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1권 12편
지승(智昇) 지음
안세고는 성품과 사물의 이치를 다 궁구하였으며, 저절로 전생에 맺은 인연[宿緣]을 알았다. 그리하여 세상에 남긴 신이한 자취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느 때인가 안세고는 스스로 말하였다.
“이 몸을 받기 이전에도 안식왕의 태자가 되어 그 나라 안의 장자(長者 : 신분이 높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 출가하였는데, 걸식[分衛]하러 다닐 적에 마땅치 않은 시주를 만나게 되면, 그 장자의 아들은 그때마다 번번이 원망하였다. 나는 자주 그를 꾸짖고 타일렀지만 끝내 잘못을 뉘우치거나 고치지 않았다. 20여년을 이와 같이 한 뒤에 그와 이별을 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광주(廣州)로 가서 숙세(宿世)의 일을 끝마쳐야 한다. 그대는 경전에 밝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 나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으나, 성품이 성을 내고 노하는 일이 많아서 생명이 다한 뒤에는 반드시 더럽고 추악한 형상[惡形]을 받아 태어나리라. 내가 만일 도를 얻게 되면 반드시 그대를 제도하리라.’
그리고는 마침내 광주에 이르렀더니, 도적떼들이 크게 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길에서 한 소년을 만났는데, 손에 침을 뱉고 칼을 뽑으면서 말하였다.
‘진정 너를 여기서 만났구나.’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그대에게 목숨을 빚 진 것이 있다. 그래서 먼 곳에서 찾아와 그것을 갚으려고 한다. 그대의 분노는 본래 전생에 가졌던 생각이다.’
그리고는 목을 내어놓고 칼을 받았는데, 얼굴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도적은 끝내 나를 죽이고 말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길을 메웠는데, 그 기이한 광경을 보면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후에 나의 영혼[神識]은 도로 와서 안식국왕의 태자가 된 것이니, 바로 지금의 이 몸 안세고이다.”
안세고는 중국을 돌아다니며 교화하면서 경을 널리 펼치는 일을 하였다. 영제(靈帝) 말엽(180년경)에 관중(關中)과 낙양(洛陽)이 몹시 어지럽게 되었으므로, 그는 법을 전하려고 강남(江南)으로 가면서 말하였다.
“나는 마땅히 여산(廬山)을 지나면서 옛날에 같이 공부하던 벗을 제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다가 공정호(䢼亭湖)의 사당에 이르게 되었다. 이 사당에는 옛 부터 신령스런 위엄이 있어서, 떠돌아다니는 장사꾼들이 여기에 기도하면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사람들이 떠나지 못해 발이 묶이는 일이 없었다. 언젠가 신죽(神竹 : 서낭대)을 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처 허락을 받기도 전에 신죽을 마음대로 가져가자 배가 즉시 뒤집혀서 가라앉아 버렸고, 신죽(神竹)은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는 뱃사람들이 공경하고 조심하며 신령스런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안세고와 나그네 30여명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 사당에 희생을 바치고 복을 빌자 이에 신령이 내려 말하였다.
“배 안에 계신 사문을 어서 모셔 오도록 하라.”
나그네들은 모두 놀라 안세고에게 사당으로 들어갈 것을 청하였다.
신령이 안세고에게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외국에서 그대와 함께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성품이 화를 잘 내고 노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금생(今生)에는 이 공정호의 사당신[廟神]이 되어 주변 천 리를 제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보시한 공덕으로 진귀한 보물이 매우 풍부하지만, 예전에 성을 내던 성품 때문에 이처럼 신령이 되는 업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공부하던 벗을 만나게 되니,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수명이 다할 테인데, 보기 흉한 형체가 너무도 크니, 만일 여기서 죽게 되면 강호(江湖)를 더럽히게 되므로 산 서쪽에 있는 못으로 가겠습니다. 이 몸이 죽고 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나에게 비단 천 필과 여러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법회를 열고 탑을 세워 좋은 곳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안세고가 말하였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제도하려 하는데, 어찌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신령이 말하였다.
“형체가 아주 보기 흉해서 사람들이 보면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안세고가 말하였다.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시오.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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