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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9 불교(개원석교록 9권 16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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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916

 

지승 지음

 

이때에는 토화라(吐火羅) 사문 달마말마(達磨末磨)와 중인도 사문 발노(拔弩)가 범문의 뜻을 증명하였고, 계빈국(罽賓國) 사문 달마난타(達磨難陁)가 범문(梵文)을 증명하였다. 또 거사(居士)인 동인도수령(東印度首領) 이사라(伊舍羅)가 범본(梵本)을 증명하고, 사문 혜적(慧積)과 거사인 중인도의 이석가도파다(李釋迦度頗多) 등이 범본을 읽었다. 사문 문강(文綱)ㆍ혜소(慧沼)ㆍ이정(利貞)ㆍ승장(勝莊)ㆍ애동(愛同)ㆍ사항(思桓) 등이 증의하고, 사운 현산(玄傘)ㆍ지적(智積) 등이 받아썼다. 거사인 동인도 구담금강(瞿曇金剛)과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왕자 아순(阿順) 등은 번역을 증명하였다. 수문관대학사특진(修文館大學士特進) 조국공(趙國公) 이교(李嶠)와 병부상서(兵部尙書) 소요공(消遙公) 위사립(韋嗣立)과 중서시랑(中書侍郞) 조언소(趙彦昭)와 이부시랑(吏部侍郞) 노장용(盧藏用)과 병부시랑(兵部侍郞) 장설(張說)과 중서사인(中書舍人) 이예(李乂). 소정(蘇頲) 20여 인이 차례로 문장을 윤색하였다. 좌복야(左僕射) 서국공(舒國公) 위거원(韋巨源)과 우복야(右僕射) 허국공(許國公) 소괴(蘇瓌) 등이 번역을 감독하였고, 비서대감사호(祕書大監嗣號) 왕옹(王邕)이 감호하였다.

또 예종(睿宗) 경운(景雲) 2년 신해(辛亥, 711)에 이르러 대천복사에서 다시 칭찬여래공덕신주경불위용왕설법인경약교계경(略敎誡經)등과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론송인명정리문론관총상론송지관문론송수장론법화론집량론일백오십찬불송1221권을 번역하였다. 이때에는 사문 갈리말지(曷利末底)ㆍ오제제바(烏帝提婆) 등이 범본을 읽었고, 사문 현산(玄傘)ㆍ지적(智積) 등이 받아썼으며, 사문 혜소(慧沼) 등이 뜻을 증명하였고, 태상경(太常卿) 위국공(衛國公) 설숭윤(薛崇胤)이 감호하였다.

모두 합하면 천후(天后) 구시(久視) 원년 경자(庚子, 700)에서 예종(睿宗) 경운(景雲) 2년 신해(辛亥, 711)에 이르기까지 도합 56230권을 번역하였다.

또 그 밖에 따로 대당서역구법고승전남해기귀내법전별설죄요행법수용잠수요법호명방생궤의등 무릇 59권을 지었다.

설일체유부발솔도(說一切有部跋窣堵즉 여러 율() 중에서 건도(揵度)ㆍ발거(跋渠)의 종류이다. 범음(梵音)이므로 초()나라와 하()나라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등 약 780권을 내었다. 다만 그 책만 냈을 뿐 미처 교정하여 편찬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열반하였으므로 그 글은 마침내 빛을 보지 못하였다. 또 일체유부율(一切有部律)에서 여러 연기(緣起)를 추려 따로 책을 만들어 세상에 유행시켰다.

예를 들면 마갈어인연(摩竭魚因緣4249권은 이미 따로 파생된 초경[別生抄經]이어서 번역한 정수(正數)에 넣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므로 지금은 별생록(別生錄)에 기재하였으며, 산번록(刪繁錄)에 그 명목(名目)을 자세히 나열하였다.

의정은 비록 삼장(三藏)을 두루 번역하였지만, 특히 율부(律部)에 공을 들였다. 번역하고 책을 엮는 여가에는 간곡하게 학도들을 가르쳤다. 무릇 해야 할 일은 모두 급한 것부터 서두르게 하였으며, 그리고 잘못을 걸러 내어 흠을 씻어 버리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보다 특이하였다. 이런 사실은 그에게 배운 이들이 전하고 행하면서 경락(京洛)에 두루 퍼졌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그가 남긴 법을 성대하게 하는 일이었다. 선천(先天) 2(713)에 입적하였으며 그 때의 나이 7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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