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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706 본사경(本事經) 5권

by Kay/케이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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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본사경(本事經) 5

 

본사경 제5권

대당 현장 한역
김월운 번역

2. 이법품 ③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보시는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재물 보시[財施]며, 둘째는 법 보시[法施]이다.어떤 것이 재물 보시인가? 이른바 어떤 한 무리의 보특가라가 능히 갖가지 아름답고 묘한 음식과 향기로운 꽃타래[香鬘]와 옷과 수레와 집과 와구와 살림살이와 등불과 병에 맞는 의약을 보시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들을 보내어 두루두루 은혜를 펴는 것을 재물 보시라 한다.어떤 것이 법 보시인가? 이른바 널리 남들에게 바른 법을 말해 주되, 처음과 중간과 끝이 좋고, 말과 뜻이 교묘하고 순수하고 원만하며, 청정하고 깨끗한 범행의 법을 설하여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로운 온갖 번뇌의 법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법보시이다.이 재물과 법, 두 가지 보시 가운데 법 보시가 가장 높고 뛰어나고 묘하여 으뜸이니, 비유컨대 세간의 소에서 우유가 나고, 우유에서 낙(酪)이 나고, 낙에서 생소(生酥)가 나고, 이 생소에서 숙소(熟酥)가 나고, 다시 숙소에서 제호(醍醐)가 나오니, 이러한 갖가지 맛 가운데서 제호가 가장 높고 뛰어나고 묘하여 제일인 것과 같다. 이 재물 보시와 법 보시 두 가지 보시 가운데 법 보시가 가장 높고 뛰어나고 묘하여 제일이다.법 보시에서 능히 뒤바뀜[顚倒]이 없이 법 보시를 행하는 이는 오직 여래ㆍ응공ㆍ정등각ㆍ명행원만(明行圓滿)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장부(無上丈夫)ㆍ(調御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薄伽梵]뿐이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두 가지 보시 가운데
법 보시가 제일이니
능히 법 보시를 행하는 이는
선서께서 가장 높다 하시느니라.
재물의 보시 받을 복밭 중에는
여래가 제일이시니
재물 보시하는 이는 정함 없으나
법 보시를 받는 이는 중생뿐이네.
재물 보시는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게 하고
법 보시는 받는 이로 하여금
끝내 열반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제사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재물의 제사[財祠祀]요, 둘째는 법의 제사[法祠祀]이다.재물의 제사라 함은 어떤 무리의 보특가라가 가지가지 아름답고 묘한 음식과 향기로운 꽃타래와 옷과 수레와 집과 와구와 살림살이와 등불로써 제사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들을 재물의 제사라 한다.법의 제사라 함은 이른바 계경(契經)ㆍ응송(應頌)ㆍ기별(記別)ㆍ가타(伽陀)ㆍ자설(自說)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미증유법(未曾有法)으로 제사하되, 한량없는 법문으로써 이치대로 선설(宣說)하고, 시설(施設)하고, 세우고, 분별하고, 열어 보이는 것을 법의 제사라 한다.이 재물과 법, 두 가지 제사 가운데 법의 제사가 가장 높고 뛰어나고 묘하고 제일이니, 마치 세간의 소에서 우유가 나오고 우유에서 낙(酪)이 나오고, 낙에서 생소(生酥)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熟酥)가 나오고, 숙소에서 제호(醍醐)가 나오니, 이러한 갖가지 소의 온갖 맛 가운데서 제호가 가장 높고 뛰어나고 묘하며 제일인 것과 같다. 이러한 재물과 법, 두 제사 가운데서 법의 제사가 가장 높고 뛰어나고 묘하고 제일이다.법의 제사 가운데서 능히 뒤바뀜이 없이 법의 제사를 행하는 이는 오직 여래ㆍ응공ㆍ정등각ㆍ명행원만(明行圓滿)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장부(無上丈夫)ㆍ조어사(調御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뿐이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두 가지 제사 가운데서
법 제사가 제일이니
능히 법 제사를 행하는 이는
선서(善逝)께서 가장 존귀하다 하시네.
재물의 제사 받을 복밭에서는
여래가 제일이시니
재물의 제사 하긴 일정하지 않으나
법 제사를 받을 이는 중생뿐일세.
