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3권 10편
지승 지음
여악(廬岳) 사문 혜원(慧遠)은 평소 그의 풍모와 명성을 사모하고 있던 터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관내로 들어오게 하면서 글을 써서 빌고 청하였다. 뒤에 여악에 이르자, 기뻐하며 마치 오래 사귄 벗과 같이 대하였다. 혜원은 각현이 배척당한 것은 그 잘못이 문인(門人)에게 있으며, 다섯 척의 배를 예언한 것과 같은 것은 단지 그 설(說)이 자기 생각에 있던 것을 말한 것일 뿐이므로, 계율에 대해서는 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제자 담옹(曇邕)을 파견하여 요흥과 관중(關中)의 대중 스님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 배척한 사건을 해결하였다. 혜원은 각현에게 여러 편의 선경(禪經 : 선종 관련 경전)을 번역해 낼 것을 청하였다.
각현은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는 데 뜻을 두었기 때문에 거처하는 일에 있어 안락을 구하지 않았다. 여산에서는 1년 가량 머물고, 다시 서쪽 강릉(江陵)으로 갔는데, 마침 외국의 선박이 들어왔다. 물어 보니 과연 천축에서 온 다섯 척의 배로, 각현이 예시했던 그대로였다.
그때 온 나라의 사대부와 서민들이 다투어 와서 예를 올리고 받들어 보시하는 이도 있었으나, 각현은 모두 받지 않았다. 대신 각현은 발우를 들고 탁발을 다니되 귀천을 묻지 않았다.
당시 진군(陳郡)의 원표(袁豹)는 송(宋)나라 무제(武帝)가 태위(太尉)로 있던 시절에 장사(長史) 벼슬을 하였는데, 송나라 무제가 남쪽으로 유돈(劉敦)을 토벌할 때 수행하여 강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각현은 제자 혜관(慧觀)과 함께 원표에게 나아가서 걸식을 하였다. 원표는 평소 불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야박하게 대접하여 미처 배불리 먹지 못하고 물러났다. 원표가 말하였다.
“아직 만족하지 못한 듯하니, 잠시 더 머물러 주십시오.”
각현이 말하였다.
“단월(檀越 : 시주자)께서 보시하는 마음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만든 음식이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원표는 즉시 좌우에게 호령하여 음식을 더 올리게 하였으나, 역시 다 없어져 버렸으므로, 원표는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그리고는 혜관에게 물었다.
“이 사문이 어떤 사람이오?”
혜관이 말하였다.
“덕행과 도량이 고매하여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원표는 몹시 탄복하고 기이하게 여기고서 태위(太威)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태위는 청하여 만나보고는 매우 숭앙하고 공경하며, 필요한 물자를 공양함이 빠짐이 없었다. 얼마 후에 태위는 도읍으로 돌아갔다. 각현에게도 함께 돌아가자고 청하여 도량사(道場寺)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각현의 몸가짐은 솔직하고 진실해 중국의 풍속과는 같지 않았다. 그리고 뜻이 운치가 있고 맑고 원대하여 평소 깊숙한 이치를 지니고 있었다.
양도(楊都)의 법사 승필(僧弼)은 덕망이 높았던 사문 보림(寶林)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기를 “투량사(鬪場寺)의 선사(禪師)는 매우 위대한 인품을 소유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 분은 바로 천축국의 왕으로서 어찌 품격이 우아한 사람[風流人]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가 칭송을 받는 것이 이와 같았다.
이보다 앞서 사문 지법령(支法領)은 우전국(于闐國)에서 『화엄경(華嚴經)』 범본(梵本) 3만 6천의 게(偈)를 얻었으나, 아직 번역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의희 14년(418)에 오군(吳郡)의 내사(內史) 맹의(孟顗)와 우위장군(右衛將軍) 저숙도(褚叔度)가 각현을 초청하여 역장(譯匠)66)으로 삼았다.
각현은 손에 범문(梵文)을 쥐고 사문 법업(法業)ㆍ혜엄(慧嚴) ㆍ혜의(慧義) 등 1백여 명과 함께 도량사에서 번역해 내었다. 문장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정하고, 한문(漢文)과 범문(梵文)을 회통시켜 신묘하게 경전의 요체를 들어내었다. 그러므로 도량사에서는 아직까지도 화엄당(華嚴堂)이 남아 있다. 또 사문 법현(法顯)은 천축에서 얻은 『승기율(僧祇律)』의 범본을 각현에게 부탁하여 번역하게 하였다.
각현은 안제(安帝) 융안(隆安) 2년 무술(戊戌, 398)로부터 송(宋)나라 영초(永初) 2년 신유(辛酉, 421)에 이르기까지, 양도(楊都)와 여산(廬山)의 두 곳에서 『화엄경』 등 총 13부를 번역하였다. 모두 그 그윽한 이치를 궁구하고, 신묘하게 문장의 뜻을 다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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