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55권
불본행집경 제55권
수 천축삼장 사나굴다 한역
55. 우바리인연품 ③
“너희 비구들아, 혹시 그때 어린 이발사가 누구였는지 마음에 의심이 일어난다면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그가 바로 지금의 우바리 비구이다. 그런데 우바리는 과거세에 존자 벽지불의 머리를 이발해 주고 나서 ‘세세생생에 만약 사람의 몸을 얻으면 항상 이발사의 집에서 태어나기를 원합니다’라고 서원하였고, 또 그때 ‘악도 가운데 나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발원한 과보의 힘으로 그는 악도에 나지 않고 그 때부터 천상과 인간을 흘러다니면서 많은 쾌락을 받고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나는 미래세에 항상 이런 스승이나 혹은 이보다 나은 분을 만나서 만일 그 스승의 설법을 들으면 빨리 증득하고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소원을 세운 업보로 인하여 이제 나를 만나 스승을 삼고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이다.
또 가섭 여래의 가르침을 배울 때에는 ‘제발 저 미래세에 석가모니 여래를 만나 그 법을 어기지 않고 출가하고 수순하여 계행을 잘 지키는 그 분의 제자 가운데 내가 가장 으뜸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서원한 그 업보에 의하여 지금 나의 법 가운데 출가하였으며 내지 계율을 갖는 제자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우바리는
과거세의 이와 같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이발사 집에 태어났고, 또 서원을 세운 업의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현재에 과보를 받아 나의 법 가운데 이렇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또한 계율을 잘 지키는 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다.”
56. 라후라인연품(羅睺羅因緣品) ①
어느 때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부처님과 대중들은 제가 내일 아침에 베푸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묵묵히 허락하셨다. 수두단왕은 부처님께서 묵묵히 허락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세 번 에워싸고 돈 뒤에 하직하고 떠나갔다. 그리하여 궁궐에 도착하자 그날 밤에 온갖 맛좋고 진귀한 음식들을 고루 준비하게 하였으니 이른바 익힌 음식, 씹어 먹는 음식, 집어먹는 음식, 빨아먹는 음식 등이었다. 왕은 모든 음식을 다 준비한 뒤에 그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청소하고 자리를 깐 뒤에 사신을 보내어 부처님께 여쭈게 했다.
“이미 때가 되어 음식이 모두 준비되었으니 와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해가 동쪽에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모든 비구승들이 좌우로 에워싼 가운데 부처님이 우두머리가 되어 수두단왕의 궁으로 가셨다. 궁에 도착하자 부처님께서는 미리 마련한 자리에 앉으시고 비구승들도 각각 차례에 따라 법답게 앉았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부처님을 위시하여 여러 비구승들이 차례로 앉은 것을 보고 나서, 손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맛좋은 음식들을 가지고 공양 올리며 배불리 먹도록 권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과 대중들이 흡족하게 음식을 먹고 난 것을 보자 발우를 씻어서 다른 곳에 준비해둔 하나의
작은 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편안히 앉은 뒤에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제발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또 원하옵건대 세존 선서께서는 가르침을 나타내 보이셔서 제가 오래도록 항상 이익되고 안락한 일을 얻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오늘 만약 때를 아신다면 이 법을 듣고자 하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또한 자주 비구들에게 찾아와서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오래지 않아 저절로 가장 미묘한 과위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방편으로 수두단왕을 교화하여 법을 설해 나타내 보여서 그를 깨닫게 하고 크게 기쁘게 하고 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처소로 돌아갔다.
또 어느 때 수두단왕은 사리불로 인연하여 깨끗한 법의 눈을 얻고 겸하여 수다함을 증득하였다. 이미 모든 법에 들어가 온갖 의심을 끊고, 마음에 미혹이나 두려움이 없게 되었으며 다시 또 그 밖의 법행(法行)을 묻지 않고도 모두 증득하여 알고 난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거룩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제도하여 출가해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게 하소서.”