재물의 제사는 중생들로 하여금
세상의 편안한 쾌락을 얻게 하고
법의 제사는 받는 이로 하여금
끝내 열반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모든 수행자(修行者)가 함께 모였을 때에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법다운 말[法言]이며, 둘째는 잠잠함[宴黙]이다.법다운 말씀 때문에 덕 있는 이를 알아보고, 덕 있는 이를 아는 까닭에 깊이 믿고 공경하며, 깊이 믿고 공경하는 까닭에 곧 그에게로 가고, 그에게로 가는 까닭에 가까이하여 공양하고 섬기며, 가까이하여 섬기는 까닭에 바른 법 듣기를 바라고, 바른 법 듣기를 바라는 까닭에 귀를 기울여 어지럽지 않게 하고[攝耳不亂], 귀가 어지럽지 않은 까닭에 바른 법을 듣고, 바른 법을 들은 까닭에 법을 통달하고, 법을 통달하는 까닭에 능히 법을 기억해 지닌다.법을 기억해 지니는 까닭에 능히 뜻을 관찰하고, 뜻을 관찰하는 때에 법을 감당하여 자세히 생각하고, 법을 감당하여 자세히 생각하는 때에 문득 좋아하는 마음을 내고, 좋아하는 마음을 낸 뒤에는 문득 세력을 얻고, 세력을 얻은 뒤에는 능히 헤아리고, 헤아리는 까닭에 능히 결택(決擇)하고, 능히 결택하는 까닭에 진리[諦]를 따라서 깨닫고, 문득 스스로가 분명히 알되, ‘나의 생사는 이미 마쳤고, 범행을 이미 이루었고, 할 일은 이미 마쳤으니, 후생 몸[後有]을 받지 않으리라’ 한다.잠잠한 까닭에 마음이 문득 적정해지니, 청정하고 뚜렷하고 선백(鮮白)하여 티와 흠이 없다. 수번뇌(隨煩惱)를 여의고 순조롭게 길들여서 견디어 내며, 편안히 머물러서 움직이지 않으면 능히 이끌어 일으키니, 능히 이끌어 일으키는 까닭에 사실대로 깨달아 알고, 능히 사실대로 아는 까닭에 능히 싫어하고 저버리며, 능히 싫어하고 저버리는 까닭에 능히 애욕을 여읜다. 이미 애욕을 여읜 뒤에는 문득 해탈을 얻고, 해탈을 얻은 뒤에는 문득 스스로가 분명히 알되, ‘나는 이미 해탈하였다. 나의 생사는 이미 끝났고, 나의 범행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후생 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너희 비구들아, 마땅히 높은 법을 말하고, 마땅히 높은 법을 깨달아야 하니, 만일 능히 이와 같이 하면 비로소 진실하게 선인의 당기[仙幢]를 받는다 하고, 무리가 모여서 희론을 이야기한다 하지는 못할 것이다. 능히 모든 법의 참 모습을 깨달아 알고, 능히 모든 번뇌[漏]를 끊고, 능히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모임에서는 높은 법을 선설하고, 높은 법을 깨달아 알았으니, 그러므로 제일로 거두어들이는 선인의 당기라 한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행자들이 모일 때에는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할지니
이른바 고요히 잠잠함과
그리고 바른 법을 연설함이라.
바른 법을 연설하거나
고요히 잠잠한 까닭에
모든 법의 참모습을 알아
끝내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너희들 모든 비구들이
높은 법을 말하거나 깨치면
비로소 진실한 큰 선인의
당기[幢]를 받아서 지닌다 하리.
나는 항상 무리에 처해 있으되
바른 법을 말하고 비추었나니
그러므로 으뜸가게 큰 선인의
당기를 받아서 지닌다 하네.
만일 바른 법의 당기에 의해
연설하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나고 죽음 속히 해탈하여서
끝내 열반에 이르리라.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말을 할 때에 이치에 맞지 않게 뜻을 지어 욕심의 생각[欲尋思]을 일으키거나, 성내는 생각[恚尋思]을 일으키거나, 해치려는 생각[害尋思]을 일으킨다면 이러한 비구는 악이 많은 이라 부르며, 행이 거만하고 늘어진 이[慢緩]라 한다. 많은 악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방편으로 삼는 까닭에 끊을 것 여읠 것에 대하여 선(善)의 바퀴를 버리고, 방일과 게으름으로 하열하게 정진하고, 바른 기억[正念]을 잃어버리고 바르지 못한 지식을 가지며, 안정되지 않고 마음이 산란하여 모든 감관을 마음대로 방종하며, 벗어나는 소견이 없으며, 벗어나는 실답고 바른 지혜를 알지 못한다.악마와 악하고 선하지 못한 법을 향하여 나아가는 까닭에 온갖 악마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에게 꺾이고 항복되어서 온갖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자라게 한다. 만일 모든 비구들이 잠잠함에 있을 때에 이치에 맞지 않게 뜻을 짓고……(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온갖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자라게 하면, 이러한 비구들은 모든 지혜 있는 같은 범행 닦는 무리의 꾸짖음과 비방을 받을 것이며, 나도 그러한 이는 항상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이러한 비구는 비록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더라도 나쁜 지혜를 즐기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배우되, ‘나는 어떻게 하여야 이치에 맞지 않는 뜻 지음을 끊어 없애고, 방편으로 이치에 맞는 뜻 지음을 닦아 익히겠는가?’라고 해야 한다.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말하고 잠잠할 때에
모든 감관이 방일하여 악을 짓고서
나의 교법 받들어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리석고 어두운 사람이다.
그러므로 너희들 모든 비구들은
방일하지 않는 법을 마땅히 닦아서
이치에 맞지 않는 뜻 짓는 것을 여의고
반드시 이치대로 생각하여라.
너희들이 만일 바르게 힘써
말하고 잠잠할 때 방일하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서 생사를 면하고
위없는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모든 비구들이 말을 할 때에 이치와 같게 뜻을 짓되, 벗어나려는 생각과 성냄이 없는 생각과 해치려는 뜻이 없는 생각을 하면 이러한 비구는 선(善)이 많은 이이며, 거만과 늘어짐이 없는 이라 부른다. 많은 선에 나아가는 것을 방편으로 삼는 까닭에 끊을 데와 여읠 곳에서 착한 바퀴를 버리지 않고, 온갖 방일을 여의며, 용맹하게 정진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며, 마음이 안정되어 어지러움이 없고 세밀하게 모든 감관을 보호하며, 벗어나는 소견이 있으므로 능히 벗어날 줄 알며, 여실하고 바른 지혜로 악마의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버리며, 악마의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꺾으며, 온갖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줄인다.만일 모든 비구들이 잠잠함에 있을 때에 이치와 같게 뜻을 짓고……(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온갖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줄이면 이러한 비구는 온갖 지혜 있는 같은 범행을 닦는 이에게 칭찬을 받으며, 나도 또한 그를 항상 칭찬하고 이러한 비구는 참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큰 지혜가 있어서 온갖 현실[有]을 즐기지 않는다 할 것이니,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배우되, ‘나는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닦아 익혀야 이치와 같게 뜻을 지으며, 어떠한 방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뜻 지음을 끊어버리겠는가?’라고 해야 한다.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말하거나 잠잠히 있을 때
감관[根]이 하는 대로 악을 짓지 않고
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는 이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벗어나는 생각[尋思]과 성내지 않음과
해치지 않는 법을 닦는 까닭에
벗어나는 바른 소견 생겨나서
여실한 경계를 능히 알도다.
