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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03 불교(개원석교록 8권 20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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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820

 

지승 지음

 

현장은 황제의 밝은 명을 받고 나서 도성으로 발길을 돌려서, 마침내 내용을 증명하는[證義] 대덕을 불러 모든 대ㆍ소승의 경ㆍ논을 외우고 해석하게 하였다. 그때 발탁된 사람을 11인이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곧 서경(西京) 홍복사(弘福寺) 사문 영윤(靈閏)ㆍ사문 문비(文備)ㆍ나한사(羅漢寺) 사문 혜귀(慧貴)ㆍ실제사(實際寺) 사문 명염(明琰)ㆍ보창사(寶昌寺) 사문 법상(法祥)ㆍ정법사(靜法寺) 사문 보현(普賢)ㆍ법해사(法海寺) 신방(神昉)ㆍ확주(廓州) 법강사(法講寺) 사문 도심(道深)ㆍ변주(汴州) 연각사(演覺寺) 사문 현충(玄忠)ㆍ포주(蒲州) 보구사(普救寺) 사문 신태(神泰)ㆍ면주(綿州) 진향사(振響寺) 사문 경명(敬明) 등이었다.

글을 모아 편집할[綴文] 대덕 9인이 이르렀다. 곧 서울[]의 보광사(普光寺) 사문 천현(拪玄)ㆍ홍복사(弘福寺) 사문 명준(明濬)ㆍ회창사(會昌寺) 사문 변기(辯機)ㆍ종남산(終南山) 풍덕사(豊德寺) 사문 도선(道宣)ㆍ간주(簡州) 복취사(福聚寺) 사문 정매(靖邁)ㆍ포주(蒲州) 보구사(普救寺) 사문 행우(行友)ㆍ서암사(棲巖寺) 사문 도탁(道卓)ㆍ유주(幽州) 소인사(昭仁寺) 사문 혜립(慧立)ㆍ낙주(洛州) 천궁사(天宮寺) 사문 현측(玄則) 등이었다.

자학(字學) 대덕 1인이 이르렀는데, 곧 서울의 대총지사(大摠持寺) 사문 현응(玄應)이었으며, 범어와 범문을 증명하는 대덕 1인이 이르렀는데 곧 서울의 대흥선사(大興善寺) 사문 현모(玄謨)였다.

그 해 5월에 드디어 경[貝葉]을 잡고 범문을 열어 펼쳐서[開演] 처음으로 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을 번역하였다. 사문 도선(道宣)이 붓을 잡았고 아울러 글과 이치를 삭제하거나 보충하였다. 또 다시 불지경(佛地經)육문다라니경(六門陁羅尼經)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을 두루 번역하였다.

정관(貞觀) 20(646) 봄 정월에는 또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을 번역하였고, 그 다음에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번역하였다. 현장 법사는 그 논()에 대하여 거듭 교정을 가하여 정밀하게 하였다. 그리고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는 틈에 또 서역기(西域記)12권을 내었다. 사문 변기(辯機)가 그때의 일을 친히 받아서 그 앞뒤를 차례대로 정리하였다.

전대(前代) 이래로부터 번역한 경교(經敎)는 처음에 범어(梵語)를 따라 본문(本文)을 뒤집어 베껴 쓰고 그 다음에 곧 순서를 되돌려서 이곳 풍속과 같게 하였다. 그렇게 하니 후에 글씨 쓴 사람이 문구의 이치에 어지러워서 문구의 중간 중간에 보태 쓰고 줄이고 하여 부처님 말씀[金言]을 실추시킨 것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번역하여 전하는 경전은 모두가 현장의 논지에 따른 것이니, 뜻과 생각을 혼자서 결단하여 말을 내어 문장을 이루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은 그의 말에 따라 경을 베껴 쓰면 곧 아름다운 문장이 되었다.

이때 황제의 가마가 서경(西京)으로 돌아오자, 현장은 이에 나아가 새로 번역한 경론(經論)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올리고, 제목과 서문을 지어 주기를 표()를 올려 청하였다. 황제는 손수 그 글에 대답으로 간략하게 말하였다.

()은 학문이 얕고 마음이 옹졸하여 사물에도 오히려 미혹한데, 하물며 불교의 그윽하고 현미한 진리를 어찌 감히 우러러 추측하겠소? 경의 제목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 일은 내가 들었던 일도 아니며, 그 새로 지은 서역기(西域記)는 마땅히 스스로 펴서 보고 지을 일이오.”

두번 세번 표()를 올려 청하자, 비로소 윤허[允許]20)하였다. 마침내 부마도위(駙馬都尉) 고이항(高履行)을 보고 말하였다.

[]가 먼저 나[]에게 너의 아버지를 위해서 비문(碑文)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는데, 지금 나의 기력이 예전과는 같지 않다. 공덕을 짓기 원하여 법사를 위하여 서문은 짓지만 비문은 지을 수 없다. ()은 그런 줄 알아라.”

황제는 정관(貞觀) 22(648) 봄에 옥화궁(玉華宮)에 행차하였다가 6월에 칙명으로 법사를 궁중으로 불렀으므로 옥화전(玉華殿)에서 만나게 되었다.

황제가 물었다.

요사이는 어떤 경론을 번역하고 있습니까?”

현장이 대답하였다.

근간에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번역하여 마쳤는데, 모두 100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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