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6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6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3. 보살관찰품(菩薩觀察品)①
그때 존자 사리자(舍利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조그만 의심이 있어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원하옵건대 여래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께서는 잘 설명해 주십시오. 만일 부처님 세존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곧 여쭙겠습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는 곧 설명하시어 그 의문을 모두 풀어 주시리라.”그때 존자 사리자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하여야 신업(身業)에 허물이 없고, 어업(語業)에 허물이 없고, 의업(意業)에 허물이 없으며, 또 신업이 청정하고, 어업이 청정하고, 의업이 청정하며, 또 신업이 흔들리지 않고, 어업이 흔들리지 않고, 의업이 흔들리지 않아서 어떤 천마(天魔)나 외도(外道)의 힘도 그것을 누를 수 없게 되겠나이까?그리고는 일체지심(一切智心)을 깊이 내어 지위를 따라 차례로 잘 이루어 일체 중생의 귀의처(歸依處)가 되고, 그 빛나는 횃불이 되며, 큰 강이 되고, 큰 다리가 되며, 큰 배가 되어 일체 중생을 저쪽 언덕으로 건네주며, 집이 되고, 구원이 되며, 의지가 되고, 나아갈 곳이 되며, 일체지심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겠나이까?”그때 존자 사리자는 이 이치를 찬양하기 위하여 부처님께 게송으로 여쭈었다.
어떤 이치로 용기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큰 보리의 마음에 편히 머물러
공덕의 묘한 법문을 선양하고
위없는 보리의 결과를 이루어 증득을 합니까.
용기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떠한 행으로써
일체의 중생들을 모두 이롭게 하며
또 어떠한 법문을 관찰하여
부처님의 위없는 도를 이룰 수 있습니까.
다시 어떤 법으로 악마 무리 항복 받고
보리의 큰 도량에 편히 머무르면서
구지의 모든 세계 진동시키고
보리의 훌륭하고 묘한 결과를 원만히 증득합니까.
또 무슨 까닭으로 보살이라 이름하며
보살이라는 그 뜻은 어떠하온지
원하옵나니 여기 일체 불법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보리의 문을 말씀해 주소서.
이 세간에서 그 어떤 행이
능히 모든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하며
온갖 염착(染著) 떠나기 저 연꽃과 같아
구지의 모든 중생들을 해탈하게 합니까.
저 모든 하늘과 모든 용과 지혜로운 사람과
나아가서는 일체의 인비인(人非人)들
그들의 공양을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지금 그 뜻을 여쭙나니 원컨대 설명해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존자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그대는 지금 알아야 한다. 보살이 만일 한 법을 성취하면 한 곳에서나 많은 곳에서나 한량없는 불법을 다 섭수(攝受)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그 한 법인가? 이른바 깊고 견고한 큰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살이 한 법을 성취하면 한 곳에서나 많은 곳에서나 한량없는 불법을 두루 섭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리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깊고 견고한 것이라 하며, 어떤 것을 보리심이라 하나이까?”