악마의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
꺾어 버리고
영원히 온갖 번뇌 끊었으므로
끝내 열반을 증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들 모든 비구들은
방일하지 않도록 수행할 것이요
이치대로 뜻을 지어서
이치 아닌 생각을 여읠지니라.
너희들이 만일 바르게 힘써서
말하고 잠잠할 때 방일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서 생사를 면하고
위없는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유학(有學) 비구에 두 가지 힘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생각하여 가리는[思擇] 힘과 닦아 익히는[修習] 힘이다.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생각하여 가리는 힘인가? 이른바 한 무리의 유학 비구가 가지가지 의복과 음식과 집과 와구와 병에 맞는 의약과 살림살이[資生具]를 수용할 때에 모두 잘 생각할 일이며, 생각하여 가리지 않고 수용하지 않는다.얻지 못한 의복ㆍ음식ㆍ집ㆍ와구와 병에 맞는 약과 온갖 살림살이에 대하여는 열심히 바라고 구하지 않으며, 이미 얻은 의복과 음식과 집과 와구와 병에 맞는 의약과 온갖 살림살이에는 깊이 탐착하지 않는다.춥고 덥고 주리고 목마름과 바람ㆍ해ㆍ모기ㆍ깔다구ㆍ뱀 등의 감촉을 참고 견디어 내며, 다른 이의 비방과 꾸짖는 소리 같은 말 등을 참고 견뎌 내며, 몸 안에서 생기는 매우 괴롭고 쓰라리고 저리고 아프고 참기 어려움이 목숨을 빼앗아 죽는 데 이르도록 고치기 어려운 괴로운 감각이라도 참고 견디며, 온갖 세간이 지극히 참기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어 내며,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짓[惡行]을 잘 생각하고 가리며, 능히 현재의 법과 다음 생의 법[生法]과 뒷세상의 법[後法]의 즐겁지 못한 괴로운 이숙과(異熟果)를 비추어 본다.그러고는 생각하되, ‘나는 지금 반드시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짓을 끊고, 나는 지금 반드시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묘한 행[三種妙行]을 닦을 것이다.’라고 하면, 능히 세 가지 나쁜 짓이 가진 허물을 바르게 깨달아 알며, 다시 세 가지 묘한 짓이 지니는 공덕을 바르게 알 것이다. 이미 바르게 안 뒤에는 부지런히 악한 짓을 끊고 부지런히 묘한 짓을 닦아서 스스로의 몸을 닦아 청정하게 하고, 모든 죄의 법을 여의니, 이것이 유학 비구가 처음 생각하여 가리는 힘이다.어떤 것이 비구가 닦아 익히는 힘인가? 이른바 한 무리의 배움 있는 비구가 얻은바 억념(憶念)은 모두가 각지(覺支)에 수순하여 어기지 않으며, 얻은바 가리는 법[擇法]ㆍ정진ㆍ기쁨[喜]ㆍ개운함[輕安]ㆍ선정[定]ㆍ버림[捨]도 모두가 각지(覺支)에 수순하여 어기지 않는 것이다.억념의 각지를 닦되 모두가 싫어하는 데 의지하고, 여의려는 데 의지하고, 멸하는 데 의지하고, 버리는 데[捨]로 회향하며, 가리는 법과 정진과 기쁨과 경안과 선정과 버림과 각지를 닦고 익힐 때에도 모두 싫어함을 의지하고 여읨을 의지하고 멸함에 의지하고 버림에 회향하니, 이것이 유학 비구가 뒤에 닦아 익히는 힘이다. 이것이 유학 비구들의 두 가지 힘이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유학 비구들은
대략 두 가지 힘이 있나니
생각하여 가림과 닦아 익힘으로써
간악한 마군(魔軍)을 항복받는 것이라.
나쁜 허물을 보면 능히 끊고
묘한 공덕을 알면 능히 닦아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을
바로 생각하여 가리는 힘이라 한다.
싫어하고 여의고 멸하는 데 의지하며
버리는 데 회향하여서
일곱 가지 각지(覺支)를 수행하면
이것을 닦아서 익히는 힘이라 한다.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가지 법이 다하는 까닭에 죽는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업(業)이며, 둘째는 수명(壽命)이다. 업이 다한 까닭에, 또는 수명이 다한 까닭에 반드시 목숨을 마치니, 만일 업이 있을 때라면 수명이 있고, 만일 수명이 있을 때라면 업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러한 두 가지 법은 항상 화합하여서 화합하지 않을 것이 없으니, 이러한 두 가지 법은 시설(施設)하거나 분석(分析)하거나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이때에 업이 있으면 저때에 수명이 있고, 이때에 수명이 있으면 저때에 업이 있다. 만일 업이 있다면 곧 수명이 있고, 만일 수명이 있다면 곧 업이 있으며, 만일 업이 없다면 곧 수명도 없어지고, 만일 수명이 없다면 업도 곧 없어진다.마치 등불을 켜면 불꽃과 광명이 나는 것과 같으니, 만일 불꽃이 있다면 곧 광명이 있고, 만일 광명이 있다면 곧 불꽃이 있으며, 만일 불꽃이 없다면 곧 광명이 없고, 만일 광명이 없다면 곧 불꽃이 없는 것과 같이 업과 수명도 그러하다. 만일 업이 있다면 곧 수명이 있고, 만일 수명이 있다면 곧 업이 있으며, 만일 업이 없다면 곧 수명이 없고, 만일 수명이 없다면 곧 업이 없으니, 이러한 두 가지 법이 다하는 까닭에 죽는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두 가지 법이 항상 따르니
이른바 업과 수명이다.
