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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00 불교(개원석교록 8권 17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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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817

 

지승 지음

 

그리고는 3천 게송으로 된 회종론(會宗論)을 지어서 유가론중론백론의 뜻을 자세히 융합하여 이해[融會]시켰다. 그보다 앞서 남인도왕의 관정사(灌頂師) 반야국다(般若毱多)는 정량부(正量部)를 밝히면서 7백 게송으로 된 파대승론(破大乘論)을 지었다. 이에 현장은 대승의 이치를 펼쳐 보여 파대승론(破大乘論)을 깨뜨렸는데, 그 이름이 16백 게송으로 된 제악견론(制惡見論)이였다.

모든 법사들은 다 함께 말하였다.

이 논()이야말로 천하의 강한 적[]들을 모두 궁구하였거늘 어떻게 그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또 동인도 구마라왕(拘摩羅王)은 현장으로 인하여 통하고 교화되어 처음 믿음의 문[信門]을 열면서 청하여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는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현장은 여래는 세 가지 몸[三身 : 法身報身化身]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신다는 것을 찬탄하면서 3백 게송으로 된 삼신론(三身論)을 지어서 왕에게 보냈다. 왕은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일찍이 없었던 일[未曾有]입니다.”

그리하여 그 논을 머리에 이고 귀의하였다.

삼신론은 모여진 뜻[義府]이 그윽하고 오묘하여 5인도 나라에 왕성하게 전파되어 널리 퍼졌다. 이로써도 그의 도풍(道風)이 밝게 드러나고 덕행(德行)이 높이 밝아졌으며, 학인들은 삼년 동안[三冬]에 모여 들었고 명성은 만리(萬里)에 퍼졌다.

인도의 학인(學人)들은 모두가 그의 성덕(盛德)을 우러르면서 그를 경의 상자[經笥]라 하였고 또한 법의 장수[法將]라고 불렀다. 소승의 학도들은 현장을 부르면서 목차제바(木叉提婆)라 하였는데, 당나라 말로 번역하면 해탈천(解脫天)이다. 대승의 법중(法衆)들은 그를 부르면서 마하야나제바(摩訶耶那提婆)라 하였으니 당나라 말로 번역하면 대승천(大乘天)이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부른 것은 그의 덕을 높이면서 아름다운 이름을 전한 것이요, 그의 인품을 공경하면서 훌륭한 이름으로 말한 것이다.

또 계일대왕(戒日大王)5인도가 모두 신하로서 복종하였는데, 그는 현장의 이름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요청하였다.

현장이 처음 그에게 이르자 왕은 곧 물었다.

듣건대 저 지나국(支那國)에 진왕(秦王)이란 이가 있어 적진을 무찌르는 음악과 노래와 춤의 가락이 있다 하는데, 그 진왕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습니까?”

현장이 말하였다.

지금 나라를 바로잡은 천자(天子)가 바로 그 분입니다. 아직 황제에 등극하기 전에 진왕(秦王)에 봉하였던 이입니다. 그는 대성인이시며 난리를 진압하고 나라를 바로잡아 그 은혜가 천지 사방을 적셨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에 왕이 말하였다.

그러한 분이야말로 짐짓 하늘이 내보내어 만물의 주인이 되게 하셨군요.”

왕은 현장에게 마음을 다하여 스승으로서 공경하였다. 그리고 왕은 그의 아름다운 소리가 원근에 널리 퍼지게 하려고, 곡녀성(曲女城)에서 대론장(大論場)을 베풀었다. 5인도 안에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말 잘하는 이들을 모아 놓고 현장으로 하여금 의론의 체계를 세우하게[立論] 하였는데, 18일이 다 되도록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왕은 크게 감탄하여 그 상()으로 금전(金錢) 1만 냥과 은전(銀錢) 3만 냥과 주단 1백 구()를 보시하였다. 그러나 현장은 모두 다 받지 않았다.

5인도 경계에 있는 계일왕(戒日王) 등은 그 곳에 머무르면서 광명으로 교화하여 주기를 은근하고 정중하게 청하였다. 그러나 현장의 뜻은 아직 법문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여 널리 이익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에 거부하면서 수락하지 않았다. 왕이 거듭하여 청했으므로 잠시 동안 머무르기로 하고 75일 동안 대시장(大施場)의 모양을 관찰하다가 그 일이 다 끝났으므로 하직하고 돌아갔다.

왕은 칙명을 내려 그가 거느리고 있던 부족들에게 번갈아 그들의 국경까지 나가게 전송하게 하였다. 아울러 코끼리 한 마리와 금전과 은전 각각 수만 냥씩을 보시하고, 계일왕과 구마라왕 등 18대국(大國)의 왕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현장은 모든 보시를 바로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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