이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수두단왕은 이 가르침 속에서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또 다시 훌륭한 상인(上人)의 법을 증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세존께서는 이 수두단왕에게는 결정코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일이 합당하지 않으며 또한 상인의 법을 증득하지 못할 것을 아셨다. 이렇게 알고 나서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오늘 만약 때를 알면 집에 머물러 계시면서 보시를 행하고
복업을 짓도록 하소서.”
그 다음날에 마하파사파제 왕비도 부처님과 대중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공급하여 모두 배불리 먹게 하였고, 세 번째 날에는 제1궁에 살고 있는 후비와 권속들이 또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베풀어 충족하게 공급하였고, 네 번째 날에는 제2궁에 살고 있는 이들이 또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청하여 백 가지 맛을 갖춘 음식을 공양하여 모두 흡족하고 배불리 먹게 하였다.
한편 라후라는 여래께서 출가한 지 6년이 지난 뒤에야 모태에서 출생하였으며, 여래께서 부왕의 궁에 돌아오셨을 때 라후라의 나이는 겨우 6살이었다.
여래께서 가비라성에 돌아오시자 라후라의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옛날 이 라후라로 인하여 모든 권속들의 비방을 받았는데 이제 때가 왔다. 오늘 나는 그 일에 대해서 결백을 보여주어 의심을 씻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처님과 모든 비구승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보시하고, 또 일체 권속들을 청하여 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겠다.’
야수다라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그날 밤에 갖가지 맛좋고 진귀한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밤이 지나자 곧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음식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모든 권속들에게 고하여 모두 함께 자신의 초대를 받아 모이도록 하였다.
세존께서는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여러 비구들에게 좌우로 에워싸여 나오셨다. 부처님을 위시한
큰 비구 1,250명은 모두 함께 왕궁으로 나아가서 마련된 자리에 차례로 앉았다.
이때 라후라의 어머니는 따로 커다란 환희환(歡喜丸) 하나를 만들어 라후라의 손에 쥐어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얘, 라후라야. 비구승들이 있는 곳에 가면 네 아버지가 계실 테니 그분에게 이 환희환을 드려라.”
그리고 나서 라후라의 어머니는 일체 권속들에게 말하였다.
“이 라후라는 이제 자기 아버지를 찾아낼 것입니다.”
이때 라후라는 환희환을 가지고 모든 비구들을 두루 살펴보다가 주저하지 않고 부처님 곁으로 가서 말하였다.
“이 사문의 그늘이 매우 좋구나, 이 사문의 그늘이 매우 좋구나.”
이때 수두단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일은 어떠합니까? 야수다라에게 과연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존께서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제 그런 의심을 내지 마십시오. 야수다라는 아무 허물이 없습니다. 라후라는 진짜 나의 아들입니다. 다만 이 아이는 지난 과거의 업연(業緣) 때문에 태 속에 6년이나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수두단왕과 여러 권속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각각 손수 갖가지 음식을 가지고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 올려서 그들이 마음껏 넉넉하게 먹도록 권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과 대중들이 발우와 손을 씻은 뒤에 각각 낮은 자리를 가져다가 부처님의 좌우에 빙 둘러서 앉았다. 이때 수두단왕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까닭에 그와 같은 인연을 자세하게 묻지 못하여 비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컨대
여러 스승들이여, 세존께 라후라와 야수다라가 지난 세상에 지은 업의 인연이야기를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라후라는 지난 옛적 무슨 업의 인연을 지었으며 무슨 업의 과보 때문에 태 속에 6년이나 머물러 있었습니까? 그리고 야수다라는 또 무슨 업을 지었기에 6년이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까?”
이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헤아릴 수 없이 오래 전 세상에 바라문 종족의 왕이 한 사람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인천(人天)이었다. 아들 둘이 태어났으니 첫째 왕자의 이름은 일(日)이고, 둘째 왕자의 이름은 월(月)이었다.
그런데 첫째 왕자는 언제나 세상살이를 즐거워하지 않아서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왕이 죽었다.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일과 월 두 왕자는 서로 왕위를 사양하였다. 형인 일 왕자가 말하였다.
‘네가 왕이 되어 국사를 다스려라.’
동생인 월 왕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형님이 왕이 되셔서 나라의 정사를 맡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일 왕자는 월 왕자에게 사양하였다.
‘네가 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겠다.’