업이 있으면 수명도 있고
수명이 없으면 업도 없네.
수명과 업이 소멸하여 없어지지 않으면
유정은 마침내 죽지 않으려니와
수명과 업이 만일 다하면
유정들 죽을 것 의심 없도다.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가지 짓[二種行]을 세간의 중생들이 모두가 함께 짓는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능히 단명함을 부르는 짓이며, 둘째는 능히 장수함을 부르는 짓이다.어떤 것이 능히 단명함을 부르는 짓인가? 이른바 한 무리의 보특가라가 항상 살생을 즐기되, 성품이 흉폭(凶暴)하고, 손에 피를 묻히면서 산목숨을 죽이되 부끄러운 마음이 없고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없으며, 모든 중생들을 항상 죽이고, 나아가 다리 부러진 개미까지 죽인다면 이것은 능히 단명함을 부르는 짓이라 한다.어떤 것이 능히 장수함을 부르는 짓인가? 이른바 한 무리의 보특가라가 살생을 멀리하고, 살생하는 기구를 버리고, 부끄러움과 불쌍히 여기는 생각으로 모든 중생들을 항상 죽이지 않으며, 나아가 다리 꺾어진 개미도 죽이지 않는다면, 이것이 능히 장수함을 부르는 짓이다. 이것들이 두 가지 짓을 세간의 중생들이 모두가 함께 짓는 것이라 한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의 모든 유정들은
대략 두 가지 짓이 있나니
두 가지 짓이 차별된 까닭에
수명의 길고 짧음 있게 되어라.
이른바 언제나 살생을 즐기어
흉하고 사나워서 손에 피를 바르고
부끄러움과 불쌍한 마음 없는 무리는
단명함을 받을 것 의심 없어라.
언제나 즐기어 살생을 여의고
살생한 모든 기구 모두 버리고
부끄러움과 불쌍한 마음 있는 사람은
장수를 누릴 것 의심 없어라.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가지 행상[二行相]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마음의 모습[心相]을 취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반연하는 바의 행상[所緣行相]이며, 둘째는 뜻 지음의 행상[作意行相]이다.이미 취했고, 현재에 취하고, 장래에 취할 온갖 마음의 모습은 모두 이러한 두 행상에 의하는 것이니, 너희 비구들은 두 가지 행상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바르고 부지런하게 마음의 모습을 잘 취해야 한다. 마음의 모습을 취한 뒤에는 마땅히 뜻을 잘 지어야 하며, 뜻을 지은 뒤에는 마땅히 잘 관찰해야 하며, 관찰한 뒤에는 마땅히 잘 머물러야 하며, 머무른 뒤에는 땅의 경계[地界]와 같이 바르고 부지런히 닦고 익히되 한량없고 손해 없이 해야 하며, 마땅히 물의 경계[水界]와 불의 경계[火界]와 바람의 경계[風界]와 같이 바르고 부지런히 닦아 익히되 한량없고 손해 없이 해야 한다.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비유컨대 땅의 경계는 혹 그 안에다 똥ㆍ콧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와 같은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을 두니, 비록 그 안에다 이런 것을 두었을지라도 이 땅의 경계는 일찍이 어기고 순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높고 낮음이 없다. 이와 같이 마음을 안정하되 마땅히 땅의 경계와 같이 바르고 부지런히 닦아 익히기를 한량없고 손해 없이 해야 한다. 이미 땅의 경계와 같이 바르고 부지런히 닦아 익혀 한량없고 손해 없이 하였다면 비록 가지가지 어기고 순하는 인연을 만나되 마음에는 도무지 분별과 계교와 집착이 없고, 마침내 그러한 차별된 인연 때문에 그의 마음이 높고 낮지 않을 것이다.또 물의 경계ㆍ불의 경계ㆍ바람의 경계와 같은 것도 혹 그 안에다 똥ㆍ콧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 같은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을 비록 그 안에 둘지라도 그 물의 경계ㆍ불의 경계ㆍ바람의 경계는 일찍이 어기고 순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높고 낮음이 없었다. 이와 같이 마음을 안정하되 마땅히 물의 경계ㆍ불의 경계ㆍ바람의 경계와 같이 바르고 부지런히 닦아 익히기를 한량없고 손해 없이 해야 한다.이미 물의 경계와 불의 경계와 바람의 경계와 같이 하여 바르고 부지런히 닦아 익히기를 한량없고 손해 없이 하며, 비록 가지가지 어기고 순하는 인연을 만나되, 마음에 도무지 분별과 계교와 집착이 없고, 마침내 이러한 차별된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높고 낮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정에 의하는 까닭에 식(識)의 몸과 밖으로 반연하는 온갖 현상 가운데서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과 소견의 아만(我慢)과 수면(隨眠)을 잘 조복하고 잘 끊는다.저 두 가지에서 마음이 초월하여 온갖 형상[一切相]을 여의면 적정하고 안락하여 훌륭한 해탈을 얻을 것이다. 온갖 마음의 훌륭한 해탈과 지혜의 훌륭한 해탈로서 모두가 그 가운데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과 소견의 아만과 수면을 잘 조복하고 잘 끊을 것이다.저 두 가지에서 그 마음이 초월하여 온갖 형상을 여의고 정정하고 안온하여 훌륭한 해탈을 얻으면, 그가 얻는 이익ㆍ명예ㆍ칭찬ㆍ쾌락에 대하여 그 마음이 기쁘지 않고, 그가 만나는 쇠퇴ㆍ비방ㆍ조롱ㆍ고통에 대하여 그 마음이 슬프지 않으니, 이것이 세간의 여덟 가지 법[世間八法]을 초월한다 함이다. 그 마음이 평등하여 마치 세간의 땅ㆍ물ㆍ불ㆍ바람과 같으니,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 물들이지 못한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조복하기 어려움은 움직이는 마음이요
수행에서 멀게 함도 다른 것이 아니니
바르고 부지런히 형상을 취하면
이것을 세간의 총명[世聰明]이라 부르느니라.
