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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734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2권

by Kay/케이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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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2

 

분별공덕론 제2권

실역인명1)
이태승 번역


‘미륵이 선(善)이라 칭(稱)한다’는 것은, 그것으로써 이 6도(度)의 대법을 모아 하나로 삼는 것으로, 이것은 곧 보살장(菩薩藏)이다.
‘결(結)을 끊는다’는 것은 모든 망견(望見)과 결사(結使)를 끊는 것이다.
‘도과(道果)를 성취한다’는 것은 대승보살이 옳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난이 단지 들었다고 말하고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어찌 가히 여래의 설법을 보지 못한 것이겠는가?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은 까닭은 장래 4부 때문인 까닭에 보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보았다고 말하여 후에 4부중이 또 아난을 받들어 보았다고 말하면, 곧 허망하게 될 뿐이다. 이러한 까닭에 단지 들었다고 할 뿐 보았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최초의 설법’으로 아야구린(阿若拘隣) 등 다섯 사람을 제도하고, ‘마갈국에서 세 명의 가섭을 항복시켰고’, ‘석시(釋翅)’는 곧 가비라위(迦毘羅衛)이다.
‘만약 경을 말씀할 곳을 얻지 못하시면 다만 사위국에 계신다고 칭한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머무신 지 25년이 지나, 여러 나라에 비해 가장 오래 머무셔서이다. 오래 머무신 까닭은 그 나라가 가장 묘하고 갖가지 진귀한 것이 많으며, 인민이 활기에 찼으며, 가장 의리가 있었기 때문이다.기수정사(祇樹精舍)에는 기이한 신험(神驗)이 있다. 대중스님의 강의 집회 때에 수천의 원숭이들이 와서 좌우에 모여 보거나 듣는데 조용히 하여 소리를 내지 않는다. 또 갖가지 새들이 찾아 모여들고, 대중스님이 끝내면 각자의 장소로 돌아가며, 건추(揵槌)를 울리면 또 모여든다. 이 나라에는 인자한 사람이 많은 까닭에 이류(異類)들도 뒤따른다. 부처님께서 혹은 잠행(暫行)하시어 청을 받는다. 혹은 능히 신력으로 교화를 받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가신다. 그렇기 때문에 사위(舍衛)라 칭한다. 그 중요성을 알기에 충분하다.기원(祇洹)과 고독(孤獨)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달리 칭하는 까닭은, 이 두 사람이 먼저 죽어 지금은 천상에 있으며, 또한 모든 하늘을 모아 설법 교화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음으로 ‘우리들은 본래 대중스님의 단월(檀越)이었다. 처음에 또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성취시켜 주고자 또 달리 두 사람의 이름을 칭했을 뿐이다.‘마땅히 1법을 닦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차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처음 이루어진 설법에 의거한다면 마땅히 바라나(波羅奈)의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4제(諦)를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마갈타에서 세 명의 가섭을 항복시키는 것에 이르니, 그 정사(精舍)의 주된 이름을 칭하는 것에 기인한다.곧 ‘마땅히 1법을 닦는다’라고 하는 것은 그 1법과 4법이 이치상 그 맛이 서로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1법도 결(結)을 끊고, 4법도 결을 끊으며, 함께 열반에 이른다. 길은 다르지만 돌아가는 곳은 같다. 결이 모두 21가지이며, 나아가 36가지가 된다. 숫자는 비록 들고 남이 있지만 모두 이 결이다. 모든 것에 101가지가 있다. 펼치면 다시 8만 4천이 된다. 이로써 1법과 천만이 똑같이 도에 이르는 길이다. 사자가 코끼리를 죽이거나 토끼를 죽이거나 모두 같은 하나의 죽음일 뿐이다. 그 이취(理趣)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곧 1법으로부터 시작한다.‘방일이 없다’는 것은 1법의 종(宗)이다. 혹은 물어 말한다.
“계(戒)는 마땅히 앞에 있어야 한다. 먼저 계를 수지한 뒤에 3존(尊)을 염(念)해야 한다.”
또 말한다.
