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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19 불교(개원석교록 5권 17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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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517

 

지승 지음

 

낭야(瑯耶) 안연지(顔延之)는 해박한 지식을 지닌 능력 있는 석학(碩學)이었다. 그가 의관을 갖추고 문을 나서면, 서울과 원근의 사람들이 그를 보기위해 모여들어 관()과 수레가 줄을 이었다. 대장군(大將軍) 팽성왕(彭城王) 의강(義康)과 승상(承相) 남초왕(南譙王) 의선(義宣)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얼마 뒤에 뭇 스님들이 모두 경전을 번역할 것을 요청하자, 기원사에서 모든 의학(義學) 승려들을 모아 놓고 잡아함경(雜阿含經)을 번역하였으며, 동안사(東安寺)에서는 법고경(法鼓經)을 내었다. 후에 단양군(丹楊郡)에서 승만경(勝鬘經)능가경(楞伽經)을 번역하였는데, 그 때의 무리들이 7백여 인이나 되었다. 보운(寶雲)이 말을 번역하고, 혜관(慧觀)이 붓을 잡았는데, 오가면서 자문하고 분석하여 본지(本旨)를 오묘하게 얻었다.

후에 초왕(譙王)이 형주(荊州)를 평정하고서 함께 신사(辛寺)로 가서 머물 것을 청하였으므로 방과 전각을 다시 개창하였다. 곧 신사에서 무우왕경(無憂王經)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소무량수경(小無量壽經)앙굴마라경(央崛魔羅經)상속해탈바라밀요의경(相續解脫波羅蜜了義經)현재불명경(現在佛名經)제일의오상략경(第一義五相略經)팔길상경(八吉祥經)등과 아울러 앞에서 번역하여 낸 경 등 무릇 52부를 번역하였는데, 대부분 제자 법용(法勇)이 통역하여 전하였다.

초왕은 구나발타를 청하여 화엄경(華嚴經)등을 강의하게 하였는데,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직 송나라 언어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여겨 부끄러워 여러 날을 탄식하였다. 그리하여 곧 아침저녁으로 예배하고 참회하면서 신명이 응해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랬더니 꿈속에 흰 옷을 입고 손에 칼을 든 사람이 나타나서 한 사람의 머리를 받쳐 들고 그의 앞에 이르러서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가?”

구나발타라는 그 사실을 자세하게 대답하였더니, 그가 말하였다.

크게 걱정할 것 없다.”

그리고 즉시 칼로 머리를 베니 다시 새 머리가 생겼다.

그는 머리를 돌려보라고 명령하고는 물었다.

아프지 않은가?”

아프지 않다.”

그리고 문득 꿈에서 깨어났더니 마음이 기뻐지고 즐거워졌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말과 뜻이 모두 알 수 있게 되어 송나라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강의를 하러 나갔다. 제자 법용이 번역 말을 전하고, 승념(僧念)이 도강(都講)14)이 되었다. 비록 통역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였으나, 오묘한 해석이 가능하였다.

원가 말기(末期)에 이르러 초왕이 여러 번 괴이한 꿈을 꾸게 되었다. 구나발타라가 말하였다.

서울에 장차 혼란이 있게 될 것입니다.”

1년이 되지 않아서 두 원흉(元凶)이 역모를 꾸몄다. 효건(孝建, 454~456) 초기에 이르러 초왕이 몰래 역절(逆節)을 도모하자, 구나발타라는 얼굴에 근심을 띠고 말을 하지 않았다. 초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구나발타라는 간절하게 간언(諫言)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반드시 기대대로 되지 않을 것이니 빈도(貧道)는 호종(扈從)하지 않겠습니다.”

초왕은 여론이 그를 믿는 바가 있다고 여기고 그를 핍박하여 함께 데리고 갔다.

양산(梁山)에서의 패배로 배에 불이 나고 뒤집혀 상황이 급박하였다. 게다가 언덕까지는 너무 멀어서 구제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오직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잡고 강물로 뛰어들었는데 물이 무릎에 찼다. 지팡이를 가지고 물을 짚어 보니 물속이 깊고 흐름이 매우 빨랐다. 한 어린아이가 뒤쪽에서 따라와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주므로 돌아보며 어린아이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린아이인데, 어찌 나를 건너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순식간에 10여 보나 나아가서 강 언덕으로 올라와 있었다. 곧바로 납의(納衣)를 벗어서 어린아이에게 주려고 두루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몸의 털들이 곤두서면서 비로소 신령의 힘이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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