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3권
대승보살장정법경 제3권
서천 역경삼장 조산대부 시광록경 전범대사 사자사문 신 법호 등 한역
변각성 번역
1. 장자현호품 ③
“또 장자여, 또 세간의 열 가지 불선업(不善業)이 있으니, 즉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망령된 말ㆍ꾸미는 말ㆍ이간질하는 말ㆍ욕설ㆍ탐냄ㆍ분노ㆍ삿된 견해 등 이런 열 가지 불선업도에서 너희들은 해탈하려 하느냐?
또 세간의 열 가지 잡염법(雜染法)이 있으니, 즉 인색의 잡염ㆍ계율을 깨뜨리는 잡염ㆍ성내는 잡염ㆍ게으름의 잡염ㆍ산란(散亂)의 잡염ㆍ나쁜 지혜의 잡염ㆍ들음이 없는 잡염ㆍ의혹의 잡염ㆍ신해(信解)가 없는 잡염ㆍ존중하지 않는 잡염 등 이런 열 가지 잡염법에서 너희들은 각기 해탈하려 하느냐?또 세간에 열 가지 생사의 두려움이 있으니, 이른바 인색과 질투의 덮개ㆍ무명(無明)의 얽맴ㆍ욕심 바다의 넘침ㆍ욕심 가운데의 고통ㆍ욕심 화살을 쏨ㆍ분한(忿恨)의 연기ㆍ탐심 불의 탐ㆍ노여움 독의 덮음ㆍ우치 장애의 가시 같음ㆍ나고 죽음의 들판의 험난과 두려움 등 이런 열 가지 생사의 두려움에서 너희들은 각기 해탈하려 하느냐?”그때에 5백 장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저 괴롭히는 열 가지 법에서 각각 해탈하기를 원하고, 나아가 열 가지 생사의 두려움과 각각의 열 가지 법에서 모두 해탈하기를 원하나이다.”그때 세존께서는 5백 장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해탈하기를 원하는데 그 해탈은 어디서 구해지는 것인가? 장자들아, 눈[眼]은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은 본래 바뀜이 없고 또 지음이 없으며, 눈은 생각이 없고 또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이란 본래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장자들아, 귀ㆍ코ㆍ혀ㆍ몸ㆍ뜻 등도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본래 바뀜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생각도 없고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뜻은 본래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장로들아, 빛깔은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빛깔은 본래 바뀜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빛깔은 생각이 없고 깨달음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깔은 본래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소리ㆍ냄새ㆍ감촉ㆍ법은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은 바뀜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법은 생각이 없고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은 본래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또 장자들아, 색온(色蘊)은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색온은 바뀜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색온은 생각도 없고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색온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은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식온은 바뀜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식온은 생각이 없고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온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또 장자들아, 지계(地界)는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계는 바뀜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지계는 생각이 없고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지계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는 해탈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식계는 바뀜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식계는 생각이 없고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계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느니라.장자들아, 알아야 한다. 즉 모든 법은 다 허망한 분별을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서 인연에 매여 있어 힘이 없어 약하며 인연을 따라 변하는 것이다. 만일 인연법이 있으면 저 모든 법은 다 시설되는 것이니, 인연법이 없으면 그 법도 아무 시설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설된 모든 법은 조그만 법도 깨달음이 없고, 또 조그만 법도 나고 멸하거나 일어나고 없어짐이 없으며, 또 단(斷)이니 상(常)이니 하는 별다른 법도 없는 것이다.