월 왕자는 다시 형에게 말하였다.
‘형님은 장남이니 왕위를 이으셔야 합니다. 제가 왕위에 오르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자 일 왕자는 동생 월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왕위를 이어받으면 가장 먼저 어떤 법을 쓸 수 있느냐?’
동생은 대답하였다.
‘먼저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일 왕자는 다시 물었다.
‘만약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 명령을 어긴다면 어떤 죄로 다스려야 마땅하겠느냐?’
월 왕자는 대답하였다.
‘죄가 무거운 사람에게는 중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일 왕자는 다시
동생인 월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 도리에 의거하여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이치에 맞다. 그런데 나는 이제 왕위를 너에게 맡길 터이니 너는 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고 싶다.’
이렇게 하여 일 왕자는 왕위를 월 왕자에게 넘겨주고, 마침내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며 그 일 왕자의 권속들도 모두 다 그를 따라서 출가하였다.
어느 날 일(日) 선인(仙人)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모든 사람들은 나를 따라 출가하였다. 나는 지금 이들의 스승이 되었으니 부지런히 배우고 힘써 도업(道業)을 구하여 그들보다 나아야 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이제 나는 지금부터 다른 사람이 베푼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갖지 않을 것이며 내지 한 가지 물건이나 한 방울의 물, 이쑤시개 하나까지도 함부로 갖지 않겠다.’
그런데 그 선인은 어느새 본래 생각을 잊어버리고, 남이 주지 않은 약초의 뿌리와 과일을 스스로 따먹고, 또 밤에 목이 마르면 남의 물그릇을 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로 마시고, 자기의 그릇은 한쪽 가에 두었다.
그때에 그 물 그릇 주인인 선인이 자기 그릇에 물이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
‘누가 내 물 그릇의 물을 가져갔느냐? <여기는 도둑이 사는 곳이지 선인이 사는 곳은 아니구나.’>
그러자 물을 가져다 마신 선인은 자기 그릇에 물이 가득 담겨 한쪽 가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모르고 그대의 물을 마셨소. 용서해 주시오.’
그러자 그 선인은 일 선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마셨다면 잘된 일입니다.’
그러나 착각하여 잘못 물을 마셨던 선인은 스스로 올바르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미 지난번의 서원을 잊었으니
옳지 못하다. 이것은 선법(仙法)이 아니다. 어찌하여 남이 주지 않는 온갖 약초의 풀과 과일을 스스로 먹었고, 또 남의 물을 가져다 제멋대로 마셨단 말인가.’
이런 인연으로 울적하고 기쁘지 않아 마음에 근심이 생겨 땅 위에 꿇어앉아 바른 생각으로 사유하면서 이 일을 근심하고 있었다.
이때에 제자인 청년들이 일 선인에게 와서 그 발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하며 법답게 그를 섬겼다. 그러자 선인은 제자인 청년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에게 절을 하지 말아라. 왜냐 하면 나는 오늘 도둑질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청년들은 곧 예전에 왕이었던 선인에게 물었다.
‘우파타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일 왕선(王仙)은 청년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나는 남이 주지도 않은 약초의 뿌리와 과일을 먹었으며, 또 남의 물을 가져다 내 멋대로 마셨었다.’
이렇게 말하였으나, 그 동자들은 다시 일 왕선에게 말하였다.
‘스승께서는 지금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스승께서 드시고 마셨던 것은 전부 우파타(優波陀)의 물건입니다.’
그러나 일 왕선은 또 청년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남이 주지 않은 것을 내 마음대로 가진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남이 주지 않은 약초의 뿌리와 물그릇의 물을 내 마음대로 가져다 마셨기 때문에 이미 도둑이 되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도둑을 다스리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나의 죄를 벌하여라.’
그러자 모든 청년 제자들이 다 함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어떻게 감히 우파타의 죄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우파타의 아우께서 지금 왕이 되어 이 경계를
법에 맞게 다스리고 있으니 그에게 가면 반드시 우파타의 죄를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선(王仙)은 월왕의 처소에 나아갔다. 그런데 월왕은 이미 이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일 왕선이 다가가자 곧 네 가지 병사를 갖추어 성 밖까지 나와 맞이하였다. 그리고 일 왕선이 도착하자 그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였다. 일 왕선은 월왕을 말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발에 절하지 마시오. 왜냐 하면 지금 나는 도둑이니 대왕은 반드시 나의 죄를 도둑을 처벌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벌해 주어야 하오.’
