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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67 불교(개원석교록 7권 9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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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79

 

지승 지음

 

사문 비니다류지는 수나라 말로는 멸희(滅喜)이며, 북인도 오장국(烏萇國) 사람이다. 그는 5백 유순(由旬)5)의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석장(錫杖)을 짚고 여러 곳을 돌아 다녔다. 이곳에 와서 교화가 성대한 것 보고는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자 곧 불러서 경을 번역하게 하였다.

문제(文帝) 개황(開皇) 2년 임인(壬寅, 582)대승방광총지경2부를 번역하였다. 급사(給事) 이도보(李道寶)와 반야류지(般若流支)의 차자(次子) 담피(曇皮) 등 두 사람이 말을 전하였고, 장안(長安)의 사문 석법찬(釋法纂)이 수나라 말로 받아쓰고, 아울러 글과 뜻을 비교해서 정리하였으며, 사문 언종(彦琮)이 서문을 모두 지었다.장방록등의 목록에서는 또한 흥선사(興善寺)에서 번역되어 나왔다라고 하였으나, 이것 역시 옳지 못하다. 그 잘못됨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3) 나련제려야사(那連提黎耶舍)

대방등대집일장경(大方等大集日藏經) 10권혹은 12권이나, 15권도 있다. 표제에서는 대승대방등일장분경(大乘大方等日藏分經)대집경(大集經)』 「일밀분(日密分)과 동본이며, 네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라고 하였다. 개황 4(584) 5월에 번역하기 시작하여 5(585) 2월에 끝마쳤으며, 사문 지현(智鉉)과 비장방(費長房) 등이 받아썼다.

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 2권개황 5(585) 정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사문 혜헌(慧獻)이 받아썼다. 이 경은 대운경(大雲經)64()이며,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나라 때 사나야사(闍那耶舍)가 번역한 대운청우경(大雲請雨經)과 수()나라 사나굴다(闍那崛多)가 번역한 방등청우경(方等請雨經)과 모두 동본이다.

대장엄법문경(大莊6)嚴法門經) 2권일명 문수사리신통력경(文殊師利神通力經), 또는 승금색광명덕녀경(勝金色光明德女經)이라고도 한다. 개황 3(583) 정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세 번째 번역이다. 축법호가 번역한 대정법문경(大淨法門經)과 같은 동본이며, 사문 지현(智鉉)이 받아썼다.

덕호장자경(德護長者經) 2권일명 시리굴다장자경(尸利崛多長者經)이라고도 한다. 개황 3(583) 6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사문 승곤(僧琨)이 받아썼다. 네 번째의 번역이며, 축법호의 월광동자경(月光童子經)과 같은 동본이다.

백불명경(百佛名經) 1권개황 2(582) 12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사문 혜헌(慧獻)이 받아썼다.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역장엄삼매경(力莊嚴三昧經) 3권개황 5(585) 10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비장방(費長房)이 받아썼다.

연화면경(蓮華面經) 2권개황 4(584) 3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사문 혜헌이 받아썼다.

견고녀경(堅固女經) 1권개황 2(582) 12월에 나왔다. 사문 혜헌이 받아썼다. 또한 뇌고녀경(牢固女經)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8부는 모두 장방록에 보인다.

이상은 823권이며, 그 경본이 모두 있다.

 

사문 나련제려야사는 수나라 말로는 존칭(尊稱)이라 부르며, 북인도 오장국(烏萇國) 사람이다. 먼저 제()나라에서 소현통(昭玄統)으로 있었고, 소현도(昭玄都) 사문 법지(法智)와 함께 7부의 경을 번역하였다. 자세한 것은 제록(齊錄)에 기재되어 있다.

건덕(建德) 말기에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북제(北齊)를 무찔렀다. 그래서 불교 또한 나라와 더불어 일시에 쇠퇴하게 되었다. 이에 나련제려야사는 겉에는 속인의 옷으로 가장하고 속에는 삼의(三衣)를 입고서 이리저리 난을 피해 다니게 되었으니 편안히 쉴 틈이 없었다. 5부 대중7)들은 살기가 어려워져 몸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에겐 그의 식량을 줄여서 보시하였고, 늙고 병들어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인연 따라 구제하고 도와주었다. 비록 일과 힘이 모자라고 미약해졌으나 그 일을 그만둘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신과 의지는 편안하고 굳세어져 설법하고 이끄는 데 싫증을 내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움을 감당하기를 문득 4년이 되었다. 수나라 황제가 천하를 통치하게 되자 다시 삼보(三寶)를 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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