“이 새로 배우는 자는 먼저 3존을 염해야 한다. 곧 3자귀(自歸)이다. 뜻을 불(佛)ㆍ법(法)ㆍ중(衆)에 둔 후에 계를 받는다. 이것을 계는 마땅히 제4식념(第四息念) 후여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풀어 말하면, 몸의 고통을 조용히 생각한다는 것은 몸의 36가지가 부정하며 악로(惡露)인 것을 관하여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가히 성도(成道)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옛날에 어떤 비구가 아련야(阿練若)를 짓고 걸식을 했다. 걸식하는 중에 한 장자의 여자를 만났다. 비구와 여인 모두 단정했다. 여자는 비구를 보고 곧 욕상(慾想)을 일으켰고, 비구도 여자를 보고 또한 욕심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마음이 움직여 손이 떨려 밥을 발우에 넣지 못하고 땅에 흘렸다. 여자가 이상하게 여겨 웃자, 비구는 여자의 이가 흰 것을 보고 곧 스스로 깨달아 ‘여인의 입 속은 오로지 이 뼈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람의 몸 가운데에는 320개의 뼈가 있고, 600의 마디가 있고, 70만의 혈관이 있으며, 90만의 모공이 있다. 한 구멍으로 들어가며 아홉 구멍으로 부정한 것이 나온다. 무엇 하나 가히 탐할 것이 없다. 여자 몸의 36가지 물건을 자세히 보면 끔찍하여 소름이 끼친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관찰하여 곧 몸의 공(空)함을 이해해 수다원도를 얻었다. 또 스스로 ‘나는 여자로 인하여 법을 보았으므로, 이는 나의 선지식이다. 지금 마땅히 은혜를 갚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여자를 위해 조금 전에 이해한 관신법(觀身法)을 말했다. 여자는 곧 마음이 열려 수다원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몸을 생각하는 것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다.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란 사람이 복이 다해 목숨이 끊어질 때, 지옥의 조짐을 보고 놀라 똥을 지리는 것이다. 혹은 아귀를 보거나 혹은 축생을 보아 행한 바에 따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두 두려워한다. 의식이 끊어지려 하며 반대로 대립해 끌리게 된다. 만약 마땅히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부모가 성교할 때를 연(緣)해야 한다. 만약 남자의 태를 받으면 그 어머니를 사랑하고, 만약 여자의 태를 받으면 그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 질난(疾難)을 제외하면 세 가지에는 차이가 없다. 곧 태에 들어가게 되며, 이미 받고 또 인정하여 자신이 있게 된다. 7일에 일변하며 교풍각활(巧風刻割)하며, 266일에 이르러 그 형상을 이룬다.만약 천상에 태어난다면, 천의 즐거움이 와서 맞이하여 희열에 가득해 곧 오줌을 지린다. 이 5도(道)의 징조는 각각 소견이 있다. 여기에 마땅히 죽는 자를 명계(明戒)로 삼음으로써 깊이 무상을 사유한다. 목숨이 빠른 것은 번개와 같고, 구름이 뜰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노ㆍ병ㆍ사가 오면 서상(逝喪)하지 않는 바 없다. 항상 이 변화를 생각하여 스스로 깨닫는 까닭에 사념(死念)이라고 말한다.앞에서 열 가지 염불을 스스로 말하였지만 아직 묻는 자가 없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았다. 뒤의 열 가지 염불은 비구가 부처님께 물은 것으로, 다시 설명하여 하나하나 해석한다.‘존제자(尊弟子)’란 소위 500나한으로 각기 잘하는 바가 있다. 혹은 지혜 제일, 혹은 신족, 혹은 변재, 혹은 복덕, 혹은 수계(守戒), 혹은 지족(知足), 혹은 설법 등이 각각 제일이 된다. 맨 위의 형과 막내인 아우를 논하고자 한다면, 아야구린이 최장자가 되고, 수발(須跋)이 제일 막내가 된다. 이것이 불법의 계위에 있어 다음 가는 중요한 것이다. 만약 총명하고 널리 알아 통달한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곧 바라문의 법이다.1,250인이라 하는 것은 항상 시종한 사람을 말한다. 혹은 500인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아뇩달의 청을 받으셨을 때 뽑힌 500명이 뒤따라서 용왕의 궁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이 아뇩달천(阿耨達泉)은 유루(有漏)의 애형(閡形)으로 가히 주선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아난이 경을 송출해 낼 때, 8만 4천의 나한이 모였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수를 가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의 때에는 바로 백 명이 나왔으며, 제일로 4부중에 통했으니 220이 각기 제일이다. 그 나머지 사람들을 어찌 또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말하였다.
“이 경에는 본래 백 가지 일이 있었다. 아난이 우다라(優多羅)에게 부촉하여 『증일아함』을 송출했다.
그 후 12년이 지나 아난이 반열반에 들 때, 모든 비구들은 각기 좌선을 익히고, 다시는 외우고 익히지 않고 말하기를 ‘부처님께 3업(業)이 있는데 그 중 좌선이 제일이다’라고 하여 마침내 각각 송을 읊는 것을 없애고 12년이 흘렀다.우다라 비구가 또 반열반하여 이로 인해 90가지의 것을 잃었다. 외국 법사가 서로 입으로 전하고 문장으로 기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전해진 것이 11가지의 일을 남김없이 전한 것으로, 그 후 서로 전해진 것이 바로 현재의 문(文)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살바다가(薩婆多家)에는 서(序)와 후(後)의 11사가 없다. 유랑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없어진 것이 많다. 한결같이 이 제자에게 『증일(增一)』을 촉루(囑累)한 까닭은 그 사람이 곧 7불 이래로 한결같이 『증일아함』을 배웠고 앞의 성인도 또한 부촉되어 이 경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능인(能仁)의 때에 다시 또 이어져 이 비구에게 이른 것이다.그때 우다라의 제자 중에 선각(善覺)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스승으로부터 『증일』을 송하는 것을 전수받고, 바로 11가지를 얻었다. 우다라는 곧 반열반하였고, 지금 외국에 3장이 나타난 것은 모두 선각이 전한 것이다. 그래서 스승으로부터 전해져 지금껏 바뀌지 않았다.”가섭이 매번 아난을 소아(小兒)라 부른 까닭은 여러 세대 이래로 아버지의 의도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때 아난의 누이동생이 비구니가 되었는데, 가섭이 말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몹시 나빠서 “아난은 총명하고 널리 통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촉망받고 또한 존경받는데 어찌 소아라 합니까?”라고 했다.가섭이 비구니에게 말하였다.