너희 장자들은 이러한 인연 때문에 알아야 한다. 즉 저 모든 법은 다 허망한 분별을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서 인연에 매여 힘이 없어 약하며, 인연을 따라 변하는 것이다. 만일 인연이 있으면 저 모든 법은 시설되는 것이나 인연이 없으면 그 시설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시설된 그 모든 법은 조그만 법도 깨달음이 없으며, 또한 조그만 법도 나고 멸하거나 일어나고 없어짐이 없으며, 또 단(斷)이니 상(常)이니 하는 별다른 법도 없는 것이다.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즉 만일 허망하게 분별하면 이치답게 마음을 쓰지 않아 갖가지로 시설하지만, 만일 허망한 분별이 없으면 이치답게 마음을 써서 아무 시설이 없을 것이요, 만일 이치답게 마음을 쓰지 아니하면 저 무명이 곧 시설하며, 만일 이치답지 않게 마음을 쓰지 아니하면 무명의 시설도 없을 것이다.무명이 있으므로 행의 시설이 있고, 무명이 없으므로 행의 시설이 없다. 모든 행이 있으므로 의식의 시설이 있으며, 모든 행이 없으므로 의식의 시설이 없다. 의식의 법이 있으므로 저 명색(名色)의 시설이 있으며, 의식의 법이 없으므로 명색의 시설이 없다. 명색이 있으므로 6처(處)의 시설이 있으며, 명색이 없으므로 6처의 시설이 없다. 6처가 있으므로 촉(觸)의 시설이 있으며, 6처가 없으므로 촉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촉의 법이 있으므로 수(受)의 시설이 있으며, 촉의 법이 없으므로 수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수의 법이 있으므로 애(愛)의 시설이 있으며, 수의 법이 없으므로 애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애의 법이 있으므로 취(取)의 시설이 있으며, 애의 법이 없으므로 취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취의 법이 있으므로 유(有)의 시설이 있으며, 취의 법이 없으므로 유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유의 법이 있으므로 생(生)의 시설이 있으며, 유의 법이 없으므로 생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생의 법이 있기 때문에 노사(老死)의 시설이 있으며, 생의 법이 없으므로 노사의 시설도 없는 것이다.여기서 알아야 하나니, 늙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얼굴이 쇠하고 숨이 헐떡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모든 감관이 다 변하며 목숨이 쇠잔해지고 행동이 다 낡고 마는 것이니, 이런 것을 늙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음이라 하느냐? 이른바 마지막 때가 와서 쇠멸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모든 감관이 다 흩어지고 몸은 땅으로 들어가서 그 온갖 동분(同分)들이 각각 흩어지는 것이니, 이런 것을 죽음이라 한다. 이것은 늙음의 현상이요, 이것이 죽음의 현상이니, 이것을 통틀어 노사라 한다.생(生)의 법이 있으므로 노사의 시설이 있고, 생의 법이 없으므로 노사의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생이라 하느냐? 이른바 발생하고 두루 일어나서 태(胎) 안에서 나와 성립(成立)하며, 5온(蘊)이 일어나고 6처(處)가 두루 갖추어지며 온갖 동분(同分)들이 차례로 모이는 것이니, 이런 것을 생이라 한다.유(有)의 법이 있으므로 생의 시설이 있고, 유의 법이 없으므로 생의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유라 하느냐? 이른바 욕유(欲有)와 색유(色有)와 무색유(無色有)이니, 이것을 유라 한다.취(取)의 법이 있으므로 유의 시설이 있고, 취의 법이 없으므로 유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취라 하느냐? 이른바 욕취(欲取)와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와 아어취(我語取)이니, 이런 것을 취라 한다.애(愛)의 법이 있으므로 취의 시설이 있고, 애의 법이 없으므로 취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애라 하느냐? 이른바 색애(色愛)ㆍ성애(聲愛)ㆍ향애(香愛)ㆍ미애(味愛)ㆍ촉애(觸愛)ㆍ법애(法愛)이니, 이런 것을 애라 한다.수(受)의 법이 있으므로 애의 시설이 있고, 수의 법이 없으므로 애의 시설이 없다. 어떤 것을 수라 하느냐? 이른바 눈의 접촉[眼觸]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모든 수(受)요, 귀의 접촉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모든 수요, 코의 접촉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모든 수요, 혀의 접촉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모든 수요, 몸의 접촉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모든 수요, 뜻의 접촉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모든 수이니, 이런 것들을 수라 한다.촉의 법이 있으므로 수의 시설이 있고, 촉의 법이 없으므로 수의 시설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촉이라 하느냐? 