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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33 불교(개원석교록 9권 20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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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920

 

지승 지음

 

그 가운데 26() 39권을 보리류지가 새로 번역한 것이다. 이를테면 삼율의회(三律儀會)무변장염회(無邊莊嚴會)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부동여래회(不動如來會)피갑장엄회(被甲莊嚴會)문수사리보문회(文殊師利普門會)출현광명회(出現光明會)불위아난설처태회(佛爲阿難說處胎會)무진복장회(無盡伏藏會)수환사발타라기회(授幻師跋陁羅記會)대신변회(大神變會)우바리회(優波離會)발승지락회(發勝志樂會)선순보살회(善順菩薩會)근수장자회(勤授長者會)우타연왕회(優陁延王會)묘혜동녀회(妙慧童女會)항하상우바이회(恒河上優婆夷會)공덕보화부보살회(功德寶花敷菩薩會)선덕천자회(善德天子會)아사세왕자회(阿闍世王子會)정신동녀회(淨信童女會)미륵보살소문회(彌勒菩薩所問會)무진혜보살회(無盡慧菩薩會)승만부인회(勝鬘夫人會)광박선인회(廣博仙人會)이다.

처음 제목이 발표되던 날 대내(大內)의 불광전(佛光殿)에서 화제(和帝)가 친히 법연(法筵)에 임어하시어 붓으로 경의 뜻[經旨]을 받아썼고, 백관들이 시좌(侍坐)하고 비후(妃后)들도 함께 관람하였다. 이런 일은 옛 사람에게서 찾아본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예종(睿宗)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자 다시 북원(北苑)의 백련화정(白蓮華亭)과 대내의 감로전(甘露殿) 등에서 따로 회()의 첫머리를 열 때는 역시 황제가 친히 받아썼다. 아울러 사문 사충(思忠)과 동인도의 대수령(大首領) 이사라(伊舍羅)와 직중서(直中書) 도파구(度頗具) 등이 범문(梵文)을 통역하였다. 북인도 사문 달마(達摩)와 남인도 사문 파야구다(波若丘多) 등이 범어의 뜻을 증명하였으며, 사문 혜각(慧覺)ㆍ종일(宗一)ㆍ보경(普敬)ㆍ이방(履方) 등이 받아썼다. 사문 승장(勝莊)ㆍ법장(法藏)ㆍ진외(塵外)ㆍ무착(無著)ㆍ심량(深亮)ㆍ회적(懷迪) 등이 뜻을 증명하였으며, 사문 승례(承禮)ㆍ신간(神暕)ㆍ운관(雲觀) 등이 문장의 순서를 매겼고, 태자첨사(太子詹事) 동해군공(東海郡公) 서견(徐堅)과 빈왕(邠王) 부고(傅固)와 안백(安伯)과 노찬(盧粲)과 상서우승(尙書右丞) 동해남(東海南) 노장용(盧藏用)과 중서사인(中書舍人) 야왕남(野王男) 소진(蘇瑨)과 예부랑중(禮部郞中) 팽경(彭景)과 직좌보궐(直左補闕) 기현남(祁縣男) 왕진(王瑨)과 태부승(太府丞) 안온지(顔溫之)와 태상박사(太常博土) 하지장(賀知章) 등이 문장을 윤색(潤色)하였으며,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여후(平輿侯) 육상선(陸象先)과 시중(侍中) 거록공(鉅鹿公) 위지고(魏知古) 등이 번역을 감호하였으며, () 태상경(太常卿) 설숭윤(薛崇胤)과 통사사인(通事舍人) 홍농남(弘農男) 양중사(楊仲嗣)가 감호하였다. 정서(淨書 : 繕書)를 다 마치자 경본을 가져다 대궐에 올렸다. 예종은 밖으로는 만방(萬方)을 총괄하고 안으로는 삼보(三寶)를 숭앙하였으므로 손수 붓을 잡고 서문을 지어 경의 첫 머리에 붙였다.

전후 모두 번역한 경은 53부 도합 111권이었다.

삼장 보리류지는 스스로 보적경을 번역하여 마치고는 다시는 경을 번역하지 않고, 선관(禪觀)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금단(金丹)8)으로 뜻을 보양하였다. 수명이 비록 백 살을 넘었지만 도업(道業)에는 이지러짐이 없었고, 경을 지녀 독송하고 경행(經行)하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변함이 없었다.

개원(開元) 12(724)에 어가를 따라 낙경(洛京)으로 들어오니 칙명으로 장수사(長壽寺)에 편히 있게 하고, 보리류지가 머무르는 곳에 개원(開元)이라는 이름을 더 붙였다.

개원 15(727) 9월에 이르자 그는 문인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물거품 같고 허깨비 같은 이 몸은 날로 쇠약하고 노후해지니 비록 오래 머무른다 하더라도 끝내는 닳아 없어지고 말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 섭양(攝養 : 養生)하여 늙고 피폐[老弊]해지는 것을 면해 보려 하였으나, 이제는 점차 인생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부질없이 시간만을 연장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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