마음의 모습을 잘 취하고
또다시 뜻을 지어 관찰하되
바른 기억으로 그 마음을 멈추게 하고
부지런히 네 경계와 같게 닦으라.
이와 같이 바르게 머무르면
온갖 욕망을 버릴 수 있나니
세간의 여덟 가지 법 가운데
공교하여 물들지 않는다 하리.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가지 법이 있어 비록 서로 어겨 한 번도 화합하지 않으나 그 가운데는 결함과 간격이 없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남[生]과 죽음[死]이다.비유컨대 세간의 광명과 어두움은 비록 서로 어겨 한번도 화합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결함과 간격이 없으니, 광명이 날 때에 어둠이 없어지고, 어두움이 생길 때에 광명이 물러난다. 남과 죽음도 그와 같아서 항상 서로가 어겨 일찍이 화합하지 않지만 그 가운데 결함과 간격이 없으니, 나는 법[生法]이 있을 때는 죽는 법[死法]이 없고, 죽는 법이 있을 때에는 나는 법이 사라진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광명과 어두움과 같아서
비록 서로가 어기지마는
그러나 두 가지 법 가운데
일찍이 간격과 결함이 없어라.
나고 죽는 법칙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언제나 서로 어기되
그러나 두 가지 법 가운데
일찍이 간격과 결함이 없었도다.
무명의 뿌리에서 돋아난 것이
애욕의 물을 뿌려 자라나나니
그리하여 나고 죽음 계속하여서
중간엔 사이와 틈이 없도다.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조복하지 못한 죽음[不調伏死]이며, 둘째는 조복한 죽음[調伏死]이다.어떤 것이 조복하지 못한 죽음인가? 이른바 모든 어리석은 범부와 들은 것이 없는 중생들이 능히 바른 소견을 가진 훌륭한 보살[正見善士]을 가까이 모시지 못하고, 훌륭한 보살의 법을 능히 알지 못하고, 훌륭한 보살의 법에 스스로를 조복하고 따르지 못한다.그들은 마음대로 관찰하되, ‘물질[色]이 곧 바로 나인가, 물질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물질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물질 안에 있는가?’ 하며, 또 그들은 마음대로 관찰하되, ‘느낌[受]이 곧 바로 나인가, 느낌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느낌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느낌 안에 있는가?’ 하며, 그들은 마음대로 관찰하되, ‘생각[想]이 곧 바로 나인가, 생각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생각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생각 안에 있는가?’ 하며, 그들은 마음대로 관찰하되, ‘지어감[行]이 곧 바로 나인가, 지어감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지어감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지어감의 안에 있는가?’ 하며, 그들은 마음대로 관찰하되, ‘의식[識]이 곧 바로 나인가, 의식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의식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의식 안에 있는가?’라고 한다.눈으로 물질을 보고는 그 형상을 집착하여 취하고, 집착하고 취하여 따라서 좋아하니, 이 까닭에 안근(眼根)은 능히 바른 생각으로 지켜 머무르지 못하고 탐욕과 근심을 일으키니, 문득 헤아릴 수 없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마음을 따라 흘러 들어와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안근을 지켜 막지 못하고 안근을 마음대로 방일하게 하여 온갖 경계로 다니면서 빛깔과 맛을 탐내어 그 마음을 얽어맨다.이 탐냄 때문에 긴 밤의 고통을 받고, 사나운 고통을 받고, 모자라는 고통을 받아 피[血]가 담긴 솥과 같은 몸을 늘이고, 비고 넓은 길을 늘려 한량없이 가고 오면서 지옥[那落迦]ㆍ축생[傍生]ㆍ아귀ㆍ아수라[阿素洛]ㆍ인간ㆍ천상의 길[趣]에 태어나서 온간 심한 고통을 받으니, 모두가 안근을 조복하지 못한 까닭이다.이와 같아서 어느 때는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뜻으로 법을 깨달아 그 형상을 집착하여 취하고, 좋은 맵시에 집착하여 취하니, 이 까닭에 그 의근(意根)을 바른 생각으로 지켜 머물지 못하고, 탐냄과 근심을 일으켜 문득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법이 생겨 마음을 따라 흘러 들어와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의근을 지키지 못하고, 의근을 마음대로 하여 온갖 경계로 다니면서 법의 맛을 탐착하여 그 마음을 얽어매게 한다. 이러한 탐냄 때문에 긴 밤의 고통을 받고, 사나운 고통을 받고, 모자라는 고통을 받아 피가 담긴 솥과 같은 몸을 늘이고, 비고 넓은 길을 늘려 한량없이 오고 가면서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의 길에 태어나서 온갖 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니, 모두가 의근을 조복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것이 조복하지 못한 죽음이다.어떤 것이 조복한 죽음인가? 이른바 온갖 성스럽고 들은 것이 많은 제자들이 이미 바른 소견을 가진 훌륭한 보살[正見善士]을 친히 보고, 이미 훌륭한 보살의 법을 밝게 알았고, 훌륭한 보살의 법에 이미 스스로를 조복하였다.마음대로 관찰하되, ‘물질[色]이 곧 바로 나인가, 물질이 나에게 속했는가, 물질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물질 안에 있는가?’ 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관찰하되, ‘느낌[受]이 곧 바로 나인가, 느낌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느낌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느낌 안에 있는가?’ 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관찰하되, ‘생각[想]이 곧 바로 나인가, 생각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생각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생각 안에 있는가?’ 하지 않으며, 그들은 마음대로 관찰하되, ‘지어감[行]이 곧 바로 나인가, 지어감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지어감이 내 안에 있는가, 내가 지어감의 안에 있는가?’ 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관찰하되, ‘의식[識]이 곧 바로 나인가, 의식이 나에게 속하였는가, 의식이 내 가운데 있는가, 내가 의식 안에 있는가?’