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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5045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7권

by Kay/케이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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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7

 

대승보살장정법경 제7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3. 보살관찰품 ②
부처님께서는 다시 사리자(舍利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불방일법(不放逸法)이라 하느냐? 이른바 모든 근(根)을 잘 단속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모든 근을 잘 단속하는 것이라 하느냐?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상(相)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묘한 그 얼굴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빛깔 등 모든 맛에 애착하지 않고, 벗어나는 법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귀로 그 소리를 듣고, 코로 그 냄새를 맡으며, 혀로 그 맛을 알고, 몸으로 그 감촉을 깨달으며, 뜻으로 그 법을 알되 그 상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그 묘한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며, 또한 법 등의 맛에 애착하지 않나니, 이것을 불방일이라 하느니라.또 사리자여, 불방일이란 스스로 그 마음을 단속하고 남의 마음도 잘 단속하며, 번뇌를 제거하고 현재에서 법락(法樂)을 증득함을 사찰(伺察)하는 일이 없고, 탐욕과 분노와 해침을 사찰하는 일이 없으며, 탐하는 악근(惡根)과 성내는 악근과 우치의 악근을 사찰하는 일이 없고, 신업의 악행과 어업의 악행과 의업의 악행을 사찰하는 일이 없으며, 깊고 견고하지 않은 마음 씀을 사찰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통틀어 말하면 나아가 일체의 죄업과 선하지 않은 법을 사찰하는 일이 없나니, 이것을 불방일이라 하느니라.또 사리자여, 방일하지 않음에 있어서 보살은 깊고 굳게 마음먹고 부지런히 알맞음을 행한다. 그리하여 그 법이 유(有)이면 유임을 여실히 알고, 그 법이 무(無)이면 무임을 여실히 아느니라.
어떤 것이 유이며, 어떤 것이 무인가? 이른바 바른 도를 부지런히 행하여 능히 믿고 이해하는 것은 유이며, 삿된 도를 부지런히 행하여 능히 믿고 이해하는 것은 무이다. 모든 업에 과보가 있음은 유이며, 모든 업에 과보가 없음은 무이다. 눈은 유이나 그 눈의 실성(實性)은 무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유이나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실성은 무이다.몸은 무상이요 괴로움이며 구경(究竟)이 아니요 견고하지 않으며 무너지는 법이라 함은 유이며, 몸은 상(常)이요 즐거움이며 구경이요 견고하며 무너지지 않는 법이라 함은 무이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이요 괴로움이며 구경이 아니요 견고하지 않으며 무너지는 법이라 함은 유(有)이며, 수ㆍ상ㆍ행ㆍ식은 상이요 즐거움이며 구경이요 견고하며 무너지지 않는 법이라 함은 무이니라.또 무명이 행동의 모든 법을 반연한다 함에 있어서 진실하지 않은 무명이 행을 반연하고 나아가 생은 노사(老死)를 반연한다 하면 이것은 유이며, 진실한 무명이 행을 반연하고 나아가 생이 노사를 반연한다 하면 이것은 무이다. 보시를 행하는 이는 큰 부자가 된다 하면 이것은 유이며, 보시를 행하는 이가 도리어 가난하게 된다 하면 이것은 무이다. 계율을 지켜 천상에 난다 하면 이것은 유이며, 계율을 깨뜨리고 천상에 난다 하면 이것은 무이다. 많이 들은 이가 지혜가 많다 하면 이것은 유이며, 우치한 이가 지혜가 많다 하면 이것은 무이다.닦고 익힘이 상응(相應)한다 하면 이것은 유이며, 닦고 익힘이 상응하지 않는다 하면 이것은 무이다. 깊고 굳게 마음을 먹어 상응한다 하면 이것은 유이며, 깊고 굳지 않은 마음먹음이 상응한다 하면 이것은 무이다. 정진하는 보살이 보리의 결과를 얻으면 이것은 유이며, 게으른 보살이 보리의 결과를 얻으면 이것은 무이다. 증상만(增上慢)이 없는 사람이 출가의 일을 지으면 이것은 유이며, 증상만이 있는 사람이 열반을 증득한다면 이것은 무이다. 어디서나 공성(空性)을 통달하면 이것은 유이며, 아(我)ㆍ인(人)ㆍ중생ㆍ수자(壽者)에 집착하면 이것은 무이니라.다시 사리자여,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방일하지 않는 보살은 깊고 견고한 마음을 먹고 부지런히 행하여 상응한다. 즉 세간을 두루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열어 보이며, 세간을 두루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없으면 열어 보이지 않는다. 