이른바 눈의 접촉ㆍ귀의 접촉ㆍ코의 접촉ㆍ혀의 접촉ㆍ몸의 접촉ㆍ뜻의 접촉이니, 이런 것을 접촉이라 한다.6처(處)가 있으므로 촉의 시설이 있고, 6처가 없으므로 촉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6처라 하느냐? 이른바 눈의 영역[眼處]ㆍ귀의 영역ㆍ코의 영역ㆍ혀의 영역ㆍ몸의 영역ㆍ뜻의 영역이니, 이런 것을 6처라 한다.명색(名色)이 있으므로 저 6처의 시설이 있고, 명색이 없으므로 6처의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명색이라 하느냐? 이른바 수(受)와 상(想)과 행(行)을 명(名)이라 한다. 수촉(受觸)의 작의(作意) 및 저 4대(大)와 4대가 만든 것을 색(色)이라 하나니, 통틀어 말하기 때문에 명색이라 한다.식의 법이 있으므로 명색의 시설이 있고, 식의 법이 없으므로 명색의 시설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식이라 하느냐? 이른바 안식(眼識)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이니, 이런 것을 식이라 한다.행의 법이 있으므로 식의 시설이 있고, 행의 법이 없으므로 식의 법 역시 시설도 없다. 어떤 것을 행이라 하느냐? 이른바 색변사(色徧思)ㆍ성변사(聲徧思)ㆍ향변사(香徧思)ㆍ미변사(味徧思)ㆍ촉변사(觸徧思)ㆍ법변사(法徧思)이니, 이런 것을 행이라 한다.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의 시설이 있고, 무명이 없으므로 모든 행의 시설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무명이라 하느냐?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두 알지 못하며,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중간을 알지 못하며,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성제법(聖諦法)을 알지 못하며, 반연을 알지 못하고, 반연으로 생기는 법 중에서 검은 것이나 흰 것을 알지 못하며, 반연과 반연 아닌 것을 알지 못하며, 대애(對礙)의 있고 없음을 알지 못하며, 죄의 있고 없음을 알지 못하며, 친근할 것과 친근하지 않을 것을 알지 못하며, 모든 법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며, 앞에 나타나는 삼매를 알지 못하나니, 이런 것을 무명이라 한다.이치답지 않은 작의(作意)가 있으므로 저 무명의 시설이 있고, 이치답지 않은 작의가 없으므로 무명의 시설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이치답지 않은 작의라 하느냐? 이른바 ‘나는 전생에 있었던가, 없었던가? 나는 전생에 이미 지나갔느냐, 아직 지나가지 않았느냐? 나는 전생에 어떤 것이었느냐?나는 미래 세상에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미래 세상에는 어떤 곳에 있을 것인가? 나는 미래 세상에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나는 또 내법(內法) 가운데서 어떤 것으로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하고 이렇게 있나 없나에 대해 의혹을 내며, 또 ‘어떤 것이 생(生)인가, 어떤 것이 불생(不生)인가? 만일 생이 있다면 어떤 것이 될 것인가?’ 한다.이렇게 이치답지 않게 작의하기 때문에 6견(見)과 또 다른 견해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 있어서, 곧 ‘내가 있다, 내가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며, 나와 내 것 가운데서 평등하게 이치답게 관찰하지 못하며, 평등하게 이치답게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견해가 생기는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있고 세간이 있다는 것은 곧 법을 반연하는 것이요, 법을 반연하면 항상됨이 없고 굳셈이 없고 힘이 없고 견고함이 없나니, 이것은 끝내 변괴(變壞)하는 법인 것이다. 이 구경(究竟)이 아닌 법 중에서 바르게 머무르고, 바르게 안립(安立)하기 위하여 헤아려서 그 견해가 성립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것을 이치답지 않은 작의라 하는 것이다.허망한 분별이 있으므로 이치답지 않은 작의의 시설이 있고, 허망한 분별이 없으므로 이치답지 않은 시설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을 허망한 분별이라 하느냐? 이른바 나ㆍ사람ㆍ중생ㆍ수자(壽者)ㆍ보특가라(補特伽羅)ㆍ유동(儒童)ㆍ의생(意生)ㆍ짓는 사람ㆍ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니, 이것을 허망이라 한다. 우치한 사람과 범부 등 무식한 사람들은 나ㆍ사람ㆍ중생ㆍ수자 등에서 변계(徧計)를 내나니, 이것을 분별이라 하는데, 통틀어 말하여 허망한 분별이라 한다.이 허망한 분별이 있으므로 이치답지 않은 작의의 시설이 있고, 허망한 분별이 없으므로 이치답지 않은 작의의 시설도 없는 것이다. 이 허망한 분별과 이치답지 않은 작의가 있으므로 무명의 시설이 있고, 그 두 가지 법이 없으므로 무명의 시설도 없으며, 무명이 있으므로 저 행의 시설이 있고, 무명이 없으므로 행의 시설도 없는 것이다. 통틀어 말하면 나아가 생(生)의 법이 있으므로 저 노사(老死)의 시설이 있고, 생의 법이 없으므로 노사의 시설도 없는 것이다.장자들아,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다 허망한 분별로 일어나서 반연에 매인 것이다. 그 법을 반연하는 것은 다 항상되지 못하고 강하지 못하며 힘이 없고 단단하지 못하여 반연을 따라 변하는 것이다. 반연하는 법이 있으므로 모든 법의 시설이 있고, 반연하는 법이 없으므로 모든 법의 시설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법의 시설 가운데에는 깨달을 조그만 법도 없고, 나거나 멸하거나 일어나거나 다하는 조그만 법도 없으며, 또한 단(斷)이니 상(常)이니 하는 별다른 법도 없느니라.장자들아, 비유하면 못에 큰 물이 가득 찼는데 그 안에 벌레와 고기가 산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고기들은 무슨 힘을 의지해 사느냐?”장자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것들은 물 힘을 의지해 삽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물에 실로 힘이 있느냐?”