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눈으로 물질을 보고서 그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맵시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러한 까닭에 능히 안근을 바른 생각으로 잘 지키고 머물러 탐냄과 근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한량없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마음을 따라 흘러들되 모두 능히 막아 낸다. 안근을 능히 잘 지켜 눈의 감관을 마음대로 하여 온갖 경계를 행하지 않으며, 빛깔과 맛을 탐내어 그 마음을 얽매지 않는다.이 탐냄 때문에 긴 밤의 괴로움을 받거나, 사나운 고통을 받거나, 모자라는 고통을 받아 피가 담긴 솥과 같은 몸을 늘이고 비고 넓은 길을 늘리지 않으며, 다시는 오고 가면서 지옥이나 축생ㆍ아귀의 세계와 아수라ㆍ인간ㆍ천상의 길에 나서 온갖 심한 고통을 받지 않으니, 모두가 안근을 잘 조복한 까닭이다.이와 같이 하여 혹시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감촉을 깨닫고, 뜻으로 법을 알되, 그 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맵시를 집착하지 않으면 이러한 까닭에 능히 의근을 바른 생각으로 잘 지켜 머무르며, 탐냄과 근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한량없는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이 마음을 따라 흘러 들어오되 모두 능히 막아낸다.의근을 능히 잘 지켜 의근을 마음대로 모든 경계에 행하지 않으며, 법과 맛을 탐내어 그 마음을 얽매지 않으며, 이 탐냄 때문에 긴 밤의 고통을 받거나, 사나운 고통을 받거나, 모자라는 고통을 받아 피가 담긴 솥과 같은 몸을 늘이고 비고 넓은 길을 늘리지 않으며, 다시는 오고 가면서 지옥이나 축생ㆍ아귀의 세계와 아수라ㆍ인간ㆍ천상의 길에 나서 온갖 심한 고통을 받지 않으니, 모두가 의근을 잘 조복한 까닭이다. 이것이 조복한 죽음이니라.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복하지 못한 죽음은 한량없는 생사의 고해에 빠지고, 조복한 죽음은 한량없는 생사의 고해를 뛰어넘을 것이다. 이것이 두 가지 죽음이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간략히 말하건대 모든 유정들은
죽는 법에 두 종류가 있으니
조복과 조복하지 못한 것이요
다시는 셋째 것이 있지 않다 하라.
만일 조복하지 못한 죽음은
반드시 모든 취(趣)에서
갖가지 괴로운 윤회를 받으며
한량없이 오고 가리라.
죽음을 조복한 사람은
끝내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과 천상의 길에서
영원히 고통을 면하리.
나는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더러움이며, 둘째는 청정함이다. 마땅히 한 법을 따라 생기는 것을 관찰해야 하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한 법을 능히 바르게 지키면 곧 온갖 것에 대하여 능히 바르게 지킬 것이며, 만일 한 법을 수호하지 못하면 온갖 것을 능히 수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한 법인가? 이른바 중생의 마음이다.만일 어떤 이가 마음을 능히 지키지 못하면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지키지 못할 것이고, 만일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지키지 못하면 그 사람은 곧 몸과 말과 뜻의 업 모두가 무너질 것이다.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무너진 까닭에 그 마음은 흔들리고 흐리고 더러움이 있고, 마음에 흔들림과 더러움이 있는 이는 능히 스스로가 이롭고 즐거운 일과 남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일과 함께 이롭고 즐거운 일을 바르게 알 수 없으며, 능히 좋은 말의 뜻과 나쁜 말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없으며, 능히 모든 뛰어나고 높은 사람의 법과 참되고 성스러운 지견(智見)도 역시 깨달을 수도 없다. 무슨 까닭인가? 마음에 흔들림과 더러움이 있기 때문이다.비유컨대 세간의 온갖 집이나 다락[臺觀]이 그 중심을 잘 덮지 않으면 서까래와 대들보와 벽이 모두 새어서 젖을 것이며, 서까래와 대들보와 벽이 새어서 젖은 까닭에 모두가 썩는 것과 같으며, 또 세간의 마을 이웃에 못이 있는데 흐리고 더럽거든 눈 밝은 사람이 그 언덕 위에서 뜻을 지어 그 안에 있는 소라와 조개와 거북과 물고기와 자갈 등의 종류가 다니고 멈추는 것과 너비와 곁을 관찰하려 하여도 지극히 보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 무슨 까닭인가? 물에 흐림과 더러움이 있기 때문이다.이와 같아서 만일 어떤 중생이 마음을 잘 수호하지 못하면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지키지 못하고, 만일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지키지 못하면, 그 사람은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무너진 것이다.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무너진 까닭에 마음에 곧 흐림과 더러움이 있으니,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있는 이는 능히 스스로가 이롭고 즐거운 일과 남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일과 함께 이롭고 즐거운 일을 바르게 알 수 없을 것이며, 능히 좋은 말의 뜻과 나쁜 말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없으며, 능히 모든 뛰어나고 높은 사람의 법과 참되고 성스러운 지혜와 소견 또한 증득할 수가 없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있기 때문이다.만일 어떤 이가 마음을 잘 지키면 능히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지킬 것이니, 만일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잘 지키면, 이 사람은 곧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무너지지 않는다.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무너지지 않은 까닭에 그 마음에는 흐림과 더러움이 없고,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없는 이는 능히 스스로가 이롭고 즐거운 일과, 남이 이롭고 즐거운 일과 함께 이롭고 즐거운 일을 바르게 알 수 있으며, 능히 좋은 말의 뜻과 나쁜 말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모든 뛰어나고 높은 사람의 법과 참되고 성스러운 지견을 증득할 수 있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다.