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156 불교(개원석교록 3권 11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2.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311

 

지승 지음

 

각현은 송나라 원가(元嘉) 6(429)에 입적하였다. 춘추는 71세였다.승우록장방록두 목록에는 다시 각현이 신미밀지경(新微密持經)을 번역하여 내고, 생무량문지경(生無量門持經)을 번역해 내었다라고 하였는데, 이 두 경을 다 기재한 것은 적합하지 못하다. 두 경은 지겸(支謙)이 먼저 번역하였기 때문에 그와 구별하기 위하여 신()자를 덧붙인 것이다. 또한 보살십주경(菩薩十住經)본업경(本業經)이 있는데, 이 두 경은 모두 화엄경의 별품(別品)이다. 각현은 이미 대품(大品)을 번역해 내었으므로, 따로 번역하였다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이 경은 그 본업경과 동일한 경이다. ()입장록(入藏錄)에는 아직 그 경본이 보이지 않으므로, 우선 보살십주경(菩薩十住經)이 한 경만을 두고, 본업경은 삭제하여 싣지 아니한다.

 

(8) 담마(曇摩)

잡문율사(雜問律事) 2권처음 번역되었다. 장방록에 보인다.

이상은 12권이며 궐본이다.

 

사문 담마는 중국말로 번역하면 법()이라 한다. 율학(律學)을 잘 하였다. 안제(安帝) 융안(隆安) 4년 경자(庚子, 400) 32일에 양도(揚都)에서 상서령(尙書令) 왕법도(王法度)의 정사(精舍)에 있을 때, “사문 석승준(釋僧遵) 등의 20여 대덕들이 잡문율사를 번역해 주기를 청하였다는 것이 책 첫머리의 서문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책은 불()ㆍ법()ㆍ승()의 물건을 서로 지니는 관계[互相交涉]와 차별 범위[分齊]가 너무도 다르니, 모름지기 잘 지켜야 함을 밝히고 있다.

 

(9) 비마라차(卑摩羅叉)

십송율비니서(十誦律毗尼序) 3권또한 십송율서(十誦律序)라고도 한다. 지금은 십송률(十誦律)의 마지막 뒤의 3권에 합하여 들어가 있다. 장방은 비니송(毗尼誦)()에서 이것이 십송(十誦)이고, 뒤는 선송(善誦)이다라고 하였는데 틀린 것이다. 그 선송에는 4권이 있으며, 이것은 십송 중의 제10()이다. 이진록(二秦錄)에 보인다.

잡문율사(雜問律事) 2중율요용(眾律要用)이다.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이진록에 보인다.

이상은 25권이다.앞의 십송율비니서3권은 현재 그 책이 있으며, 뒤의 잡문율사2권은 궐본이다.

 

사문 비마라차는 중국말로 번역하면 무구안(無垢眼)이라 하며, 계빈국 사람이다. 침착하고 고요하면서 지기[]가 있었고, 어릴 적에 출가하여 도를 실천하면서 고행(苦行)에 힘썼다. 눈이 푸른 사람이므로, 당시 또한 청안율사(靑眼律師)라 하였다.

먼저 구자국[龜茲]에 있으면서 율장(律藏)을 널리 폈으므로, 사방의 학자들이 다투어 가서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마라집(鳩摩羅什)도 그 당시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구자국이 멸망하자, 오전(烏纏)으로 몸을 피하였다. 얼마 후에 구마라집이 장안(長安)에 있으면서 경장(經藏)을 크게 넓힌다는 말을 듣고, 또 비니(毘尼 : 계율의 총칭)의 수승한 품류[勝品]를 다시 중국에 두루 미치게 하고자, 석장(錫杖)을 짚고 유사(流沙)를 지나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요진(姚秦) 홍시(弘始) 8(406)에 관중(關中)에 도달하자, 구마라집은 스승의 예로써 공경하고 대하였으며, 또한 서로 멀리서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그리고 구마라집이 세상을 떠나자, 또 안제(安帝) 의희 연간(405~418)에 관좌(關左)로 나아가 돌아다녔다. 수춘(壽春)에 머물면서 석간사(石澗寺)에 있었는데, 계율을 배우는 무리들이 구름처럼 모였으므로 비니(毗尼)를 널리 퍼지게 하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