“대매(大妹)여, 아난에게는 부끄러워할 만한 두 가지 일이 있는데, 어찌 원망을 하는가? 정좌(正坐)한 아난이 부처님께 권해 이모를 제도해 불법을 천 년이나 줄어들게 한 것이 그 하나이다. 또 아난에게는 60명의 제자가 있는데 근자에 30명의 비구가 도리어 재가인[白衣]이 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제자를 제도하는 법에 만약 집에 있으며 믿음이 있어 도를 구하는 자는 마땅히 그를 시험하는 데 7일이 걸리며, 만약 외학(外學)으로 와서 도를 구하는 자는 마땅히 그를 시험하는 데 4개월이 걸린다. 어찌하여 같지 않은가? 외도는 더러 악한 마음으로서 장점과 단점을 구하고자 하는 까닭에 먼저 시험하여 지성(至誠)스러운가, 아닌가를 알아야 한다. 아난은 오자마자 곧 그를 제도했는데 이것이 가히 부끄러운 두 번째 일이다.30명의 비구가 다시 돌아간 까닭은, 아난이 96종류의 도 가운데에 등지(等智) 제일인 것을 듣고, 아난에게 도를 구한 자는 등지를 청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난이 등지를 말해 주지 않자 이것이 본심과 합치하지 않아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아난을 비방하며 등지가 없다고 말했다.제자를 제도하는 하는 것은 비유하면 물고기가 새끼를 천억만 개를 낳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으로 생각하면 곧 생기고, 생각하지 않으면 곧 문드러져 부서진다. 제자도 이와 같다. 만약 마음에 담아 가르침을 주면 곧 성취하고, 마음에 담지 않으면 곧 물러나 돌아간다. 어찌 가히 부끄럽지 않은가?”
이 비구니는 성내는 마음으로 가섭을 대한 까닭에 곧 그 몸이 지옥에 들어갔다. 아난에게 이러한 허물이 있는 까닭에 가섭이 소아라고 한 것이다.아난이 옛적에 전륜성왕이 되었을 때를 기억하며 말하였다. 그때의 이름은 장수(長壽)였다. 부대왕(父大王)의 유교(遺敎)를 받들어 왕위에 올라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리고 장차 출가하고자 하여 태자인 선관(善觀)에게 국정을 맡겨, 서로 전해져 이어받아 아직껏 바뀌지 않았다. 예전엔 부자(父子)가 서로 계승하였고, 지금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이어받는다. 옛적에도 오히려 유루(有漏)의 가르침을 잃지 않았는데, 하물며 지금 어찌 지진(至眞:聖人)의 묘법을 잃겠는가? 그 까닭에 인용해 스스로 그 유전(遺典)을 받는 데 충분함을 증명한다.‘법을 마땅히 존경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것은 위의 게송 가운데에 3장과 4아함으로 알 수 있으며, 장행(長行)에서 또 ‘한 게송 가운데도 곧 3장의 제법이 갖추어져 있으니, 하물며 『증일』에 제법이 갖추어져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또 여기에서 일단의 게를 말하고 있는 까닭은, 모든 천자의 마음속에 생각이 일어나 ‘아난도 능히 게를 지어 법을 말하지 못하는데 어찌 또 이 만설(謾說)을 짓겠는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아난이 모든 천자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알고 모든 천자에게 말하였다.
“바로 8만 4천의 코끼리가 싣고 있는 경을 모두 게송으로 만든다고 해도 나는 능히 게송으로 만들 수 있는데, 하물며 아난이 이 소법(少法)도 능히 짓지 못하느냐고 하는가?”모든 천의 뜻에 맞추고자 한 까닭에 게로써 모든 법을 송(頌)해 모든 하늘과 이근(利根) 중생에게 권해 가르친다.
‘마땅히 게를 듣고 이해를 얻는다’는 것은, 법은 곧 상장(上章)에서 말한 ‘모든 악을 짓지 말며, 갖가지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하는 법이다. 말하자면 이 법은 능히 3승(乘)을 이루며, 3악취(惡趣)를 끊고, 모든 과보의 결실을 갖추며, 2세(世)의 과보를 받는다. 재(才)에 우열이 있는 까닭에 시설하여 그를 권유해 나아가게 한다.송에서 ‘상(上)은 3장을 지니며, 그 다음에 4아함 혹은 능히 율장을 받는다. 곧 이것은 여래의 보(寶)이다’라고 말했다.
보라고 한 까닭은 비유하면 왕에게 보장(寶藏)이 있어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오직 내신(內臣)과 왕과 마음을 같이하는 자만이 곧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계율도 이와 같다. 만약 능히 250이나 500의 것을 지닌다면, 곧 그 사람에게 주며, 외부의 청신사나 청신녀가 가히 돌아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따라서 왕의 보물에 비유한 것이다. 가령 힘이 2장(藏)에 미치지 못하여 단지 아비담만 지닌다면 곧 외도에 항복하는 것이다. 96의 좁은 길은 종(宗)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다. 왜냐하면 이 비할 바 없는 묘한 지혜는 능히 위의 미체(微滯)를 결정해 활이(豁爾)로서 평등하게 하며, 또 오통주겁(五通住劫)이라 하더라도 4사(駛)가 제어하는 것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외도는 감히 엿보아서는 안 된다.
아난이 이 10게의 묘권(妙勸)을 외우는 것은 실로 3만의 천인을 위한 것이다.옛적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하시어 바라나의 녹야원에 계셨을 때 아야구린 등 다섯 사람을 위하여 4제의 법륜을 굴리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린이여, 마땅히 알아라. 고제(苦諦)와 고집제(苦集諦)와 고진제(苦盡諦)와 고출요제(苦出要諦)가 있다.”
바로 이 4제를 말씀하셨는데 구린은 유(有)에 머물러 있은 지 오래여서 지혜를 들어도 여전히 깨닫지 못했기에 곧 그를 위해 공(空)을 말씀하셨다.
“구린이여, 마땅히 알라. 4혜(慧)가 머무는 일체는 모두 공이며 또한 무상(無常)이다. 비유하면 환화(幻化)가 진실이 아니며, 있지 않은 것과 같다.”