비유컨대 세간의 온갖 집과 다락을 짓되 한복판[中心]을 잘 덮으면 서까래와 대들보와 벽이 모두 새어서 젖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서까래와 대들보와 벽이 새어서 젖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썩지 않는 것과 같으며, 또는 세간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못이 있되, 흔들림과 흐림과 더러움이 없어 눈이 밝은 사람이 그 언덕 위에서 뜻을 지어 그 안에 있는 소라ㆍ조개ㆍ거북ㆍ물고기와 자갈ㆍ돌 같은 무리의 움직이고 멈춤과 너비와 곁을 살피면 지극히 보기가 쉬운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물에 흐림과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다.이와 같아서 중생이 만일 능히 마음을 잘 지키면 능히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잘 지킬 것이며, 만일 능히 몸과 뜻의 업을 잘 지키면, 이 사람은 곧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모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몸과 말과 뜻의 업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없을 것이며,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없는 이는 능히 스스로의 이롭고 즐거운 일과, 다른 이의 이롭고 즐거운 일과 함께 이롭고 즐거운 일을 바르게 알 수가 있으며, 능히 좋은 말과 나쁜 말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으며, 능히 좋은 말씀과 나쁜 말씀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으며, 능히 온갖 뛰어나고 높은 사람의 법과 참되고 성스러운 지견을 증득할 수 있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마음에 흐림과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다.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마음이 더러운 까닭에 유정들이 더럽고,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유정들이 청정하니, 그러므로 더러움과 청정함의 두 법도 모두가 마음에 의지하며,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마음을 보호하지 않으면
갖가지 애욕을 따르고 순종하며
언제나 헤매고 방일하면서
온갖 짓 아니함이 없으리라.
만일 마음을 잘 지키면
갖가지 애욕을 따르고 순종하지 않고
헤맴과 방일을 아니하여서
온갖 것 모두를 잘 지키리.
세간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
몸과 말과 뜻을 잘 지키어
갖가지 죄악을 짓지 않으면
참으로 건장한 장부라 하리.
다시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가지 소견이 있어서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더욱 서로 어기고, 서로서로 원망하게 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있다는 소견[有見]과 없다는 소견[無有見]이다.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있다는 소견을 받아 지니고는 있다는 소견을 익혀 행하고, 있다는 소견에 탐착하여 없다는 소견을 좋아하는 이와 더욱 서로 어기고 서로 원수가 되며, 있다는 소견을 칭찬하여 가장 으뜸이라 한다.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다는 소견을 받아 지니고는 없다는 소견을 익혀 행하고, 없다는 소견에 집착하여 있다는 소견을 즐기는 사람들과 더욱 서로 어기고, 서로 원수가 되어 없다는 소견을 칭찬하되 가장 으뜸이라 한다.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 두 가지 소견, 즉 모든 모임[集]과 멸함[滅]의 맛이 허물과 벗어남임을 바른 지혜로써 여실히 깨닫지 않으니,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지견(智見)이 없고,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있고, 어기고 해침이 있고, 지혜와 밝음이 없다 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움 등의 법을 벗어나지 못하며, 생사의 뭇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 두 가지 소견, 즉 모든 모임과 멸함의 맛이 허물과 벗어남임에 대하여 바른 지혜로써 깨달아 알면, 나는 그 사람들은 지견이 있으며,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으며, 어기고 해침이 없으며, 지혜와 밝음이 있어서 반드시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움 등의 법을 벗어나며, 반드시 생사의 큰 괴로움을 벗어난다 할 것이다.”그때 세존께서 다시 이 뜻을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에는 두 가지 소견이 있어
더욱 서로 어기고 거슬리면서
이 편과 저 편이 원수가 되니
이른바 있거나 없다는 소견이다.
어떤 이로서 이러한 소견에 대해
애착하고 즐겨 버리지 못하는 이는
이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나니
언제나 남을 헐뜯고 자기를 칭찬함이라.
만일 이 소견의
모임과 멸함의 맛이 근심과 벗어남인 줄 알지 못하면
삿된 소견[邪見]의 화살에 상할 것이요,
무명의 어두움에 가리리라.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을 구족하게 하고
지견과 밝은 지혜 없는 무리는
반드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등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
만일 이 소견의 모임과 멸함의 맛이
허물과 벗어남인 줄 능히 알면
삿된 소견의 독한 화살 맞지 않고
무명의 어두움을 깨뜨리리라.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 멀리 여의고
지견과 밝은 지혜 구족하면
반드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등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
다시 세존으로부터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다.