월왕은 형인 일 선인에게 물었다.
‘성자께서는 지금 무슨 도둑질을 하였다는 말씀입니까?’
그 일 선인은 대답하였다.
‘대왕은 굽어살피소서. 내가 고요하고 한가로운 숲에서 수도할 때 남이 주지 않은 약초의 뿌리와 과일을 먹었고 남의 물을 함부로 가져다 마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괴로워하며 구슬프게 울었다. 그는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채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런 선인은 본래 공덕을 행하고 스스로 청정하여 허물이 없는데, 어떻게 오늘 벌을 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왕선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모든 선인들에게 모든 과일과 약초의 뿌리 내지 물까지도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마시기를 허락합니다. 그러므로 선인들이 먹는 것은 모두 자신들의 물건이므로 대선(大仙)은 도둑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또한 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선은 월왕에게 일렀다.
‘대왕이 오늘 비로소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옛날에 허락한 것은 아닙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나는 지난날 막 왕위를 이을 때 사문과
바라문에게 초목과 물을 마음대로 먹도록 보시하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대선께서는 진짜 도둑질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떻게 벌하겠습니까?’
그 왕선은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신 대왕이여, 내 이제 이미 착하지 않은 일을 저질렀으니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이 죄를 소멸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미 남의 물그릇에 담긴 물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반드시 나를 도둑을 처벌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벌하셔야 합니다.’
이때 월왕에게 조카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 모임에 있다가 월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어서 이 선인의 죄를 판결하셔서 선인이 번뇌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자 월왕은 그 선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일이 그렇다면 내 동산에 들어가 머물러 수도하십시오.’
그리고 월왕은 이 선인을 그 동산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왕은 이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 채 6일을 보냈다. 그런 뒤에 비로소 기억해내고는 신하들을 불러서 물었다.
‘경들은 저 선인이 동산에 아직 있는지 떠났는지를 아는가?’
대신들은 대답하였다.
‘그 선인은 아직 동산에서 나오지 않고 그 안에 있습니다.’
이때 월왕은 갇혀 지내던 세상의 모든 죄수들을 사면해 주었고 날짐승ㆍ 들짐승들까지도 다 놓아준 뒤에 따로 그 선인을 불러 온갖 맛좋은 음식을 보시한 뒤에 말하였다.
‘이제 대선께서는 마음대로 가십시오.’
이렇게 풀어주었지만 월왕은 마음이 울적해져서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나는 이 선인에게 이미 죄를 지었다. 이 선인으로 인하여 반드시 죄를 얻었을 것이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그 때의 일 왕선이 누구인지 의심한다면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내가 바로 그였다. 그때 월왕이 누구였는지 의심한다면 다른 생각을 내지 말아라.
곧 라후라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때 그 선인을 동산에 들여보내어 6일간 있게 한 그 업보로 인하여 생사 번뇌에 머물러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다가 그 나머지 업으로 인연하여 다시 모태에 6년 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생각하건대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세상 이전에 소 떼 한 무리가 어느 목장에 있었다. 그런데 이 목장 주인의 처가 딸 하나를 데리고 그 목장에 와서 소젖을 짜 두 그릇에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큰 그릇은 딸에게 지게 하고 작은 그릇은 자기가 메고 돌아오다가 그 도중에 딸에게 말하였다.
‘어서 빨리 가자. 이 길은 험한 데다 무섭구나.’
그러자 딸이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이 그릇은 크고 무거운데 제가 어떻게 빨리 갈 수 있습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거듭 말하였다.
‘어서 빨리 가자. 지금 이 길은 몹시 겁나고 무섭구나.’
이때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찌하여 나에게 큰 그릇을 짊어지게 해놓고는 또 빨리 가자고 재촉하시는 걸까?’