세속의 진리에 있어서 그 유도 알지 못하고 그 무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부처님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진실의 뜻을 알 수 있겠느냐?사리자여, 부처님 여래께서는 통틀어 네 종류의 법인(法印)으로 일체의 법을 포섭하신다. 그 네 종류의 법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 모든 행이 무상(無常)하다는 것이요, 둘째 모든 행이 고통이라는 것이며, 셋째 모든 법에 나[我]가 없다는 것이요, 넷째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는 것이다.그런데 일체 중생이 모든 행이 무상한 가운데서 유상(有常)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일 그 중생들이 상이라는 생각을 끊어 버리면 그것은 곧 내가 말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이 모든 행이 고통인 가운데서 즐겁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그들이 즐겁다는 생각을 끊어 버리면 그것은 곧 내가 말하는 것이다.또 중생들이 모든 법이 나가 없는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만일 그 중생들이 나라는 생각을 끊어 버리면 그것은 곧 내가 말하는 것이다. 또 모든 중생들이 열반적정의 이치 가운데서 얻는 바가 있다는 전도된 생각을 일으키는데, 만일 그들이 얻을 바가 있다는 전도된 그 생각을 끊어 버리면 그것은 곧 내가 말하는 것이다.또 사리자여, 만일 모든 행이 무상한 줄을 알면 그는 곧 공(空)이어서 무상한 성품에 깨달아 들어갈 것이요, 모든 행이 고통인 줄을 알면 그는 모든 원구(願求)를 버릴 수 있을 것이며, 모든 법이 나가 없는 줄을 알면 그는 곧 공삼마지(空三摩地)의 해탈법문을 볼 것이요, 만일 열반적정임을 알면 그는 곧 모든 모양 가운데서 닦아 지음이 있을 것이요, 또한 때 아닌 때에 실제(實際)를 증득하지 않을 것이다.사리자여, 이런 법에 있어서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행해 상응하면 그는 일체의 선법을 잃지 않고 일체의 불법을 빨리 원만하게 이룰 것이다.”
4. 여래부사의품(如來不思議品) ①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믿는 마음에 머무르는 보살은 부처님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의 열 종류의 불가사의한 법에 대해 믿고 이해함이 청정하고 분별을 벗어나며 온갖 의심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몸과 마음의 기쁨과 즐거워하는 상을 일으키고 희유(希有)하다는 생각을 낸다.열 종류의 불가사의란 어떤 것인가? 첫째, 부처님 여래의 훌륭한 몸매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信解)가 청정하고, 나아가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 여래의 묘한 음성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셋째, 부처님 여래의 최상의 큰 지혜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넷째, 부처님 여래의 미묘한 광명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다섯째, 부처님 여래의 원만한 계정(戒定)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 여래의 광대한 신족(神足)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일곱째, 부처님 여래의 열 종류 지력(智力)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여덟째, 부처님 여래의 4무소외(無所畏)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아홉째, 부처님 여래의 대비심(大悲心)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열째, 부처님 여래의 불공불법(不共佛法)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이와 같은 열 종류의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의 불가사의하고 희유한 법에 대해 믿음에 머무르는 보살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구하면서 두려워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나아가 살과 피부ㆍ뼈ㆍ힘줄ㆍ피ㆍ골수 등이 다 마르고 여위더라도 여래의 열 종류의 불가사의한 법을 얻지 못한다면, 그 중도에 권태를 느끼지 않고 정진하고 부지런히 구하여 반드시 얻느니라.사리자여, 믿음에 머무르는 보살은 부처님 여래의 열 종류의 불가사의한 법에 대해 이렇게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여래의 신상(身相)은 불가사의하나니
미묘하고 청정한 그 법신(法身)을 관찰하라.