구린은 곧 이해하여 견도적(見道迹)을 얻었다.네 사람은 아직 해득하지 못했다. 여래께서 또 마음의 근본을 보았는데, 두 사람의 병은 상(想)에 있어 갱락(更樂)에 집착하는 것으로, 생각이 재가(在家)에 있으며, 5욕이 난무하고, 연(戀)에 집착하여 버리지 않았다. 병에 따라서 약을 주듯이 곧 무상삼매(無想三昧)를 말씀하셨다.
“그대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멸진으로 돌아간다. 그 까닭에 마음을 방치시켜 즐기는 데에 둔다.”
그러자 생각한 바가 곧 풀려 두 사람도 도적(道迹)을 얻었다.다른 두 사람의 마음은 항상 범천에 태어나 범왕(梵王)이 되기를 원했다. 지니고 있는 바를 풀지 못해 또 쌓여졌다. 여래께서는 마음이 머무는 바를 보시고 그를 위해 무원(無願)을 말씀하셨다.
“네가 원하여 구하는 바인 범천왕은 능히 출요(出要)를 하지 못하며, 모두 마멸로 돌아가며,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구하는 바를 버려야 한다. 출요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자 곧 이해를 얻어 도적을 성취했다.다섯 사람이 가진 바는 각기 다르며, 이해하는 바도 같지 않았다. 소위 삼전사제(三轉四諦)란 공ㆍ무상(無相)ㆍ무원 가운데 모두 4제가 있는 것이다. 제(諦)는 곧 관(觀)이다. 정(定)은 곧 지(止)이다. 지관을 함께 닦아 음지입(陰持入) 가운데 치애병(癡愛病)을 고친다.‘12’란 12인연을 깨뜨리는 것이다. 옛적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4부를 위해 법을 말씀하셨는데 혹은 4제를 말씀하시고, 혹은 6도(度)를 설하시며 중생이 응하는 바에 따르셨다. 듣는 자는 각각 많아 그 수는 한량이 없었다. 혹은 국왕ㆍ장자ㆍ범지ㆍ거사 등이 있어 혹은 청하여 공양하고, 혹은 와서 청문했다.‘모든 소설(所說)을 가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아난이 여쭈었다.
“무엇을 일컬어 마땅히 듣는다고 하며, 본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후에 이르러 사부대중에게 법을 말할 때, 마땅히 듣는다고 말하며 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본다고 말한다면 곧 허망이다. 왜냐하면 들은 것은 이미 과거이고, 보는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과거 7불이 실로 가히 들었다고 말을 하며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너도 장래에 있어서 또한 이와 같다.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말한다.내가 은근히 아난에게 부촉하는 까닭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 비록 시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난만큼 부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에 이미 20억의 부처님을 공양하여 항상 시자가 되었고, 누(漏)가 다함을 구하지 않고, 항상 등지(等智)를 얻어 부처님의 뜻을 알고자 원했다. 그런 까닭에 지금 그 과보를 얻어 모든 것을 보며 그 원칙을 잃지 않는다.”모든 부처님들 가운데 용맹정진하는 것은 석가문(釋迦文)을 능가하는 자가 없다. 형제 가운데 미륵이 마땅히 앞에 있어야 한다. 지금 도리어 뒤에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옛적 30겁 전에 세 보살이 있었다. 함께 산에서 유행할 때, 굶주린 호랑이가 그 자식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이 생각해 말하였다.
“이 호랑이는 축생이다. 또 그 자식을 먹으면 죽어서 고통이 있게 될 것이다. 어미 또한 자애롭지 못하다. 나의 이 몸은 4대(大)가 합성한 것으로 마땅히 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니, 곧 이 몸으로써 그 자식의 목숨을 구하리라.”
다른 두 사람은 수긍하지 않고, 시장에 가서 고기를 사서 자식의 목숨을 구하려 하였다.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돌아오면 자식의 목숨은 온전하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산에서 몸을 던져 그 자식의 목숨을 구하리라.’그리고 곧 산 위에서 아래로 몸을 던졌다. 호랑이 입에 이르렀지만, 몸은 곧 안온하여 호랑이가 감히 먹지 못했다. 그 까닭은 대저 자비의 삼매에 들어간 자는 사물이 능히 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나무로 자신을 찔러 호랑이로 하여금 먹게 하였다.
말하자면 “이 용맹은 곧 9겁을 초월하여 지금 미륵 앞에 있는 까닭에 이렇게 그것을 말한 것이다. 도(道)에는 전후가 없고 뜻이 반드시 앞서게 된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지금 성불하며, 그런 까닭에 남겨진 가르침을 아난에게 위촉한다. 너는 마땅히 미래에 이와 같이 들었다고 말해야 한다.”어찌하여 또 일시라고 말했는가? 이것은 일월(日月)의 수인가? 사람의 이름인가? 대답하면 이것은 시절의 수이기도 하며, 또한 사람의 이름에도 있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또 두 이름이 있으니, 혹은 찰제리, 혹은 바라문이다. 또 두 이름이 있으니, 혹은 장자 종(種), 혹은 거사 종이다. 혹은 천상에 있는 것과 인간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이 한 곳[一處]이 아니다. 따라서 일시라고 말한다.바가바(婆伽婆)란 세존을 칭하는 것이다. 결사(結使)가 모두 다해 능히 그를 뛰어넘는 자가 없는 까닭에 칭하여 존(尊)이라 한다. 삼계의 모든 천이 모두 와서 스승으로 받들며, 8부의 귀신 또한 종경(宗敬)하는 바인 까닭에 세존이라 칭한다. 능히 악마를 항복시키므로 또 존이라 한다. 이와 같이 칭하는 바를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까닭에 세존이라 부르는 것이다.기수급고독원의 기타(祇陀) 태자는 바사닉왕(波斯匿王)의 적자이다. 그에게는 원전(園田) 80경(頃)이 있었는데, 땅은 평평하며, 나무는 무성하고, 갖가지 금수(禽獸)가 많았으며, 해가 뜨면 모두 모여들었다. 기타의 마음은 부처님께 있어 항상 정사를 지어 바치고자 하였다. 1년도 되기 전에 수달(須達) 장자가 또 와서 사기를 청했다. 기타는 어려서부터 장자와 친해 매일 서로 즐겁게 놀았었다. 태자가 농담으로 허가한다고 말하였다.수달은 뜻을 이루어 몹시 기뻐하며 시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빨리 코끼리에 가마를 달아 금을 싣고 땅에 뿌려라.”
