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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297 불교(개원석교록 8권 14편 / 開元釋敎錄)

by Kay/케이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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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814

 

지승 지음

 

입아비달마론(入阿毗達磨論) 2내전록에 보인다. 색건지라(塞建地羅)가 지었다. 현경(顯慶) 3(658) 108일 대자은사 번경원에서 번역하기 시작하여 그 달 13일에 끝마쳤으며, 사문 석전(釋詮)ㆍ가상(嘉尙) 등이 받아 적었다.

오사비바사론(五事毗婆沙論) 2번경도(飜經圖)에 보인다. 법구(法救)가 지었다. 용삭(龍朔) 3(663) 123일에 옥화사(玉華寺) 옥화전(玉華殿)에서 번역하기 시작하여 그 달 8일에 마쳤으며, 사문 석전 등이 받아 적었다.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1번경도에 보인다. 세우(世友)가 지었으며 세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십팔부론(十八部論)부집이론(部執異論)과는 모두 동본이다. 용삭 2(662) 714일 옥화사 경복전(慶福殿)에서 번역되었으며, 사문 대승기(大乘基)가 받아 적었다.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 1내전록에 보인다. 영휘 5(654) () 518일에 대자은사 번경원에서 번역되었으며 사문 대승광이 받아 적었다.

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 1번경도에 보인다. 혜월(慧月)이 지었다. 정관 22(648) 515일에 홍복사(弘福寺)의 번경원에서 번역되었으며, 사문 영준(靈雋)이 받아 적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내전록에 보인다. 정관 20(646)에 칙명으로 홍복사(弘福寺)의 번경원에서 짓기 시작하였고, 사문 변기(辯機)가 뜻을 받들어 편집하였으며, 그해 가을 7월에 붓을 놓았다.

이상은 761347권이며, 그 책들은 모두 현재 있다.

사문 석현장(釋玄奘)은 본래의 이름이 위()이며, 속가의 성은 진()씨로 진류(陳留) 사람이다. ()나라 때 태구장(太丘長)을 지낸 중궁(仲弓)의 후예이다. 증조부 진흠(陳欽)은 후위(後魏) 때 상당태수(上黨太守)를 지냈고, 조부 진강(陳康)은 북제(北齊) 때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냈으며, 식읍(食邑)이 주남(周南)이었으므로 자손들이 그 곳에서 살게 되었고, 또 구씨현(緱氏縣) 사람이 되었다. 부친 진혜(陳惠)는 인품이 영민하고 결백하였으며, 청아한 지조를 지녔으며, 일찍이 경술(經術)에 통달하였다. 키는 8() 장신이었으며, 아름다운 눈썹과 밝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강릉령(江陵令) 벼슬에 있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곧 그때가 대업(大業) 연간(605~617)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끝맺음을 잘하였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나라가 망할 징조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현장은 4형제 가운데 맨 끝이었다. 어려서부터 인품이 특별히 뛰어났고, 총명하기가 무리 중에서 빼어났다. 나이 여덟 살 때에 아버지가 책상 곁에 앉아 효경(孝經)을 말로 가르쳐 증자(曾子)가 자리를 피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갑자기 옷깃을 바로 하고는 일어났으므로 그 까닭을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증자는 스승의 명을 듣고서도 오히려 자리를 피했거늘 저는 이제 아버님의 인자한 교훈을 받들면서 어찌 편안히 앉아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몹시 기뻐하면서 그가 뒷날 반드시 성공할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는 종친[宗人]들을 불러 놓고 그것을 말해 주자, 모두 축하하면서 말하였다.

이야말로 공()의 효성스런 아들로 이름을 드려낼[揚烏] 것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슬기로움이 이와 같았으며, 그 뒤로부터는 경의 오묘한 뜻을 빠짐없이 통달하였다.

둘째 형 장첩(長捷)은 먼저 출가하여 동도(東都)의 정토사(淨土寺)에 머무르고 있었다. 현장이 어릴 때 병을 혹독하게 앓았으므로 데리고 다니면서 그를 구완해 주며 날마다 정통한 이치를 전수하고 한편으로는 교묘한 논리도 아울러 전수하였다.

현장은 나이 열한 살 때에 유마경(維摩經)법화경(法華經)을 외웠으므로, 동도(東都)의 관례에 따라 득도(得度)하게 되어 곧 스님의 몸이 되었다.

이때부터 우뚝 서서 곧고 바르니 벗들 사이에서 짝지를 만한 사람이 없었으며, 입으로 외우고 눈으로 본 것은 조금도 막히거나 모자람이 없었다.

여러 사미(沙彌)들이 허튼 소리를 하고 까불며 장난치는 것을 보고 현장은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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