모양도 없고 또한 대애(對礙)의 문도 없건만
보살은 능히 거기에 대해 신해(信解)를 낸다.
나아가서는 모든 갈래를 두루 다 분별하고
그 음성은 오직 부처님만이 불가사의하며
어디에서나 그것은 진실한 법문이거니
그 부처님의 경계를 잘 관찰해야 하네.
있는 바의 일체의 중생 무리들
상ㆍ중ㆍ하의 근기에 차별 있는데
부처님의 훌륭한 지혜만은 능히 두루 아나니
그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함을 신해하여라.
모든 부처님의 큰 광명은 끝이 없는데
청정한 광명 그물은 불가사의하여라.
넓고 크게 열 가지 법을 두루 비출 때
끝이 없는 세계 바다가 환희 트이네.
모니께서 세상에 나오시매 맑고 묘한 그 계율
그것은 세간의 법을 의지하지 않는다.
믿음에 머무르는 보살의 청정한 믿는 마음
부처님의 신족의 불가사의함을 믿네.
모든 부처님의 신통의 경계의 문은
어떤 보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등인(等引)의 마음에 머무시나니
부처님의 해탈문은 불가사의하여라.
법계(法界)는 넓고 커서 분별할 수 없으나
오직 부처님의 훌륭한 힘만이 다 아신다.
지혜의 힘을 원만히 갖춘 거룩한 큰 신선
가없고 끝도 없어 허공과 같네.
설령 일체 중생 무리들
서로서로 질문하는 그 말이 바다 같아도
물음을 따라 두루 답하매 기쁜 마음 생기나니
여래의 무외(無畏)는 실로 불가사의하여라.
한 중생을 위하여 이로운 일 행하는데
무한한 중생 위함도 또한 그와 같아라.
그들을 모두 다루어진 마음에 편히 머물게 하나니
여래의 대비심(大悲心)은 불가사의하여라.
여래께서는 온갖 모양 다 원만히 갖추시고
일체의 모든 법을 다 능히 깨달으셨다.
불공불법(不共佛法)의 공덕의 문은
어디서나 그 지혜를 나타내 보이나니,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불가사의함
모든 불법 거두어 법성(法性)에 들어간다.
만일 능히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두루 일으키면
그 보살은 청정한 믿음에 잘 머물 수 있으리.