곧 금을 싣고 나와 금을 땅에 뿌렸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40경에 가득 찼다.
기타는 말하였다.
“그만해라. 그만해라. 내가 한번 해본 말일 뿐이었다. 다시 뿌리지 말라.”
수달은 곧 태자와 함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이 뜻을 말했다. 왕이 말하였다.
“법에는 두말 하는 법이 없다. 이미 허락을 결정했으면, 후회하는 법은 없다.”
기타가 말하였다.
“나는 나무를 가질 테니, 그대는 땅을 취하라. 우리 둘이 함께 정사를 짓도록 하자.”강당 72개와 방을 1,250개 지었으며, 그곳은 평정(平正)하였으며, 과일 나무가 풍성했으며, 흐르는 샘물과 목욕할 만한 못이 있었고, 추위와 더위가 적절했으며, 네 곳의 전망이 탁 트였고, 겨울과 여름이 다르지 않았다. 그곳을 모두 고쳐 함께 세존을 청했다. 세존은 곧 1,250명의 비구와 함께 그곳에 오셨다. 단월이 네 가지를 공양하기를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아난빈지(阿難邠坻2))는 이 나라의 신하인 까닭에 양보하여 앞에 있게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경(經)에서는 매번 기타를 상수라고 칭한다. 공덕이 서로 이어지는 까닭에 이름도 서로 떨어짐이 없이 항상 합쳐서 부르는 것이다.‘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고했다’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청신사와 청신녀에게는 고하지 않았는가? 단지 비구에게 고했다는 것은 4부중에서 비구가 가장 으뜸이 되기 때문이다. 또 비구는 악을 깨뜨리는 주(主)이다. 무루법으로 모든 유루를 끊는 까닭에 먼저 비구에게 고하는 것이다. 또 사문(沙門)이라고도 한다. 사문이란 마음에 휴식을 얻어 그 욕심을 바꿔 적연하고 집착함이 없다. 또 제근(除饉)이라고도 한다. 세인은 색욕에 굶주려 있는데, 비구는 이 애근(愛饉)의 기상(飢想)을 없앤다. 세존의 설법을 비구는 능히 받으며, 생사를 끊어 없애 열반문에 이른다. 이러한 까닭에 비구에게 고한 것이다.‘마땅히 1법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염불(念佛)을 말한다. 염불은 어떠한 것인가? 부처님의 몸은 금강으로서 모든 누(漏)가 없다. 갈 때에는 발이 땅에서 네 치[寸] 정도 떠 있으며, 또 천 폭 정도의 자국이 땅에 나타나 발밑의 모든 벌레와 개미가 7일을 안온히 지내며, 또 만약 그 목숨을 마치는 것들은 모두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옛적에 한 명의 악한 비구가 있었다. 본래는 외도였는데, 옷을 빌려 입고 비방하고자 하였다. 여래를 좇아가면서 날벌레를 많이 죽여 부처님의 발자국에 놓아두고 말하기를 “벌레를 밟아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죽은 벌레도 부처님의 발자국을 만나면 다시 살아났다.
성읍에 들어가 발로 문지방을 밟으면, 천지가 크게 움직이며 온갖 음악이 연주하지 않아도 저절로 울렸다. 모든 귀머거리ㆍ맹인ㆍ벙어리ㆍ곱사등이ㆍ병자 등은 자연히 그 병이 치유되었다. 32상과 80종호를 보는 자가 있으면, 그 행에 따라 도(度)를 얻었고, 공덕이 생기는 바를 가히 헤아릴 수 없다. 혜명(慧明)이 비치는 바를 어찌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부처님은 모든 법의 주인이시며, 총체적으로 만행(萬行)이 모이며, 그것을 행하는 데 제일이다. 소위 염불이란 그 뜻이 이와 같다.염법(念法)이란 무엇인가? 법이란 소위 무루법ㆍ무욕법ㆍ도법(道法)ㆍ무위법이다. 욕으로부터 무욕에 이르는 것이다. 불(佛)이란 모든 법의 주(主)이며, 법이란 결사(結使)의 주이다. 혹은 물어 말한다.
“법이 먼저 있는가, 불이 먼저 있는가?”
“법이 먼저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법은 모든 불을 내고, 법은 불도(佛道)를 생기게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법이 먼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또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 까닭에 염법을 먼저 하지 않고 염불을 먼저 하였는가?”
“법이 미묘하여 능히 알 수 없는 것은, 마치 땅 속에 감추어진 진보(珍寶)가 어느 곳에나 있는데도 사람은 빈곤하여 돈과 물품이 모자란 것과 같다. 신통이 있는 사람은 그 장소를 알아 얻어 스스로 궁핍에서 벗어난다.”혹은 물어 말한다.
“보(寶)가 더 뛰어난가, 사람이 더 뛰어난가?”