딸은 이로 인하여 화가 났다. 그래서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가 이 그릇까지 같이 들고 가세요. 저는 지금 잠깐 대소변을 보고 싶어요.’
그리하여 어머니는 그 큰 그릇까지 메고 갔으며 딸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무겁게 두 그릇을 짊어진 채 결국 6구로사를 걸어가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음에 분노를 품고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거운 것을 지워 6구로사를
가게 한 딸이 누구인지 의심한다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바로 야수다라 석가족의 여인이 그녀였다. 그때 어머니에게 무거운 것을 지게 하여 6구로사의 길을 가게 한 그 업보 때문에 생사 번뇌 가운데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으며 그 남은 업보로써 금생에도 6년 동안이나 임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모든 업이란 헛되게 받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을 짓는 데에 따라 스스로 받게 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너희 비구들은 항상 몸과 입과 뜻의 나쁨[惡]을 버려야만 한다. 왜냐 하면 몸과 입과 뜻으로 선하거나 악한 업의 과보를 짓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착하고 악한 과보가 나타나는 것이니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이렇게 착한 업을 닦아야만 한다.”
세존께서는 수두단왕과 그 대중들을 위해 미묘한 법을 설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법을 베풀고 나타내 보여 교화를 마치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처소로 돌아가셨다.
그때 라후라의 어머니는 라후라를 아버지 곁으로 보내어 아버지에게 봉록(封祿)을 달라고 시켰다. 그러자 라후라는 부처님을 따라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스님, 저에게 봉읍(封邑)을 주십시오. 스님, 저에게 봉읍을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라후라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라후라는 부처님의 손가락을 잡고 부처님을 따라갔다.
세존께서 라후라를 데리고 고요한 숲에 이르자 장로 사리불을 불러 말하였다.
“사리불아, 라후라를 출가시켜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가르침을 받아서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라후라를 출가시켰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금계(禁戒)를 제정하시자 라후라는 크게 기뻐하며 금계를 받고 법답게 받들어 행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법을 가르침이 그러하였으니, 사리불이 부처님 교계(敎戒)에 따라 거두어 가르쳐 보이면 선남자들은 모두 바른 믿음과 바른 견해를 얻었다. 왜냐 하면 출가하여 위없는 도(道)를 구하여 모든 범행(梵行)을 닦기 원하였기 때문이고, 또 이익이 나타나 스스로 법을 보고 증득하며, 스스로 증득해 알고 나서 스스로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하여,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 라고 외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라후라도 이렇게 스스로 그 마음을 증득하고 바른 해탈을 얻었으므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성문(聲聞) 제자 가운데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는 이 라후라가 가장 으뜸임을 알아야 한다.”〔마하승기사(摩訶僧祇師)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유사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이때에 수두단왕은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난 뒤에 궁내 모든 권속들을 불러 놓고 명령하였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누구라도 라후라와 말할 때 실달다 태자를 가리켜 ‘너의 아버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라후라가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부친을 따라 출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두단왕은 그날 밤 온갖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서 그 밤이 지나자 아침 일찍 모든 자리를 마련한 뒤에 라후라를 여러 어린 소년소녀 시종들이 좌우로 에워싼 가운데 아수가(阿輸迦) 숲으로 들여보냈다. 그런 뒤에 사신을 부처님께 보내어 아뢰었다.
“공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을 다 준비해 놓았으니 존자께서는 때를 아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해가 솟을 때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비구승들이 좌우에서 에워싼 가운데 수두단왕의 궁에 이르셨다. 그리하여 미리 마련된 자리에 차례대로 앉으셨다.
이때 라후라는 그 어린 소년 소녀들이 서로 장난하며 마구 장난을 치는데 유모들도 아무도 막거나 말리지 않고 함께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보더니 마침내 아수가숲을 가만히 빠져나왔다. 라후라는 왕궁으로 들어와 세존과 비구들을 보았다. 그는 세존과 비구들을 보자 머리를 대고 절을 한 뒤에 곧 누각에 올라갔다.
바로 그때 라후라의 어머니가 먼저 누각에 올라 있었는데 그녀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은 세존을 보고 나서 슬피 울었다.
이런 게송이 있었다.