“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믿음에 머무르는 보살은 부처님 여래의 가장 훌륭한 몸매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하느냐?이른바 부처님 여래의 그 몸은 청정하여 일체의 불선한 법을 다 능히 제거하며, 또 일체의 선법을 다 원만히 갖추었다는 것이다. 여래의 몸은 일체의 더러운 힘줄ㆍ뼈ㆍ피ㆍ살에서 새어나오는 온갖 더러운 것을 다 떠났다. 여래의 몸은 그 자성(自性)이 밝고 맑고 깨끗하여 일체 번뇌의 더러움을 아주 떠났고, 세간을 벗어나 일체 세간 법에 물들지 않는다.여래의 몸은 무량한 복과 지혜와 묘한 행을 쌓아 중생들을 기르고, 무량한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 등 모든 선법을 닦아 익혔으며, 일체의 훌륭한 공덕의 꽃을 갖추어 큰 원경(圓鏡)이 온갖 색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고, 또 맑은 물이 달그림자를 나타내는 것과 같다.또 여래의 몸은 허공과 같이 일체를 두루 포섭하고, 법계가 최상이요 가장 훌륭한 것처럼, 부처님의 몸은 번뇌가 없어 모든 번뇌가 이미 없어졌으며, 부처님의 몸은 무위(無爲)여서 모든 수(數)에 들지 않으며, 허공의 몸과 같아서 짝이 없는 몸이요, 일체 삼계에서 가장 훌륭한 몸이니라.또 여래의 몸은 비유할 수 없는 몸이요, 비유할 데가 없는 몸이며, 청정하여 아무 더러움도 없고, 자성(自性)의 광명은 과거에도 볼 수 없고, 미래에도 볼 수 없으며, 현재에도 볼 수 없다. 볼 수 있는 종족이 아니요, 볼 수 있는 빛깔이 아니며, 볼 수 있는 모양이 아니요, 볼 수 있는 수형묘호(隨形妙好)가 아니며, 마음으로 볼 수 없고, 뜻으로 볼 수 없고, 의식으로 볼 수 없으며, 봄으로 볼 수 없고, 들음으로 볼 수 없고, 생각으로 볼 수 없느니라. 드러내어 아는 것으로 볼 수 없고, 온(蘊)으로 볼 수 없고, 처(處)로 볼 수 없고, 계(界)로 볼 수 없으며, 생(生)으로 볼 수 없고, 주(住)로 볼 수 없고, 멸(滅)로 볼 수 없고, 취(取)로 볼 수 없으며,사(捨)로 볼 수 없고, 출리(出離)로 볼 수 없으며, 행(行)으로 볼 수 없고, 현색(顯色)으로 볼 수 없으며, 모양으로 볼 수 없고, 형색으로 볼 수 없으며, 옴으로 볼 수 없고, 감으로 볼 수 없으며, 계율로 볼 수 없고, 선정으로 볼 수 없으며, 지혜로 볼 수 없고, 해탈로 볼 수 없으며, 해탈지견으로 볼 수 없느니라. 유상(有相)으로 볼 수 없고, 이상(離相)으로 볼 수 없으며, 법상(法相)으로 볼 수 없고, 제상성판(諸相成辦)으로 볼 수 없으며, 무소외(無所畏)로 볼 수 없고, 무애해(無礙解)로 볼 수 없으며, 신통으로 볼 수 없고, 대비(大悲)로 볼 수 없으며, 불공불법성판(不共佛法成辦)으로 볼 수 없느니라.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환(幻)과 같고, 불꽃과 같으며, 물속의 달과 같다. 그것은 자성(自性)의 묘한 몸이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무제안(無際岸)의 몸이며, 종류가 없는 몸이요, 쌓임이 없는 몸이며, 분별이 없는 몸이요, 의지하는 데가 없는 몸이며, 다름이 없는 몸이요,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몸이며, 색이 없고 색이 아닌 자성(自性)의 몸이요, 수(受)가 없고, 수가 아니며, 상(想)이 없고, 상이 아니며, 행(行)이 없고, 행이 아니며, 식(識)이 없고, 식이 아닌 자성의 몸이다.실(實)이 없고 생(生)이 아니며 대종(大種)이 아닌 몸이요, 일찍이 없었고 일찍이 없었던 업(業)의 몸이다.눈에서 생긴 것이 아니요 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서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귀를 의지하지 않고 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코로 맡는 것이 아니요 냄새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혀로 알 것이 아니요 맛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몸의 화합이 아니요 감촉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마음에서 변한 것이 아니요, 뜻에서 변한 것이 아니며, 식(識)에서 변한 것이 아니면서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따라서 변하는 것도 아니며, 편히 머물러 움직임이 없어 허공과 같은 몸이니, 법계에서 최상으로서 허공 세계에 섞여 들어가느니라.사리자여, 이런 법을,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여래의 불가사의하고 깨끗하고 묘한 몸매에 대하여 신해가 청정하고 분별을 초월하여 온갖 의심을 떠나고는 다시 마음과 몸이 기쁘고 즐거운 모양을 일으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하느니라.”그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셨다.
