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8권 29편
지승 지음
뒤에 대자은사(大慈恩寺)의 번경당(飜經堂) 벽에 예로부터 경을 번역한 스님들과 속인들을 벽화로 그릴 때 정매는 이때에 그 기초되는 일을 수집하여, 『고금역경도기(古今譯經圖記)』를 만들어 벽에다 적어 넣었다. 다만 『비장방록(費長房錄)』의 기록이 어느 황조(皇朝)때까지 계속 이어졌는지를 생략하고, 바로 역경한 것만 기술하고 그 밖의 다른 것은 기술하지 않았다.
(7) 석지통(釋智通)
천안천비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千眼千臂觀世音菩薩陁羅尼神呪經) 2권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궁내에 있으면서 번역하였으며,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당(唐)나라 때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천안천수신경(千眼千手身經)』과 동본이다. 사문 파륜(波崙)이 서문을 지었다.
천전다라니관세음보살주경(千囀陁羅尼觀世音菩薩呪經) 1권혹은 경(經)자가 없기도 하다. 영휘(永徽) 4년(653) 총지사(惣持寺)에서 번역되었다.
관자재보살수심주경(觀自在菩薩隨心呪經) 1권또한 『다리심경(多唎心經)』이라고도 한다. 영휘 4년(653) 총지사에서 번역되었다.
청정관세음보현다라니경(淸淨觀世音普賢陁羅尼經) 1권영휘 4년(653) 총지사에서 번역되었다. 『대주록(大周錄)에 보인다.
이상 4부 5권은 그 경본이 현재 모두 있다.
사문 석지통은 율행(律行)이 아주 맑았고 겸하여 경론에도 밝았으며, 총지문(惣持門)에 특히 뜻을 두었다.
지통은 수(隋)나라 대업(大業) 연간(605~616)에 출가하여 경도(京都)의 대총지사(大惣持寺)에 머무르다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려는 뜻이 있었다. 마침내 낙경(洛京)의 번경관(翻經館)으로 와서 범서(梵書)와 범어(梵語)를 배워 일찍이 깊은 곳까지 정통하였다.
당(唐)나라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북천축의 승려가 『천비천안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의 범본(梵本)을 가지고 와서 황제에게 바쳤다. 문제(文帝)는 칙명으로 지통(智通)에게 범승(梵僧)과 함께 번역해 내게 하였다. 그래서 억지로 2권을 만들었다. 그 후 천황(天皇) 영위(永徽) 4년 계축(癸丑, 653)에 총지사(惣持寺)에서 또 『천전다라니관세음보살주경』 등 3부를 번역하였다.
(8) 가범달마(伽梵達摩)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陁羅尼經) 1권
이상 1부 1권은 그 경본이 현재 있다.
사문 가범달마는 당나라 말로는 존법(尊法)이라 부르며, 서인도 사람이다. 그는 『천수천안대비심경(千手千眼大悲心經)』 1권을 번역하였다. 그러나 경의 제목에서는 “서천축 가범달마의 번역이다”라고 하였을 뿐 연대를 표시하지 않았다. 그 본말(本末)을 미루어 보면 이 황조(皇朝) 때에 새로 번역된 것 같다. 다만 법을 전한 선비는 인연 따라 보고 이익되게 한다고 하고는 경이 나와 유포하게 되자 다시 다른 지역[方域]으로 가버렸다. 연호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번역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智昇]는 범승(梵僧)에게 친히 물어 보았더니 “그 경의 범본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은 아니기에 이 목록에 기재해 둔다. 『천수천안대비심경』 서문에서도 역시 “석지통(釋智通)과 함께 번역하였다”라고 하였다.
(9) 아지구다(阿地瞿多)
다라니집경(陁羅尼集經) 12권『대주록(大周錄)』에 보인다. 영휘(永徽) 4년(653) 3월 14일에 혜일사(慧日寺)에서 번역하기 시작하여 5년(654) 4월 15일에 마쳤으며, 사문 현개(玄揩)가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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