부처님께서는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깊고 견고함이란 바로 진실하여 깨뜨려지지 않기 때문이요,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흔들림이 없음은 곧 퇴굴(退屈)이 없기 때문이요, 퇴굴이 없음은 곧 편히 머물기 때문이며, 편히 머무름은 곧 퇴전(退轉)이 없기 때문이요, 퇴전이 없음은 곧 중생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잘 관찰함은 큰 대비(大悲)의 근본이기 때문이요, 대비의 근본은 곧 광대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광대한 마음은 중생을 성숙시키는 법식을 잘 알기 때문이요, 중생을 성숙시키는 법식을 잘 앎은 곧 자재한 묘락(妙樂)이기 때문이며, 자재한 묘락은 곧 종류가 없기 때문이요,종류가 없음은 곧 애착이 없기 때문이며, 애착이 없음은 곧 중생을 섭수하기 때문이요, 중생을 섭수함은 곧 열약(劣弱)한 중생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며, 열약한 중생을 잘 관찰함은 곧 구원이 되고 귀의처가 되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은 곧 잘 관찰하기 때문이요, 잘 관찰함은 곧 소득이 없기 때문이며, 소득이 없음은 곧 잘 좋아하기 때문이요, 잘 좋아함은 소유가 없기 때문이며, 소유가 없음은 잘 청정하기 때문이요, 잘 청정함은 곧 스스로 결백하기 때문이며, 스스로 결백함은 곧 안에 때가 없기 때문이요, 안에 때가 없음은 곧 밖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사리자여, 그것은 이런 것이니, 진실하여 깨뜨려지지 않음에서 안에 때가 없고 밖이 청정함에 이르는 이 모든 법문을 깊고 견고함이라 하느니라.또 사리자여, 보리심이란, 이른바 그 마음은 아무 허물이 없어서 어떤 번뇌도 따를 수 없고, 그 마음은 다른 법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마음은 견고하여 일체의 삿된 외도의 말에 깨뜨려지지 않고, 그 마음은 깨뜨려지지 않아 일체 악마의 무리가 흔들 수 없으며, 그 마음은 결정코 일체 선의 근본행을 기르느니라.그 마음은 움직이지 않나니 불법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잘 머무나니 보살 자리에 오르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위가 없나니 대치(對治)가 없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금강과 같나니 일체 불법을 잘 가리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평등하나니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일체 중생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이 청정하나니 그 자성(自性)이 더럽지 않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더러움이 없나니 지혜의 광명이 비치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광대하나니 일체 중생을 수용하기 때문이니라.그 마음은 물듦이 없나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장애가 없나니 걸림 없는 지혜를 관찰하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모든 것을 잘 아나니 대비(大悲)가 끊임이 없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현재에 증득하나니 청정하게 칭찬하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일체지(一切智)의 종자를 성취하나니 일체 불법을 원만히 했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편히 머물러 일체 즐거운 일을 두루 베푸나니 서원이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깨끗한 계율을 원만히 갖추었나니 계율을 깨뜨림이 없기 때문이니라.그 마음은 인욕(忍辱)을 닦아 지니나니 모든 분노를 떠났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정진하나니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선정(禪定)에 드나니 고요에 가깝기 때문이요, 그 마음은 해침이 없나니 지혜의 행을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또 그 마음은 진실의 근본이니, 여래의 계율과 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解脫知見) 등의 모든 무더기를 성취하였으며, 그 마음은 진실의 근본이니, 여래의 10력(力)과 4무외(無畏)와 18불공법(不共法)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니라.또 사리자여, 보리가 이루어진 마음을 보리심이라 하는데, 이 살타(薩陀)는 보리를 구하는 마음이 깊고 견고하며 완전하다. 