧澤)이 말을 통역하고, 풍덕사(豊德寺) 시문 도선(道宣)이 글로 쓰고 서문도 지었다.

그 해 남해 진랍국(眞臘國)에서 나제에게 교화를 받은 어떤 사람이 나제를 받들고 공경하기 위하여 몹시 보고 싶어 하였다. 서로 이끌어주고 거느리고 길을 빌려 찾아와서 멀리서 청하여 말하였다.

이 나라에는 좋은 약이 있는데, 오직 나제스님만이 알고 있으니, 직접 오셔서 채취하여 가시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나라에서는 명을 내려 남해로 갔다 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그 약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대하국을 널리 찾아갔더니, 행인들이 말하였다.

나제삼장은 용수(龍樹)의 문인(門人)이다. 그가 해득한 무상(無相)의 경지는 현장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서역의 범승(梵僧)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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