“사람이 더 뛰어나다. 왜 뛰어나다고 하는가 하면, 감추어진 것이 비록 많다고 해도 신통이 아니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인 까닭에 그 자질을 얻지만, 어찌 보장(寶藏)이 땅 속에서 스스로 귀해지겠는가? 법도 이와 같다. 이치가 비록 현묘하더라도 여래가 아니면 말하지 못하며, 세존이 아니면 펴지 못한다. 그러므로 염불이 먼저이고, 법은 그 다음이다.”무엇이 염승(念僧)인가? 승이란 4쌍ㆍ8배(輩)ㆍ12현사(賢士)로서 세상의 탐쟁(貪諍)을 버리고, 복을 여는 길잡이로서 천인의 길에 통해 그것에 의하지 않음이 없으니, 바로 중생의 양우복전(良祐福田)이다. 어떻게 대중 스님이 좋은 복전인 것을 아는가?옛적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박복한 비구가 있었다. 1,250명 가운데 있으면서 대중 스님으로 하여금 식사를 얻지 못하게 하였으나 누구의 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부처님은 곧 2부로 나누었다. 1부 가운데 있으면서 1부로 하여금 식사를 얻지 못하게 하자, 다시 이 1부를 반으로 나누었지만, 그 반에 따르므로 또 그 반이 식사를 얻지 못하게 했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반으로 나누어 끝내 두 사람에 이르렀어도 또 식사를 얻지 못하게 했다.마침내 홀로 남아 비로소 복이 없음을 알았다. 놓인 음식을 먹으려고 다음에 발우가 있는 곳에 이르면 자연히 없어져 버렸다. 부처님께서 그 액(厄)을 불쌍히 여기셔서 손수 식사를 발우 속에 넣어주어 신력으로 제어하시니 다시는 없어지지 않았다. 부처님의 현신(現身)으로 복을 얻게 하고자 한 까닭에 둘을 멸진시킨 비구로 하여금 좌우에 있게 하여, 음식을 이 멸진 비구에게 보시하였다. 무릇 멸진삼매는 모두 즉시에 복을 얻게 한다.다음에 또 입자삼매(入慈三昧)의 비구를 좌우에 있게 하고, 다음에는 2비(悲)로써, 그 다음에는 2희(喜)로써, 그 다음에는 2호(護)로써 각각 두루 이어져 넷을 평등하게 끝내게 했다. 그때 바사닉왕이 이 비구가 박복하여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음식을 주신다고 하는 것을 듣고, ‘나는 지금 마땅히 그를 위해 복을 지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곧 시자를 보내어 쌀을 찧게 했다.그때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와 쌀 한 톨을 물고 날아갔다. 시자가 꾸짖으며 말하였다.
“왕이 범마달을 위해 복을 짓는데, 너는 어찌하여 물고 가는가?”
그러자 새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왜냐하면 이 비구는 대중 스님의 복력을 입은 까닭에 조수(鳥獸)도 능히 침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증거로 대중 스님이 좋은 복전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스스로 제도하였고, 또 능히 다른 사람도 제도해 3삼승도에 이르게 한다. 염중(念衆)의 법이란 그 뜻이 이와 같다.다음에 염계(念戒)란 그 뜻이 무엇인가? 5계ㆍ10계ㆍ250부터 500계까지 모두가 신(身)ㆍ구(口)를 금제(禁制)하고, 모든 사비(邪非)를 단속하며, 6정(情)을 염어(斂御)하며, 모든 욕심의 생각을 끊는 것이다. 속과 겉이 청정하며, 곧 계성(戒性)에 응한다.
옛날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가다가 넓은 못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마실 물이 부족했다. 그때 조그마한 연못이 있었는데 물속에는 벌레로 가득했다.한 비구는 깊이 금률(禁律)을 생각하여 범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 물을 먹으면 살생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내가 차라리 계를 지키며 목숨을 잃는 것이 후회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목숨을 마쳐 곧 천상에 태어났다.
한 비구는 스스로 생각했다.
‘마땅히 물을 마셔야 목숨을 보존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를 수 있다. 어떻게 사후에 어디에 태어나는가를 알 수 있겠는가?’
곧 벌레 있는 물을 먹어 매우 많은 벌레를 해쳤다.그리고는 비록 부처님을 뵐 수 있었으나 가르침에서 아주 멀어졌다. 울면서 부처님을 향해 스스로 말했다.