한량이 없는 구지 나유다
그런 겁을 지내면서 보살의 행을 널리 닦아
세 가지 신업이 좋고 깨끗한 중에서
같음이 없는 선서(善逝)의 몸을 부지런히 구했다.
시방세계에서 인자한 뜻을 일으키고는
몸과 목숨으로 널리 보시 행하고
언제나 탐욕과 삿된 행과 더러운 마음 떠나
위없는 허공의 몸을 부지런히 구하였다.
청정하고 미묘한 최상의 옷과 장식으로
한량이 없는 겁 동안에 보시 행하고
보시바라밀의 묘한 행이 원만하여
최상의 모든 불자에게 널리 보시하였다.
얼룩소가 그 꼬리를 사랑하듯 계율 지키어
몸과 목숨을 능히 버리면서도 참고 원한이 없이
부처의 몸을 원하고 구해 게으른 마음 없어
정진바라밀을 두루 널리 닦았다.
모든 부처님의 선정의 경계를 즐겨 관찰하면
속마음으로 지혜의 방편을 즐겨 일으키나니
이 법계에서 최상이신 선서의 몸이여
나도 반드시 그와 같음을 얻기 원하네.
모든 부처님께서는 온갖 선행을 두루 다 짓고
보리의 결과를 얻어 인간에서 최상이시니
마땅히 넓고 큰 허공과 같은 몸을 얻어
더러운 티끌을 잘 버리고 청정하여 때 없으리.
나와 사람이라는 생각을 떠나 자성이 공하고
모양도 없고 말도 없으면 얻는 바도 없고
모든 눈의 경계의 문을 모두 뛰어넘었거니
저 큰 모니(牟尼)의 몸을 이리하여 얻었구나.
빛깔을 떠나고 소리를 떠나 그 뜻이 청정하여
나는 것도 없고 짓는 것도 없어 본래 공하며
여래의 흔들림이 없는 몸을 반드시 얻으리니
10력(力)과 선서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리.
마치 허깨비의 변화와 같이 가지가지의 몸과
모든 코끼리와 말 등과 사람 모양 내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허망하고 전도된 마음으로
부처님ㆍ10력존(力尊)을 색상(色相)으로 본다.
과거의 한량이 없는 모든 선서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동일(同一)하고 견줄 이 없는 법성(法性)의 몸은
이 법계에서 최상이어서 저 허공과 같다.
“사리자여, 믿음에 머무는 보살은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 여래의 가장 훌륭한 신상(身相)의 불가사의함에 대하여 신해가 청정하고 분별을 초월하여 모든 의혹을 버리고는, 다시 몸과 마음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상을 일으키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또 사리자여, 어떤 것을,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부처님 여래의 묘하고 좋은 음성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하느냐?사리자여, 이른바 부처님 여래의 일체 대중 모임 가운데서 내시는 음성은, 다 그들을 조복하고 수순하여 온갖 좋은 이익을 지어 시방세계의 일체 중생이 두루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부처님 여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즉, ‘나는 이 필추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이 필추니 대중과 우바새ㆍ우바이ㆍ바라문ㆍ찰제리ㆍ장자ㆍ거사ㆍ범중 등을 위해 설법한다’고 생각하신다.또 부처님 여래께서는 알맞음을 따라 설법하시되, 계경(契經)ㆍ풍송(諷頌)ㆍ기별(記別)ㆍ응송(應頌)ㆍ자설(自說)ㆍ비유ㆍ연기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희법(希法)ㆍ논의(論議) 등 이런 법을 일체 대중 내지 범중을 두루 위해 근기를 따라 설법하신다.그렇게 하시면 상ㆍ중ㆍ하의 근기가 갖가지로 다른 모든 중생들은 다 그 법구(法句)를 듣는다. 