“비구들이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두 가지 바른 소견이 있으니,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하여라. 만일 자세히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하면 능히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감촉하지 못한 것을 감촉하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며, 능히 근심과 한탄을 초월하고, 능히 걱정과 고통을 멸하며, 능히 이치와 같음을 얻으며, 능히 감로(甘露)를 맞으며, 능히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온갖 세간의 바른 소견[世間正見]과 출세간의 바른 소견[出世正見]이다.어떤 것을 세간의 바른 소견이라 하는가? 이른바 어떤 무리가 이러한 소견을 일으키며, 이러한 논리를 세우되, ‘반드시 보시가 있고, 받는 이가 있고, 제사할 것이 있고, 좋고 나쁜 업이 있고, 이숙과(異熟果)가 있고, 이 세간이 있고, 저 세간이 있고,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모든 유정들로서 화생(化生)하여 생긴 무리가 있고, 그 세간에는 사문과 바라문 등이 있으니, 이 세간과 저 세간에서 바르게 이르고, 바르게 행하면 자연히 통달하여 증득을 지어 받아들이리라’ 하면, 이것을 세간의 바른 소견이라 한다.모든 성스러운 제자들아, 여기에서 말한 세간과 바른 소견을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하여라. 여기에서 말한 세간의 바른 소견을 의지하면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끝끝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운 법 등을 벗어나게 하리라.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문득 바르게 깨달을 것이니, 여기에서 말한 세간의 바른 소견에 의거하더라도 중생들로 하여금 끝끝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운 법 등을 벗어나게 하지 못할 것이다.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말하는 세간의 바른 소견은 참되고 성스러운 소견이 아니며, 벗어나는 소견이 아니며, 능히 구경열반(究竟涅槃)을 증득하는 소견이 아니며, 싫어하고 여의는 것이 아니며, 적멸하고 고요한 것이 아니며, 신통과 지혜를 증득함도 아니며, 등각(等覺)을 이룸도 아니며, 열반을 얻는 것도 아니어서 도리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운 등의 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안 뒤에는 세간법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생각을 내고, 출세간법에 대하여 안정하다는 생각을 낸다. 세간법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생각을 내는 까닭에 도무지 집착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는 까닭에 바라고 구함이 없고, 바라고 구함이 없는 까닭에 안으로 구경열반을 증득한다.이와 같이 증득한 뒤에는 문득 스스로가 깨닫되, ‘나의 생사는 이미 끝났고, 범행은 이미 이루어졌고, 할 일을 이미 마쳐서 후생 몸[後有]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으니 너희들은 여기에서 말한 세간의 바른 소견을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해야 한다.어떤 것이 출세간의 바른 소견인가? 이른바 괴로움을 아는 지혜와 괴로움이 모인 까닭을 아는 지혜와 괴로움이 멸한 것을 아는 지혜와 괴로움을 멸하는 길을 아는 지혜이니, 이것을 출세간의 바른 소견이라 한다.모든 성스러운 제자들아, 여기에서 말한 출세간의 바른 소견을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해야 하니, 여기에서 말한 출세간의 바른 소견에 의거하면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끝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운 등의 법들을 벗어나게 하겠는가. 자세히 관찰하면 문득 바르게 깨달을 것이니, 여기에서 말한바 출세간의 바른 소견에 의거하면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끝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거로운 등의 법을 벗어나게 할 수 있다.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말한바 출세간의 바른 소견은 바로 참되고 성스러운 소견이며, 바로 벗어나는 소견이며, 바로 능히 구경열반을 증득하는 소견이며, 능히 싫어하고 능히 여의며, 능히 적멸하고 적정하며, 능히 신통과 지혜를 증득하며, 능히 등각을 이루며, 능히 열반을 증득하며, 능히 온갖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걱정하고 괴롭고 번뇌하는 등의 법을 벗어나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알면 출세간법에 대하여 진기한 보배라는 생각을 내고, 세간법에 대하여는 낮고 천하다는 생각을 낸다. 출세간법에 대하여 진기한 보배라는 생각을 내는 까닭에 문득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내는 까닭에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한 까닭에 몸이 개운하고, 몸이 개운한 까닭에 문득 열락(悅樂)을 받고, 열락을 받는 까닭에 마음에 적정을 얻고, 마음이 적정한 까닭에 능히 실답게 알고 보며, 실답게 알고 보는 까닭에 능히 깊이 싫어하고 저버리며, 깊이 싫어하고 저버리는 까닭에 능히 바르게 애욕을 여의고, 바르게 애욕을 여의는 까닭에 능히 해탈을 얻는다.해탈을 얻은 뒤에는 문득 스스로 깨닫되, ‘나의 생사는 이미 끝났고, 나의 범행은 이미 이루어졌고, 나의 할 일을 이미 마쳐서 후생 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너희들은 여기에서 말한 출세간의 바른 소견을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헤아리고 관찰해야 한다.이것을 두 가지 바른 소견이라 한다. 마땅히 자세히 생각하고 관찰하라. 능히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감촉하지 못한 것을 감촉하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고, 능히 근심과 한탄을 초월하고, 능히 걱정과 고통을 멸하고, 능히 이치와 같음을 얻고, 능히 감로를 맞으며, 능히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른 소견이 두 가지 있으니
세간의 소견과 출세간의 소견이다.
지혜로운 이 자세히 생각하면
능히 뭇 고통을 바로 다할 수 있으리.
세간의 바른 소견 잘 생각해
두려운 생각을 문득 내면
집착하는 생각들 없는 까닭에
끝내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
출세간의 소견을 잘 생각해
진기한 보배 생각 문득 내고
환희하여 마음이 쾌적하면
이로부터 개운함을 얻게 되리.
거뜬한 까닭에 즐거움 받고
즐거운 까닭에 마음이 적정하고
마음이 안정되면 깨달음을 내어서
네 가지 실다움을 알고 보리.
실다움을 보면 의심을 끊게 되고
의심이 없어지면 취하는 것이 없어져서
갖가지 괴로움을 벗어나니
위없는 열반을 증득할 것이다.
다시 앞의 경을 거두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시와 제사와 그리고 모임[集會]과
법답고 법답지 아니한 배움과
행상(行相)과 서로 어김과 죽음과
물듦과 청정함과 두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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