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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2 불교(개원석교록 5권 10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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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510

 

지승 지음

 

당시에 양도(楊都)에는 덕으로 이름 높은 사문 혜관(慧觀)과 혜총(慧聰) 등이 있었는데, 멀리에서 소문을 듣고 오로지 음식을 올리고[飡稟]자 생각하였다. 원가 원년(424) 9월에 문제(文帝)에게 직접 아뢰어 구나발마를 맞이해 오기를 청하였다. 문제가 곧바로 교주자사(交州刺史)에게 칙명을 내려 배를 띄워 맞아들이도록 하였다. 혜관 등은 또 사문 법장(法長)ㆍ도충(道沖)ㆍ도준(道儁) 등을 보내어 그에게 가서 기청(祈請)하게 하였다. 더불어 구나발마와 사바왕(娑婆王) 바다가(婆多伽) 등에게 편지를 보내어 송나라 지역에 왕림하여 도()의 가르침이 유행(流行)되기를 희망하였다.

구나발마는 성스러운 교화를 넓힘에 있어 먼 곳으로 가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이미 상인(商人) 축난제(竺難提)를 따라서 배로 어떤 작은 나라로 향하고자 하였다. 마침 순풍을 만나 광주(廣州)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의 유문(遺文)9)에 이르기를 업행(業行)의 바람에 나부껴 드디어 송나라 경계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문제(文帝)는 구나발마가 이미 남해(南海)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주군(州郡)에 칙명을 내려 비용을 내어 서울로 오게 하였다. 시흥(始興)을 경유하는 길에서 멈추어 1년쯤을 보내었다. 시흥에는 호구산(虎丘山)이 있는데 형세가 우뚝 솟고 봉우리와 산마루가 높고 가팔랐다. 구나발마는 그 모습이 기사굴산(耆闍崛山)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을 영취산(靈鷲山)으로 바꾸었다.

산사(山寺)의 바깥에는 별도로 선실(禪室)을 지었다. 선실은 절에서 몇 리쯤 떨어져 있어 경쇠[]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방망이[]가 울리면 구나발마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간혹 비를 무릅쓰고 왔는데도 젖지 않았고, 혹은 진흙을 밟고 왔는데도 습기가 차지 않았으니, 당시의 많은 도인과 속인들은 숙연하면서 더욱 공경하였다. 절에는 보월전(寶月殿)이 있었는데 구나발마는 보월전 북쪽 벽에 손수 나운상(羅云像)과 정광불(定光佛) 앞에 유동(儒童)이 머리카락을 풀어 엎드린 형상을 그렸다. 형상을 그려 놓은 뒤에는 매일 저녁마다 빛을 발하기를 오래 한 뒤에야 그쳤다.

시흥태수(始興太守) 채무지(蔡茂之)는 깊이 존숭하며 우러렀다. 후에 채무지가 죽으려 할 적에 구나발마는 몸소 가서 보고는 설법하여 편안하게 하였다. 후에 그 집안의 사람이 꿈을 꾸었더니 채무지가 절 안에서 여러 승려들과 함께 법을 강론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실로 구나발마가 교화하여 인도한 덕분이었다.

이 산에는 본래 호랑이로 인한 재앙이 많았다. 구나발마는 이곳에 거주한 뒤부터 밤이나 낮에 오가면서 혹시 호랑이를 만난다 하여도 지팡이로 호랑이의 머리를 두드리며 이를 희롱하며 지나갔다. 이로부터 산길을 가는 나그네나 물길을 가는 객들이 왕래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의 덕에 감동하여 교화에 귀의하는 이들이 열에 일곱 또는 여덟이었다.

구나발마가 일찍이 별실에서 선정에 들었는데, 여러 날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절의 승려가 사미를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는데, 사미는 한 마리의 흰 사자가 기둥에 대고 서 있고, 하늘 끝까지 푸른 연꽃이 피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사미는 놀라 두려워하면서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가서 사자를 쫓자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그의 신령하고 기이함은 견줄 데가 없었으며, 그러한 일들은 대부분 이와 같았다.

후에 문제(文帝)가 혜관(慧觀) 등에게 거듭 칙명을 내려서 다시 정성을 다하여 청하였다. 이리하여 배를 타고 서울로 향하여 가서, 원가 8(431) 정월에 건업(建業)에 도착하였다. 문제가 불러들여 만나보고 은근하게 위문하며 말하였다.

제자는 항상 재계를 지키며 살생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 몸으로 목숨 바친 물건[殉物]을 가까이하여 뜻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사께서 이미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이 나라에 와서 교화를 펴고 있으니, 장차 어떻게 가르치시겠습니까?”

구나발마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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