석가족 대왕 아들의 신부는
그 이름을 야수다라라고 불렀는데
남편의 이러한 출가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슬퍼하여 번민하고 울었네.
이때 라후라는 그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찌하여 그렇게 슬프게 우십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라후라에게 대답하였다.
“사문들 가운데 계신 몸이 황금색인 분이 바로 너의 아버지이시란다.”
라후라는 다시 그 모친에게 말하였다.
“이러한 성자(聖者)이신 줄은 제가 태어난 이래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누각에서 급히 내려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 옷자락 속에 숨었다. 이때 비구들은 이것을 제지하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막지 말고 나의 옷 속에 있게 그대로 두어라.”
이때 수두단왕은 부처님과 비구들이 차례로 앉은 것을 보고
손수 온갖 맛있는 음식을 받들어 마음껏 흡족하게 먹을 수 있도록 공양하였다. 세존께서는 공양이 끝나고 발우와 손을 씻자 낮은 자리를 가져다 한쪽에 물러가 앉아 있는 부왕을 위하여 축원하시며 이렇게 말하였다.
제사할 때는 불[火]이 제일이요
게송에는 찬탄함이 제일이며
사람 가운데는 왕이 제일이요
물 가운데는 바닷물이 제일이며
별 가운데선 달이 제일이요
모든 밝음 중에는 해가 제일이며
위아래와 동서남북의
온갖 중생들과
또 천상이나 인간의 세계에선
모든 부처가 으뜸이네.
이렇게 수두단왕을 위하여 축원하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인연을 따라 가셨다.
이때 수두단왕은 국사(國事)를 감독하고 돌보느라 이리저리 다녔다. 그때 라후라는 이미 부처님을 따라 궁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친히 손가락을 라후라에게 내밀어 그것을 잡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내민 손가락을 잡은 라후라는 그 몸이 편안하고 즐거웠으며 마치 줄로 모든 새의 발을 얽은 것처럼 세존의 몸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세존을 따라서 니구타숲으로 갔다.
그러자 세존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나를 따라 출가하겠느냐?”
라후라는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출가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라후라를 출가시키고자 한다. 사리불에게 그를 보내어 스승으로 삼게 하겠다.”
그러자 모든 비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는 옛날 우리들에게 나이 스무 살이 되지 않으면 구족금계(具足禁戒)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 라후라는 겨우 15살이다.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예전에 내리신 말씀을 따라야하는가, 아니면 다시 다른 것을 따라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자신들의 생각을 부처님 앞에 나아가 자세히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알아야 한다. 15세에 출가하는 자는 사미(沙彌)가 되어야 한다.”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곧 출가시키고, 사리불을 청하여 화상을 삼았다.
이때 수두단왕은 세존과 비구들과 모든 권속들을 보내고 난 후 앉아 밥을 먹으려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라후라를 불러오라. 그와 함께 밥을 먹으리라.”
그 좌우 신하들은 사방을 두루 찾았으나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자 왕에게 돌아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희는 지금 라후라를 찾아보았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다시 일렀다.
“그대들은 아수가 동산이나 궁 안의 모든 곳을 샅샅이 찾아보아라.”
좌우 신하들은 다시 아수가 숲과 궁 안의 모든 곳을 두루 찾아보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그곳에 가서 두루 찾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또 말하였다.