그러므로 보리살타라 하고, 또한 광대한 중생ㆍ최상의 중생ㆍ삼계에서 가장 훌륭한 중생이라고도 한다.그는 신업(身業)에 허물이 없고, 어업(語業)에 허물이 없으며, 의업(意業)에 허물이 없다. 신업이 청정하고, 어업이 청정하며, 의업이 청정하다. 신업이 움직이지 않고, 어업이 움직이지 않으며, 의업이 움직이지 않아서 일체 천마(天魔)와 외도(外道)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일체지(一切智)의 마음을 깊이 내고, 지위와 모든 선(善)의 차례가 마땅하며, 일체 세간의 법이 더럽히지 못한다.일체 중생을 잘 다루고 두루 다루고, 중생의 귀향(歸向)하는 바가 되고, 광명의 횃불이 되며, 큰 강물이 되고, 큰 다리가 되며, 큰 배가 되어 일체를 모두 저쪽 언덕으로 건네준다. 집이 되고, 구원이 되며, 돌아가는 곳이 되고, 나아가는 곳이 된다. 일체지의 마음을 내어 천마와 외도에게 흔들리지 않는다.이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있어서 깨끗한 믿음이 견고하고 광대하며 청정하다. 성인들 뵙기를 좋아하고, 깊은 법을 즐겨 들으며, 아끼는 마음이 없어서 보시를 두루 행한다. 항상 벗어날 마음을 즐겨 장애가 없고, 일체 중생에 대하여 난잡한 마음이 없고, 물러나는 마음이 없으며, 흩어지는 마음이 없다. 업이 있고 과보가 있음을 깨끗이 믿어 의심치 않으며, 모든 하는 일에 다 의혹을 떠났으며, 선악의 법에 대해 과보를 깨뜨리지 않는다.이러한 것을 잘 알아 몸과 목숨으로 죄업을 짓지 않고, 살생과 도둑질ㆍ간음ㆍ거짓말ㆍ꾸미는 말ㆍ이간질 하는 말ㆍ욕설ㆍ탐욕ㆍ분노ㆍ삿된 견해 등 이런 열 가지 악업을 다 끊고, 열 가지 선업을 항상 닦아 모으며, 진리를 깨끗이 믿는다. 사문과 바라문에 대해 항상 바른 도를 닦고, 청정한 계율을 지키며, 일체 선법을 널리 듣고는 부지런히 행하면서 견고히 마음을 먹는다.마음을 잘 다스려 고요함을 좋아하고 다툼을 떠나 말은 모두 애어(愛語) 아님이 없으며, 마음과 뜻이 모두 순수하고 착하며, 선법을 부지런히 행하고 악법을 멀리 떠나며, 높고 낮음이 없으면서 가벼이 움직이지 않고, 온갖 칭찬과 비방을 떠나 바른 생각에 편히 머무르고, 미묘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3유(有)의 결박을 끊으며, 독한 화살을 뽑아 버리고 무거운 짐을 버리어 고요함에 머물기를 좋아하며, 의심과 뉘우침을 버리고 뒷몸[後有]을 받지 않는다.항상 부처님 세존과 보살마하살과 사문ㆍ바라문을 친근하고 공경하며 따르고 받들어 섬겨 거슬리지 않으며, 언제나 선지식을 떠나지 않고 바른 법을 포섭하고 바른 법을 펴며 이익과 기쁨을 가르치는데, 이른바 보시와 큰 재물과 계율과 천상에 나는 것과 많이 들음과 큰 지혜이다.모두 알맞게 닦아 익혀 이렇게 선설한다.
‘이것은 보시인데 보시의 과보를 얻고, 이것은 인색인데 인색의 과보를 얻는다. 이것은 지계인데 계율의 과보를 얻고, 이것은 범계(犯戒)인데 범계의 과보를 얻는다. 이것은 인욕(忍辱)인데 인욕의 과보를 얻고, 이것은 분노인데 분노의 과보를 얻으며, 이것은 정진인데 정진의 과보를 얻고, 이것은 게으름인데 게으름의 과보를 얻는다. 이것은 선정(禪定)인데 선정의 과보를 얻고, 이것은 산란(散亂)인데 산란의 과보를 얻는다. 이것은 지혜인데 지혜의 과보를 얻고, 이것은 우치(愚癡)인데 우치의 과보를 얻는다.이 몸의 선행은 이 몸의 선행의 과보를 얻고, 이 몸의 악행은 이 몸의 악행의 과보를 얻으며, 이 말의 선행은 이 말의 선행의 과보를 얻고, 이 말의 악행은 이 말의 악행의 과보를 얻으며, 이 뜻의 선행은 이 뜻의 선행의 과보를 얻고, 이 뜻의 악행은 이 뜻의 악행의 과보를 얻는다. 이것은 선이요 이것은 불선(不善)이며, 이것은 할 일이요 이것은 할 일이 아니다.이 일은 오랫동안 일체 중생을 편하고 즐겁게 할 것이요, 이 일은 오랫동안 일체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선지식(善知識)의 처소에서 바른 법을 설명하여 이로움과 기쁨을 가르친다.그가 큰 법기(法器)임을 알면 매우 깊은 법문을 말할 것이니, 이른바 공해탈문(空解脫門)과 무상(無相)해탈문과 무원(無願)해탈문과 조작(造作)이 없음과 생멸(生滅)이 없음과 아(我)ㆍ인(人)ㆍ중생ㆍ수자(壽者) 등이 없다는 것이다.또 매우 깊은 연생법(緣生法)을 설명해야 하나니 이른바 유법(有法)이니, 즉 유(有)이기 때문에 생(生)이 있다는 것이다. 즉 무명(無明)은 행(行)을 반연하고, 행은 식(識)을 반연하며,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6처(處)를 반연하며, 6처는 촉(觸)을 반연하고, 촉은 수(受)를 반연하며, 수는 애(愛)를 반연하고, 애는 취(取)를 반연하며, 취는 유(有)를 반연하고, 유는 생(生)을 반연하며, 생은 노사(老死)와 우비(憂悲)와 고뇌를 반연하는데, 이리하여 하나의 큰 고통의 무더기가 되는 것이다.