장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닙니다, 선서(善逝)시여.”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은 본래 생각이 없는 것인데, 무슨 힘이 있겠느냐?”
장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힘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힘이 없습니다, 선서시여.”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자들아, 허망한 분별에서 생기는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힘이 없고 견고하지 않아 반연을 따라 변하는 것이다. 반연하는 법이 있으므로 저 모든 법의 시설이 있고, 반연하는 법이 없으므로 모든 법의 시설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법의 시설 가운데에는 깨달을 조그만 법도 없고, 또한 멸하거나 일어나거나 다하는 조그만 법도 없으며, 다시 단이니 상이니 하는 별다른 법도 없느니라.장자들아, 그 반연하는 법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실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곧 놀라고 두려워하며, 놀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방으로 내닫는다. 또 자세히 이치답게 관찰한다면 어떤 것이 저 법이며, 어떤 것이 이 법인가? 자세히 관찰하므로 곧 두려워하여 내닫지 않는다. 또 이치답게 관찰할 때에는 곧 법이 없으며, 법이 없는데 왜 달리겠느냐? 왜냐하면 장자야, 모든 법은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마음과 뜻도 또한 그러하니라.또 장자들아, 모든 법에는 나[我]가 없는 것이니 진구(塵垢)를 떠났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는 중생이 없는 것이니 나를 떠났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는 수자(壽者)가 없는 것이니 그것은 일체의 생로병사와 우비고뇌와 수탄(愁歎) 등의 법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니 3세(世)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는 문자가 없나니 일체의 음성과 언어를 떠났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는 티끌이 없나니 반연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고요하나니 고요한 모양에 가깝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모든 곳에 통달하나니 허공과 같은 자성이기 때문이다.모든 법은 공(空)을 의지하나니 결정해 나타남이 없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나니 의지가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실제(實際)에 편히 머무나니 머물고 움직임이 없음과 상응하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말이 없나니 언어의 물결을 떠났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색상(色相)이 없나니 나타난 형색(形色)과 대애(對礙)의 행이 없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짝이 없나니 아상(我相)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법은 깨달음이 없나니 심의식(心意識)을 떠났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감춤이 없나니 눈의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믿을 것이 없나니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니라.”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5043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5권 (1) | 2024.10.31 |
---|---|
[적어보자] #5042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4권 (2) | 2024.10.31 |
[적어보자] #5040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2권 (1) | 2024.10.30 |
[적어보자] #5039 불설대승보살장정법경(佛說大乘菩薩藏正法經) 1권 (3) | 2024.10.30 |
[적어보자] #5038 불설대승방등요혜경(佛說大乘方等要慧經) (0) | 2024.10.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