“친구 따라 목숨을 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위의 천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이 천을 아느냐? 이 천은 너의 도반이다. 모든 계의 공으로써 곧 천상에 태어나며, 지금 와서 여기에 머문다. 그대는 비록 나를 보았지만 나로부터 크게 멀어졌다. 그가 비록 목숨을 잃었어도 항상 나의 곳에 있다. 그대가 지금 와서 보는 나는 정녕 나의 육신만을 보는 것일 뿐인데 어찌 지극히 참된 묘계(妙戒)를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를 지녀 범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10염(念) 중에 계는 앞에 있으며, 6도(度)에서는 시(施)가 앞에 있다. 앞뒤가 같지 않은 것은 10염의 계는 성문가의 계이기 때문이다. 제자의 법은 몸을 단속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기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이다. 대사(大士)의 법은 혜시(惠施)를 중요하게 여긴다. 무릇 대사란 천인 가운데 태어나 마음이 이익을 구하는 데 있다. 이익을 구하는 요건은 보시하지 않으면 구해지지 않는 것이다. 무릇 중생이 목숨을 갖는 것은 의식(衣食)을 우선으로 삼는다. 그 까닭에 재시(財施)로써 먼저 그 형(形)을 구하며, 그 후에 법으로써 그 신(神)을 섭어(攝御)한다. 따라서 대사는 보시를 우선으로 삼는다.대체로 계에 두 가지가 있다. 속계(俗戒)와 도계(道戒)이다. 5계와 10선(善)은 속계를 이루며, 3삼매는 도계를 이룬다. 250계에서 500에 이르는 이것도 속계이며, 4제(諦)의 묘혜는 도계를 이룬다. 단지 계를 행하는 데 안주해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다. 혜로써 계를 제어하고 무루를 성취시켜야 곧 도계에 합치한다. 성문가의 계는 비유하면 무릎 위의 꽃을 움직이면 흩어지는 것과 같다. 대사의 계는 머리 위에 꽃을 꽂고 가도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소승은 형태에 구애되어 움직이면 곧 위의를 벗어나지만, 대사는 마음이 외부의 궤범에 구애되지 않는다. 이는 대소의 규범이 다른 까닭이며 형태와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외가 비록 달라도 함께 열반에 이른다. 그러므로 염계라 한다.염시(念施)로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까닭은 보시에 재시(財施)와 법시(法施)가 있기 때문이다. 재시로 인해 법시를 달성할 수 있으며 단월은 한량없이 제도를 성취하는 까닭에 열반에 이를 수 있다.염천(念天)이란 욕계와 색계로부터 무색계천에 이른다. 천에는 두 종류가 있다. 수복천(受福天)이 있으며, 도덕천(道德天)이 있다. 욕계의 모든 수다원천은 영원히 3악취를 떠나 나아가 도당(道堂)에 오른다. 색계와 공계의 8정거천(淨居天)은 지관을 더욱 닦아서 나아가 무루를 성취한다. 곧 그 열반은 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범부천(凡夫天)이란 10선(善)ㆍ4선(禪)ㆍ4공이며 그곳에서 복을 받고,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 유전해 그치지 않는다. 소위 염천이란 모든 득도한 자를 염하고, 한결같이 그를 본받으며 그의 행위를 사모하여 뜻은 흐트러지지 않고 또한 열반에 이른다. 그 까닭에 염천이라 한다.염휴식(念休息)이란 심의상(心意想)이 쉬어 5욕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적연(寂然)하여 영원히 안정되어 있는 까닭에 식(息)이라고 한다. 무릇 식(息)에는 두 종류가 있다. 외도 범지가 형태를 단속해 복을 구하는 것 또한 식이라 하지만, 사문이 4과(果)로써 갖가지 결(結)을 영원히 없애는 것이 곧 진식(眞息)이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알 수 있는가?옛날에 수라타(須羅陀)라는 비구가 사위성에 이르러 두루 교화를 행했다. 그때 사위성의 서쪽에 앙굴마(鴦掘魔)라고 하는 살인자의 처소가 있었다. 그곳은 평평하고 넓었고 수목이 많이 있었다. 그때 한 범지가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했다. 5곡을 먹지 않고 단지 과실만을 먹었으며, 만약 과실이 없으면 곧 풀과 나물을 먹고 정기를 이어갔다. 몸에는 나뭇잎 옷을 걸쳤으며, 형체는 야위었지만 스스로를 억제해 지탱했다.그때 수라타가 그곳을 지나다가 보고서 말했다.
“이 도사가 하는 좌선을 시험해 그 마음을 관하자. 정에 든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마음의 근본을 보자 곧 이 나라의 왕이 되기를 구하고 있었다. 생각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곧 대적(大賊)이 아닌가? 바로 없애자니 후에 죄에 떨어질까 두렵고, 바로 교화하자니 반드시 나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방편을 세워 이 사람을 제도해야겠다.”곧 한 나무 아래 서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가서 좌선을 했다. 곧 7일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고 흔들림이 없었다. 7일이 지난 뒤에 범지 앞에 이르러 손가락으로 쳐서 깨워 말하였다.
“친구여, 몸은 어떤가?”
범지는 한참 후에 천천히 머리를 들고 대답하였다.
“빈검(貧儉)하여 상(相)을 두는 것이 없다.”
비구가 또 말하였다.
“나는 지금 마땅히 그대에게 한 물건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곧 변화시켜 한 마리의 닭을 만들었다.
“그대는 이 닭을 죽여 먹어야 한다.”범지가 놀라 말하였다.
“나는 개미나 이도 죽이지 않는데, 하물며 닭을 죽이겠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너의 본심은 곧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것인데, 이 닭을 죽이라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범지가 또 말하였다.
“내가 어찌하여 무수한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너는 본래 여기에서 좌선을 할 때에, 곧 이 나라의 왕이 되고자 하였다. 왕은 다스리는 데 여러 사람을 죽이지만, 죽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닭은 곧 너의 마음속의 식(識)으로, 닭으로 인하여 무위의 대도를 얻을 것이다. 국왕은 뭐 하러 되려고 하느냐?”범지가 곧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안다. 이는 반드시 성인임에 틀림없다. 마땅히 그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거듭 그를 위해 법을 말해 주자 곧 도적(道迹)을 얻었다. 이 범지는 겉으로는 비록 고요하였지만 마음은 쉼이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식계(識鷄)를 죽이고 나서야 이에 휴식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후에 풀이하여 ‘심의상(心意想)을 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염신(念身)이란 몸의 36가지 부정(不淨)한 것이 드러나는 것을 관하여, 체념하여 흐트러짐이 없고, 또한 열반을 얻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옛날에 한 비구가 있어 아련야를 짓고 항상 걸식을 행했다. 강물 옆에서 식사를 하고, 식사한 뒤에는 발우를 씻었다. 그때 상류의 무덤가에 이제 막 죽은 여인이 있어 그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홀연히 발우 속에 떨어졌다.이 비구는 그 머리칼을 집어 들고 그것을 자세히 바라보며 몹시 좋아했다.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하였다.