그 법구는 다 여래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서 모든 근기에 따라 각자 해득하지만, 그 중간에는 말이 서로 어긋나거나 걸림이 없어서 각각 분명히 해득하나니, 이것이 곧 여래의 과거의 복의 과보로서 묘한 음성을 내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설법을 따라 깨쳐 들게 하는 것이다.또 사리자여, 여래께서 내시는 음성은 곱고 매끄러워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하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아름답고 묘하여 듣기 즐거우며, 또 아주 명료하고 추악하지 않아 듣는 자는 몸과 마음에 염증이나 권태를 느끼지 않으며, 듣는 자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움이 따라 생기고 분명히 이해하므로 모두 마음에 즐거움이 생기고, 마음과 뜻이 유쾌해진다.그것은 사자 소리와 같고, 천둥소리ㆍ바다의 조수 소리ㆍ가릉빈가(迦陵頻伽)의 미묘한 소리ㆍ맑고 깨끗한 소리ㆍ북소리ㆍ상서로운 소리ㆍ유연한 소리ㆍ떨치는 메아리 소리요, 모든 중생들의 모든 감관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깨끗하고 묘한 소리요, 일체 대중이 즐거워하는 소리요, 모든 상을 구족한 가장 훌륭한 소리요, 모든 부처님 여래의 이러저러한 무량한 공덕을 다 구족한 청정한 음성이다.사리자여, 이러한 것을 믿음에 머무는 보살이 부처님 여래의 묘하고 좋은 음성이 불가사의함에 대해 신해가 청정하고 나아가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라 하느니라.”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여래께서 범천 음성[梵音]의 묘한 소리 모양으로
내는바 음성은 중생을 잘 다스리신다.
범천 무리도 부처님 음성에는 미치지 못하나니
이와 같은 온갖 법을 모두 두루 갖추었네.
부처님의 음성은 능히 인자함과 상응하는데
넓고 큰 슬퍼하는 마음은 더욱 높고 훌륭하다.
기뻐함과 평등함과 상응하는 것 또한 그러하나니
거룩하고 높으신 모니(牟尼)는 묘한 음성 내시네.
그 소리를 듣는 저 모든 중생들
탐욕의 불과 분노의 독과 온갖 불선 다 쉬고
어리석음과 어두움도 또한 모두 사라지나니
이와 같은 음성을 부처님 모두 두루 갖추었네.
갖가지 곳에 사는 그 모든 대중들과
두루두루 일체의 모든 인류들과
나아가서는 이 온 염부제(閻浮提)의 중생들
그들이 쓰는 갖가지 말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신다.
부처님의 음성을 듣는 저 모든 중생들
지상에 살거나 천상에 살거나 저 모든 하늘 무리
모니의 그 묘한 음성을 얻어 들으면
부처님의 음성 들음 따라 다 그 뜻을 아네.
두 발이나 네 발이거나 또 많은 발을 지녔거나
또 발이 없는 중생들이 부처님 음성 들으면
누구나 어디서나 고요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들은 어디서나 그 음성 따라 변화한다.
삼천대천세계의 그 어디서나
중생들을 다 깨우쳐 주고 또 다스리되
상ㆍ중ㆍ하의 모든 근기를 두루 포섭하나니
부처님의 음성을 따라 그들은 잘 변화하네.
다스려야 할 자는 음성 듣고 해탈하여
온갖 분별 다 떠나서 분별하지 않으며
선정에 든 마음으로 성제문(聖諦門)을 설명하면
그 가운데서 집착이 없고 또 속박도 없다.
한량없는 중생들 부처님 음성 들을 때
그 음성을 듣고는 온갖 번뇌 모두 쉬고
부처와 법과 스님에게 지성으로 귀의하고
그리고 또 계율과 인욕을 두루 다 구족하네.
여래의 최상의 미묘한 음성
그 음성은 깊고 넓어 끝간 데도 없다.
음성도 끝이 없고 지혜도 끝이 없나니
보살은 지혜로 믿어 의심이 다시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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