“빨리 니구타(尼拘陀) 동산에 가 보라. 혹 세존이 데리고 가서 출가시키지 않았는가
보아라.”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듣고 급히 니구타 동산에 가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라후라가 이미 세존에 의해서 출가했음을 발견하고 궁으로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굽어살피소서. 라후라는 이미 세존께서 출가를 시키셨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놀라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가 조금 지난 뒤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왕은 서둘러 성을 나와 니구타 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자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난날 궁에 있을 때 상(相)을 보는 바라문들이 만약 세존께서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이미 집을 버리고 출가하였습니다. 나는 세존이 출가한 것을 본 뒤에 왕위를 난타(難陀)에게 맡기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그 뒤에 그를 출가시켰으므로 나는 다시 아난타(阿難陀)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존께서는 또 아난타도 출가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니루타(阿尼樓陀)에게 왕위를 물려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또한 세존께서 출가시켰습니다. 나는 다시 바제리가(婆提唎迦)에게 왕위를 넘겨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 그도 또한 출가시켰습니다. 이제 라후라나 남겨 두고 왕위를 물려주기를 바랐더니 세존께서는 그 애마저 출가시켰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라후라까지 출가시키고 나니 어찌 우리 왕족이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세존이시여, 자식을 사랑하는 정은 골수에 사무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이런 조건을 정하소서. 모든 비구들이 출가하고자 하거든 부모에게 출가를 허락 받은 뒤에 출가시키도록 하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수두단왕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기지 않고 대왕의 생각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런 조항을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수두단왕에게 모든 법과 이치를 설하여 나타내 보이고 교화시켜,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그 위력을 더하여 다시 크게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수두단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물러나 궁으로 돌아갔다.
이에 세존께서는 이런 인연으로 비구승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알아 두어라. 자식으로서 그 부모에게 은혜를 갚기 어렵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 부모는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하여 세간에 나타내어 보였으며, 모든 음(陰)을 길러 젖을 먹이고 그 몸을 크게 키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 비구들은 지금부터 누구든지 출가하고자 하거든 먼저 그 부모에게 허락을 얻은 뒤에 출가시키고, 만약 허락을 받지 못한 자를 출가시키게 되면 꼭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나는 오늘부터 이런 법을 세우니, 무릇 사람이 와서 출가하기를 원하거든 먼저 꼭 이렇게 물어라.
‘그대의 부모는 살아 계신가?’
그래서 생존해 있다고 답하면 또 이렇게 그의 부모가 그 사람의 출가를 허락하였는지 허락하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다섯 명의 논사들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라후라가 태어난 지 2년 후에야 보살이 출가하여 6년 고행을 한 뒤에 성도하였으니,
성도한 지 7년이 되었을 때 가비라성에 돌아왔으니,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라후라가 출가하였던 때는 그의 나이가 바로 15세가 된다.
또 어떤 논사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하파사파제 왕비는 그 보살이 집을 버리고 출가한 것을 보고, 이런 인연으로 수심에 잠겨 고민하고 울다가 눈이 상하여 장님이 되었다. 그런데 불세존께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12년이 지난 뒤에 모든 일가 권속들을 불쌍히 여겨서 가비라성에 돌아왔다.
이때 수두단왕은 모든 궁내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그들이 좌우에서 에워싸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 가운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또 성이 같은 동족 9만 9천 명이 세존을 보려고 모두 함께 갔다.
마하파사파제 교담미도 그의 아들 라후라를 보이고자 하여 그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이때 여래께서는 서로 반대되는 신통을 나타내셨다.
그러자 마하파사파제 교담미 왕비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들이 신통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곧 ‘몸 아래서는 불꽃을 내고, 몸 위에서는 시원한 물을 솟게 한다’는 말을 듣자 기쁨이 차 올라 온몸에 즐거움이 가득 차니 이기지 못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처소에 도착하자 부처님을 공경하는 까닭에, 그 부처님 몸에서 흘러내린 물로 자기 몸을 씻고 또 얼굴을 씻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마하파사파제에게 자비심을 일으켜, 그 몸에 두루 기쁨을 느끼게 하자 그 멀었던 눈이
환히 틔었으며 예전보다 더 밝아졌다. 그러자 마하파사파제는 부처님에 대하여 더욱 커다란 믿음과 공경심을 가졌다.
이때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신기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지금 이 마하파사파제 교담미는 세존을 그리면서 수심에 잠겨 슬피 울다가 그 눈이 멀었던 것이며, 또 무슨 인연으로 세존으로 인하여 두루 청정해진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아, 그 마하파사파제 교담미는 다만 지금의 나를 위해 이렇게 근심에 싸여 울다가 눈이 멀고, 다시 나로 인해 청정함을 얻은 것뿐만이 아니다. 과거세에도 나를 위해 근심하고 울다가 그 눈이 멀었으나, 다시 나로 인하여 눈의 청정함을 얻었다.”
이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일은 어찌 된 일인지 말씀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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