‘만약 이것이 말의 꼬리라면 너무 가늘고, 만약 남자의 머리칼이라면 너무 부드럽고 가늘다. 만약 서로 얽혀서 풀어지지 않으면 이것은 반드시 여인의 머리칼이다.’
그런데 머리칼은 얽혀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곧 상념을 일으켰다.
‘이 머리칼의 여인은 반드시 아름답고, 얼굴은 복숭아 빛과 같고, 눈은 맑은 구슬과 같고, 코는 대나무 통을 자른 듯하며, 입은 단(丹)을 머금은 듯하며, 눈썹은 유연(蚰蜒:그리마) 같을 것이다.’이와 같이 분별하여 곧 욕심을 일으켜 물을 따라 찾고, 얼굴 보는 것을 추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여인을 보았는데 여우가 이미 그 반을 먹어, 몸뚱이는 냄새가 나고 문드러져 있었지만, 그 머리칼은 아직 남아 있었다. 머리칼을 집어 그것을 비교하자 길고 짧은 것이 서로 비슷했다. 조금 전의 욕상(欲想)이 석연하게 저절로 이해되었다.또 거듭 그것을 관하여 분별하고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살았을 때는 용모가 단정하고 예뻤지만, 지금은 문드러지고 썩은 사람일 뿐이구나. 내가 조금 전에 생각을 일으킨 것은 단지 몸에 대한 애욕을 탐하여 그러한 생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몸이 이와 같으니 나도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살펴보면 나의 몸도 4대가 합성된 것이다. 복이 다하고 연이 끊어지면 자연히 흩어진다.’
그 변화를 보고 마음을 깨달아 곧 도적(道迹)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염신이란 사문과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염사(念死)란 행인(行人)이 염하기를, 목숨이 떠나 머물지 않고, 모든 근이 흩어진 것이 나무가 부패한 것과 같이 명근이 단절된 것이다. 마땅히 항상하지 않음[非常]을 염하여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옛날에 바길리(婆吉梨)라는 한 비구가 있었다. 좌선하여 도를 행해 수년이 지났지만, 번뇌가 없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의 몸이 큰 번뇌가 된다고 근심하였다.매번 자해를 생각했다.
‘사람이 도에 이르지 못하는 까닭은 실로 정좌하여도 이 몸이 얽히고설켜 유전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손으로 칼을 집어 스스로 찌르고자 하면서 다시 거듭 생각하였다.
‘세존께는 가르침이 있다. 모든 제자들도 스스로를 해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 해도 나는 지금 열반을 구하고자 한다. 열반 중에는 몸은 없다.’이런 까닭에 먼저 몸을 없애 무위의 바른 도를 취하고자 칼을 들어 스스로를 찔렀다. 머리가 떨어지고 마음도 흩어져, 곧 아라한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도를 얻은 것을 아시고, 모든 비구에게 그 시신을 화장하도록 명했다. 이러한 까닭에 염사도 또한 열반을 얻는다.앞의 10염은 부처님께서 이근(利根) 중생을 위해 총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뒤에 또 말씀하신 것은 둔근(鈍根) 중생을 위해 그 뜻을 해석하신 것이다.
‘명예’란 나중에 전륜성왕을 얻는 것이다.
‘대과보를 얻는다’는 것은 나중에 제석천(帝釋天)을 얻는 것이다.
‘제선(諸善)이 널리 이른다’는 것은 나중에 범천의 과보를 얻는 것이다.
‘감로의 맛을 얻는다’는 것은 나중에 벽지불을 얻는 것이다.
‘무위처에 이른다’는 것은 나중에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다.위에서 10염을 설하는 데 이 다섯 구는 없었다. 지금 갖가지 과보를 더하는 까닭은 염불의 뜻과 그 이치의 깊고 묘함을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제자가 반열반하는 데 모두 숙세의 연에 의해 그 대가를 받는 까닭에 열반을 취한다고 말씀하신다. 목련은 얻어맞았고, 신자(身子)는 내장이 터졌다. 이와 같이 500제자는 각기 숙세의 연에 의해 멸도를 취했다. 오직 아난만이 최선(最善)으로 열반을 취했다. 아난이 열반하려고 하자 먼저 서광이 나타났다.아난으로부터 산술을 배웠던 범지가 아난의 얼굴색이 빛나는 것을 보고, 아사세왕에게 고하였다.
“아난의 안색이 이상합니다. 열반에 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왕이 사람을 보내 아난을 뒤쫓게 했다. 아난은 이미 500제자를 데리고, 중로항수(中路恒水)의 언덕 가에 이르러 배를 타고 건너려고 했다. 마침 강의 중간에 이르자 왕이 그 언덕에 이르렀다.비사리에서는 아난이 온다는 것을 듣고 500동자를 보내 맞이했다. 두 나라의 뜻을 맞추려고 신력으로 배를 제어해 강 중간에 머물러 있게 했다. 그때 제자를 제도했다. 한 사람은 마선제(摩禪提)이고 또 한 사람은 마신제(摩呻提)였다. 마선제에게 말하였다.
“너는 갈빈(鞨賓)에 가서 불법을 널리 알려라. 그곳은 아직 불법이 없으니, 잘 유포되도록 하라.”마신제에게 말하였다.
“너는 사자저국(師子渚國)에 가서 불법을 일으켜라.”
이와 같이 부촉하기를 마치고 18변을 지어 불을 내고 몸을 태웠다. 사리를 반으로 나누어 두 집안으로 하여금 각기 공양하게 하였다. 이것은 염불의 힘에 의해서 자재(自在)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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