유(有)가 없으므로 곧 생(生)이 없나니, 생이 없음은 곧 멸(滅)이다. 이른바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하며, 6처가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受)가 멸하며, 수가 멸하면 애(愛)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며,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며, 생이 멸하면 노사와 우비와 고뇌가 멸한다. 이리하여 하나의 큰 고통의 무더가 멸하느니라.그러나 이 가운데 조그만 법도 나거나 멸하거나 실로 얻을 것이 없나니, 왜냐하면 일체의 법은 인연으로 생기는 것으로서 주재(主宰)가 없고, 짓는 이도 받는 이도 없기 때문이다. 인연이 구르므로[轉] 이 가운데는 구를 법이 없고, 또한 구름이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구름을 따르는 것도 아니요, 실로 나는 바가 없느니라.삼계의 시설은 번뇌를 따라 구르는 것이요, 괴로움을 따라 구르는 것이기 때문에 시설이 있는 것이나, 일체는 다 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여기에서 여실히 관찰하면 조그만 법도 지은 이가 없으며, 지은 이가 없으면 곧 지어진 것도 없어서 승의제(勝義諦) 가운데는 전혀 얻을 바가 없나니, 이렇게 말하는 바 구를 법도 없고, 구름이 없는 것도 아니다.보살은 이런 매우 깊은 법을 듣고는 믿고 이해하여 의심하지 않아서 일체 법의 걸림이 없는 지혜의 문에 들어가느니라. 그러므로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집착하지 않고,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 내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체 법의 제 성품은 다 공(空)이라고 믿고 이해하느니라.사리자여, 보살이 만일 이런 믿음과 이해에 머무르면 언제나 부처님을 뵈옵게 될 것이요, 언제나 바른 법을 듣게 될 것이며, 언제나 대중에게 봉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마다 부처님 뵙는 것을 떠나지 않고 법 듣는 것을 떠나지 않으며, 청정한 대중에게 봉사하는 것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서 세상에 나오시는 부처님을 만나고 언제 어디서나 정진하여 선법을 부지런히 구할 것이다.그런데 그 정진은 이치와 이익이 없는 것이 아니니, 이른바 가정에 사는 일이나 처자ㆍ권속ㆍ재보 등을 수용하는 일이나 노비를 부리는 일 등은 다 이치도 이로운 일도 아닌 것이며, 또한 일체 향락이나 유희의 허물에 집착하는 따위는 다 이롭지 않은 일이니, 이런 일은 모두 잘 버린다. 그리하여 부처님 여래의 바른 법 안에서 깨끗한 믿음으로 출가하는데, 그 청정한 출가한 마음으로 선지식을 부지런히 친하고 좋은 법을 생각하며 선을 얻어 즐거워하고, 선법을 들으면 진실히 수행한다.문자로 이루어진 훌륭한 지혜에 집착하지 않고, 원만한 깊은 마음으로 법을 즐겨 싫어하지 않는다. 많이 듣기를 부지런히 구하여 법을 들은 그대로 남을 위해 두루 설명하되 애착하는 마음이 없고, 명문(名聞)과 이양(利養)을 바라지 않는다. 남을 위해 설법하되 제 말을 등지지 않고, 남을 위해 설법하되 들은 그대로 하며, 들은 그대로 하되 그 근기를 따라 남을 위해 널리 설법한다. 만일 법을 들으면 큰 자비심을 일으켜 일체 중생에 대한 대비심(大悲心)을 넘지 않는다.많이 듣기를 위해서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욕심이 적고 만족하기를 기뻐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하여 번잡한 곳을 떠나 심신을 잘 기르며, 법을 들으면 그 뜻을 잘 관찰하고 바른 이치를 포섭하여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 포섭함을 따라 일체 세간과 천인과 아수라 무리 가운데서 자기에게 이로운 일만을 행하지 않는다. 다만 최상의 대승(大乘)을 구하기 위하고 일체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나니, 이른바 부처님 지혜와 짝할 것이 없는 지혜와 일체 삼계(三界)에서 가장 훌륭한 지혜로써 이의 하는 일에 방일(放逸)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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